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화 〉238회.
3월 1달 동안 5연승, 그 뒤 3연패를 한 벨벳 발키리는 4월에 다시 4연승을 달렸다. 6위 안산 테크니션을 상대로 0-6, 1-6의 대승을 거두었다.
안산 테크니션은 인천 벨 레이디스와 비슷하게 1명 빼고 나머지 타자들이 다 우타이다. 그래서 좌완인 앤서니, 그리고 좌타에게 강한 벨리나가 선발인 발키리와 상성이 그리 좋지 않다. 그러나 레이디스와는 다르게 타자들의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기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특히 2차전에서 타자들이 벨리나가 특훈을 할 시간을 벌어 줌에 따라 고작 1실점밖에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안산 테크니션에게 2연승을 거두며 연패에서 탈출한 발키리는 이어 7위인 부천 피치걸즈에게도 2연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수원 사성 위치즈가 그랬던 것처럼 발키리의 연승을 저지할만한 팀과의 경기가 열린다. 바로 전년도 3위를 기록한 고양 스타 캐츠우먼이다. 캐츠우먼은 작년 컵 대회에서 맞붙어 패배한 팀으로 평균 이상의 선발진과 다섯 타자 중 4명이 우타자인 우타 일색의 타선은 발키리에게 충분히 위협적이다.
캐츠우먼의 1차전 선발 투수인 요시데는 좌완인 선수로 좌완임에도 우타에게도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그녀의 특성 때문인데, 그녀의 특성인 '공이 더 가라앉음' 은 그녀의 체인지업을 상당히 강력하게 만들어 준다.
요시데는 싱커, 커브, 체인지업, 슬라이더를 던지는데, 이 특성 때문인지 그녀가 던질 수 있는 4가지 구종 중 슬라이더를 가장 적은 비중으로 던진다.
캐츠우먼 구장에서 열린 스타 캐츠우먼과의 경기. 발키리는 초반부터 고전하기 시작했다.
[빗 맞은 타구! 2루수 잡아서 1루에! 아웃입니다. 1아웃!]
[내야 땅볼! 1루수 잡아서 2루에! 다시 1루에~!! 아웃! 아웃입니다! 더블 플레이로 순식간에 이닝을 끝내는 요시데!]
1회 초, 리사가 안타를 치긴 하였으나, 지은의 병살타로 3타자 만에 이닝이 끝이 났다.
[1루수! 잡았습니다! 그 사이 투수 베이스 커버! 아웃입니다! 1아웃!]
[헛스윙~! 삼진 아웃!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변화구에 주현아의 배트가 헛돕니다!]
[1루수 정면! 그대로 베이스 밟으며 2회 초가 끝이 납니다.]
2회 초 역시 삼자 범퇴로 끝이 났다. 2회 초가 끝이 났다는 소식에 동국과 앤서니를 비롯한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이거 너무 스피드 하게 경기가 진행되는데..?"
빠르게 경기가 진행되면 보통은 투수의 어깨가 식지 않아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발키리는 반대다. 발키리는 공격이 오래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투수가 버프를 받을 시간이 길어지기에 오히려 더 좋았다.
그런데 1회도 그렇고, 2회에도 타자들이 별로 시간을 못 끌어 주는 바람에 앤서니가 딱히 버프를 받을만한 시간이 없었다.
"걱정하지 마, 동국~! 나, 아직 괜찮아!"
동국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앤서니가 주먹을 불끈 쥐며 힘차게 말했다. 각오를 다지는 그녀의 모습이 왠지 앙증맞았다.
"후후, 그래. 앤서니만 믿을게."
동국은 앤서니의 붉은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앤서니의 장담대로 2회 말은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선두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한 그녀는 다음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긴 했지만, 이후 뜬공을 유도하며 2아웃을 잡았다.
[2아웃, 주자 1루에 나가있는 상황에서 3번 타자 박호연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첫 타석에선 땅볼로 물러났었습니다.]
캐츠우먼의 3번 타자 박호연. 우타 1루수로 C+ 급 선수이다.
'음...'
박호연의 타격 자세를 '관찰'한 지은은 속으로 침음을 냈다. 그녀가 노리는 구종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냥 보는 대로 때린다는 생각이거나, 아니면 지금은 공을 칠 생각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다.
박호연의 전년도 리그 타율은 2할 4푼 5리. C+급 치고는 상당히 낮았다. 그러나 그녀의 출루율은 무려 3할 8푼 7리로 타율보다 1할 4푼 정도 더 높았다.
이는 그녀의 특성 때문으로, 그녀의 특성은 '스트라이크 예지' 로, 투수가 던지는 공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한마디로 눈야구의 끝판왕 인 것이다.
동국이 박호연의 특성을 알려주자 다들 감탄 했을 정도로 좋은 특성이었다. 다만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고, 특성에 비해 그녀의 타격 실력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러니 정작 존 안에 들어오는 공은 제대로 공략을 못 해서 타율이 2할 4푼 밖에 되질 못 하는 것이다.
'아마 저번 타석이랑 마찬가지로 존에 들어오면 치겠다는 거겠지..?'
타율 2할 4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성적이지만 지은은 그녀의 머릿속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찜찜했다. 발 빠른 주자는 2아웃 상황이기에 타자가 공을 치면 무조건 뛸 것이다. 자칫 안타라도 허용하면 실점할 수도 있는 것이다.
뻥~!
"스트라잌~!"
앤서니의 138km 의 포심이 낮은 코스로 존을 통과했다. 박호연이 배트를 휘둘러 봤으나 타이밍이 한참 늦었다.
'이런 타자들은 그냥 자신 있는 공을 존에 집어 넣야지.'
두 번째 공은 바깥쪽 직구. B+ 급 구위의 포심이 지은의 미트를 향해 맹렬히 날아왔다.
딱~!
어쩌다 정타가 된 공이 1루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 공을 쳤다는게 믿기지 않는지 박호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1루로 뛰어갔다.
[1루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안탑니다! 1루 주자 이미 2루 지나 홈으로~!! 들어왔습니다! 박호연의 적시타로 선취 득점에 성공하는 캐츠우먼 입니다!]
앤서니가 안타를 맞는 모습에 동국은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쓰읍... 저걸 치네... 구속 잘 나왔는데."
"재수 없게 맞은거죠, 뭐."
투수 코치인 비엔나의 말에 동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만, 아쉽긴 하네요. 타자들이 시간을 좀 벌어 줘야 하는데..."
동국은 3회에는 이런 답답한 타선이 터지기를 바랬지만, 지은의 안타 하나만 나왔을 뿐이었다.
아슬아슬하게 0-1의 점수가 이어지고 있을 때, 드디어 발키리의 타선이 터지는 듯 했다.
[1루수 옆을 스쳐 지나가는 타구! 선두 타자가 출루에 성공합니다!]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무사 만루의 찬스가 신지은 앞에 차려집니다!]
아연과 리사의 연속 안타로 무사 만루의 상황이 펼쳐졌다.
"여보라면 충분히 외야 플라이, 아니 안타를 칠 수 있겠지."
동국은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서 역전에 성공하면 경기 후반이기에 경기를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나연은 동국의 말에 지은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버프를 받지 못해 부루퉁한 표정. 동국의 버프를 경험해 보지 않으면 상관 없지만, 한번이라도 버프를 받으면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버프를 받는게 루틴이 되어 버프를 받지 못하면 왠지 불안하고 몸이 덜 풀린 느낌을 받는 것이다. 특히 동국에 대한 집착이 심한 지은은 동국에게 버프를 못 받은 것에 대해 더욱 예민할 수 밖에 없었다.
[아앗! 투수 정면! 투수 바로 포수에게 토스하고, 포수 1루로 송구!! 아웃!! 아웃입니다!! 무사 만루에서 더블 플레이를 하고 마는 신지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쌉니다.]
지은이 친 땅볼 타구를 하필이면 투수가 잡아버리고 말았다. 투수는 당연히 홈으로 던졌고, 2루 주자인 아연은 홈에서 아웃되었다. 그리고 지은 역시 1루에서 아웃 되면서 무사 만루가 순식간에 2사 2루로 바뀌었다.
"오... 이런... 미친..."
입을 떡 벌린 채로 현실을 부정하는 동국. 힘 없이 벤치에 앉은 동국의 눈치를 보며 지은과 아연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여, 여보..."
"..."
"미, 미안..."
결정적인 순간 병살타를 쳐버린 지은이 동국에게 우물쭈물 하며 다가왔다.
안 그래도 1회에 병살타를 치면서 초반 흐름을 망쳤었는데, 무사 만루에서 병살타를 치면서 분위기를 확 다운 시킨 것이다.
"흐윽... 미안해 여보..."
그녀의 사과에도 동국이 그저 허탈한 표정으로 대꾸가 없자, 지은이 울먹였다. 그녀로서는 동국의 저 복잡한 눈빛을 견딜 수 없었다.
"후우... 아냐, 여보, 그럴 수도 있지. 암, 그럼. 괜찮아."
지금 못 쳤지만 다음 타석에서 홈런을 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다음 타석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동국이 그렇게 착잡한 심정으로 훌쩍이는 지은을 달래고 있을 때 갑자기 함성 소리가 들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니 지아가 1루에서 2루쪽 관중석과 더그아웃을 향해 팔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었다.
"뭐, 뭐야?! 지아가 안타를 친거야?!"
"네에! 지아가 동점 적시타를 쳤어요!"
"으하하, 아직까지 안타가 없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동점 적시타를 치는구나!"
동국은 환하게 웃으며 홈을 밟고 돌아온 리사를 반겼다. 더그아웃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득점에 성공한 리사를 두드리며 기뻐하는 모습을 지은이 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후 지아는 기세를 몰아 도루까지 성공하며 다시 2사 2루의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나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다음 타자인 현아가 안타를 치는데 실패하면서 4회 초가 끝이 났다.
"흐으음... 현아 대신 수정이를 대타로 내보내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공수 교대를 하는 와중이었다. 감독임에도 존재감이 코치보다 적은 델루나가 동국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녀의 말에 동국이 목이 타는지 생수를 마셨다.
"크으... 물론 수정 코치가 타석에 나가면 안타를 칠 확률이 더 높긴 하지. 하지만 그러면 현아 기가 죽지 않겠어? 경기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닌데 믿고 맡겨야지."
"그거야 그렇지만..."
"현아는 공격보다는 수비에서 활약해도 충분해. 타석에서 안타 하나 더 치는 것보단 외야에서 장타를 막는게 더 가치있지."
동국의 말에 델루나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현아가 발이 빨라 수비 범위가 넓긴 하지만 아직 오구를 시작한지 1년이 갓 지났기에 포구나 다른 수비적인 부분은 미숙한 면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녀가 봤을 때 수정보다 수비적인 면이 약간 더 좋을 뿐이었다.
'장타를 막는다라...'
그렇기에 동국의 말에 100% 동의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굳이 동국과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델루나는 챙겨온 간식을 먹으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어어..?!"
선두 타자가 친 타구가 좌측으로 휘어져 날아갔다. 담장 바로 근처의 구석진 곳, 부채꼴 모양의 오구장의 모서리 쪽으로 타구가 향했다. 타자는 2루타, 아니 그 이상을 노리는 듯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고, 좌익수인 현아 역시 전력 질주 하였다.
'잡을 수 있다..! 아니, 잡고야 만다..!"
타구를 바라보며 빠르게 뛰는 현아. 자칫하면 관중석 쪽 펜스에 부딪힐 수도 있지만 그녀의 머릿속엔 그런 걱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타앗!
현아가 타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