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화 〉263회.
드레이크 선발 투수와 포수 간의 말다툼은 다음 투수인 박조윤과 투수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오자 끝이 났다. 선발 투수였던 문승연은 더그아웃으로 들어와서는 글러브를 벤치에 던졌다. 그리고는 복도로 사라졌다.
"아이고~ 저쪽은 완전 분위기가 난장판이구만..? 물론 우리는 좋지만."
타석에서 방망이를 붕붕 휘두르며 몸을 풀던 지은은 그 광경을 보고서 혼잣말을 하였다. 드레이크의 선수들과 코치들의 찡그린 표정을 보니,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문승연이 저렇게 행동했는지 지은은 이해할 수 없었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지금은 그저 동국에게서 받은 양기를 가지고 호쾌한 타구를 날리기만 하면 됐다. 상대는 우타자에게 강한 우완 언더핸드긴 했지만, 지금 컨디션이라면 충분히 안타를 뽑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레이크의 바뀐 투수는 박조윤 선숩니다. 우완 언더핸드인 그녀는 올 시즌 6승 22패, 4.78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자책점에 비해 승 수가 너무 적죠. 올 시즌 승 운이 적었던 박조윤 이었습니다.]
[언더핸드인 만큼 우타자에게 강한 박조윤 선순데요, 우타자에겐 피안타율이 2할 2푼 3리 밖에 되질 않습니다.]
[반대로 좌타자에겐 피안타율이 3할이 넘죠. 다음 타자가 좌타인 최지아 선수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드레이크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는 바로 병살타 겠죠.]
[지금 나가있는 발키리의 주자들, 그리고 신지은이 모두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란 말이죠. 특히 1루 주자인 리사 선수는 부상 이후로 주력이 많이 느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발키리 측에서는 부상 부위가 완벽하게 회복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 마음이란게 그렇거든요? 한번 다친 적이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조심을 하게 되는 거죠.]
딱!
꽤나 정확하게 맞은 타구! 지은이 친 땅볼 타구가 쏜살같이 1루수 롤리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1루수 몸을 날려 막았습니다!! 2루는 이미 늦었고, 베이스 커버를 들어간 투수에게 공을 토스 합니다. 2아웃!]
[지금 수비는 정말 롤리 선수의 호수비 네요! 저 타구가 빠졌으면 분위기가 완전히 발키리 쪽으로 넘어가는 거였거든요? 롤리 선수, 공격 뿐만이 아니라 수비 역시 잘한다는 걸 유감 없이 보여주네요.]
[하지만, 그 사이 2루 주자가 홈을 밟으며 점수 4대 0이 되었습니다. 발키리 입장에서는 롤리 선수의 호수비가 아쉽긴 해도 나쁘진 않았어요. 그래도 1점 더 달아났거든요.]
롤리의 호수비가 드레이크 선수들을 자극 시켰는지, 지아의 큼지막한 우측 타구를 우익수 김영미가 몸 날려 잡아냈다. 드레이크 팬들의 아낌없는 박수 갈채를 받으며 공수 교대가 이루어졌다.
[3회 말. 선두 타자는 2번 타자 최지연 선숩니다. 직전 타석에선 삼진으로 물러났습니다.]
[드레이크 타순이 좋아요. 드레이크 입장에서는 여기서 추격하는 점수가 나오길 희망할 겁니다.]
앤서니는 초구로 빠른 직구를 던졌다. 3회 초 동안 동국에게 양기를 가득 받아서 그런지 힘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130km 대를 넘어선 140km의 빠른 공이 바깥쪽을 향해 날아갔다.
'오..! 공 좋은ㄷ..?'
앤서니가 던진 직구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자 지은은 직감적으로 구속이 140km가 넘었다는 걸 느꼈다. 속으로 감탄하며 공을 받기 위해 글러브를 내밀었지만, 묵직한 느낌이 느껴지질 않았다. 대신 찰진 타격음만이 그녀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따악~!
[초구부터 타격!! 우익수 쫓아갑니다!! 우익수 뒤로, 뒤로!!]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우측 담장을 향해 날아가는 타구. 지아는 타구의 낙하 지점을 파악하고서 열심히 달렸다. 그녀의 발 끝에서 고운 흙의 감촉이 느꼈다. 담장 근처 워닝 트랙까지 왔음에도 타구는 약간 높았다. 살짝 담장을 넘어갈 것만 같은 타구.
그러나 지아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하고서 담장을 발로 밟았다. 직각에 가까운 담장을 밟고 점프를 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지만, 지아는 해냈다.
달리던 속도 그대로 점프를 해 담장을 밟고, 다시 점프. 2m 넘게 점프를 한 지아가 글러브를 낀 왼팔을 높게 들었다. 그리고 최지연의 홈런성 타구가 정확하게 지아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잡아냈어요!!! 저 타구를 잡아냈어요!!! 최지아!!!]
[정말... 대단하단 말 밖에 안 나오네요... 지금 몇 미터를 뛴 겁니까..? 거의 2,3미터는 점프를 한 것 같은데 말이죠...]
[진짜 홈런인 타구였거든요? 근데 저걸 잡아내네요. 멋지게 포효를 했던 최지연 선수나 더그아웃에서 환호하던 드레이크 선수들 모두 믿기 힘들어 하는 표정입니다.]
해설의 말대로 드레이크 선수들은 물론이고 팬들 역시 입을 떡 벌리며 경악을 했다.
"아니, 저렇게 높게 점프를 하면 농구나 배구를 해야 하는거 아냐?! 왜 오구 선수를 해서 지연이 홈런을 없애냐고!!"
"와, 미치겠다, 정말... 지금 자기 타구가 잡혔다고 시위하는 거야, 뭐야?"
한 팬의 말대로 지아는 진정한 호수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지아의 호수비에 기가 죽었는지, 아니면 동국에게 양기를 잔뜩 받아 앤서니의 실력이 상승 했기 때문인지, 드레이크 타자들은 무기력하게 범타를 치며 삼자 범퇴를 당했다.
'이거..? 이대로 이기는 각인가..?'
동국은 해맑은 표정으로 뛰어오는 앤서니를 바라보며 행복 회로를 돌렸다. 이제 3회가 끝이 나긴 했지만, 분위기 상 발키리가 질 것 같진 않았다.
따악~!
[잡아 당긴 타구!! 좌익수 키를 넘기는 장탑니다!! 1루 주자, 2루 지나서 홈으로, 타자 주자는 2루까지!! 1타점 적시 2루타!!! 스코어 4대 1이 됩니다!!]
[최지연 선수가 몸쪽 슬라이더를 그대로 잡아 당겼네요. 아주 이상적인 타이밍 이었어요.]
4회 초가 삼자 범퇴로 끝이 나고, 4회 말. 최지연의 2루타가 터지며 앤서니는 1점 실점하였다. 그 다음 타자가 최지연과 마찬가지로 S급인 롤리였기에 델루나는 바로 고의 사구를 지시하였다.
'진짜 버프 좀 못 받았다고 바로 장타를 허용하는 구만..?'
동국은 아직까진 전국 리그 팀을 이기기엔 전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꼈다. 그리고 이 경기를 이기지 못한다면 전국 승강전에서 승격을 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뭐, 내년에 다시 한번 지역 리그를 우승해 승강전에 도전해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일단 최선을 다 해봐야 했다.
'일단 지금 고비를 넘겨야 할텐데...'
1사 만루. 타석에는 드레이크 타자들 중 공격력이 가장 떨어지는 이재영 이었다. 그녀의 공격력은 C+ 등급. 앤서니가 충분히 범타를 유도할 수 있었다. 주자로 나가 있는 최지연과 롤리의 주력이 느리지 않다는게 문제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 상황에선 당연히 땅볼을 유도하겠지..? 그럼 난 최대한 어퍼 스윙을 한다..!'
이재영은 평소 타격폼을 버리고 최대한 공을 외야로 보내고자 하였다. 루상에 나가있는 주자들의 주력이 느린 편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최대한 병살의 위험을 줄이고 싶었다.
'오직 직구..! 직구만 노린다!'
초구. 두둥실 떠다니는 너클볼. 앤서니의 너클볼이 나비처럼 날아와 사뿐히 스트라이크 존에 안착했다.
이재영은 앤서니의 공을 쳐다만 보았다.
제 2구. 앤서니의 하이 패스트볼에 이재영이 하프 스윙을 하였다. 빠른 직구가 날아오자 반사적으로 배트를 휘두르려 했지만, 공은 존보다 높이 날아왔다. 가까스로 스윙을 멈추려 했으나, 이미 반 이상 배트가 돌아가 버렸다.
[노 볼 투 스트라이크 상황으로 몰린 이재영 선숩니다. 드레이크 입장에선 최소한 득점이라도 해야 할텐데 말이죠.]
[반대로 발키리 입장에선 여기서 이재영 선수를 삼진으로 잡아야 하죠.]
앤서니의 세 번째 공은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였다. 원바운드가 될 정도로 떨어진 공이었지만, 이재영의 방망이는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헛스윙~!! 삼진 아웃!! 이재영이 삼진으로 물러납니다!]
"좋았어!!"
이재영이 헛스윙을 하자 지켜보고 있던 동국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병살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긴 했지만, 삼진도 충분히 좋은 상황이었다.
"벨리나, 미리 준비 해놓자."
"네, 오빠."
2아웃 상황이 되자 동국은 미리 선수들에게 줄 버프를 준비 하기로 하였다. 앤서니가 오자마자 목구멍에 정액을 넣어주기 위해 예열을 시켜놓는 것이다. 벨리나 입장에선 자지를 빨아놨더니 정작 정액은 다른 사람이 먹는 꼴이었지만, 그녀는 흔쾌히 팀을 위해 헌신하기로 하였다.
벨리나 입장에서도 자지를 빨기만 해도 흥분이 됐고, 또 공격이 끝나면 동국이 흥분한 몸을 달래 주기로 하였으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애초에 코치들도 이 역할을 맡고 싶어했지만, 코치 역할을 충실해 해야 해서 벨리나가 하게 되었다.
5회 초. 지아의 안타와 아연의 2루타로 발키리는 1점 더 달아났다. 5회 동안 박조윤이 던진 공의 개수는 20개. 그리고 그만큼의 시간이 동국과 앤서니에게 주어졌다.
"앤서니, 너만 믿는다."
"응~!! 내가 멋지게 경기 끝내고 올게!"
앤서니가 원정팀 라커룸의 문을 닫고 경기장을 향해 나갔다. 그녀의 뒤쪽으로 약하게 벨리나의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음이 순수한 앤서니였지만, 이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 경기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경기에서 이기기만 하면 자신이 예전에 티비에서만 보던 전국 리그에 출전을 할 수 있게 된다.
'할머니...'
예전 생각을 하다 보니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할머니는 혼자 남을 자신을 걱정하셨다. 할머니가 없는 세상. 아마 동국이 없었다면 자신은 어떻게 살았을까?
순진하고 순수한 그녀가 생각을 해봐도, 아마 잘 살고 있진 않았을 것 같았다.
'히힛~'
새삼 동국이 고마워진 앤서니는 자신의 하복부를 쑤시던 강렬한 느낌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아 얼굴을 붉혔다.
[앤서니 선수. 많이 긴장한 것처럼 보이네요.]
[아무래도 5회 말이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겠죠. 이번 이닝만 막으면 팀이 전국 리그로 승격되니깐요.]
[타선은 다시 1번 타자부터 시작됩니다. 드레이크 타선이 좋아요, 충분히 역전할 수 있습니다.]
1번 타자 김영미. 앤서니는 마치 자신의 자궁 안쪽을 헤엄치고 있을 정자의 움직임과도 같은 너클볼을 던져 삼진을 잡아냈다.
'시발... 너클볼 움직임이 더 괴랄해 졌네...'
김영미는 더그아웃으로 되돌아 가며 침을 탁 뱉었다. 전국 승강전이 성큼 다가온 것만 같아 기분이 씁쓸했다.
2번 타자 최지연. 그녀가 친 타구가 다시 한번 지아의 호수비를 넘지 못했다. 최지연은 저 멀리 외야에 있는 지아를 살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 보고선 더그아웃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따악~!
최지연의 타구가 잡히는 것을 봐서 그런지 롤리는 큼지막한 타구를 좌측으로 보냈다. 발이 빠르긴 해도 아직 수비가 지아만큼의 실력이 아닌 현아는 그녀에게 2루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딱!
거기에 오늘 경기에서 안타를 허용하지 않았던 이재영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며 점수 5-2가 되었다. 야구에 9회 말 2아웃이 있다면 오구엔 5회 말 2아웃이 있었다. 드레이크 팬들은 드라마 같은 대 역전승을 기원하며 목이 터져라 응원 구호를 외쳤다.
""st 오태연 안타!! 오오오오~!!!""
오늘 3타수 1안타를 기록할 정도로 오태연의 타격감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는 잔뜩 버프를 받은 앤서니였다.
'진짜... 이 놈의 너클볼..!'
둥실둥실, 그러나 이 표현과는 안 어울리는 속도로 너클볼이 날아왔다. 140km의 포심보단 확연히 느리지만, 그렇다고 공의 궤적을 끝까지 보고 칠 정도로 느린 편은 아니었다. 애초에 프로에서 너클볼이 통하려면 회전이 없는 것과 동시에 속도도 어느 정도 나와야 했다.
느린 너클볼 다음엔 140km의 빠른 속구. 오태연의 방망이가 애처롭게 헛돌았다. 노리고 있었던 공이었지만 생각보다 더 빨랐다.
'이대로 질 순 없다..!'
'이대로 승리한다..!'
투수와 타자의 생각이 엇갈렸고, 투수가 던진 공과 타자가 휘두른 방망이 또한 엇갈렸다.
"스트라잌~!! 아웃!!"
[헛스윙~!! 삼진 아웃!!! 경기 끝!! 발키리가 3년 연속 상위 리그로의 승격에 성공합니다!!]
"이겼다!!"
"이제 전국 리그다!!!"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자 앤서니는 방방 뛰며 기뻐했고, 지은은 포수 마스크를 냅다 던지고서 더그아웃에 있는 동국을 향해 뛰어갔다.
"여보오~!!"
보통 포수가 마운드에 있는 투수에게 뛰어가는 걸 생각하면 이례적이긴 하지만, 지은의 평소 행태를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동국은 더그아웃에서 벨리나, 그리고 코치들과 함께 기뻐하다가 자신에게로 달려온 지은을 엉겁결에 껴안았다. 그 사이 다른 선수들은 앤서니에게로 달려가 그녀를 껴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발키리는 그렇게 드레이크를 꺾고 전국 리그로 승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