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3화 〉283회.
토요일 날 열린 레이크사이드와의2차전. 주말이라 그런지 표 매진이 전보다 더 빨리 끝이 났다.
경기가 시작되고, 필승의 각오를 다진 레이크사이드의 1번 타자 이하늘이 타석에 섰다.
발키리 선수들의 전력, 등급을 모르는 레이크사이드 입장에서 발키리는 그저 같은 승격 팀일 뿐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이번 경기를 이겨야 했다.
대전 한수 호크스를 지역 승강전에서 꺾고 전국 리그로 승격하긴 했지만, 아직 전국 리그에서 살아남기엔 그들의 전력이 약했다. 레이크사이드가 전국 리그에 잔류하려면 무조건 같은 충청 지역 팀인 한수 호크스보다 순위가 높아야 했다.
그래야 지역 승강전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충청 리그 우승팀과 경기를 펼쳐 승리해야 잔류에 성공하는 것이다.
만약 한수 호크스보다 순위가 떨어진다? 그러면 자동으로 전국 승강전에 참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잔류할 확률이 상당히 떨어지게 된다. 우선 2개의 자리 중 한 자리를 서울 팀이 가져갈 확률이 높았다. 그럼 나머지 한 자리를 가지고 7개 팀이 경쟁을 펼치는 것이다.
한팀 한팀이 레이크사이드보다 전력이 떨어지지 않으며, 특히 경기 리그 유력 우승 팀인 인천 st 드레이크와 경남 리그 유력 우승 팀인 부산 글래머즈가 있기에 더욱 잔류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이번에 투구 폼을 사이드암으로 바꿨다고 그랬지? 아무리 스크류볼이 좋다고는 하지만 나 같은 좌타에게 사이드암은 밥이지.'
좌타자인 이하늘은 벨리나를 바라보며 속으로 웃었다. 그녀의 통산 사이드암 상대 타율은 4할이 훌쩍 넘었다. 그만큼 그녀는 사이드암 상대로 자신감이 있었다.
실제로 이하늘의 특성은 '사이드암 상대 타율 상승' 이었다. 그녀의 특성은 좌완 우완 가리지 않았으므로 좌타 상대 저승사자인 좌완 사이드암에게도 적용이 되었다. 다만 이하늘이 한번도 좌완 사이드암을 상대해 본 적이 없었기에 본인의 강점을 알지는 못했다.
'이런 미친?!'
벨리나의 초구를 바라보고 있던 이하늘은 공이 자신에게로 날아오자 기겁을 하며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잔뜩 쫄은 그녀를 비웃듯 벨리나가 던진 공은 스르륵 휘어 몸쪽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였다.
"스트라잌~!!"
- 몸쪽 변화구, 들어갔습니다. 몸쪽 변화구가 상당히 날카로운데요? 순간 몸에 맞는 볼 인줄 알았습니다.
- 이하늘 선수 역시 몸 맞는 볼 인줄 알고 몸을 비틀었죠. 방금 전 공은 스크류볼로 보여지는데, 벨리나 투수의 주무기 답게 상당히 인상 깊네요.
'시발... 아주 더럽게 나오는 구만..?'
이하늘은 인상을 찡그리며 배팅 박스의 바닥을 발로 훑었다. 그리곤 자신의 루틴 대로 장비들을 다시 조이고선 타격 자세를 잡았다.
- 벨리나, 바깥쪽 스크류볼.
- 알았어요, 언니.
벨리나가 던진 공이 가운데를 향해 날아왔다.
'럭키..!'
실투 성으로 보여지는 공에 이하늘이 입맛을 다시며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다.
부웅~
"스트라잌 투~!!"
- 헛스윙 하며2스트라이크가 됩니다. 이번 공도 스크류볼 이었죠?
- 네, 그렇습니다. 바깥쪽으로 휘어지는게 일품이네요. 현재 스크류볼을 던지는 투수가 지금 투수인 벨리나 선수와, 같은 팀의 투수인 앤서니 선수밖에 없습니다. 상당히 희소한 구종이죠. 따라서 타자들이 이 구종의 생소함 때문에 고전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벨리나 선수의 스크류볼은 생소함과 더불어 완성도 역시 상당히 뛰어난 수준입니다. 이러면 타자들이 더욱 치기 힘들게 되죠.
- 발키리 투수들을 보면 구사할 수 있는 구종이 참 다양하다는 걸 느낍니다.
- 그렇죠. 두 투수 모두 던질 수 있는 구종이 7개가 넘으니깐요.진정한 팔색조 이죠.
- 말씀드리는 순간, 이하늘이 바깥쪽 공을 밀어쳤습니다. 2루수 잡아서1루에, 아웃 입니다. 1아웃!
- 바깥쪽 싱커였는데, 움직임이나 구속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느린 변화구에 이어 빠른 공이 오다 보니 이하늘 선수가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네요.
벨리나의 싱커는 전국 리그 평균 이하인 B급 이다. A+급인 스크류볼을 제외하면 모든 구종의 등급이 B급 이하이기에 많이 불안한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벨리나가 무너질 때를 대비해 2군 에이스인 정대연을 1군에 콜업하기도 했고 말이다. 만약 벨리나가 대량 실점을 해서 경기가 가망이 없으면 패전조로 정대연이 마운드를 오를 예정이었다.
다만 오늘 레이크사이드 타자들의 공격력을 보면 벨리나가 충분히 승리 투수가 될 수 있어 보였다.
"시작이 좋은데?"
"그러게. 스크류볼의 움직임이 좋아보여. 이대로 가며ㄴ..."
따악~!
벨리나의 투구 모습을 보며 서로 대화를 나누던 동국과 델루나는 타자가 친 타구가 외야를 향해 뻗어가자 말을 하다 말고 타구를 바라보았다.
좌익수로 나가 있는 수정의 키를 넘기는 장타 였다.
"쓰읍..."
동국이 설레발은 필패 라는 걸 느끼고 있는 동안, 델루나가 수비 코치인 에일리에게 지시를 내렸다.
"에일리 코치. 애들 전진 배치 시켜요."
"네, 감독님."
잠시 후, 에일리의 텔레파시를 들었는지 수비수들의 위치가 앞으로 당겨졌다.
'2루 주자의 주력 능력치는 B급. 얕은 외야 플라이면 지아의 어깨로 충분히 태그 업을 막을 수 있어.'
지아의 어깨 능력치는 S급. 그녀의 강한 어깨라면 충분히 홈 보살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실제로 몇 번 홈 보살에 성공했던 적도 있고 말이다.
그렇다고 외야 플라이를 유도하기엔 벨리나의 구위가 약했다. 앤서니라면 높은 포심을 던지면서 플라이를 유도 해도 상관 없지만, 벨리나가 그러면 장타로 연결될 수 있었다.
"스트라잌~"
초구로 던진 바깥쪽투심이 낮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2구로는 바깥쪽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배트가 따라 나오지 않았다.
'계속 낮게 낮게 공을 던지는 구만..? 억지로 띄웠다간 멀리 안 날아갈 것 같으니 차라리 강한 땅볼 타구를 날리자..!'
타자 이유리를 그렇게 생각하고서 몸쪽 싱커를 그대로 잡아 당겼다.
딱!
타격음이 들리자 마자 주자가 홈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연이 타구를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강한 어깨로 홈을 향해 송구했다.
"아웃!"
- 2루수 정면 타구! 홈에서 주자가 아웃되고, 1루에~! 아웃 입니다!! 더블 플레이!! 멋진 수비가 나오면서 이닝이 이렇게 종료됩니다.!
강한 타구를 치는 건 좋았지만, 레이크사이드에게는 불행이도 타구가 아연의 정면으로 향했다. 강한 타구였기에 그만큼 빨리 아연이 공을 잡을 수 있었고, 이는 쉽게 더블 플레이로 연결되었다.
- 발키리의 수비도 수비지만, 2루 주자인 강소라 선수의 타구 판단이 아쉽네요. 홈으로 뛰기 보단 2루로 귀루를 했어야 하는 타구였거든요? 근데 득점을 하겠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타구 판단을 하지 않고 무작정 홈을 향해 뛰었어요. 이 부분이 조금 아쉽네요.
병살타로 실점 위기를 막아낸 벨리나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리고 춘천 레이크사이드의 2선발인 박게임이 마운드에 올랐다.
그녀는 B급 좌완 투수로 투심과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던지는 쓰리 피치 투수이다. 그녀의 특성은 상당히 특이한데, '2아웃 만루 상황에서 피안타율 대폭 감소' 가 바로 그녀의 특성이다. 실제로 2아웃 만루 상황에서 박게임의 피안타율은 1할이 채 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특성을 알았다면 2아웃 상황에서 무조건 만루를 만들고 시작했을 것이다. 물론 그녀와 팀은 이러한 특성을 모를테니 당연히 그런 미친 짓은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 자, 1회 말, 발키리의 선두 타자로 호수비를 보여준 장아연 선수가 나섭니다. 과연 공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지?
'후후... 좌완에 B급 투수... 오늘 한번 개인 지표 뻥튀기 좀 해보자..!'
실력도 자신보다 떨어지고, 던지는 팔도 우타자에게 약한 좌완 이었다. 아연은 오늘 제대로 맹타를 휘두를 생각이었다. 그녀의 생각대로 될 지는 미지수였지만말이다.
박게임의 초구. 몸이 덜 풀렸는지, 아니면 오늘 컨디션이 별로 인지 투심이 밋밋하게 가운데로 들어왔다. 움직임이 별로인 투심은 그냥 약간 느린 직구일 뿐이었다.
따악~!
- 쭉쭉 뻗어 가는 타구!! 담자앙~!! 밖으로~!! 장아연!! 장아연 선수가 초구를 타격해 홈런으로 만듭니다! 스코어 0대 1!
아연이 친 타구가 담장을 살짝 넘어갔다. 초반부터 홈런이 터지자 관중석을 가득 매운 발키리 팬들이 뜨거운 환호성을 질렀다.
- 가운데로 몰리는 실투를 장아연 선수가 놓치질 않았네요. 장아연 선수, 오늘 컨디션이 좋아 보여요.
아연이 홈을 밟고서 더그아웃으로 다가가자 대기 타석에 있던 리사가 타석으로 향하며 그녀를 축하해 줬다.
"축하한다, 아연아. 너가발키리의 전국 리그 첫 홈런을 쏘아 올렸구나."
"오호?! 그러고 보니 그렇네? 후후, 너무 질투하지 말라고~"
아연의 말에 리사는 피식 웃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이야~ 아연아, 아주 멋있었어~? 초구부터 아주 벼락 같은 홈런을 때리고 말이야."
"하하, 이게 바로 저의 클라스~ 아니겠습니까? 요즘 대세인 강한 1번 타자, 공격력이 강한 순으로 타순을 배열하느ㄴ..."
따악~!!
아연이 한창 코치들과 선수들에게 뻐기고 있을 때, 우렁찬 타격음이 울려퍼졌다. 그에 다들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니 리사가 친 타구가 저 멀리 외야 관중석 상단을 때리고 있었다.
""우와아아아~!!""
- 리사 선수의 백투백 홈런!! 관중석 상단을 맞추는 대형 홈런이 터집니다! 점수 0대 2가 됩니다!
- 맞자마자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타구였어요!
"이야~! 역시 리사야! 저렇게 커다란 홈런을 때리다니."
"멋있다! 리사 언니!"
“리사 언니의 공격력은 세계 제이이일~!!”
선수들과 코치들이 리사에게 환호성을 보내는 동안 아연은 뚱하게 리사를 바라보았다.
"씨이... 나보다 더 큰 홈런을 때리다니... 나쁜 년..."
더그아웃에 들어온 리사는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선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아연에게 다가갔다.
"어땠어, 내 홈런?"
리사가 씨익 웃으며 묻자, 아연이 그녀를 덮쳤다.
"너어~! 누가 그렇게 커다란 홈런 날리래! 그것도 나 바로 뒤에 말이야!"
"으하하, 그러면 너는 장외 홈런을 날리던가~ 큭큭."
아연이 리사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자 리사는 큭큭 웃으며 아연에게 반격을 가했다. 두 사람은 이내 서로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며 뒹굴었다.
- 발키리 더그아웃이 분위기가 아주 좋네요.
- 백투백 홈런이 터졌으니 당연히 분위기가 좋을 수 밖에요.
백투백 홈런을 얻어맞아 제구가 흔들렸는지, 아니면 제구가 흔들려 백투백 홈런을 얻어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박게임은 지은에게 볼넷을 내주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지아에게 땅볼 타구를 유도해 선행 주자를 아웃 시키며 득점권 상황을 만들지 않았지만, 지아가 도루를 시도해 성공 시키면서 득점권 상황이 되었다.
- 잡아 당긴 타구. 2루수 잡아서 1루에 던집니다. 2아웃! 그 사이 2루 주자인 최지아가 홈을 밟으며 스코어 0대 3이 됩니다.
수정이 땅볼 타구를 쳤지만, 발 빠른 지아가 스타트를 빠르게 끊었기에 득점으로 연결되었다.
- 발키리가 초반부터 넉넉하게 점수를 뽑아내는 군요. 이렇게 되면 레이크사이드 입장에선 1회 초에 선취점을 얻지못한게 아쉬워 지겠네요.
같은 1사 2루 상황에서 득점에 성공한 발키리와 불운과 발키리의 좋은 수비력 때문에 득점에 실패한 레이크사이드는 서로 대조가 되었다.
3회 초, 벨리나는 선두 타자에게2루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실점 위기 상황이 되자 당연히 수비수들이 전진 배치를 하였다.
틱~
- 2루수 대시해 2루 주자를 눈으로 묶어 놓고, 1루에~ 아웃 입니다. 1아웃.
- 2루 주자는 뛰지 못했습니다.
1회 초 상황 때문인지 주자가무턱대고 홈으로 뛰지 않았다. 신중하게 판단한 것이다.
딱!
- 1루수 방면! 주자 뛰지 못합니다. 타자 주자를 터치하며 2아웃!
- 아, 이렇게 되면 레이크사이드 입장에선 안 좋은데요..? 무사 2루 찬스가 어느새 2사 2루로 바뀌었습니다.
- 여기서 득점하지 못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을 수 있어요.
"서, 설마... 이대로 득점에 실패하는 건 아니겠지..?"
"진짜 그러면 내가 다시는 레이크사이드 경기를 직관하나 봐라..!"
"진짜..? 레이크사이드 빠돌이가?"
"... 그, 그래, 이놈아!"
이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서 춘천에서 경춘선을 타고 온 팬들은 불안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딱!
- 내야를 빠져나가는 타구! 안탑니다! 1점을 얻으며 점수 차를 2점으로 좁히는 춘천 레이크사이드! 점수 1대 3이 됩니다!
"하아... 다행이다... 계속 직관할 수 있겠어."
어느 레이크사이드 팬에겐 다행이도 1번 타자 이하늘이 적시타를 때리며 0이란 숫자를 1로 바꾸었다.
그렇지만 1이라는 숫자는 이후 경기가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최종 스코어 1-4로 발키리가 2연승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