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화 〉261회. 지역 승강전
동국은 예전부터 지역 승강전을 준비해 왔다. 미리 지역 승강전의 상대가 될 인천 st 드레이크 선수들의 상태창을 확인한 것은 물론이고, 혹시나 전국 승강전까지 갈 경우를 대비해 다른 팀 선수들의 상태창 역시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드레이크는 비록 전국 리그 꼴찌를 한 팀이지만, 발키리보다 강한게 사실이었다.
드레이크 선발진 등급은 A+, A 이다. 발키리의 B, C 보다 명백히, 아니 압도적인 우위였다. 거기에 타자들의 등급 역시 A, S, S, B, A 로 발키리의 B, S, B+, B, E+ 보다 우위였다. 거기에 드레이크의 타자들은 전원 우타자들 이었다. 앤서니가 좌투수인 점을 생각하면 더욱 불리한 것이다.
이대로 경기를 했다간 질게 뻔했다. 동국의 버프, 에너지 드링크를 통한 최상의 컨디션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질 확률이 더 높았다.
"이대론 안됩니다. 일단 앤서니의 봉인을 풀어 놓고 시작해야 해요!"
지역 승강전을 대비하는 회의에서 투수 코치인 비엔나가 외쳤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까지 봉인해 뒀던, 앤서니의 너클볼을 사용해야 될 때가 왔다. 여태까지 한 번도 선보인 적 없던 앤서니의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드레이크 타선을 꽁꽁 묶어둬야 했다.
7월 말부터 8월 달까지. 앤서니는 그동안 가끔 연습만 해왔던 너클볼을 중점적으로 연습하였다. 너클볼에 회전이 먹힐 경우, 그냥 배팅볼이 되기에 더욱 완벽하게 던져야 했다.
그리고 지금. 앤서니는 마운드 위에서 힘차게 공을 던졌다.
펑~
"스트~ 라잌~!"
시속 139km의 포심이 존 구석을 찔렀다. 앤서니의 공을 지켜본 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역 리그에서는 최상위권의 구속이지만, 전국 리그에서는 평균보다 살짝 이하인 구속이었다. 충분히 칠 수 있는 공이었다.
'다음 공은 체인지업 이려나..?'
자신이 우타자이니 분명 바깥쪽으로 가라앉는 서클 체인지업을 던질 터였다. 그럼 자신은 그냥 툭 밀어 쳐서 안타를 만들면 됐다.
제 2구. 다시 한 번 속구였다. 체인지업을 노리고 있었기에 반응이 살짝 늦었고, 1루 관중석에 떨어지는 파울이 되었다.
노볼 2스트라이크 상황. 투수가 유리한 카운트에서 유인구를 생각하고 있던 타자에게 느린 체인지업이 들어왔다.
'으응..?'
살짝 이상한 체인지업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할 것으로 보여, 타자는 당연히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리고 공은 방망이를 피하듯 쑥 하고 가라앉았다.
"스트~라잌~ 아웃!"
심판의 우렁찬 아웃 선언에도 타자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글러브를 바라보았다.
"야, 이 공, 구종이 뭐야? 체인지업이야?"
"자이로 볼이요."
지은의 개소리에 타자, 김영미는 혀를 차고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러며 다음 타자에게 자신이 본 공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야, 투수가 약간 이상한 공 던진다. 체인지업 계열인 거 같은데, 잘 모르겠어."
"흠... 알았어, 언니."
김영미가 가고 타석엔 최지연이 들어섰다. 파워가 수준급인 타자로 타율은 높지 않지만 일단 제대로 걸리면 넘겨버릴 힘이 있었다.
초구. 앤서니가 힘차게 던진 공이 포수 미트를 향해 날아갔다.
느리게, 두둥실.
"스트~ 라잌~!"
존 한복판에 들어간 공. 그러나 최지연은 그 공을 인상을 찡그리며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지은에게 구종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거 무슨 공입니까?"
"스플리터요."
"아니, 장난치지 말고..."
당연히 지은은 순순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어차피 얼마 안 있어, 이 공이 너클볼 이란 걸 알겠지만, 굳이 자신이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최지연이 봤을 때, 이 공은 절대 지은의 말대로 스플리터가 아니었다. 그녀가 본 동영상에서 앤서니가 던지는 스플리터와는 완전히 움직임이 달랐다. 마치 너클볼 같은...
'너클볼..?'
최지연이 혼란스러워 할 때, 경기를 중계하는 해설들도 혼란해 하고 있었다.
[...]
[...]
[... 너클볼이죠?]
[그런 거 같은데요..? 일단 느린 그림으로 다시 한번 보시죠.]
화면에 방금 전 앤서니가 던진 공이 느린 그림으로 재생되었다. 비틀비틀, 마치 공이 술에 취한 것처럼 날아가더니 최지연의 방망이가 다가오자 휙 하고서 가라앉아 버렸다.
[... 공에 회전이 거의 없는 걸로 봐서는 너클볼 같습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던지는 걸 봐서는 하루 이틀 연습한 걸로 보이지 않는데... 이런 공을 시즌 동안 숨기고 있었다니... st 드레이크 입장에서는 뒤통수가 얼얼하겠네요.]
너클볼 다음에 빠른 공. 최지연이 반사적으로 배트를 휘둘렀지만 타이밍이 전혀 맞질 않았다. 배트와 공의 거리 차이가 상당했다. 그대로 2 스트라이크.
이대로 아웃 당할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진 최지연에게로 만취 상태의 공이 날아왔다.
공이 날아올 것 같은 곳을 향해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공은 그런 최지연을 비웃기라도 하듯 땅바닥에 처박혔다.
[공 뒤로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 바람에 지은이 공을 놓치고 말았다. 상황을 파악한 최지연이 허겁지겁 1루를 향해 뛰었다.
발키리에겐 다행이도 놓친 공은 그렇게 멀리 가질 않았고, 최지연보다 먼저 공이 1루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김영미와 최지연을 삼진으로 잡은 앤서니는, 다음 타자를 내야 땅볼로 요리하며 이닝을 끝냈다.
"시발... 너클볼이라니..."
"이건 반칙이지..!"
갑작스럽게 공개된 신구종, 그것도 마구 라고 불리는 너클볼의 등장에 드레이크 팬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반대로 발키리 팬들은 앤서니가 너클볼을 던질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열세인 전력을 뒤집을 새로운 신무기의 등장에 팬들은 기대감을 가졌다.
"어쩌면 오늘 이기는 거 아냐?!"
"후후, 지들이 너클볼을 어떻게 치겠어~!"
양 팀은 투수들의 전력을 과시하듯 1회에 이어 2회에도 삼자 범퇴로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양 팀 팬들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며 3회 초를 맞이했다.
[3회 초. 선두 타자는 2번 타자, 리사 선숩니다. 발키리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타자죠.]
[리그 MVP를 기록한 리사 선수, 과연 팀을 전국 리그로 이끌 수 있을지..?!]
드레이크의 투수, 문승연의 슬라이더가 바깥쪽 존을 통과하였다. 그 절묘한 제구에 리사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전국 리그 투수가 다르긴 달라..!'
구위는 물론이고 제구가 완벽에 가까웠다.
'그래도 치긴 쳐야지!'
문승연이 A+ 급 타자긴 했지만, 자신은 S 급 타자였다. 충분히 안타를, 아니 장타를 때려낼 수 있었다.
[2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제3구!]
문승연이 결정구로 체인지업을 던졌다. 바깥쪽 코스를 노리고 들어오는 공. 그러나 살짝 빠졌는지 바깥쪽이 아닌 가운데로 몰리고 말았다.
'이건..!'
리사는 반사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제대로 걸린 타구가 우측 외야 깊숙한 곳으로 날아갔다. 타구를 치자마자 리사는 죽을 힘을 다해 뛰었고, 드레이크 우익수인 김영미 역시 뛰어난 수비 실력을 자랑하듯 재빨리 타구를 쫓아갔다.
[1루 지나 2루!! 2루, 2루에서!!]
가슴을 출렁거리며 열심히 2루로 달려가는 리사. 그녀의 모습에 2루쪽 관중석에 있던 팬들은 긴박한 상황임에도 리사의 슴부먼트에 시선이 고정될 수 밖에 없었다.
"이, 이야... 저 움직임 좀 봐..."
"죽인다..!"
[세잎!! 세잎 입니다!! 리사 선수, 발키리의 첫 안타를 장타로 신고합니다!]
[무사 2루의 상황! 발키리가 절호의 찬스를 맞이했습니다!]
“아…”
“왜 2루타를 쳤는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거지…”
2루에서 리사가 살았으니 당연히 기뻐해야 했지만, 발키리 팬들은 오히려 리사의 슴부먼트를 보지 못 한다는 것 때문에 아쉬워 했다.
발키리에게는 선취 득점의 찬스가, 반대로 드레이크에겐 실점의 위기가 찾아왔다. 드레이크는 곧바로 내야수들을 전진 배치 시키며 실점을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딱!
[내야를 빠져 나가는 안타!! 신지은 선수의 1타점 적시타가 터지며 점수 1대 0이 됩니다!]
[워낙 빠른 타구라서 내야수들이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안타를 치고 1루에 나간 지은이 한 손을 번쩍 들자 발키리 팬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우와아아!!"
"발키리의 신지은~!! 발키리의 신지은~!!"
'후후후..! 기분 좋구나~!'
리사의 2루타가 없었으면 지은의 타점도 없었겠지만, 어쨌거나 타점을 올린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아마 오늘 경기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도 계속 나오겠지. 지은은 팬들의 환호성을 즐기며 미소를 지었다.
연속 안타를 허용하자 드레이크의 투수, 문승연은 멘탈이 흔들렸다. 어찌 된 일인지 발키리의 투수가 너클볼 이라는 마구를 던지게 되면서 투수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던 경기였다. 이런 경기에서 1점이, 그것도 선취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문승연 이었기에 더욱 초조함과 짜증을 느꼈다.
'그래도 타자들이 1점은 낼 수 있겠지..? 설마 1실점 패전 투수가 되진 않겠지...'
좌타자인 지아를 맞이해, 포수인 이재영이 바깥쪽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연속 안타가 나온 상황, 그것도 선취 득점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아무래도 타자들이 흥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재영은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해 가라앉는 체인지업을 요구한 것이다.
'후우... 그래, 체인지업 가자고.'
또한 문승연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구종도 체인지업 이었다. 결정구로 써먹기에 그리 자주 던지진 않지만, 지금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그리고 상대의 헛점을 노리기 위해 던져야 될 때였다.
'가라..!'
공을 던지는 순간 문승연은 미소를 지었다. 이건 딱 원하는 대로 던져진 공이었다. 아마 타자는 이 공을 건드릴 수도 없을 터였다.
틱~!
'어어..?!'
그러나 문승연의 예상과는 다르게 지아는 그녀의 완벽한 공을 건드렸다. 그것도 예상치 못한 기습 번트로.
[초구... 아앗! 기습 번틉니다! 2루수 빠르게 달려서 1루, 1루에서!! 아웃! 아웃입니다!! 하지만 그 사이 1루 주자, 2루까지 진출했습니다!]
[2루수 최지연 선수의 빠른 타구 판단, 그리고 강한 어깨가 돋보였습니다. 최지아 선수의 발이 빠른 편이라서 까딱 잘못하면 살 수도 있었거든요.]
[반대로 최지아 선수, 상당히 아쉬워 합니다. 보아하니 주자를 진루 시키면서 본인도 한번 살아보려 한 것 같은데 말이죠.]
지아의 기습 번트로 깜짝 놀란 문승연은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심호흡을 하였다.
'그래도 다음 타자가 주현아야. 빠르게 삼구 삼진으로 돌려 세운다!'
발키리의 다음 타자는 그 유명한 주현아 였다. 발 하난 빠르지만 나머지는 별 볼일 없는 선수였다. 내야수들이 스퀴즈 번트에 대비해 앞으로 전진한 가운데, 문승연은 가벼운 마음으로 공을 던졌다.
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