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화 〉234회. 지역 리그
휴식주를 취한 벨벳 발키리는 3주차 때에 리그 최약체 팀 성남 매그파이와 2연전을 가졌다. 이 경기에서 발키리는 각각 5-0, 8-4의 점수로 승리하며 4연승을 달렸다.
3월 4주차. 발키리의 5연승을 저지할만한 팀과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바로 리그 2강 중 한 팀인 수원 사성 위치즈이다. 수원 사성 위치즈는 작년 지역 컵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만큼 강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팀이다.
"오빠, 선수들 실력 어때요?"
벨벳 구장으로 원정 온 위치즈 선수들을 염탐하고 오자 나연이 달라붙어 선수들의 정보를 요구했다.
나연은 그날 이후 공식적으로 동국의 연인이 되었다. 그 소식에 델루나나 재은 등 미리 계획을 알고 있었던 여자들은 축하를 해주었고, 다른 여자들도 나연이 예전부터 동국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고 축하해 주었다.
나연의 언니인 아연은 그날 나연의 옷차림을 보고 받았던 쎄한 예감이 결국 실현되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결국엔 축하를 해주었다.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선 오늘 선발 파이네는..."
동국이 염탐을 통해 얻은 정보를 이야기 해주자 나연은 서둘러 받아 적기 시작했다. 동국이 이야기 한 정보들과 기존의 정보들을 취합해, 그녀는 전력 분석 자료를 만들어 선수들에게 제공할 것이다.
이 과정이 상당히 빠르게 이루어져야 하기에 긴박하게 보일 지경이다. 다만 처음 만난 팀에게만 그러지, 다음부터는 이미 선수들의 상태 정보를 알기에 여유롭게 진행될 예정이다.
1회 초, 앤서니는 사성 위치즈의 막강한 상위 타선을 삼자 범퇴로 막아내었다. 수원 사성 위치즈와 우리 선발들의 상성은 상당히 좋은 편인데, 위치즈의 1,2,3번 타자들이 다 좌타이기 때문이다. 좌완인 앤서니와 스크류볼이 좋은 벨리나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제이미 선수가 친 공이 우익수 최지아 선수에게 잡히면서 1회 초가 마무리 됩니다. 아직 1회 초이긴 하지만 위치즈 타자들이 앤서니 투수의 공에 제대로 대처를 못 하는 느낌이네요.]
[1,2,3번 타자들이 모두 다 좌타이니 좌완 선발을 만나면 좀 약해지는 경향이 있지요. 특히 앤서니 선수는 실력이 뛰어난 좌완이니 더욱 공략을 못 하는 느낌이 있네요. 개인적으론 2번 강백아 선수와 4번 황재아 선수의 순서를 바꾸면 어떨까 해요. 그러면 좌우좌좌우 순서거든요. 좌좌좌우우 보단 나을 거 같아요.]
깔끔하게 이닝을 마친 앤서니가 마운드에서 내려가고 위치즈의 선발 투수 파이네가 마운드 위에 올랐다. 파이네는 B 등급의 선수로, 구위가 B-, 제구가 B+인 선수이다.
1번 타자로 나선 아연이 땅볼로 아웃 되는 걸 바라보고 있을 때, 나연이 다가와 말했다.
"오빠, 언니랑 지아랑 서로 타순을 바꿔 보는게 어때요?"
"으음? 그건 왜..? 아연이 등급이 더 높잖아?"
아연은 현재 B 등급 이고, 지아는 C+ 등급이다. 그러니 등급이 더 높은 타자를 상위 타순에 배치하는게 더 효율적이다.
"근데, 공격적인 부분을 살펴보면 아연 언니랑 지아랑 똑같이 C+ 등급이에요. 언니가 수비 부분이 더 높아서 전체 등급이 높은 거지, 공격은 같다는 거죠. 그럼 발이 빠른 지아가 톱 타자로 나서는게 더 좋지 않을까요? 거기에 우우우좌좌 보단 좌우우우좌... 흠, 별반 차이는 없군요..."
멋쩍어 하는 나연의 모습에 동국이 그녀의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말했다.
"니 말도 맞긴 하니, 나중에 한번 상의해 보자."
따악~
나연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큼지막한 타구음이 경기장에 가득 울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라운드를 보니, 리사가 친 타구가 저 멀리 외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어어, 넘어가나..?"
자연스레 동국을 비롯한 더그아웃에 있던 사람들이 더그아웃 난간에 상체를 내밀고서 타구를 바라보았다.
"아... 상단 맞고 떨어지네..."
"아쉽다,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리사의 타구는 아쉽게 넘어가지 못 했지만, 리사가 2루까지 가기에는 충분했다. 그녀는 지은의 외야 플라이 때 홈을 밟아 득점에 성공했다.
"굿! 아주 좋았어."
동국은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지은과 리사를 맞이했다. 동국의 칭찬에 리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지은은 동국을 껴안고서 칭찬을 바라는 눈빛으로 동국을 올려다 보았다.
"나 잘했지?"
"그럼, 잘 하고 말고."
"히히~"
지은이 동국의 품에서 환하게 웃는 것을 바라본 아연이 리사를 툭 쳤다.
"야, 너도 가서 칭찬 받지 그래."
리사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아연은 리사가 진짜로 동국에게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장난으로 해본 말이었다.
"흠... 그럴까?"
"엉?"
근데 리사는 잠깐 고민을 하더니 동국에게로 다가갔다.
"동국. 나도 칭찬해 주길 바란다."
"... 그럴까? 일로 와, 리사. 내가 안아줄게."
리사의 말에 잠시 당황한 동국이었지만, 이내 웃으며 리사를 껴안아 주었다. 그녀를 꽉 껴안아 주며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잘 했어, 리사. 역시 든든해."
"... 고맙다."
꽉 껴안아서 느껴지는 리사의 풍만한 몸과 수줍어 하는 그녀의 모습에 동국의 하물이 슬그머니 커져 그녀의 배를 툭툭 건드렸다.
배에서 느껴지는 하물의 느낌에 리사의 볼이 약간 빨개졌다.
"이, 이제 그만 떨어져..!"
리사의 표정이 뭔가 이상해 보이자, 지은이 바로 둘 사이를 갈라 놓았다. 그녀는 동국의 바지가 약간 볼록해져 있는게 보이자 울상을 지었다.
2회 초.
[쳤습니다! 1, 2루 간을 가르는 안탑니다. 선두 타자부터 출루에 성공하는 사성 위치즈 입니다.]
[서클 체인지업이었는데 살짝 밋밋했죠? 이걸 황재아 선수가 놓치지 않았습니다.]
주자가 나가게 되자, 지은은 병살을 노리기로 하였다. 마침 다음 타자는 위치즈에서 가장 타격 능력이 떨어지는 장선아 였다. 물론 가장 떨어진다고는 해도 위치즈 내에서였고, 실제로는 평균 이상인 C+ 등급의 포수이다.
'오호..? 커브를 노리네..?'
보통 타자들이 포심을 노리는 걸 생각해보면 장선아가 커브를 노리는 것은 조금 특이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는데, 직구를 노리다가 서클 체인지업이나 스플리터가 들어오면 자칫 잘못하다가 땅볼을 칠 수가 있다. 그러면 병살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직구와 많이 차이가 나는 커브를 노리는 것이다.
'그러면 직구 던져야지 뭐.'
슈욱~
"스트~라잌~!"
앤서니가 던진 138km의 직구에 장선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 장선아 선수, 한가운데 실투를 놓치네요. 상당히 아쉽겠는데요?]
[앤서니 선수의 실투가 별로 없는 만큼 저런 실투를 놓치면 안되거든요? 물론 앤서니 선수의 직구는 가운데로 들어와도 치기 힘듭니다. 그래도 장선아 선수 정도 되면 충분히 칠 수 있어요.]
해설들의 말대로 장선아는 지은의 미트를 바라보며 아쉬워 하였다. 이런 공은 충분히 장타로 연결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쓰읍...'
아쉬운 표정을 짓는 장선아를 지은이 다시 '관찰'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커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럼 커브를 한번 보여줄까~?"
지은의 사인을 받은 앤서니가 1루 주자를 확인하고서 공을 던졌다. 위로 살짝 떠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
장선아는 커브가 날아오자 반사적으로 배트를 휘두르려다가 가까스로 멈췄다. 앤서니의 커브가 존 아래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장선아 선수, 앤서니 선수의 유인구에 속지 않았습니다. 1볼 1스트라이크.]
[저런 공, 잘못 건드리면 바로 더블 플레이입니다. 장선아 선수는 조심해야 해요.]
'이제 여기서 다시 직구.'
뻥~!
"스트~라이크!"
[높은 코스의 직구에 장선아 선수 헛스윙 하고 맙니다. 1 앤 2.]
[직구의 구위가 좋은 투수들은 저렇게 하이 패스트볼과 커브의 조합이 상당히 위력적이죠.]
앤서니가 계속해서 직구를 가지고 스트라이크를 잡자 장선아는 커브를 노리는 것을 포기했다. 병살타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은 2 스트라이크 상황이니 스트라이크와 비슷한 공이면 무조건 치고 봐야 했다.
'이제 여기서 스플리터.'
틱~!
[크게 바운드 된 공! 투수 잡아서 2루에, 그리고 1루에~!! 아웃, 아웃입니다! 1-4-3 더블 플레이! 순식간에 2아웃이 됩니다.]
"좋았어!"
포수 글러브를 벗고서 상황을 지켜보던 지은은 그녀의 설계대로 더블 플레이가 나오자 글러브를 팡팡 두드리며 기뻐했다. 앤서니 역시 환하게 웃으며 지은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3회 초.
[우측에 떨어지는 안탑니다. 다시 한번 선두 타자가 출루하는 사성 위치즈.]
[이번엔 2회와는 달라요. 다음 타자가 바로 제이미 선숩니다. 발키리는 조심해야 됩니다.]
위치즈의 3번 타자 제이미는 A- 등급의 강타자이다. 공격이 A, 수비가 B+로 공격에 특화된 우익수 이다.
그녀의 특성은 '포심 타격 시 장타율 증가.' 대부분의 투수들이 포심을 주로 던진다는걸 생각했을 때 상당히 좋은 특성이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자신의 특성을 경험적으로 인식했는지 포심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니 제이미를 상대로는 절대 포심을 던지면 안되는 거지.'
지은이 앤서니에게 보낸 사인은 바깥쪽 스플리터. 2회와 마찬가지로 땅볼을 유도하는 볼 배합 이었다.
딱~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제대로 떨어졌을 때 이야기였다. 공격력 A급 선수 정도면 충분히 C+급 스플리터를 칠 수 있었다.
[초구부터 타격! 1루수 키를 넘어가는 안탑니다! 1루 주자, 2루에서 멈춥니다.]
[제이미 선수, 대단합니다. 앤서니 투수의 스플리터가 괜찮게 떨어졌는데, 감각적인 배트 컨트롤로 그 공을 정타로 만들었습니다.]
[앤서니 선수, 아쉬워 하는군요.]
[그럴만도 하죠. 이건 앤서니 선수가 못 던지게 아니라 제이미 선수가 잘 친거에요.]
무사 만루인 상황에서 다음 타자인 황재아는 큼지막한 외야 플라이를 날려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였다. 타구를 잡은 현아로서는 2루에 던져, 1루 주자가 2루로 못 가게 하는게 다였다.
[5번 타자, 장선아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직전 타석에서 병살타를 쳤었는데, 과연 이번엔 어떨지.]
장선아는 비장한 표정으로 타석에 섰다. 투수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방금 전처럼 병살타를 쳐,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후후, 비상한 표정을 지어봤자지... 이번에도 기똥차게 더블 플레이를 만들어 주마.'
타자의 표정을 힐끔 본 지은은 속으로 웃었다. 각오 만으로 안타를 칠 수 있으면 아마 모든 타자들이 5할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틱~
'그렇지~!'
앤서니의 서클 체인지업을 억지로 잡아당긴 장선아. 그녀의 타구가 2루수 쪽으로 향하자 지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설레발은 필패라고 하였던가.
[2루수 몸을 날렸지만 잡지 못했습니다! 1루 주자, 2루 돌아서! 아, 2루에서 멈추는군요. 장선아의 안타로 다시 만루가 됩니다.]
[병살타를 만들기 위해서 땅볼 타구를 유도한건 좋았는데, 코스가 너무 절묘했어요. 자칫 잘못하다가 1루 주자가 홈까지 들어올뻔 했거든요? 1루 주자가 주력이 느린 제이미 선수여서 망정이니, 아니었으면 분명 실점했을겁니다.]
'치잇...'
지은은 1루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장선아를 바라보고서 속으로 혀를 찼다.
1사 만루 상황에서 조연아의 땅볼 타구로 역전을 허용한 발키리. 앤서니는 그 이후 강백아를 뜬공 처리하며 길었던 3회 초를 마무리 지었다.
"확실히 위치즈 타선이 막강하긴 하네. 지금까지 무실점이었던 앤서니에게 2점이나 뽑아내고 말이야."
제이미가 홈을 밟으며 역전을 허용하는 걸 바라보며 동국이 중얼거렸다. 그에 옆에 있던 나연이 다른 관점을 말했다.
"오히려 앤서니라서 2실점으로 막은거 아닐까요? 지금 보면 안타를 4개나 허용했는데 2실점이잖아요. 점수 낸걸 보면 외야 플라이랑 내야 땅볼, 거기에 장타는 허용하지 않고 있으니깐요."
"흠... 그런가? 그럼 그런 논리로 앤서니를 위로해줘야 겠네..."
동국은 울상을 지으며 더그아웃으로 오는 앤서니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2대 1로 역전을 허용한 발키리. 3회 말 1사 상황에서 두 번째 안타가 터졌다.
[밀어친 타구가 2루수 옆을 꿰뚫습니다!]
[모처럼 발키리에게 안타가 나왔습니다. 역전을 허용한 발키리 입장에서는 이 기회를 살려서 동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발 빠른 지아가 1루에 있자 파이네는 계속해서 견제를 시도했다.
[세 번째 견제, 세잎입니다. 최지아 선수, 계속된 견제에도 굴하지 않고 리드 폭을 유지하는 군요.]
[지금 타자가 타격 능력이 떨어지는 주현아 선수이기에 분명 최지아 선수는 병살타를 예방하기 위해 도루를 시도할 겁니다. 위치즈 역시 이를 알고 있기에 계속해서 견제를 시도하는 거구요.]
지아의 발이라면 현아의 땅볼 타구 때 병살을 안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같은 땅볼 타구라도 1사 1루에서는 그냥 2사 2루지만, 1사 2루에서는 동점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려면 도루를 성공해야 하지만 말이다.
유니폼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지아는 파이네의 자세를 유심히 관찰하였다.
'하나, 둘... 지금..!'
파파팍~!!
빠른 속도로 2루를 향해 뛰어가는 지아. 그런 지아의 모습을 보고서 현아는 크게 헛스윙을 하였고, 장선아는 공을 잡아 2루로 송구하였다.
촤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