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8화 〉288회.
동국이 말한 대로 일행은 목요일엔 호텔에서 계속 머물렀다. 동국의 방엔 쉬지 않고 여자들이 들락날락 거렸으며, 방에선 음란한 냄새가 없어지질 않았다. 아마 동국이 가고 나서도 한동안 냄새가 나지 않을까?
금요일엔 일행과 같이 중외공원 이란 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델루나는 나가기 귀찮다고 빠졌고, 수정을 비롯한 코치들은 자기네들끼리 어디로 놀러 간다고 했다. 동국은 그래서 선수들과 함께 공원에 가기로 했다.
"동국~! 그 중 뭐시기 공원에 뭐 볼 거 있어~?"
"음, 벚꽃 나무가 있고, 박물관이 여러 개 있대. 꽃들 좀 구경 하고, 박물관 가려고."
동국의 말에 앤서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앤서니도 벚꽃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직 벚꽃이 필 날씨는 아니었다.
"동국~ 거기 가지 말고 놀이공원 가면 안돼~? 나 놀이공원 가고 싶은데에~"
어디서 놀이공원 이야기를 들었는지 공원으로 가는 동안 앤서니가 투덜댔다. 동국은 중외공원 안에 박물관뿐만이 아니라 어린이대공원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앤서니를 깜짝 놀라게 하고 싶어서 일부러 말 하지 않았다. 다른 여자들도 큭큭대며 앤서니를 귀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우와아앗~!! 동구욱~!! 바이킹 있어어어어!!!"
박물관 가는 줄 알고 시무룩해 있던 앤서니는 저 멀리 바이킹과 하늘자전거가 보이자 방방 뛰며 기뻐했다.
"동국~!! 놀이공원 있는 거 알고 있었어?"
"당연히 알고 있었지. 앤서니가 놀이공원 좋아하니깐 일부러 여기로 온거야."
"우와~!!! 동국이 최고!!"
앤서니는 동국의 볼에 뽀뽀를 해주고는 신나하며 놀이기구를 향해 달려나갔다.
광주 어린이대공원은 상당히 아담한 놀이공원 이었다. 이 곳이 벚꽃 명소로 유명하다고 하던데, 아직 벚꽃이 피려면 한참 남아, 아쉽게도 벚꽃은 보지 못했다.
유명한 바이킹과 하늘자전거를 타고, 다른 놀이기구들도 타보았다. 기구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그런지 순식간에 모든 놀이기구들을 탔다. 뭐, 회전목마 같은 건 굳이 탈 필요가 없어서 동국은 타지 않았지만, 앤서니는 신나하며 회전목마를 탔다.
그렇게 사진도 찍고, 솜사탕도 먹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
*
*
토요일 날 열린 레오파드와의 2차전. B+급인 레오파드 선발과 B급인 벨리나의 맞대결이니 만큼 난타전이 예상되었다.
1회 초.
딱!
-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탑니다! 선두 타자부터 출루에 성공하는 벨벳 발키리!
- 몸쪽 직구를 깨끗하게 잡아 당겼습니다.
1루에 진출한 아연이 슬쩍슬쩍 타자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며 리드 폭을 넓혔다.
틱~
- 밀어친 타구! 1루수 잡아서! 2루를 힐끔 바라보고는 1루 베이스를 밟습니다. 1아웃!
- 1루 주자의 발이 빨라 더블 플레이를 시도하기엔 무리가 있었어요. 주자의 리드 폭도 넓었구요. 최현미 선수가 판단을 잘 했다고 봅니다.
- 자, 이제 1사 2루 상황에서 신지은 선수의 차례입니다.
지은은 가볍게 내야 땅볼을 치며 타점을 올렸다. 안타 1개로 득점에 성공한 것이다.
야구와는 다르게 오구는 베이스가 2개 밖에 없으므로, 지금과 같이 운 좋으면 1출루 만으로도 점수를 뽑아낼 수 있었다.
발키리가 1점을 획득하자, 레오파드도 곧바로 점수를 뽑아냈다. 무사 만루 상황에서 3번 타자 최현미의 희생타로 동점을 만든 것이다.
벨리나는 동점을 허용하긴 했지만, 이후 땅볼과 뜬공으로 두 타자를 아웃 시켰다.
발키리는 2회 초에 1점, 4회 초에 2점을 추가로 얻으며 점수 차를 벌려 놓았다. 레오파드는 2회 말 2사 만루 상황에서 득점에 실패하고, 3회 말 무사 1루 상황에서 병살타를 치는 등 공격이 매번 막혔다.
- 4회 말, 1사 1루 상황. 볼 카운트는 1볼 1스트라이크 입니다. 제 3구.... 앗! 주자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2루, 2루에서!!
촤아악~!
- 아웃!! 아웃 입니다!! 최원희의 도루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 아, 여기서 도루사(死)는 상당히 큽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아 버렸어요.
"어우, 큰일 날 뻔 했네."
동국이 털레털레 홈 팀 더그아웃으로 되돌아 가고 있는 최원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최원희의 주력 능력치가 어느 정도 였죠?"
에일리의 물음에 동국이 대답했다.
"A+이요. 지은 누나의 어깨 능력치도 A+이었으니, 성공 확률이 반반, 아니, 그것보다 더 낮았죠."
보통 주자의 주력 능력치와 포수의 어깨 능력치가 서로 같으면 도루의 성공 확률을 반반으로 본다. 하지만 벨리나의 투구 폼을 사이드암. 다른 투수들보다 도루를 허용할 위험이 더 컸다. 그런걸 따져본다면 지은이 상당히 잘 해준 것이다.
주자의 도루사로 2아웃이 된 상황에서 타자가 친 타구가 수정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여보! 도루 저지 엄청 멋있었어!"
"하아, 그렇지? 그럼 날 칭찬해줘!"
동국이 두 팔 벌려 지은을 환영하자, 지은은 동국을 꽉 껴안으려다가 포수 장비를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포수 장비를 서둘러 벗으려 했지만, 동국은 그냥 그녀를 껴안았다.
"헤헤, 여보오..."
먼지로 얼룩진 상태에서 동국이 그대로 자신을 껴안아 주자 지은의 얼굴이 헤실헤실 풀렸다.
동국은 그녀에게 자그마한 상을 주기 위해서 원정팀 라커룸으로 이동했으나, 얼마 못 가 다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5회 초 공격이 세 타자만에 끝나고 만 것이다.
5회 말.
2사 2루 상황에서 도루사를 기록했던 최원희가 적시타를 때려냈다. 1점 만회한 것이다.
- 도루사의 실수를 적시타로 만회하는 최원희! 점수 4대 2가 됩니다.
- 2사 이후긴 하지만 아직 레오파드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에요! 오구는 5회말 2아웃부텁니다!
- 말씀드리는 순간 이서빈 선수가 볼넷으로 출루에 성공합니다. 이제 2사 만루 상황! 여기서 큰 거 한방이면 역전입니다!
역전을 꿈꾸는 레오파드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경기장에 가득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지은과 비엔나가 마운드를 방문했다.
"죄송해요. 코치님, 언니."
지은과 비엔나가 오자 벨리나는 사과부터 했다. 2아웃까지 잘 잡아놓고는 위기를 맞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깟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는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자책하지마, 벨리나. 지금 니 투구 수가 90개가 넘었어. 한계 투수 구가 넘었으니 제구가 흔들리는 건 당연해."
벨리나가 지금까지 던진 투구 수는 무려 95개나 되었다. 보통 80개를 한계 투구 수로 여긴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벨리나가 무리 하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그녀가 공을 많이 던졌다고 해서 교체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무조건 그녀가 경기를 끝내야 했다.
"레오파드에서도 너가 제구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분명 처음 한 두 개 정도는 공을 지켜볼꺼야. 그러니 너는 무조건 초구 스트라이크를 집어 넣으면 돼."
지은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하며 벨리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지은의 확신에 찬 눈동자에 벨리나도 자신감이 생겼다.
"네, 언니!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집어 넣을게요!"
"좋아. 얼른얼른 해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경기가 다시 시작되고, 타자가 타격 자세를 잡았다. 타자는 5회 말 선두 타자로 나섰던 앙카라 였다.
- 2사 만루 상황에서 타석엔 앙카라 선숩니다. 오늘 4타수 2안타를 기록했습니다.
- 벌써 타순이 한 바퀴 돌았군요.
지은의 예상대로 앙카라는 초구는 지켜보기로 마음 먹었다. 제구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배트를 내서 카운트를 늘려 줄 필요는 없었다.
"스트라잌~!"
그리고 그런 타자의 허를 찌르듯 초구로 포심이 날아왔다.
- 초구,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는 벨리나 투숩니다.
- 아, 앙카라 선수. 이 공은 놓쳤어요!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이었는데 말이죠!
'퍼킹! 한가운데라니!! 아까워 죽겠네!!'
앙카라 역시 스트라이크가 되고 나서 매우 아까워 했다. 노려 쳤으면 분명 끝내기 만루 홈런을 만들 수 있는 공이었다. 그럼 자신이 오늘의 주인공이 되는 건데 말이다.
'딱 같은 코스로 와 봐라..! 내가 멋진 홈런을 보여줄게..!'
타자가 포심을 노리고 있다는 걸 확인한 지은은 벨리나에게 몸쪽 싱커를 요구했다.
이는 상당히 위험한 요구였는데, 싱커가 잘 구사가 안 되면 포심을 노리고 있는 앙카라에게 적시타를 허용할 수도 있었다. 아니, 잘 구사가 돼도 앙카라의 A+ 공격력이라면 B급 싱커는 충분히 공략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도박인 것이다.
틱~
"파울!"
타격음이 들리자마자 주자들이 스타트를 끊었지만, 타구는 파울 라인 바깥쪽으로 굴러갔다. 지은의 도박이 성공한 것이다.
'좋아! 이제 2스트라이크야! 유인구에 낚이기만 하면 삼진으로 잡을 수 있어!'
하지만 그녀의 생각대로 되질 않았다.
바깥쪽 슬라이더.
"볼!"
떨어지는 서클 체인지업.
"볼!!"
앙카라는 벨리나가 던진 유인구에 속질 않았다.
'이거... 이제 스크류볼을 던져야 하나...'
투수 수가 늘어나면서 지은은 스크류볼 사인을 보내지 않았다.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스크류볼을 던졌다간 부상 위험이 크고, 사구(死球)가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던질 구종이 없다.'
타자가 빠른 공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스트라이크를 잡을 만한 구종은 스크류볼 밖에 없었다. 던지지 않은 변화구 중에 커브가 남아있긴 했지만, 커브의 구종 등급은 C급 밖에 되질 않았다.
지은의 스크류볼 사인에 벨리나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무겁고, 어깨가 아프긴 했지만, 아웃 카운트를 잡으려면 스크류볼을 던져야만 했다.
- 제 5구, 던집니다.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에서 몸쪽으로 휘어지는 변화구. 스크류볼이 날아오자 앙카라는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다. 자신이 원하는 빠른 공이 아니긴 했지만, 힘이 떨어진 스크류볼은 칠 만 했다.
딱~!
- 잡아 당긴 타구!!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꽤나 잘 맞은 타구가 우측 방면을 향해 날아갔다. 주자들은 모두 홈을 향해 질주했고, 타자는 장타를 예감했다. 레오파드 팬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동점 적시타를 기원했다. 반대로 얼마 없는 발키리 팬들은 파울이 되기를 희망했다.
"으아아앗!! 동점!! 동저어엄!!!"
"2루, 아니 홈까지 달려어!!"
대부분의 관중들이 2루타를 생각하고, 일부 성급한 사람들은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외칠 정도로 타구는 외야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우측 외야에는 발키리의 수비 장인이 자리 잡고 있었다.
- 우익수 달립니다!! 우익수!! 타구를 향해 그대로 다이빙~!!!
자신의 키를 넘어가는 타구를 향해 지아가 몸을 날렸다. 다이빙을 했는데도 타구를 잡지 못한다면 어떤 관중의 말대로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아는 이 어려운 타구를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터업!!
- 잡았습니다!! 이 타구를 잡아 냈습니다!!! 최지아의 끝내기 호수비!!
- 허어... 정말 대단하네요...
열광의 도가니였던 레오파드 경기장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침묵하고 있는 관중들의 눈에 환하게 웃고 있는 지아의 모습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