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5화 〉295회.
"아연아, 아연아! 전력, 전력으로 던져봐!!"
동국이 안달을 내며 아연일 재촉하자, 그녀는 긴장한 표정으로 와인드 업을 하였다.
슈우욱~!!
아연이 전력을 다해 던지니 공의 구속이 148km가 찍혔다. 이는 앤서니의 구속보다 더 빠른 수치였다.
'이거 앤서니가 알면 분해 하겠는걸..?'
그래도 은근히 자신의 구속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 앤서니였다. 그런데 야수인 아연이 자신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진다고 하면 분명 삐질 터였다.
'아, 앤서니보단 다른 투수들 걱정을 해야 하나..?'
명색이 투수인데, 야수보다 공을 더 느리게 던진다고 하면 투수들이 상당히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있었다. 특히 벨리나가 말이다.
아연이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본 주위의 다른 투수들은 동국의 걱정대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에인헤랴르 선수들은 역시 전국 리그 선수는 뭘 해도 잘한다며 충격이 덜했지만, 1군 투수인 벨리나는 그 충격이상당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연 언니보다 못하다니...'
안 그래도 콜로사의 구속이 자신과 비슷해 충격이건만, 아연 언니는 그것보다 더하다니... 벨리나는 우울함에 조용히 연습장을 빠져나갔다.
벨리나에게 본의 아니게 충격을 준 콜로사도 아연의 구속에 불안감을 느꼈다. 이러다가 자신 대신 아연 선배가 투타 겸업을 해버리면, 자신의 처지가 애매하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콜로사가 아연에 대해 잘 몰라서 생긴, 불필요한 오해였다.
'하여튼 아쉽긴 하네... 저렇게 빠른 공을 던지는데 쓰질 못한다니...'
아연인 상당한 유리 몸 기질이 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무리가 되는 투타 겸업을 시도하면 안 됐다. 안 그래도 부상 입을까봐 항상 조심하는데, 투타 겸업을 한다면 분명 부상을 입을 터였다.
동국의 특훈으로 부상을 빠르게 치료할 순 있겠지만, 아연인 부상을 입으면 특훈 효과가 리셋 되게 된다. 그럼 상당한 손해였다.
"자, 아연아. 이제 됐으니깐 그만 던져."
"후우~ 알았어. 가서 앤서니한테 자랑해야지~"
"어? 야, 야!"
동국이 그녀를 불렀지만, 아연인 엉덩일 씰룩거리며 가버렸다.
"끄응... 조만간 앤서니가 씩씩대면서 오겠구만..."
"앤서니가 이걸 계기로 좀 더 훈련에 열중했으면 좋겠네요..."
투수 코치 비엔나의 말에 동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삐진 앤서니를 달래는 건 번거롭지만,앤서니가이걸 계기로 훈련을 열심히 한다면 좋은 일이었다.
비엔나가 콜로사에게 이것 저것 가르쳐 주고 있을 때, 동국의 예상대로 앤서니가 씩씩대며 연습장에 들어왔다.
"동국~!! 아연 언니가 나보다 공을잘던진다는게 사실이야!?"
어찌나 분했던지 앤서니의 눈이 약간 빨개있었다. 그녀가 울먹이며 동국에게 묻자, 동국이 사실을 말해주었다.
"잘 던지진 않고, 빠르게 던지는 거지."
"그게 그거지~!! 빠르게 던지는게 잘 던지는거지!!"
앤서니는 동국에게 짜증을 내고선 글러브를 꼈다. 빈자리에 서서는 힘껏 공을 던지는 앤서니.
뻐엉~
"씨이..!"
빠르게 공이 포수 미트 속으로 빨려들어갔지만, 그녀의 구속은 142km 였다. 아연의 구속보다 느린 것이다.
뻥~!
뻐엉~!
그 뒤로 앤서니의 분노의 피칭이 이어졌지만, 아연의 구속을 넘지는 못했다.
"으아앙~!!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어~!! 내가 아연 언니보다 못 던진다니이이~!!! 으허엉..."
결국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하는 앤서니.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보던 사람들이 다 안쓰러워 할 정도였다.
"애, 앤서니...."
"어째서..! 어째서 내가 아연 언니보다 느린거야아~!! 허어엉~!!"
"앤서니, 원래 왼손 투수가 오른손 투수보다 공이 조금 더 느린 편이야. 그러니 꼭 아연이 너보다 빠르다고 할 수 없어."
"그런게 어딨어~!! 왼손이든 오른손이든똑같이 공을 던지는데!!"
동국이 애써 위로를 해주려고 했지만 실패하였다. 서럽게 엉엉 우는 앤서니에게 마음 같아선 훈련을 더 많이 하라고 외치고 싶지만, 만약 그랬다간 더 크게 울 것 같았다.
"앤서니? 앞으로 훈련을 열심히 하면 분명 아연이를 이길 수 있을거야. 그러니 앞으로 훈련 열심히 하자, 응?"
동국의 마음의 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동국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비엔나가 다정한 목소리로 앤서니에게 말했다. 훈련을 더 열심히 해 구속을 키우는게 사실 정석이었지만, 앤서니의 반응은 미적지근 했다.
"훈련..? 귀찮은데..."
아연일 이기고 싶지만 훈련은 귀찮다는 앤서니. 그럼 동국이 생각했을 때 답은 특훈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앤서니는 약간 다르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 내가 아연 언니보다 타격을 더 잘하겠어! 그러면 아연 언니도 분해하겠지? 히히~"
아연이 타자인 주제에 투수인 자신보다 공을 더 잘 던졌으니, 자신은 투수인 주제에 타자인 아연보다 공을 더 잘 치겠다.
이게 앤서니의 생각이었다.
앤서니는 자신이 타격으로 아연을 이길꺼라 생각하는지 울음을 그치고는 실실 웃기 시작했다. 동국은 그 모습에 울다 웃으면 엉덩이에 털이 난다고 하니, 진짜 그런지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여기서 그딴 소리를 했다간 고운 시선을 받기 힘들었다.
참고로 앤서니는 보지 위쪽, 아랫배 부분에 조금 음모가 나 있고, 나머지 부분엔 털이 없었다. 그래서 빨기 좋았다. 보기에도 예뻤고.
앤서니가 투구 연습실을 나가려 하자 동국과 나연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오구 천재인 앤서니가 과연 타격까지 잘 할까 궁금해서였다.
"어떻게 생각해, 나연아. 앤서니가 타격을 잘 할까? 난 잘 할 거 같은데."
"저도요... 앤서니는 분명 잘 할 거 같아요..."
앤서니는 콜로사와는 다르게 특성이 투수 쪽 이었지만, 왠지 그냥 잘 칠 것 같았다. 앤서닌 오구를 처음 접한 그 순간부터 잘 했으니 말이다.
타격 연습실에 들어서자 리사와 아연, 그리고 몇몇 선수들이 있었다.
"어, 뭐야? 나보다 공 못 던지는 앤서니 아냐~? 울면서 도망가더니, 울음은 그쳤나보지~?"
"씨이~!!"
으음... 안 그래도 어린애 같은 앤서니를 저렇게 도발하다니. 저 정도 도발이면 어른스러운 벨리나도 울 것 같았다.
"아니면 설마 동국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다 일러바친거야? 아연 언니과~ 나 놀려써~ 크크크."
"이이..! 두고봐아~!! 내가 혼쭐 내줄꼬야~!!"
아연이의 도발에 앤서니가 씩씩대며 배팅 박스에 들어섰다. 그리곤 방망이를 잡고선 타격 자세를 취했다.
"뭐야. 설마 지금 나 이기겠다고 타격을 해보려고 그러는거야~? 아이고, 앤서니~ 너가 그런다고 나보다 잘 칠 수 있을 거 가ㅌ..."
따악~
앤서니의 호쾌한 스윙에 공이 제대로 걸렸다. 스크린 야구처럼 각 배팅 박스 앞에는 스크린이 있어 타자가 친 타구의 결과를 보여주는데, 방금 전 앤서니의 타구는 담장을 넘어 홈런이 되었다.
따악~
따악~!
"이야~ 앤서니 타격 실력이 아주 제대론데? 아연이, 너보다 낫겠어~?"
"조용히 해, 이년아."
리사가 능글거리는 말투로 아연일 놀리자, 아연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연의 예상과는 다르게, 앤서니의 타격 실력은 상당히 뛰어났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모든 공을 다 때려내고 있었다.
"아아.. 오구 천재, 앤서니... 그녀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동국의 중얼거림과 같이 앤서니는 진정한 오구 천재였다. 만약 앤서니와 처음 만난 날, 동국이 앤서니에게 공을 던지게 하는 대신 방망이를 쥐게 했다면 지금쯤 앤서니는 리사만큼의 대타자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흥~!! 어때~?! 내가아연 언니보다 더 잘 치지이~?"
"후후,그래, 앤. 너가 아연이 보다 훨씬 더 나은데? 이참에 아연이 대신 2루수를 하는게 어때?"
"히히, 그럴까아~?"
"야이, 미친년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리사의 말에 아연이 그녀의 등짝을 때리며 신경질을 냈다. 2루수가 얼마나 수비적인 능력이 중요한데! 앤서니가 수비까지 잘 할 거란 보장이.. 왠지 앤서니는 수비까지 잘 할 것 같긴 했다..
리사와 아연이 서로 투닥거리는 동안 동국은 앤서니의 타격 실력에 눈이 뒤집혔다.
"앤서니, 우리 이참에 타자도 한번 해보는게 어때?"
"타자도..?"
"그래, 앤서니! 타자도 해서 홈런을 뻥뻥 날리는 거야~! 마운드에선 삼진을 잡고, 타석에선 홈런을 치는거지~!! 오구 영화에서 나오는 히로인처럼!"
"히로인..."
동국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앤서니가 점차 넘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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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앤서니를 꼬시는 건 실패로 돌아갔다. 투타 겸업을 하려면 훈련을 지금보다 2배 이상 해야 된다는 사실에 앤서니가 포기를 하고만 것이다.
하기사 안 그래도 투수 훈련을 게을리 하는 앤서니였는데, 타격 연습이나 수비 연습까지 한다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콜로사의 투타 겸업은 한번 시도해 보기로 하였다. 체력적인 문제나 부상 위험이 있긴 하지만 발키리에선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은 어차피 만약을 대비한 벤치 요원이었기에 체력적인 문제는 딱히 없었고, 또 부상을 입어도 동국의 특훈이면 금방 나았다.
꿈에 그리던 1군 콜업을 투타 겸업을 통해 이루게 되자, 콜로사는 상당히 기뻐하였고, 반대로 전국 리그 마운드에 서 본적은 없지만, 그래도 벨리나 선발 경기 때마다 따라 나섰던 정대연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하여 콜로사는 곧바로 대구 원정길에 함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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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재규어스. 현재 리그 5위를 하고 있다. 투수진은 떨어지지만, 공격력은 꽤나 괜찮은 팀이다. 거기에 구장도 작은 편이라 홈런을 자주 치기로 유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약한 투수진 때문에 친 홈런보다 맞은 홈런이 더 많긴 하지만 말이다.
'아아... 내가 드디어 전국 리그 경기장더그아웃에 있다니...'
콜로사는 원정팀 더그아웃에서 재규어스 경기장의 필드 풍경을 바라보았다. 광주 때와 같이 장기간 원정 경기이기 때문에 원래는 콜로사를 데리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필요할지 안 할지 알 수 없는 경기 때문에 일주일 가량을 허비하는 것보다 2부 리그 경기에 출전하는게 더 나았다. 하지만 이번 주는 에일헤랴르의 휴식 주였기에 콜로사가 원정길에 참가 할 수 있었다.
"어때, 콜로사. 아주 멋있지?"
마치 시골에서 상경해 도시에 처음 와 본 촌뜨기처럼 콜로사가 멍한 표정을 짓고있자, 동국은 그녀의 엉덩이를 툭 쳤다.
"으응... 완전 멋져. 나 지금 가슴이 엄청 두근거려."
"그으래~? 어디 한번 들어볼까~?"
콜로사의 말에 동국은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진짜로 그녀의 심장 소리를 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콜로사가 어어 하는 사이에 동국이 그녀의 부드러우면서도 커다란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댔다. 그리곤 심장 소리를 듣는다는 핑계로 그녀의 폭신한 감촉을 실컷 즐겼다.
"이야~ 엄청 폭신, 아니 두근거리는데?"
"아이, 오빠~ 남들이 쳐다보잖아~"
콜로사가 부끄러워하며 동국을 슬쩍 밀자, 동국은 속절없이 밀려났다. 자칫 잘못하면 뒤로 엉덩방아를 찧을 뻔 했다.
"크흠... 그래, 알았다..."
동국이 넘어지지 않으려고 허우적 대는 걸 본 선수들이 킥킥댔고, 동국은 그녀들의 비웃음에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