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0화 〉230회. (230/297)



〈 230화 〉230회.

1대 6으로 발키리가 크게 앞서는 상황. 분위기는 완전히 발키리 쪽으로 넘어왔다. 파이어우먼즈는 승리가 아닌 선발 투수 고효주가 5이닝, 아니 4이닝을 다 채울 수 있을 지를 걱정해야 했다.

그러나 3회 초, 분위기가 약간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 8구, 바깥쪽! 아, 빠졌군요. 볼넷, 볼넷입니다. 민지현 선수가 볼넷으로 출루하며 무사 1루가 됩니다.]


[민지현 선수가 유인구를 아주 잘 골라냈네요.  카운트 상황에서 참기 힘들었을텐데 말이죠.]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듯 민지현은 벨리나의 공을 잘 골라내고, 커트하며 버텼고, 결국 볼넷을 출루하였다.


그래도 다음 타자가 E+급인 김주아였기에 그렇게 위기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지은이 벨리나에게 보낸 초구 사인은 바로 높은 직구. 높은 직구 다음에 떨어지는 커브와 스크류볼을 던져 빠르게 승부를  생각이다.

슈욱~

110km 대의 직구가 높은 코스로 날아갔다.


딱~


[김주아 선수, 초구 타격!]

빗 맞은 타구가 2루수 쪽으로 날아갔다. 2루수인 아연이 자신 쪽으로 날아오는 타구를 보고서 점프를 했다.


'닿아라..!'


쭉 뻗은 손. 하지만 타구는 아슬아슬하게 글러브를 스쳐 지나갔다.


[2루수 키를 넘기는 안탑니다! 김주아 선수의 행운의 안타! 무사 만루가 됩니다.]


[빗 맞은 타구였는데, 운이 좋았네요.]


파이어우먼즈의 하위 타선에게 연속 출루를 허용하고, 이제 실력이 뛰어난 상위 타선으로 연결되자 침통한 분위기이던 원정 팬들은 추격하는 점수를 간절히 바랬고, 홈 팬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벨리나를 쳐다보았다.


무사 만루에서 B급 선수 손서아가 타석에 들어서자 벨리나는 표정을 굳혔다. 손서아는 그녀보다 월등히 실력이 뛰어난 타자이다. 여차하면 안타를 맞는 것이다.

지은은 벨리나에게 초구부터 스크류볼을 요구했다. 웬만하면 스크류볼을 결정구로 사용하겠지만, 지금은 초장부터 사용해야 했다.


"볼."

날카롭게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스크류볼. 그러나 살짝 빠졌는지 심판은 볼을 선언했다.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했는데, 볼이 되자 벨리나는 난감해졌다.

'지금 손서아에게 먹힐 만한 구종은 스크류볼 밖에 없어. 방금 전엔 바깥쪽으로 정했으니, 이번엔 몸쪽이다..!'


지은의 사인에 벨리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서 공을 뿌렸다.

몸쪽으로 날아오는 듯 하다가 가운데로 향하는 스크류볼. 원래는 몸쪽으로 들어와야 했는데, 사구를 의식하다 보니 가운데로 몰리고  것이다.


아무리 스크류볼이 좌타에게 강하다고 해도 이런 가운데로 몰린 공은 손서아가 쉽게 칠 수 있었다.

딱~


[센터 쪽에 떨어지는 안타! 우익수 빠르게 잡아서 홈으로 던집니다만, 1루 주자는 2루에서 멈췄습니다. 하지만 2루 주자가 홈을 밟으면서  점 만회한 화성 파이어우먼즈! 점수 2대 6!]

[무사 만루인 상황에서 이제 이대연 선수 타석이에요. 이 위기를 발키리는 어떻게 극복할지... 일단 투수 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하네요.]


마운드를 방문한 투수 코치, 비엔나가 벨리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벨리나, 이대연 상대할 수 있겠어?"


그녀의 물음에 벨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A급인 타자를 상대로 D+급인 자신이 아웃을 시킬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아웃 시킬 확률 보다 오히려 장타를 맞을 확률이 더 커보였다. 그러나.


"... 한번 해보겠어요, 코치님!  믿어주세요."

다부진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벨리나의 표정에 비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점수 차가 4점이나 나고, 설사 홈런을 맞는다고 해도 5-6으로 발키리가 앞선다.


"그래, 점수 내줘도 상관 없으니까 아웃만 시켜, 그거면 돼."

비엔나는 벨리나의 엉덩이를 토닥이고선 돌아갔다.

"타자는 보지 말고 오직 내 미트만 보고 던져. 알았지?"

"네, 언니."


지은까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벨리나는 크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쳤다.

'그래..! 아무리 이대연이 나보다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공을   확률이 더 높아..! 그러니 긴장하지 말자.'

지은이 요구하는 공은 바깥쪽 스크류볼. 이대연을 상대하려면 벨리나가 가장 자신 있는 공을 던져야 했다.

슈욱~

힘 있게 날아간 공이 바깥쪽 먼 곳에서 휘어져 들어왔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완벽하게 제구된 공이 바깥쪽 존을 통과하였다.

"스트라잌~!"


[초구는 바깥쪽 백도어 스크류볼 입니다. 이대연 선수가 지켜만 봤네요.]


[지금 공은 거의 완벽하게 제구가 된 공이라서 이대연 선수라도 함부로 칠 수가 없죠. 찬스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해요. 까딱 잘못하다간 병살타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2구 맞겠습니다.]


지은이 요구한 공은 바깥쪽으로 확실히 빠지는 슬라이더. 벨리나의 슬라이더는 존 안으로 들어올 경우 장타로 연결될 확률이 높으므로 보여주기 식으로 원하는 것이다.

밋밋한 슬라이더가 바깥쪽으로 향하자 이대연은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분명 볼이지만 치려고 마음 먹으면  수 있는 공이었다.


'아니야, 조급해 하지 말자. 여차하면 볼넷으로 나가도 돼.'


[2구는 바깥쪽 볼입니다.]


[슬라이더 였는데, 보여주기 위해서 던진 것 같네요. 근데 과연 이대연 선수에게 효과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벨리나가 던진 3구는 몸쪽 스크류볼이었다. 가운데에서 몸쪽으로 떨어지는 공에 이대연이 몸을 뒤로 뺐지만, 심판의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좋아..! 2 스트라이크를 잡았어..!'


혹시나 제구가 안 돼 볼이 되거나 몸에 맞힐까 봐 조마조마 했던 벨리나는 원하는 대로 공이 들어가자 속으로 기뻐하였다.


'흠... 계속 스크류볼로 스트라이크를 잡네..?'


벨리나의 투구 내용을 생각하던 이대연은 그녀가 스크류볼로만 스트라이크를 잡는 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그녀는 오직 스크류볼만을 노리기로 마음 먹었다. 벨리나의 구종 중 스크류볼이 가장 치기 어렵지만, 그건 상대적인 것이고 이대연에게는 충분히 칠 수 있는 구종이었다.


[바깥쪽 떨어지는 커브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투  투의 카운트.]


[스크류볼 다음에 커브의 조합이 상당히 좋았는데, 맞지 않으려고 하는 건지 존이랑 조금 차이가 있었네요. 유인구로 던지려면 최대한 스트라이크랑 비슷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2 볼 2 스트라이크가 되자 지은은 여기서 승부를 보기로 결심하였다. 풀 카운트까지 간다면 오히려 벨리나에게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벨리나에게 바깥쪽 스크류볼 사인을 보내려던 지은은 이대연의 타격 자세를 보고서 순간 등골이 오싹해 지는걸 느꼈다. 이대연이 노리고 있는 구종이 바로 스크류볼 이었기 때문이다.

'와, 씨..! 큰일날뻔 했네... 이대연이 스크류볼을 노리고 있었다니...'

만약 습관적으로 타자의 타격 자세를 '관찰'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이대연에게  것을 얻어맞았을 것이다.


이제 이대연이 스크류볼을 노린다는걸 알았으니, 스크류볼을 던지면 안됐다. 하지만 그럼 다른 구종을 던져야 하는데, 벨리나가 던질만한 마땅한 구종이 없었다.


'아, 씨... 여기서 직구를 던지게 해야 하나..? 근데 벨리나 직구로 이대연을 아웃 시키기엔 너무 무린데... 그럼 스크류볼을 유인구로..?'

결국 스크류볼을 던지되, 유인구로 하기로 한 지은은 벨리나에게 사인을 보냈다. 스크류볼을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로 던지란 사인에 벨리나는 어리둥절 하였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슈욱~


바깥쪽으로 가던 공이 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뛰어난 동체 시력으로 스크류볼임을 확신한 이대연은 힘차게 방망이를 돌렸다.


'아니..! 조금 낮다..!'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공이 볼이자 그녀는 방망이를 슬쩍 움직여 스윙을 수정하였다.

따악~!


[걷어 올린 타구!! 좌익수 뒤로, 좌익수 뒤로~!!]

높게 떠오른 타구에 좌익수인 수정이 열심히 쫓아갔다. 그러나 발이 빠른 현아라면 모를까 수비 범위가 좁은 수정이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좌익수를 완전히 넘어가는 타굽니다! 2루 주자 이미 홈을 밟았고, 1루 주자마저 홈으로!! 들어옵니다! 싹쓸이 2루타! 이대연!!]

[역시 이대연 선숩니다. 힘이 정말 대단해요. 떨어지는 타구를 그대로 걷어 올렸는데 정말 멀리 날아가네요.]


[이대연 선수의 2루타로 점수 4대 6이 되었습니다. 파이어우먼즈가 2점까지 따라붙었어요.]


벨리나는 그녀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다음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밑까지 추격을 허용하였으나, 이후 병살타와 삼진으로 겨우겨우 길었던 이닝을 종료하였다.


"벨리나, 수고했어."


"네에..."


동국의 격려에 힘 없이 대답을 한 벨리나가 벤치에 앉아 추욱 늘어졌다. 다행히 병살을 이끌어 내서 이닝을 종료시켰지, 까딱 잘못했으면 역전까지 허용할  했다.


"언니, 그렇게 마음 쓰지 마. 언니가 100 실점을 해도 우리가 101점을 득점하면 이기게 되잖아."


지아의 위로에 벨리나가 포근하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은 정말 부처의 미소 같았다.


"지아야, 언니 위로해 주는거야?"

"어, 언니. 그러니까 기운 내."

"지아야, 지금 나보고 100 실점이나 하라는 거야?"

"어..?"

"안 그래도 지금 5실점이나 해서 기분 안 좋은데... 지아야, 실망이 크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벨리나의 반응에 지아가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어쩔 줄 몰라하며 뻘뻘 대는 지아의 모습에 벨리나가 다시 웃었다.


"하하, 농담이야. 지아야. 언닌 괜찮아. 신경  줘서 고마워."

벨리나는 지아의 어깨를 톡톡 쳐 주고는 동국을 따라 특훈실로 향했다. 지아는 그런 벨리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농담이겠지..?"

3회 말, 선두 타자로 나선 지아는 방금  있었던 벨리나의 농담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었다.

'농담이든 아니든, 여기서 내가 안타를 치고 나가면 괜찮겠지..?'

평소 조용하던 사람이 화가 나면 더욱 무섭듯이 벨리나가 농담이라고는 했지만, 지아는 마음에 걸렸다. 특히나 털리고 난 다음이었기에 순간 욱 했다가 농담이라며 얼버무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쨌거나 여기서 치고 나간다..!'

파이어우먼즈는 지아와 수정이 좌타자라서 그런지 아직까지 투수를 교체하지 않았다. 3회 초부터 윤서빈이 몸을 풀고 있었던걸 생각하면 고효주는 수정까지만 상대할 가능성이 높았다.


딱~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타구! 안탑니다!]


[좌타자라고 투수를 안 바꾼 것 같은데 지금 고효주 선수가 전체적으로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거든요? 과연 좋은 선택일지는 두고 봐야 겠습니다.]

1루로 출루한 지아는 여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파이어우먼즈의 포수는 고작 E+ 등급에 불과했다. 자신의 발이라면 충분히 도루를 성공할  있었다.


힘든 기색이 역력한 투수의 표정을 살펴보던 지아는 투수가 공을 던지려 하자 재빨리 스타트를 끊었다.


[1루 주자 뛰었습니다!!]


고효주에게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제구가  되서 바깥쪽으로 많이 빠지는 직구를 던졌다. 공을 포구한 포수, 김주아는 바로 2루로 송구를 하였다.


포수가 공을 던지는 것을 보며 지아는 부드럽게 다리를 뻗었다.

촤아악~!

"세잎!"


지아의 발이 먼저 베이스에 닿아 도루에 성공하자  팬들은 박수를 보냈고, 반대로 원정 팬들은 야유를 보냈다.

"살살 해요, 살살."


유니폼에 묻은 흙을 털고 있는 지아에게 2루수인 한다희가 말을 걸었다. 그녀의 말에 지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벨리나 언니 맘이 안 좋은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해야죠."

지아의 대답에 한다희는 마운드 위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는 고효주와 그런 그녀를 교체해 주지 않는 벤치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초봄이지만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고효주의 표정은 완전히 새하얘 진 상황이었다. 그런 그녀를 좌타자란 이유로 계속 세우는 벤치의 판단을 한다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

'후우... 내가 지금 할  있는건 호수비 뿐이다...'

한다희는 눈을 빛내며 어느 타구라도 잡을 수 있게 몸을 긴장시켰다.

딱~

수정이 빗 맞은 땅볼 타구를 만들어 냈다. 딱 소리가 나자마자 지아는 홈으로 뛰었고, 긴장하고 있던 한다희는 재빨리 공을 잡았다.

'홈..? 젠장, 이미 늦었군...'

이미 홈에 거의 다 도착해 슬라이딩을 하고 있는 지아의 모습에 혀를 찬 그녀는 1루로 송구해 타자 주자만 잡았다.


[김수정 선수의 타점으로 점수 5대 7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파이어우먼즈의 투수 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합니다.]

[지금에 와서야 투수를 교체하는게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나중에 경기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추가로 1실점을 한걸 보면 약간의 아쉬움은 남네요.]

한다희는 축 처진 어깨로 더그아웃으로 가는 고효주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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