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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14/154)

14화

짝짝짝

“호오,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인데 아주 호쾌한 휘두름이었습니다.”

비담의 박수소리와 칭찬을 듣자 여인은 용기백배하여 다음 징을 울리기 위해 바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호쾌한 궤적.

빠악

“으헤이오오!!”

“쯧쯧, 부실한 놈이었네요. 그리고 약간 빗맞으면서 금만 가고 말았네요. 그렇게 어설프게 치면 고통만 엄청나고 기절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깨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올려 치세요. 뭐 약간의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 정도로 만족하고 넘어가죠.”

빠악, 퍼억......빡.

가장 마지막 나무에 고정되어 있던 후천은 돌아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익숙한 부하들의 비명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뭔가 부서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점점 옥죄어오는 공포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정확히 10명의 비명소리가 들린 후.

꿀꺽

후천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이제 남은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어설프게 맞아 기절도 못하고 끙끙 숨넘어가는 부하가 넷. 이제는 오히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으니 제발 한 방에 기절시켜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후천이었다.

하지만 이런 후천의 간절한 소망은 비담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실실 웃으며 상황을 즐기던 비담이 여인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하는 순간 여인의 눈빛이 표독스럽게 변했던 것이다.

여인은 자신의 몸 위에 직접 올라탄 것을 목격했다는 비담의 소곤거림에 몽둥이를 더욱 거세게 움켜쥐었다. 그리곤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10번의 휘두름을 능가하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는데 성공하였다.

빠~~악

뿌~각

“으~~헝!!!”

무언가 제대로 깨지는 소리와 함께 처절한 짐승의 울부짖음이 쩌렁쩌렁 산을 울렸다. 너무 큰 충격에 혼절도 못하고 아랫도리에서 전해지는 끔찍한 고통에 결국 게거품을 무는 후천이었다.

후천이 게거품을 물고 쓰러진 그 시각.

산의 중턱에 위치한 와호채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던 산적들은 태어나 처음 듣는 짐승의 울부짖음에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부, 부채주님. 도대체 어떤 동물이 무슨 일을 당하면 저런 소리를 내는 겁니까?”

“그, 글쎄다. 이 산에서 10년을 살았지만 저런 동물의 울부짖음은 처음 듣는구나. 아무래도 영업을 나간 채주님과 부하들에게 어서 빨리 알려야겠다.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

“알겠습니다.”

“아니다. 너 혼자 갔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산채에 있는 녀석들을 모두 불러 함께 내려간다.”

“예. 부채주님.”

부채주는 후다닥 뛰어나가는 부하를 보며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빌었다.

모인 부하들을 데리고 채주가 영업을 나간 장소에 도착한 부채주는 처참한 현장의 상황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채주인 괴력도 후천을 포함해 함께 나갔던 10명의 부하들 모두 살아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축 늘어져 나무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어째서?”

사방을 경계하며 반사적으로 자신의 무기를 꺼내든 부채주가 황급히 부하들에게 명했다.

“아직 범인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 경계를 늦추지 말고 모두 무기를 꺼내 들어라. 그리고 묶여 있는 채주님과 나머지 녀석들도 나무에서 풀어주고. 어서 움직여라.”

부채주의 다급한 외침에 부하들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우고 각자의 무기를 꺼냄과 동시에 묶여 있는 동료들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묶여 있는 옷을 채 풀기도 전에 어디선가 착 가라앉은 음성이 파고들었다.

“건들지 마라! 왜 남이 애써 잡아놓은 먹잇감에 손을 대나? 이미 침까지 발라놨구먼. 그리고 지금 그 녀석들 건드리면 죽어. 그러니까 그냥 놔둬.”

“누구냐? 숨어서 주둥이만 나불대지 말고 썩 나오지 못할까?”

산적들은 보이지 않는 적을 경계하며 무기를 고쳐 잡았다. 하지만 채주를 저 꼴로 만든 범인임이 분명했기 때문에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나오라면 못 나갈 것도 없지. 후후.”

비담은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리더니 잔뜩 겁을 먹은 산적들을 향해 걸어갔다.

“웬 놈이냐?”

“내가 만든 작품을 감상했으면서도 누군지 모르겠어?”

“그, 그럼 채주님을 저렇게 만든 범인이 너냐? 누군데 함부로 와호채를 건드린 것이냐?”

“아 그런 것에 일일이 대답하기는 귀찮고. 시간도 없는데 그만 씨부리고 빨리 덤벼. 입으로 싸울래? 그러다 해 떨어지겠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 좋다! 감히 와호채를 건드린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똑똑히 보여주마. 모두 쳐라!!”

부채주의 외침에 산적들이 이를 악물고 비담을 향해 몸을 던졌다. 몸에 기름을 덕지덕지 묻히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불나방들을 향해 비담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후후, 단순한 건지 멍청한 건지. 지들 대가리가 저리 된 상황을 보고도 저러나? 생각이란 걸 좀 하고 살자 이것들아.”

산적들의 단순함을 비꼬던 비담이 허리에서 부채를 꺼내 마주 달려 나갔다. 그리곤 가장 선두에서 달려 나오는 산적과 마주치려는 순간 비담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증발하고 말았다.

“뭐, 뭐지?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이런 쥐새끼 같은 놈. 썩 나타나 사나이답게 싸우......헉!”

빠~악

영문을 몰라 두리번거리며 씩씩대던 산적의 면상에 방긋 웃으며 나타난 비담이 부채를 내리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싸움이 펼쳐졌다. 하지만 경쾌한 타격음이 들린 순간부터 일방적인 학대가 이어졌을 뿐 싸움다운 싸움은 구경할 수 없었다. 마치 양떼 사이에 한 마리 늑대를 풀어 놓은 것처럼 전광석화와 같은 몸놀림을 자랑하는 비담이었다.

결국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산적들에게 그는 이번에도 정확히 머리만을 겨냥하여 한 방씩 선사하였다. 낮에도 별이 보인다는 사실을 몸소 확인한 산적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부채주의 마지막 비명소리와 함께 싸움은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전원 기상!!”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대는 산적들을 향해 비담이 외쳤다. 힘을 조절한 덕분인지 기절한 산적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골을 흔드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산적들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날 수 없었다. 비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릿하게 웃으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둘...셋!!!”

그리고 숫자가 끝남과 동시에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구타.

“끄악, 크윽, 제, 제발.”

옷에 묻은 먼지와 피를 털어내며 방긋 쪼개던 비담이 다시 숫자를 세었다.

“하나...둘...셋!!!”

숫자를 세고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지기를 십여 차례. 바닥에 등을 붙인 산적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확실한 구타와 정신교육을 통해 무장한 산적들이 직위와 산적밥을 먹은 순서대로 쭉 늘어섰다. 눈빛마저 달라진 산적들을 보며 비담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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