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화 〉297회.
여러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기대한 것처럼 콜로사도 자신의 전국 리그 첫 등판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을 겉으로 들어낼 순 없었다.
자신이 등판한다는 건 선발 투수인 벨리나가 강판된다는걸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발키리 팀 입장에서는 그녀가 투수로서는 한 번도 나서지 않는게 가장 좋았다.
아니면 반대로 주 포지션인 대타로 출장을 하던가.
콜로사의 투타 겸업 때문에 묻힌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콜로사는 훌륭한 홈런 타자였으니 말이다.
오늘 경기는 양 팀의 화력 쇼가 펼쳐질 꺼라 예상이 되었다. 재규어스와 발키리의 선발 투수가 모두 전국 리그 평균보다 떨어지는 B등급 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상대로 초반부터 점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 좌측!! 크게!! 간다, 간다, 간다아아!!! 장아연의 선두 타자 홈런~!!!
- 한가운데 공을 제대로 잡아당겼어요. 맞자마자 홈런임을 할 수 있는 타구였습니다.
- 시작부터 기선을 제압하는 벨벳 발키리! 점수 1대 0 입니다.
선두 타자에게 홈런을 허용하자 재규어스의 선발 투수 이태희는 당연히 흔들렸다. 그리고 그 결과 다음 타자인 리사에게 볼넷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태희는 장아연에게 홈런을 맞은 상태에서 그보다 더 뛰어난 타자인 리사와 정면 승부를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유인구 위주로 피칭을 하려 했지만, 누가 봐도 볼일 정도로 유인이 전혀 되질 않았다.
- 다음 타자는 신지은 선숩니다. 올 시즌 2할 6푼 3리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홈런은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 상위 리그로 올라와서 그런지 아직까지 제 실력대로 활약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초반 컨디션이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아요.
- 자, 1볼 1스트라이크에서 제 3구 던집니다. 바깥쪽 빠지는 공. 참아냅니다. 2볼 1스트라이크.
해설 위원의 말대로 현재 지은의 성적은 그녀의 공격력에 비하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적어도 OPS가 1할은 넘게 올려야 했다.
- 이럴 때 홈런 한 방이 나오면 그 때부터 컨디션이 확 좋아질 수도 있는데 말이죠.
- 하하, 그런가요? 과연 신지은 선수가 홈런을 시즌 첫 홈런을 때려낼 수 있을지.... 제 4구! 쳤습니다. 밀어친 타구. 외야로 높게 떴습니다. 우익수 뒤로 뒷걸음질 칩니다만... 어, 어, 어!!
힘껏 노려 쳤지만 타구를 봤을 때 외야 플라이처럼 보였다. 아마 워닝 트랙 즈음에서 잡히지 않을까?
지은은 그렇게 생각하며 1루를 향해 뛰었다. 그래도 우익수가 포구 실수를 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 우익수, 더 이상 뒷걸음질 칠 수가 없습니다!! 타구가 그대로 담장을 넘어갔습니다!! 신지은 선수의 투런포!!!
- 담장을 아주 살짝 넘어가는 홈런이 나왔네요. 재규어스 파크 라서 이게 넘어갔지, 다른 구장 같았으면 워닝 트랙 앞에서 잡혔을 거에요!
- 이태희가 짧은 홈 구장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맙니다. 신지은의 투런포로 점수 3대 0이 됩니다.
"이얏~ 호우~!"
우익수가 허탈한 듯 담장에 기대 미끄러지듯 주저앉고, 2루쪽 원정 응원석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지은 역시 기대하지도 않던 홈런이 나오자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흐흐, 우리 여보야에게 찐한 상 달라고 그래야지~"
아직 노 아웃이니 라커룸으로 가서 동국에게 찐한 포상을 받을 시간은 충분했다.
지은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발키리가 1회 초 3점을 뽑아내자, 재규어스는 1회 말 바로 추격하는 1점을 만들어 냈다. 1사 만루 상황에서 베테랑 포수인 강민아가 노련하게 희생 플라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 한동안 양 팀 다 점수를 뽑아 내지를 못했다.
2회 초 리사와 지아의 안타로 1사 만루의 찬스가 만들어 졌지만.
- 잡아 당긴 타구! 1루수 잡아서 홈에!! 아웃 입니다!! 홈에서 아웃!!
- 전진 수비도 전진 수비지만 1루수 오채원 선수의 핸들링이 아주 기가 막혔네요. 잡기 힘든 바운드였는데, 멋진 핸들링으로 타구를 잡아냈습니다.
수정의 땅볼 타구 때 2루 주자였던 리사가 홈에서 아웃 되며 2아웃이 되었고, 다음 타자인 아연이 외야 뜬공을 치면서 점수를 얻어내지 못했다.
득점력 부족은 재규어스도 마찬가지였다.
위기 뒤 기회라고, 재규어스는 곧바로 2회 말 2사 만루의 찬스를 만들어 냈다
- 툭 갖다 밀어친 타구! 2루수 잡아서 1루에~ 아웃 입니다!! 2사 만루의 위기를 벗어나는 벨벳 발키리! 점수 3대 1이 유지됩니다!
1볼 2스트라이크 상황, 타자에게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스크류볼에 타자의 방망이가 끌려 나오고 말았다. 팔을 쭉 뻗어 공에 컨택이 되긴 했지만, 타구에는 힘이 없었고, 아연이 멋진 대시 수비로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3회 말. 재규어스에게 다시 찬스가, 발키리에겐 위치가 찾아왔다.
볼넷과 안타로 만들어진 1사 만루 상황.
동국을 비롯한 발키리 관계자들과 팬들은 벨리나가 이 상황을 막아주길, 반대로 경기장을 가득 매운 재규어스 팬들은 제발 점수 좀 내길 기도했다.
"진짜 저 변비 걸린 년들, 제발 이번엔 점수 좀 냈으면 좋겠다. 지금 안타가 5개에 볼넷이 1개인데 점수는 고작 1점이야. 이게 말이 되냐?"
"반대로 발키리는 안타 4개에 볼넷이 1개로 우리보다 안타가 적은데 점수는 3점이지. 물론 홈런이 2방 있긴 하지만."
"진짜 홈런이 문제다, 홈런이. 홈 구장이 홈런 친화 구장이면 뭐하냐, 타자들은 홈런을 못치고, 투수들은 홈런을 얻어맞는데. 어찌 된 게 타자들이 아니라 투수들이 홈런 공장장이야, 아주."
재규어스 팬들은 이 답답한 경기 상황에 한탄을 하면서도 이번에는 타자들이 점수를 내길 기원했다.
그리고 마침 타석에는 1회 말에 타점을 올린 강민아가 있었다.
딱~
강민아는 베테랑 답게 타구를 외야로 보냈다. 그에 재규어스 팬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홈으로 갈 수 있다, 갈 수 있다!"
"오채원이가 그렇게 느린 편은 아니아! 충분히 홈에서 살 수 있어..!"
반대로 발키리 팬들도 기대감을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구가 짧다. 이건 홈에서 승부 볼 수 있어!"
"그럼~! 지아의 어깨라면 충분히 가능해!"
높게 뜬 타구가 지아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가자, 2루 베이스를 밟고 있던 2루 주자가 힘차게 홈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지아 역시 글러브에서 공을 빼내 강하게 홈을 향해 송구했다.
""아아아...""
""오오오~!!!""
양 팀 팬들의 반응이 엇갈린 가운데 심판이 힘차게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아웃~!!! 아우웃~!!!"
- 홈에서 아웃이 되면서 이닝이 이렇게 종료됩니다!!!
- 넉넉하게 아웃이 됐어요. 타구 비거리가 짧기도 했지만, 지아 선수의 강한 어깨, 그리고 정확한 송구가 실점을 막아냈습니다.
- 반대로 강민아 선수는 이번엔 타점 획득에 실패했군요.
- 그렇죠. 1회 말에는 타구가 좌측으로 가서 희생 플라이가 만들어 졌는데, 이번엔 타구가 우측으로 가서 실패했네요. 발키리의 좌익수인 김수정 선수는 어깨가 약한 편이지만, 우익수인 최지아 선수는 강한 편이죠.
"아이~!! 좋았어, 지아야!! 우리 지아, 투수 해도 되겠는데~?"
"히히, 그럴까~? 나도 투타 겸업 해볼까아~? 투타 겸업 하면 용돈도 2배로 줘?"
"당연하지~"
"그럼 집에 돌아가서 나도 한번 던져봐야 겠다. 흐흐, 기대하라고~"
홈 보살을 성공시킨 지아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외치자 그걸 들은 콜로사의 표정이 순간 새햐애졌다.
'아이, 그러면 안되는데..!'
지아가 투타 겸업을 하게 되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몰랐다. 변함 없이 콜로사가 1군 엔트리에 계속 포함될 수도 있었지만, 예전처럼 정대연이 자신 대신 1군 엔트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다.
콜로사는 자신의 쓰임새를 증명하기 위해 한쪽 구석에서 열심히 배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위기 뒤 기회라는 명언은 이번에도 적용됐다.
4회 초, 선두 타자로 나선 수정이 안타를 치자, 델루나는 곧바로 현아를 대주자로 투입시켰다.
현아가 도루를 시도할 거란 건 이태희도 알고, 강민아도 알고, 해설진들도 알고, 재규어스 팬들도 알았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그녀의 도루를 막기는 힘들었다.
- 제 2구. 주자, 뛰었습니다! 포수, 2루에! 아, 공 한번에 잡질 못합니다. 그 사이 1루 주자는 2루에 도착하며 도루에 성공합니다.
- 너무 마음이 급한 나머지 공을 제대로 잡질 못했네요.
강민아가 저글(juggle)을 하면서 현아가 여유 있게 도루에 성공했다. 하지만 저글을 하지 않았다 해도 강민아가 현아의 도루를 저지하긴 쉽지 않았다. 그녀의 어깨 능력치로는 주력 S급, 거기에 도루 관련 특성까지 있는 현아를 잡을 순 없었다.
딱~
- 3구. 쳤습니다. 좌익수 잡았습니다. 2루 주자 태그업. 여유 있게 홈에 들어오면서 스코어 4대 1. 석 점차로 벌어집니다.
- 경기 후반에 이 달아나는 점수는 재규어스의 추격 의지를 꺾을 수 있어요.
점수 차가 더 벌어진 여유로운 상황에서도 콜로사는 열심히 스윙 연습을 했다. 그리고 2사 만루 상황. 델루나가 콜로사를 호명했다.
"콜로사! 대타 다! 가서 멋진 모습 보여줘!"
"넷! 감독님!!"
대주자로 경기에 출전한 현아 대신 콜로사가 타석에 들어서게 되었다. 전국 리그 첫 출전이었다.
- 타석엔 대타 콜로사 베야 선숩니다. 전국 리그 데뷔 타석 이군요.
- 라인업에는 투수로 이름을 올렸지만, 사실 타자죠? 경기 전에 투타 겸업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바로 그 선숩니다.
- 실력은 아직 떨어지긴 하지만, 신체 능력이 워낙 뛰어나다고 합니다. 특히 파워가 정말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 맞으면 넘어간다는 거겠죠. 긴장하지 않고 본인만의 스윙을 가져간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겁니다.
흔히들 신인 타자에게 본인만의 스윙, 자신 있게 풀스윙을 하라고 조언하고 지시한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쉽겠나. 신인인 만큼 멋모르고, 겁 없이 하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반대로 겁 먹고 긴장해 공에 맞추기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콜로사는 다른 의미로 맞추는데 집중했다.
'힘 들어가지 않게... 가볍게 컨택한다는 느낌으로. 레벨 스윙으로..!'
이태희와 강민아 배터리는 콜로사에게 유인구 위주의 피칭을 하기로 하였다. 신인이다 보니 변화구에 약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파워야 괜찮지만, 콜로사의 선구는 F+급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아마 웬만한 변화구에는 그냥 스윙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태희의 투구 수는 78개나 되었다. 한계 투구 수에 거의 도달한 것이다. 당연히 체력도 많이 떨어졌고, 손의 악력도 약해진 상황이었다.
- 초구. 바깥쪽 변화구가 많이 빠집니다.
- 강민아 포수가 아주 잘 잡아줬어요. 이거 빠졌으면 바로 실점이에요.
- 2구. 원바운드 된 공. 타자 반응하지 않습니다.
웬만한 유인구라면 콜로사의 방망이가 끌려나왔겠으나, 이태희는 그 웬만한 유인구를 던지질 못했다. 변화구의 제구가 제대로 되질 않는 것이다.
결국 강민아는 이태희에게 직구 사인을 보냈다. 일단 스트라이크라도 집어 넣어야 했다.
2부 리그에선 경험할 수 없는 빠른 공. 하지만 콜로사는 빠른 배트 스피드로 컨택에 성공했다. 아니, 성공하고야 말았다.
따악~!
- 라인 드라이브 성 타구!! 담장 넘어갈 수 있을지..!?
콜로사의 총알 같은 타구가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외야를 가로질렀다. 타구를 쫓아가던 우익수는 이 타구가 파울 폴대 바깥으로 휘어지거나, 담장에 맞을 거라 예상하고 펜스 플레이에 대비했다.
태-앵~!
그리고 콜로사의 타구는 우익수의 예상대로 맞고 튕겨져 나왔다. 다만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타구는 담장이 아닌 파울 폴대에 맞고 튕겨져 나왔다.
- 홈런~!!! 홈런 입니다~!!!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쏘아 올린 콜로사!!! 스코어 7대 1이 됩니다!!
이번에도 재규어스 파크의 짧은 펜스 거리가 한몫 했다. 다른 구장 같았으면 파울이 되거나 2루타가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구장이 작았기에 홈런이 되었다.
콜로사가 전국 리그 첫 홈런에 환호하며 베이스를 돌 동안, 우익수는 우울한 표정으로 콜로사의 홈런볼을 2루수에게 던졌다.
2루수가 홈런볼을 에일리에게 전달했을 때, 콜로사는 홈에서 기다리고 있던 리사와 지아에게 축하의 손길을 맞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