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화 〉269회.
구음절맥(九陰絶脈). 보통 무협지에 나오는 단어이다. 사람의 몸에는 양기와 음기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구음절맥에 걸린 사람은 몸에 양기가 없고 음기만 가득하다. 이 음기가 사람의 혈액 순환을 막는 등 신체 밸런스를 무너지게 해 시름시름 앓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게 된다.
보통 무협지에 나오는 히로인들이 이 병에 걸려 있는데 주인공은 양기가 강한 영단이나 약초를 구해와 병을 고친다. 떡협지에서는 주인공이 양기가 가득해 섹스를 통해 구음절맥을 고치지만 말이다.
'근데 그럼 주인공도 시름시름 앓아야 되는 거 아닌가..? 양기가 그렇게 많으면..?'
동국은 잡다한 생각을 하며 플로리아에게 그녀의 특성을 이야기 했다.
"플로리아 씨의 특성은 몸에 양기가 많을수록 능력치가 상승 하는 것이지요. 그럼 반대로 몸에 양기가 없어서 이렇게 앓는게 아닐까요?"
플로리아가 앓고 있는 불치병 때문에 이런 특성이 생긴건지, 아니면 이런 특성 때문에 불치병을 앓고 있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몸에 음기가 많아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흐음... 구음절맥..? 구음절맥이 정확히 무슨 병인가요?"
플로렌스가 처음 들어본다는 듯 궁금해 하자 동국은 구음절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몸에 양기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는 거죠..?"
"그렇죠. 저체온증 증상이 계속 나타나는 것도 몸에 음기가 너무 많아서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뭐,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중요한 사실은 플로리아 씨는 몸에 양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몸이 건강해 진다는 거죠."
몸에 양기가 많아진다면 강해진다. 동국의 특성은 섹스한 여성에게 양기를 보충, 강화해 줘서 여성의 능력치를 상승 시키고, 플로리아는 몸에 들어온 양기가 많을수록 능력치를 상승 시킨다. 이러면 남들은 특훈을 통해 1만큼 능력치가 상승 될 때, 플로리아는 2만큼 상승할 수도 있었다.
'서로 중복되서 2가 아니라 1 또는 1.5만큼 상승할 수도 있지만 말이야... 어쨌거나 섹스를 한번 해봐야 아는 거지.'
"그럼 구단주 님과 더욱 그... 섹스를 해야 겠네요."
"뭐, 섹스를 하면 불치병이 나을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지긴 했죠."
당사자를 앞에 두고 언니와 저 구단주라는 남자가 자신과 섹스를 하니 마니 말하는 게 플로리아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긴 했다.
플로렌스가 자신 때문에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는지 플로리아는 잘 알고 있었다. 이 놈의 불치병 때문에 그동안 언니가 쏟아 부은 치료비가 얼마인가. 밑 빠진 독에 물 붙기 였지만 언니는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을 간병해 왔다. 그렇지만 언니 역시 많이 힘들 터였다.
그랬기에 이처럼 얼토당토 않은 말에도 귀가 솔깃한 것이다. 동생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언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모르는 남자와 섹스를 하기엔... 거기다 저 사람이 말하는게 사실인지도 모르겠고...'
띠리리~
"어, 잠시만요... 어, 여보."
전화가 오자 동국은 자매에게서 살짝 떨어져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여보..? 뭐야, 유부남이었어..?'
동국의 '여보'란 말에 플로리아는 다시 한번 어이가 없었다. 결혼까지 한 남자가 자신과 섹스를 하니 마니 그랬단 말인가? 언니는 말리기는 커녕 오히려 제안을 했고?
'진짜 언니랑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봐야 겠네.'
"선수들 건강 검진이 모두 끝나서 이제 가봐야 겠네요. 플로리아 씨, 플로리아 씨의 잠재력과 특성이 참 마음에 듭니다. 딱 저희 발키리에 적합한 특성이에요. 플로렌스 씨가 저한테 부탁을 하긴 했지만, 이젠 제가 부탁을 드리고 싶네요. 한번 잘 생각해 보시고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
동국은 그렇게 말하고는 병실을빠져 나왔다.
동국이 나가고 나서 잠시 뒤, 플로리아가 플로렌스에게 물었다.
"언니...언니는 저 사람을 믿을 수 있나요? 솔직히 섹스를 통해 여성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게 잘 믿기지가 않네요. 특성이나 잠재력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요."
플로리아의 물음에 플로렌스는 곰곰이 동국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예전에... 나랑 구단주 님이 처음 만났을 때는 리사라는 선수가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왔었을 때였어. 그 때 리사 선수는 은퇴까지 생각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고 있었지. 그런데... 몇 달 만에 부상이 완전히 회복 됐었어."
"... 큰 부상이요..? 언니는 그게 그, 동국이란 남자의특성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래, 일단 확실한 건 구단주 님은 부상을 빠르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치료를 했다는 거지. 그러니 너의 불치병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불치병을 치료..."
플로리아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전혀 추운 환경이 아니지만 자신의 몸은 홀로 한겨울 눈보라를 맞는 것처럼 차가웠다.
'이게 다 몸에 양기가 부족해서라고..?'
플로리아가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플로렌스가 동생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니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 생판 모르는 남자랑 갑자기 섹스를 하라고 하면 당혹스럽겠지. 일단 구단주 님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다시 이야기 해보자. 내가 발키리 선수들에게도 물어볼게."
플로렌스의 말에 플로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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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는 우선 재은에게 연락을 취했다. 마음 같아선 치료를 받은 리사에게 직접 연락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리사의 연락처를 알지 못했다. 애초에 몇번 이야기도 못 나눠봤는데 연락처를 어떻게 알겠는가.
플로렌스의 연락을 미리 예상 했는지 재은은 순순히 리사와의 만남을 주선해 줬다.
"안녕하세요, 리사 선수."
"네, 안녕하세요, 플로렌스 씨."
그리하여 만나게 된 두 사람. 서로 소소하게 안부를 묻다가, 플로렌스가 본격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리사 선수. 저에게 불치병에 걸린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아, 네. 동국에게 들었습니다. 듣자 하니 구음절맥..? 뭔 이상한 병에 걸렸다고 했는데 말이죠."
"알고 계시다면 이야기 하기가 편하겠네요. 단도직입적으로 구단주 님의 특성으로 저희 여동생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플로렌스의 물음에 리사는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겁니다. 동국과 섹스를 한다고 해서 말기암 같은 병이 치료될 꺼라 장담은 못 합니다만, 적어도 여동생 분 병은 치료할 수 있을거 같더군요."
리사의 확답에 플로렌스는 뜸 드리다 입을 뗐다.
"그건 제 여동생의 특성 때문인 건가요..?"
"아무래도 그렇죠. 동국의 특성은 양기를 관계를 맺은 여성에게 주는 것 이니깐요. 그리고 여동생 분은 양기가 많을수록 몸이 건강해 지고요. 동국의 특성과 여동생 분의 특성이 서로 겹친다고나 할까요? 아마 효과도 2배가 되겠죠."
확실히 동국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동국과 섹스를 하면 분명 여동생의 병이 나을 것 같았다. 동국의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 실례지만 리사 선수 예전에 부상을 입었을 때, 빠르게 치료가 된 것도 구단주 님과의 섹스 때문인가요?"
"네, 애초에 발키리에 입단하게 된 것도 치료 때문이었으니깐요. 동국이 제 부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설득을 해서 지역 리거 였던 제가 당시 2부 리그 팀에 입단을 결심할 수 있었죠."
"아, 하긴..."
그러고 보면 리사는 당시 잘 나가던 지역 리그 선수였다. 뭐, 은퇴 한다는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몇 년 재활 후에는 어떻게 됐을지 몰랐다. 성공적으로 재활에 성공해 다시 복귀를 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거야 플로렌스가 그 당시 상황을 잘 몰라서 하는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선수가 발키리로 이적을 결심 한 것은 그만큼 치료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후... 알겠습니다. 제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 아닙니다. 동국에게 듣자 하니 여동생 분의 특성이나 잠재력이 좋다고, 발키리에 영입할 생각이더군요. 잘만 하면 같은 식구가 될 수 있을텐데,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 네..."
아직 플로리아는 발키리에 입단하거나 동국과 섹스할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리사는 그녀가 입단할 거라 생각하고 있어 보였다.
'하긴... 이대로 라면 속는 셈 치고 라도 구단주랑 섹스를 해야 할테니... 근데 리사 선수나 다른 여자분들은 질투가 안 날까..?'
옛날, 동국이 플로렌스에게 대시를 했을 때, 그녀는 재벌집 딸이 동국의 여자라는 소식에 지레 겁을 먹고 동국의 대시를 거절했었었다. 만약 그 때 동국의 대시를 받아드렸었다면, 플로리아의 병이 더 일찍 나았을까..?
'후... 모르겠다... 차라리 내가 먼저 확인을... 음..?'
내가 확인을..?
*
*
*
며칠 뒤. 한가롭게 섹스나 하며 시간을 보내던 동국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음..? 플로렌스..? 흠,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구단주 님. 지금 통화 가능하신가요?
"아, 네, 가능합니다. 혹시 여동생 분 때문에 전화 하셨나요?"
- 네... 그 문제에 대해 말씀 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 제가 구단으로 갈게요.
"아, 물론이죠. 언제든 오셔도 됩니다."
- 그럼... 3시까지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동국은 후후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후후... 드디어 마음을 정한건가..? 이거 참... 바쁜데 말이지..."
사실 전국 리그를 대비하려면 선수들과 특훈 하기 바빴다. 거기에 2군 선수들까지 생각한다면 플로리아의 병을 고칠 여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동국은 그녀의 외모와 특성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다.
3시가 되어 플로렌스가 구장에 도착했다.
"플로리아 씨가 마음을 정하신 건가요?"
동국의 물음에 플로렌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굳은 표정으로 동국을 바라보았다.
"그 전에... 제가 먼저 구단주 님과 섹스를 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