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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9/154)

9화

길천의 비장한 모습에 주눅이 든 비담이 침을 꿀꺽 삼킨 후 준비해온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비담의 입을 떠난 질문은 마치 제대로 날이 선 한 자루 비수가 되어 적장의 목을 따고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날아들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보림루에서 펼쳐진 공연에 피부가 까무잡잡한 흑형이 등장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너무 쉬운 질문을 하는군. 그 사람의 정체는 흑인이다. 사막을 지나 천축을 통과하고 나아가 더 먼 서역으로 가면 그처럼 피부가 까무잡잡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피부가 하얀 백인도 살고 있지. 난주는 예로부터 서역과 거래가 빈번한 도시라 인종에 구애받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지낸다. 참고로 백인 중에는 눈처럼 하얀 피부에 푸른 눈, 금빛의 머리를 휘날리는 여성도 있다. 다음.”

“두 번째 질문입니다. 수월이란 기녀가 저와 동침을 한 후 바로 기력이 쇠해 쓰러지고 눈물도 흘렸습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하하, 걱정도 팔자구나. 기녀가 쓰러진 것은 기력이 쇠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흥분에 정신을 놓은 것이다. 그리고 눈물 역시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전율에 감동을 해서 자신도 모르게 흐른 것이다. 절대 슬퍼서 흘린 눈물이 아니다. 다음.”

“다행이군요. 그럼 세 번째 질문을 하겠습니다. 제가 수월에게 했던 기술점수는 100점 만점에 몇 점입니까?”

“하하하, 가소로운 질문이야. 솔직하게 답할 것이니 비참하게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더욱 세심하게 기술을 연마하고 정진하는 게 좋을 거다. 너의 기술 점수는 50점이었다. 다음.”

제대로 한 방 먹었는지 비담의 영체가 한 순간 휘청하였다.

“으흠, 그렇군요. 앞으로 더욱 기술을 갈고 닦아야 되겠습니다. 네 번째 질문입니다. 어제 흡수한 색기를 내공으로 전환하니 비어있던 제 단전이 100분지 1정도 채워졌습니다. 여인과 교합을 할 때마다 분출되는 색기의 양에 차이가 있습니까? 어제 흡수한 양은 어느 정도이고 혹시 색기의 질이나 농도에도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이번에는 질문을 받던 길천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치며 휘청하였다.

“으흠, 제법 핵심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질문인데. 우선 답부터 말하자면 여인마다 색기의 양, 질이나 농도에 확연한 차이가 난다. 어제 자네가 흡수한 양은 평균적인 수치에서 많이 못 미치는 양이었다. 아마도 기녀라는 직업의 특성상 그동안 음기에 손상을 입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남자를 상대로 자신의 몸을 팔아 장사를 하는 기녀가 아닌 평범한 여인과 동침을 하면 평균적인 수치를 얻는다고 보면 된다. 아마도 양은 어제의 두 배정도 될 것이다. 그리고 처녀성을 잃지 않은 순결한 여인, 즉 숫처녀일 경우에는 그 음기가 순수하고 강해 어제 교합했던 여인보다 양이 서너 배 정도 높다고 보면 된다.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어제의 기녀는 9개의 등급 중에서 가장 낮은 하하급의 질과 색기의 양을 지녔다. 그리고 일반사람들 중 보통의 숫처녀가 지닌 색기의 양과 질은 중상급 정도라고 보면 대충 맞을 것이다. 최고의 등급인 상상급은 황궁에 거하며 몸에 좋다는 것은 모두 쳐 먹고 사는 숫처녀 황녀나 무림에서 순수하게 몸과 마음을 단련하여 내공을 쌓은 무림의 숫처녀 여걸들이라고 보면 된다. 상상, 상중, 상하, 중상, 중중, 중하, 하상, 하중, 하하. 9개 등급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거야. 다음.”

“참고하도록 하죠. 다섯 번째 질문입니다. 저는 어제 기녀와 한 번을 하고 피곤하여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룻밤 여인과는 몇 번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할 때마다 나오는 색기의 양은 일정한 것입니까?”

“그건 네가 아직 기술이나 흡정색공에 숙달이 되지 않았기에 그런 것이다. 이론으론 완벽하게 무장이 되어 있지만 어제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된 너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처음엔 누구나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니까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 점점 익숙해지면 하룻밤에 몇 번을 하더라도 피곤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액을 발사하지 않기 때문이지. 그리고 같은 여성과 몇 번을 하더라도 할 때마다 나오는 색기의 양은 줄어들지 않고 일정하다. 여인이 느끼는 쾌감의 강도가 더욱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형님께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요. 내심 저에게 무슨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그럼 여섯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흡정색공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이 무엇입니까?”

“하하하, 처음으로 색기를 맛보더니 기둥뿌리까지 뽑으려 드는구나. 까짓 기분이다. 흡정색공의 가장 큰 장점은 여인의 정기를 훼손하지 않고 시전자가 내공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다. 너도 어제 확연히 느꼈겠지만 흡정색공을 통해 절정에 오른 여인은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강렬한 쾌감에 거의 실신직전까지 간다. 아니 보통은 실신해 버리지. 이걸 전문용어로 ‘떡실신’ 이라고 한다. 아무튼 과거 천마랑 검제 그 새끼들이 나를 음적으로 몰아 처단하기가 애매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랑 동침을 했던 여인들이 적극적으로 나를 감싸고 변호를 했거든. 그리고 여인들의 상태를 점검해보니 정기도 멀쩡하고 전혀 상하지 않았거든. 여인들의 음기를 흡수하여 내공을 쌓는 일반 색마나 음적들하고는 뭔가 다르거든. 그러니 지들이 무슨 명분으로 나를 처단하겠냐고. 그래서 결국 애매하니까 천마랑 검제도 나를 우습게보기는 하였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너도 알겠지만 여자들이 제대로 그 맛을 보면 헤어 나오기 힘들지. 아무튼 그렇게만 알고 다음.”

“자, 잠깐만요. 그럼 그렇게 생애 최고의 맛을 본 여인들이 형님을 내버려 두었습니까? 옆에 따라 다니면 계속 그 맛을 볼 수 있으니 가만 두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임마, 꽃이 움직이는 거 봤냐? 무조건 도망을 다녀야지. 나비나 벌이 계속 꽃 하나랑 붙어먹으면 결국 굶어 죽고 말아요. 여기저기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다양한 꿀을 채집해서 먹어봐야 인생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법. 고매한 형님의 뜻 접수했냐?”

“에이, 그건 아니죠. 그렇게 백날 싸돌아다니면 언제 진정한 꽃을 찾습니까? 니미 내가 무슨 무료 봉사단도 아니고 즐거움도 없이 매일 봉사만 하면서 꿀만 따라고요? 꿀을 따다가 마음에 드는 꽃이 있으면 앉아서 놀기도 하고 살림도 차리고 그 짓도 매일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형님 말대로 하면 여자 좋은 일밖에 더 됩니까?”

“도대체 그건 어느 나라 개소리냐? 즐거움 없는 봉사? 지랄하네. 대신 색기를 통해 내공을 얻는 것은 생각 안하냐? 임마 세상 이치가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고, 힘이 약해 억울하게 빼앗기면 밤에 뒤통수라도 몰래 쳐서 다시 빼앗아 오는 게 인지상정인 거지. 손에 모두 쥐려고 하면 결국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야. 내공을 모아 힘을 얻으려거든 진심이네 사랑이네 운운하며 감상에 젖지 않도록 명심하고 또 명심해라. 원래 이 바닥이 풍요속의 빈곤이야.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도 힘들지만 설사 만났다고 하더라도 꽃에 안착하는 순간 그냥 이 바닥 은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그냥 마음이 점점 허해져도 쌓이는 내공을 보며 잊어야지. 뭐 별 수 있냐? 아무튼 다음 질문.”

“휴우, 알겠습니다. 그건 나중에 좀 더 생각을 하기로 하고. 그럼 중요한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어제 그 기녀에게 동정을 잃은 건가요? 이제 더 이상 숫총각이 아닌 겁니까?”

“푸하하하! 너 오늘 제대로 한 방 터트리는구나. 아주 웃겨. 야 임마? 너 어제 쌌어?”

“아, 아뇨. 정액 발사 금지라고 신신당부를 하신 건 형님이잖아요? 당연히 안 쌌죠.”

“그런데 무슨 동정을 잃었다고 난리야. 시원하게 정액을 분출해야 동정을 잃는 거지. 뭐 ‘여자랑 남자랑 손만 잡고 자도 애가 생기나요?’ 이 질문이랑 도대체 다른 게 뭐냐. 푸하하하. 아! 그렇다고 해서 손장난으로 발사된 정액은 거기 포함시키지 마라. 어디까지나 동정을 주었다는 것은 남녀 간의 교합 도중에 아이를 만들 수 있는 여성의 몸 안에 싼 것을 의미하니까. 백날 허공에 발사하고 이불을 적셔 봐야 애는 안 만들어 지니까 그리 알면 된다. 그리고 방금 진정한 사랑 어쩌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혹시라도 나중에 진정한 사랑을 찾아 이 바닥에서 은퇴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가서 너의 동정을 바치면 된다. 접수했냐?”

길천이 마지막 치명타를 날리며 먼 곳을 응시하였다. 나름 자세를 잡는다고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워 비담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럴 때 보면 시대와 나이를 초월해 정말 죽이 잘 맞는 형제처럼 보였다.

“크윽!! 제가 졌습니다. 형님의 고매하신 뜻을 어리석은 동생이 접수했나이다.”

결국 비담의 영체는 피를 토하며 한쪽 무릎을 꿇는 수고로움까지 감수하였다.

“하하하, 애송이 녀석. 언제든 도전을 받아주마. 다른 궁금증이 생기면 언제든 나를 찾아오너라.”

“그만합시다. 피까지 토한 거 뻔히 보셔놓고 아무튼 욕심은. 그나저나 형님의 놀라운 식견과 난잡하면서 방대한 지식에는 못 당하겠습니다. 순순히 백기를 들고 항복하겠습니다.”

“근데 동생?”

“왜요?”

“왜 그 기녀 있잖은가?”

“수월이요?”

“응. 왜 한 번만 한 거야? 아무리 정신을 잃었다고 해도 금방 깨어날 텐데 더 하지 않고서 그냥 멈추고 잠만 퍼질러 잔거야?”

“아, 그거요? 그냥 그러기가 싫었습니다. 제가 무슨 발정난 개도 아니고 곤히 잠든 아이를 어찌 깨웁니까? 그리고 눈가에 흐르는 눈물자국을 보니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무 학대했나?’, ‘과도한 기술의 부작용인가?’ 그래서 저도 그냥 잤습니다. 아무리 색기를 모아 내공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저도 인간이지 않습니까? 색에 환장한 짐승이 되기는 싫었습니다. 그 이유뿐입니다.”

비담의 대답을 들은 도색성 길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됐네, 됐어. 그거면 된 거야. 아마 자네는 색으로써 천하를 평정하고 크게 성공할 거야. 그렇게 꽃을 배려하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야말로 색마들은 꿈도 꾸지 못할 경지지. 아무리 여인과의 교합으로 내공을 얻는다고는 하지만 여인들에게 기쁨을 선사한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잃어버리지 말게. 지금의 그 마음 변하지 않기를 바라네.”

“하하, 천하의 도색성 형님께 색에 대한 칭찬을 들으려니 많이 쑥스럽네요.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최대 다수의 여인에게 최고의 행복을 선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돌아가는 비담의 영체를 흐뭇하게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길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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