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화 〉275회. 연습 경기
벨리나는 3회부터 마드리스 타자들에게 얻어터지기 시작했다. 2루타, 안타, 안타, 희타, 홈런으로 이어지는 5단 콤보에 4실점 하였다.
벨리나로서는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마드리스 타자들이 너무 강했다.
마지막 타자를 땅볼로 처리한 벨리나가 흐른 땀을 닦으며 더그아웃으로 되돌아 왔다.
"벨리나, 수고했어."
동국이 두 팔을 벌리며 그녀를 맞이하자, 벨리나가 힘없이 동국을 껴안았다. 동국은 그녀를 꽉 껴안으며 격려의 말을 건냈다.
"잘했어, 벨리나. 충분히 잘 했어."
"후우... 제가 전국 리그에서 버틸 수 있을지 너무 걱정되네요. 이래서야 맨날 지기만 할텐데..."
"벨리나, 너무 부담 갖지 마. 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실력을 끌어올리자고."
지금 팀에서 벨리나에게 원하는 것은 그저 5이닝을 버티는 것이었다. 벨리나도 그걸 알고 있지만, 투수가 실점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순 없었다.
"네, 알았어요, 오빠."
"그래, 피곤하면 먼저 들어가서 쉴래?"
"아뇨, 여기서 경기 지켜볼게요."
"그래, 그럼. 저기서 아이씽 하고 있어."
3회까지 발키리 타자들은 마드리스의 좌완 S급 투수 넬시에게 단 1안타 밖에 뽑아내지 못했다. 우완 S급 루비로 투수가 바뀌고 나서는 5회 초 1점을 뽑아낸게 오늘 연습 경기의 전부였다.
선두 타자로 나선 지아가 안타를 치고 나갔으나, 현아의 땅볼 타구로 선행 주자였던 지아가 아웃 되고 현아가 살았다. 아웃 카운트 1개로 주자가 지아에서 현아로 바뀐 것이다. 이후 현아의 도루로 1사 2루가 되고, 다시 아연의 땅볼 타구 때 현아가 홈으로 들어오며 겨우 영봉패를 면했다.
이날 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현아의 도루 실력이 전국 리그 포수에게도 통한다는 사실 이었다. 그 밖에 앤서니가 타자들에게 어느 정도 통한다는 것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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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연습 경기를 치룬 팀은 밀워키 소믈리에(sommelier) 이다. 평균에서 약간 좋은 전력을 지닌 팀으로 평균 이상의 투수진, 평균에서 약간 좋은 타선을 가지고 있다.
오늘도 역시 벨리나가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이번엔 저번과는 다르게 벨리나가 5이닝을 책임질 예정이었다. 과연 벨리나가 5이닝을 버틸 수 있느냐가 오늘의 관심사 였다.
1대 0으로 앞선 상황에서 1회 말이 시작되었다. 소믈리에의 선두 타자는 우익수 로렌 이다. A급 우타자로 파워와 주력이 A+, 수비가 S급 이었다.
로렌이 노리고 있는 구종은 싱커와 투심. 빠른 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벨리나가 던진 초구는 몸쪽으로 가라앉는 서클 체인지업 이었다.
부웅~
"스트라잌~!"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에 타자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좋았어..!'
타자의 헛스윙에 벨리나가 작게 기뻐했다. 단순히 헛스윙일 뿐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예감이 좋았다.
벨리나가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았지만, 타자의 노림수는 여전히 빠른 공에 맞춰져 있었다.
이번엔 바깥쪽 백도어 스크류볼을 던졌다. 바깥쪽 완전히 빠진 코스에서 슬쩍 존을 통과하는 궤적에 로렌은 공을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2 스트라이크를 잡은 벨리나가 바깥쪽 싱커를 던졌다. 바깥쪽에서 바깥쪽으로 살짝 떨어지는 싱커에 타자의 배트가 딸려 나왔다.
틱~
잘 제구된 공이 타자의 배트에 빗맞았다. 땅볼 타구를 잡아낸 벨리나가 1루로 토스해 타자를 아웃 시켰다.
"좋았어! 이대로만 가자!"
1루수 리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벨리나가 다음 타자를 바라보았다. 공격력 A+ 등급의 우타자인 유라 였다.
'정확과 파워가 A+인 타자라고 했죠... 조금 더 조심해서 던져야 겠네요.'
벨리나가 지은의 사인을 확인하고서 신중하게 초구를 던졌다. 지은이 요구한 공은 몸쪽 스크류볼. 벨리나가 던진 공이 몸쪽으로 훅 떨어져 들어갔다.
부웅~
초구부터 노리고 있었는지 유라가 힘껏 배트를 휘둘러 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스크류볼이 꽤나 좋군... 하지만 나머지 구종들은 다 그저그래.'
대기 타석에서 확인한 벨리나의 공들은 유라가 생각하기에 명백히 수준 이하였다. 이런 투수들에게는 그냥 마음 편히 정타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됐었다.
1볼 1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벨리나가 던진 투심이 살짝 몰렸다. 벨리나 입장에선 살짝 이었지만, 유라 입장에선 완전히 실투였다.
따악~!
유라가 호쾌한 스윙을 하였다. 쭉쭉 뻗어 가는 타구는 누가 봐도 홈런 이었다. 담장 밖에 떨어지는 타구를 바라보며 벨리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정신 차려! 지금 실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5이닝을 버틸 수 있느냐가 중요해. 신경 쓰지 말자..!'
홈런을 허용하긴 했지만, 벨리나는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의 실력으로 전국 리그 급 타자들을 무실점으로 막는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 이었다. 그저 최대한 버틴다는 생각을 가져야 했다.
3번 타자를 뜬공 처리한 벨리나는 다음 타자에게 2루타를 허용했다.
따악~
몸쪽 슬라이더를 던졌었는데, 역시 몰렸다. 자칫 잘못하다가 타자를 맞출 수 있다는 생각에 좀 더 제구에 신경을 썼는데,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2사 2루의 상황. 벨리나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지은이 원하는 코스로 공을 꽂아 넣었다.
"스트라이크~!"
바깥쪽 커브에 타자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스크류볼을 노리고 있던 타자에게 커브는 궤적이 완전히 달라 치기 어려웠다.
느린 커브에 이어 높은 코스의 싱커에 다시 한번 타자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카운트가 몰린 타자는 이어 던진 스크류볼에 땅볼 타구를 치고 말았다. 스트라이크와 비슷한 공엔 무조건 배트가 나갈 수 밖에 없었고, 이를 지은은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벨리나에게 유인구를 던져 달라고 사인을 보냈고, 벨리나는 지은이 원하는 공을 던져주었다.
아연이 가볍게 땅볼 타구를 처리하여 1회 말이 끝이 났다.
2회 초에 다시 발키리가 점수를 내었다. 리사의 2루타 이후 지은의 땅볼로 득점에 성공한 것이다.
딱~!
쭉 뻗어간 타구가 외야 가운데를 완전히 갈랐다. 현아가 황급히 따라가 2루로 송구하였지만, 그녀의 어깨보다 타자의 주력이 더 빨랐다.
선두 타자에게 장타를 허용한 벨리나는 묵묵히 다음 타자에게 공을 던졌다.
딱!
타자가 벨리나의 2구를 받아쳤다. 외야로 쭉 뻗어간 타구를 현아가 빠른 발로 겨우 잡아냈다. 그리고 바로 홈으로 송구를 했지만, 주자가 더 빨랐다.
다시 점수가 2-2가 되면서 동점이 되었다.
'쩝... 그래, 1점 내주긴 했지만, 아웃 카운트 1개를 잡았어. 나에겐 아웃 카운트가 더 중요해.'
벨리나는 쓰린 속을 달래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 때문인지 두 타자를 뜬공과 삼진으로 처리하며 2회 말을 1실점으로 마무리 했다.
3회 말, 벨리나가 선두 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풀카운트까지 갔지만, 마지막 공이 존 바깥으로 많이 빠졌다. A급 선구를 지닌 5번 타자는 여유 있게 공을 골라냈다.
'볼넷이라니..! 벨리나, 맞더라도 승부 했어야지..!'
벨리나는 볼넷을 내준 자신을 자책하였다. 이번 연습 경기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한 경기를 다 책임질 수 있느냐를 보는 것이다. 그러니 안타를 내주더라도 빠른 승부를 가져가는게 좋았다.
다음 타자는 1번 타자인 로렌 이었다. 이번에도 빠른 공을 노리고 있는 그녀에게 벨리나는 느린 커브를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다음 공은 커브와 반대되는 궤적을 지닌 A+급 스크류볼. 타자는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2 스트라이크가 되자 지은이 슬쩍 타자 몸쪽으로 위치를 이동하였다. 그리고는 벨리나에게 몸쪽 싱커를 요구했다. 병살타를 노리겠단 의도였다.
자칫 잘못하다간 병살타가 아니라 몸에 맞는 공으로 무사 만루를 만들 수도 있었다.
'아냐, 벨리나..! 할 수 있어..!'
지은의 사인을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벨리나는 손 끝의 감각에 집중하며 공을 던졌다.
낮게 깔린 빠른 공이 몸쪽으로 휘어져 들어오자 로렌의 배트가 휘둘러졌다.
틱~!
빗맞은 타구를 잡아낸 벨리나가 2루로 송구해 주자를 아웃 시켰다. 이어 아연이 1루로 던져 타자 역시 잡아내며 병살타를 완성했다.
"좋았어..!"
병살타가 완성되자 벨리나는 가볍게 주먹을 쥐며 기뻐했다. 이대로만 가면 충분히 5이닝을 버틸 수 있었다.
기분 좋게 병살타를 만들어 낸 벨리나의 다음 상대는 앞서 홈런을 친 유라 였다. 2타석 이었지만, 벌써 2타점을 올리고 있었다. 소믈리에의 모든 타점을 그녀가 만들어 낸 것이다.
1회 말에 몰린 투심을 받아 쳐 홈런을 만들어 낸 유라인 만큼 그녀는 다시 빠른 공, 특히 투심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반긴 건 슬쩍 떨어지는 서클 체인지업 이었다.
부웅~
"스트라잌~!"
가볍게 헛스윙을 유도해낸 벨리나가 곧바로 2구를 던졌다. 이번엔 바깥쪽 높은 코스의 포심이였다. C+급의 포심은 존 근처로만 가도 장타가 될 수 있었기에 존에서 많이 벗어나는 공이 되었다. 그저 보여주기 용으로밖에 쓰질 못했다.
하이 패스트볼 다음엔 커브가 국룰 이었다. 유라는 당연히 커브를 노렸고, 지은은 그 점을 생각해 벨리나에게 스크류볼을 요구했다.
높게 오다가 떨어지는 공. 타자의 방망이가 기다렸다는 듯 휘둘러 졌지만, 그녀가 머릿속에서 그렸던 궤적과는 달랐다.
틱~
"파울~!"
배트 안 쪽에 맞으면서 파울이 되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유라는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털었다.
'쓰읍..! 투수 공은 별론데, 볼배합이 판타스틱 하구만..? 볼 배합을 누가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능구렁이야.'
1볼 2스트라이크, 타자에게 불리한 카운트. 반대로 투수에게 유리한 카운트 였다. 벨리나가 슬쩍 유인구로 슬라이더를 던졌다. 그에 타자는 몸을 앞으로 쏠리면서도 스윙을 참아냈다.
'어휴... 스트라이큰 줄 알았네. 진짜 겨우 참았다.'
2볼 2스트라이크. 이제는 승부를 해야 될 때이다. 지은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인 벨리나가 힘차게 공을 뿌렸다.
바깥쪽 먼 곳에서 존 가까이로 휘어지는 공. 그 궤적을 확인한 유라는 백도어 스크류볼임을 짐작하고서 배트를 휘둘렀다.
부웅~!
'아닛..?!'
그러나 그녀의 배트에 공이 걸리지 않았다. 크게 헛스윙을 한 유라는 포수의 미트를 확인하고서 허탈함에 헛웃음을 지었다.
지은의 미트는 완전히 바깥쪽으로 빠져 있었다. 벨리나가 던진 공은 바깥쪽으로 빠지는 서클 체인지업 이었다. 서클 체인지업의 휘어지는 궤적을 스크류볼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좋았어..!"
오늘 2번째 탈삼진을 홈런을 친 타자에게 뽑아냈다는 사실에, 벨리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잘만 하면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4회 말이 시작되자마자 깨졌다.
따악~!
높게 떠오른 타구. 그 타구를 벨리나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분명 낮은 존에 꽉 찬 스크류볼 이었다. 근데 그 공을 타자는 그대로 넘겨버렸다. 완벽한 공이 넘어갔다는, 이 암담한 사실에 벨리나는 복잡한 눈빛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냥 어떻게든 5이닝만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