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5화 〉285회. 2부 리그
동천 오구단에게 2연승을 거둔 벨벳 에인헤랴르의 다음 상대는 작년 리그 1위 팀인 광호 오구단 이다. 광호 오구단의 선수 구성은 F+급 우완 투수 2명에 E급 1루수 강종연으로 되어있는데, 1위 팀이었긴 해도 에인헤랴르보다 전력이 약하다고 평가 받았다.
이번에도 발할라 구장에서 경기가 열렸는데,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방문하였다. 발키리, 에인헤랴르 팬들 뿐만 아니라 광호 오구단의 팬들도 많이들 방문하였다. 2부 리그 팀이긴 하지만, 항상 강팀이었기에 어느 정도 팬들이 있는 편이었다.
1회 초, 에인헤랴르의 선발 투수로 에이미가 나섰다. 전에는 정대연이 선발로 출전 했었는데, 이번엔 에이미가 먼저 나서는 것이다. 에이미는 3회까지 던지고, 정대연에게 마운드를 넘길 예정이다.
광호 오구단의 1번 타자로 1루수 강종연이 나왔다. 강종연은 지아의 고교 동창으로 학창 시절에 지아를 괴롭혔던 인물 중 한명이다.
'경기 시작부터 기분이 잡치는군...! 저 썩을 년은 왜 저기서 구경하고 있는 거야?!'
예전 최지아는 자신에게 쨉도 안됐는데, 지금은 자신이 지아에게 쨉도 되지 않았다. 지아가 활약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짜증, 질투심, 열등감을 느꼈다.
지아는 강종연이 출전해서 인지 경기를 보러 에인헤랴르 더그아웃에 나와 있었다. 그녀는 에인헤랴르 선수도 아니면서 구단주의 옆에 앉아 떠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강종연으로서는 가증스러웠다. 한번 씩 자신을 바라보는데, 그녀가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호호~ 쟤는 아직도 E급이란 말이야? 나한테 쨉도 안되네~"
그리고 실제로 지아는 강종연을 비웃고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오구 못하는 자신을 비웃던 강종연 이었는데, 이젠 자신이 그녀를 오구 못한다고 비웃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아는 매우 만족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이게 다 내 덕분인거 알지?"
동국이 슬쩍 지아의 허리를 감싸며 말하자, 지아는 괜히 부끄럽고 민망해 동국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내가 예뻐서 그런거지, 뭐!"
"후후, 부끄러워 하기는~"
"내가 뭘 부끄러워 한다고 그래~!"
얼굴을 붉히면서 그런 말을 해봤다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 에이미, 강종연이 너보다 실력이 한 단계 높은 거 알지? 처음부터 위력구를 던져.
- 네, 코치님.
동국이 지아와 꽁냥대며 강종연의 멘탈을 의도치 않게 흔들고 있을 동안, 투수 코치 비엔나와 에이미가 텔레파시를 나누었다.
강종연의 실력은 E급. F급인 에이미보다 더 뛰어났다. 특히 장타력을 지닌 강종연 이었기에, 장타를 조심해야 했다.
- 슬라이더를 던져서 간을 한번 봐볼까?
- 그래, 그러자. 타자 표정을 보니깐 힘껏 노리고 있는 것 같아.
초구로 슬라이더를 던지기로 결정한 에이미는 바깥쪽을 향해 공을 던졌다. 79km의 슬라이더가 바깥쪽으로 살짝 휘어지며 날아갔다.
틱~
"파울~!"
힘껏 휘둘러 봤지만, 강종연의 생각보다 슬라이더가 더 빨랐다. 이 정도 구속이면 평균적인 투수의 포심과도 구속이 비슷했다.
'생각보다 까다롭잖아...? 안타를 치고 싶은데....'
안타를 친다고 해서 지아에 대한 열등감이 없어지진 않지만, 최소한 기분이라도 좋아질 것 같았다.
자신이 안타를 치고 나가는 등의 활약을 해야 팀이 이기고, 더 나아가 서부 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래야 저 짜증 나는 지아에게 더 가까워질 것이다.
틱.
"파울~!"
또 다시 날아온 슬라이더를 쳐낸 강종연은 속으로 짜증을 냈다. 바깥쪽 볼이었는데, 이 공에 반응을 하고만 것이다. 벌써 2스트라이크로 몰리게 되었다.
'진짜 최지아 신경 쓰다가 타석에서 집중을 못 했네...! 벌써 투 스트라이크야!'
- 에이미, 높은 포심 어때?
- 하이 패스트볼?
- 그래. 지금 보니깐 타자가 집중을 못 하는 것 같아. 이럴 때 하이 패스트볼 던지면 바로 헛스윙 할 것 같은데.
- 그래, 그러자~
힘차게 와인드 업을 한 에이미가 빠른 공을 뿌렸다. 95km의 강속구가 시야에 가깝게 날아오자 포수, 노시연의 예상대로 강종연은 엉겁결에 스윙을 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잌 아웃~!"
"아악!! 짜증나!"
삼구 삼진으로 아웃 되자, 강종연은 성질을 내고서는 원정팀 더그아웃으로 되돌아 갔다. 그 모습을 지아가 기분 좋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킥킥, 타석에서 집중도 제대로 못 하다니. 그러니 아직도 2부 리그에서 머물고 있지."
지아가 타자를 비웃자 지아와 강종연의 악연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사선들에 동국이 슬쩍 지아의 옆구리를 툭 쳤다.
"지아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니..?"
"흥, 저 년이 나에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데! 맨날 나 심부름 시키고 말이야. 오구 못한다고 놀리고. 지 오구 좀 잘한다고 그랬는데, 이제 한번 당해 봐야지!"
동국의 말에 지아가 발끈하자, 동국은 얼른 수긍을 하였다.
"그래, 그래. 우리 지아가 맞지. 저런 애는 고생 좀 해야지."
"맞아, 쟤는 평생 2부 리그에서 썩어야 해."
광호 오구단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인 강종연을 삼진으로 잡은 에이미는 1회 초를 무실점으로 마무리 지었다. 2사 후에 안타를 허용하긴 했지만, 위력구를 사용해 다음 타자를 뜬공으로 처리하였다.
1회 말, 에인헤랴르의 선두 타자는 현아 였다. 현아는 전국 리그에서 아직까지 경기를 뛴 적이 없다. 딱히 대주자로 내보내질 않아 뛸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었고, 에인헤랴르 경기에 계속 출전하였다.
아직 전국 리그의 타석에 서 본적은 없지만, 지역 리그까지 경험해 본 현아이다. F+급 투수의 공은 손쉽게 칠 수 있었다.
'이 정도 쯤이야..!'
따악~
현아가 친 타구가 경기장을 반으로 가르며 떨어졌다. 외야수가 중간에 커트를 했지만, 현아는 자신의 주력으로 안타를 2루타로 만들었다.
무사 2루의 찬스. 다음 타자인 콜로사는 툭 같다 맞춘다는 느낌으로 타격하였다.
딱!
생각보다 그녀가 친 타구는 꽤나 멀리 뻗어갔다. 그녀의 힘이 워낙 좋다 보니 발생한 일이었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공을 외야수가 잡아내자 현아가 홈으로 뛰었다. 에인헤랴르가 손쉽게 선취점을 획득하였다.
2회 말, 선두 타자로 나선 현아가 우익수 플라이로 아웃 되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로 콜로사가 나왔다.
광호 오구단의 선발 투수는 F+급 포심과 F급 커브를 던지는 투 피치 투수 이다. 커브의 제구가 제대로 되는 편이 아니었는데, 그 때문에 선구안이 좋지 않은 콜로사는 포심만 노리기로 하였다.
커브는 치기 힘들기도 하였지만, 날아오는 커브가 스트라이크 인지 볼인지 콜로사는 제대로 구분을 할 수 없었다. 때문에 존 바깥으로 벗어나는 커브에 헛스윙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볼."
초구부터 들어온 커브가 존 아래로 떨어졌다. 커브를 치지 않겠다고 마음 먹지 않았다면 휘두를뻔한 공이었다.
부웅~
"스트라잌~"
투수가 던진 하이 패스트볼에 콜로사의 배트가 힘차게 돌아갔다. 빠른 공이라 판단만 하고, 스트라이크 인지 볼 인지는 판단하지 못 한 것이다.
'이 공에 속다니... 진짜 더 연습 해야 겠군...'
하이 패스트볼 다음엔 커브라는 국룰에 따르는 것인지 투수가 다시 커브를 던졌다. 하지만 이번엔 원바운드가 되었다.
'진짜 커브가 제구 안 되는게 천만 다행이네. 커브가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간다면 헛스윙만 할 것 같아...'
다시 한번 날아온 하이 패스트볼. 하지만 이번엔 콜로사가 그 공을 참아냈다. 3볼 1스트라이크 상황.
지금까지 투수는 한번도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공을 던지지 않았다. 하지만 카운트가 몰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했다.
'왔다..!'
한복판을 향해 날아오는 공. 콜로사는 혹시나 투수가 볼넷으로 내보내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그녀의 생각보다 투수는 승부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콜로사는 걸어온 승부를 이겨 보겠다고 마음 먹으며 힘차게 스윙을 하였다.
따악~
총알 같은 타구가 경기장을 꿰뚫었다. 일직선으로 담장 근처까지 날아갈 정도로 엄청난 타구였다. 발사 각도는 낮은데, 타구 속도가 워낙 빨라 외야의 거의 끝 부분에서 공이 땅에 떨어졌다.
1사 2루가 된 상황에서 다음 타자인 김선아가 내야 땅볼을 쳤다. 이 타구로 2루에 있던 콜로사가 홈을 밟으며 점수 0-2가 되었다.
에인헤랴르가 점수를 내자 광호 오구단도 바로 반격을 시작하였다. 3회 초, 선두 타자가 안타를 치며 출루에 성공한 것이다.
'칫... 다시 특성을 사용해야겠구만..?'
타자에게 출루를 허용하자 에이미는 바로 특성을 사용해 위력구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틱~
낮은 슬라이더를 건드린 타자. 타자가 친 타구를 1루수 김선아가 빠르게 대시해 잡아냈다. 원래는 우익수 자원 이었지만, 콜로사와 현아에게 밀려 이제는 1루수를 보고 있었다.
김선아가 2루를 향해 송구했다. 그녀의 E급 어깨는 공이 AI 주자보다 더 빠르게 2루에 도착하도록 만들었다.
"아웃!"
2루 주자를 아웃 시킨 2루수 김미진이 베이스 커버를 들어간 에이미에게 공을 던졌다. 에이미가 타자를 아웃 시키면서 더블 플레이에 성공하였다.
"꽤나 잘 하네..?"
"쟤네도 훈련을 많이 하니 당연한 거지."
매끄러운 더블 플레이에 지아는 생각보다 선수들의 수준이 높다는 걸 느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부 리그에서 활약했었지만, 지아는 벌써 그 시절을 잊어먹었다.
딱!
그렇게 에인헤랴르 선수들을 다시 보고 있을 때, 강종연이 안타를 치고 나갔다. 홈 팀 더그아웃과 1루는 가까이에 있었기에, 강종연이 으스대는게 지아에게 잘 보였다.
"쟤는 지금 나 보고 저러는거야? 하, 어이 없어."
지아가 봤을 때, 강종연의 저런 태도는 같잖을 뿐이었다. 어딜 전국 리그 투수들에게 안타를 치는 선수에게 고작 F급 투수에게 안타를 쳤다고 으스댄단 말인가.
"저거 다 널 질투해서 저러는 거야. 신경 쓰지 마."
"진짜 쪼잔하기는~!"
지아가 궁시렁대고 있을 때, 타자가 외야 플라이를 치면서 이닝이 종료되었다. 예정됐던 이닝들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에이미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에이미, 잘 했어."
"오빠~ 나 잘 했으니깐, 상 좀 줄래..?"
"...무슨 상이 받고 싶어?"
상을 요구하는 에이미의 말에 동국은 살짝 당황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그녀에게 뭘 받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설마 명품백 같은 건 아ㄴ...
"나 오빠 밀크 먹고 싶은데... 아랫입으로..."
"..!"
에이미가 동국에게 달라붙어 야릇한 목소리로 귓속말을 하자 바로 하물이 자신의 시간인 걸 깨닫고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하! 우리 에이미, 어서 상을 받으러 갈까?"
"흐응~ 어서 시상식 하러 가자~"
"그래, 가자!"
동국이 에이미를 데리고서 특훈실로 향하자,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들은 지아는 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니, 저..! 에이미가 저런 애였나..? 완전 여운데..?"
지아는 순간 자신도 특훈실로 갈까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무실점 피칭을 한 상으로 섹스를 하겠다는데, 거기에 끼긴 좀 그랬다.
에이미가 동국에게 가득 상을 수여 받을 동안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투수가 에이미에서 정대연으로 바뀌자 광호 오구단은 더 점수를 내기가 어려워 졌다. 정대연은 2이닝 동안 삼진을 4개나 잡아내며 퍼펙트 피칭을 하였고, 그 사이 현아와 콜로사의 합작으로 에인헤랴르는 1점을 더 추가하였다.
최종 스코어 0-3으로 에인헤랴르가 경기에서 승리하였다. 더 이상 서부 리그엔 에인헤랴르의 적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