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227회.
[무사 1루 상황에서 타석에 리사 선수가 들어섭니다.]
리사는 홈 팬들의 열렬한 환호성을 들으며 자신감 있는 발걸음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후후, 제구 안되는 년이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지...'
아마 윤서빈이 제구만 어느 정도 된다면 분명 전국 리그에서도 통할만한 선수로 발전할 것이다. 만약 동국의 특훈이라면 엄청난 효과가 있겠지. 그러나 지금은 평균보다 약간 더 나은 C+급 선수이고 그나마도 오늘은 제구가 안 되는 날이다.
파이어우먼즈 배터리도 리사에게 한 방을 얻어 맞을걸 걱정하는지 초구부터 바깥쪽으로 많이 빠지는 볼을 던졌다. 아마 보더라인 쪽으로 던진다고 던진 것 같은데 어림도 없었다.
두 번째 공은 낮게 원바운드 되는 포심. 변화구도 아니고 포심을 원바운드로 던지는 바람에 공이 옆으로 튕겼다.
[어어! 공 옆으로 튕겼어요! 그 사이 1루 주자 여유 있게 2루에 안착합니다!]
[아, 여기서 폭투가 나오고 마네요. 이렇게 되면 고의 사구로 내보내겠죠?]
[네, 파이어우먼즈 벤치에서 고의 사구 지시가 떨어지네요. 리사 선수가 고의 사구로 1루에 출루하면서 이제 무사 만루가 됩니다.]
고의 사구가 되자 리사는 김이 샜다는 듯 털레털레 1루로 걸어갔다. 그리고 타석엔 지은이 들어섰다.
[무사 만루. 윤서빈 선수가 1회부터 고전하는 군요. 반대로 발키리는 1회부터 대량 득점을 할 수 있는 찬스가 만들어 졌습니다.]
지금 윤서빈은 한가운데 아니면 존을 많이 벗어나는 볼 밖에 던지질 못한다. 지은은 그렇기에 초구는 한번 지켜보기로 하였다.
'한가운데로 오면 치고 아니면 말아야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윤서빈이 초구를 던졌다.
"스트~라잌~!"
윤서빈이 던진 공은 놀랍게도 낮게 제구가 잘 되었다. 공은 던진 그녀조차 놀라 눈을 크게 뜰 정도였다.
'쓰읍... 재수가 없으려니...'
이런 공은 쳐봤자 좋은 타구가 나오기 어렵다. 지은은 속으로 욕을 하며 배팅 박스를 발로 스윽 쓸었다.
다시 지은이 타격 자세를 잡자 한결 자신감이 차오른 윤서빈이 공을 뿌렸다. 한가운데가 아니자 지은은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고, 곧이어 심판이 콜을 했다.
"스트라잌 투~!"
"아이씨..."
이번엔 정 반대로 높은 코스의 스트라이크였다. 포수의 글러브를 보니 아주 존에 꽉 차게 들어온 공이다.
갑자기 윤서빈의 제구가 확 좋아지자 지은은 짜증이 났다. 무슨 위기 상황이 되자 각성한 주인공도 아니고, 갑자기 제구가 좋아지긴 왜 좋아진단 말인가.
특히나 윤서빈의 저 기고만장한 표정을 보니 더 그랬다.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지금은 자신감이 완전히 차올랐는지 표정이 아주 가관이었다.
'씹..! 그래, 니가 암만 제구가 잘 되도 난 칠 수 있다, 이것아..!'
여기서 변화구로 한 개 뺄 수도 있겠지만, 저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니 그냥 포심을 던질 것 같았다. 지은은 포심에 타이밍을 맞추고 타격을 준비했다.
[이제야 몸이 풀린걸까요? 1구, 2구 모두 제구가 완벽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파이어우먼즈 입장에선 희망이 생기죠. 제구 되는 윤서빈 선수의 포심은 전국 리그 급 이거든요. 이럴 때는 그냥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포심만 주구장창 던지기만 하면 됩니다.]
해설의 말대로 파이어우먼즈의 포수인 김주아는 윤서빈에게 낮은 코스의 포심을 요구했고, 윤서빈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공을 던졌다.
슈우욱~!
142km의 빠른 강속구가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날아갔다. 그 공은 정말 정확하게 꽂혔다. 던진 윤서빈은 물론이고, 타자인 지은까지 놀랄 정도였다.
'정확하게 한가운데..!'
어쩜 이렇게 한가운데인지 모르겠다고 지은은 생각하며 배트를 힘차게 휘둘렀다.
따악~!
[높이~! 뜬 공~!! 그대로 담장!! 넘어갑니다!!! 신지은 선수의 만루포!!! 발키리의 지역 리그 첫 홈런이 만루포로 기록됩니다!!]
[정말 맞자마자 여기 있는 모두가 홈런임을 직감할 정도로 큰 타구였습니다.]
치자마자 홈런임을 알아챈 지은은 환호성을 지르며 1루 베이스를 향해 뛰어갔다.
"오우~! 예에~!"
"발키리의 신지은~! 지은! 지은! 발키리의 신지은~! 지은! 지은!"
관중석에선 흥겨운 지은의 응원곡이 계속 흘러 나왔고, 치어리더들의 율동에 맞추어 관객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언니, 초반부터 엄청 치고 나가는데?"
"정말 대단한 홈런이었어, 언니."
홈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연과 리사의 말에 지은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호호, 이 정도면 우리 여보야가 날 칭찬해 주겠지?"
"그럼, 언니~ 아마 언니를 얼싸안고 마구 엉덩이를 주물러 줄거야."
"으히히..!"
아연의 말에 지은이 기대된다는 듯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더그아웃을 향해 뛰어갔다. 더그아웃 입구에는 지은의 홈런 소식을 들은 동국이 마중 나와 있었다.
지은이 동국을 향해 달려가 힘껏 껴안았다. 그 바람에 동국이 살짝 휘청했다. 다른 사람이 이랬다면 운동 에너지 때문에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지은에게는 풍만한 쿠션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보야~! 나 잘했어?"
"아, 그럼! 엄청 잘했지!"
"그럼... 나 엉덩이 마구 주물러 줘..!"
지은이 동국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자 중간에 뭔가를 하고 있다가 나온 바람에 단단해져 있던 막대가 지은의 배를 콕 찔렀다.
자신의 배를 찌르는 무언가를 느낀 지은이 씨익 웃었다. 벌써부터 아래가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가자, 여보. 내가 잔뜩 칭찬해줄게."
바로 지은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동국. 지은은 그런 동국의 팔에 팔짱을 끼고선 가슴을 부비적 대며 동국의 흥분을 더욱 이끌었다.
그렇게 동국과 지은이 사라져 버리자 지은의 홈런을 축하해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뻘쭘해졌다. 보통 홈런을 치거나 하면 더그아웃에 들어와서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한다. 그런데 맨 앞에 있던 동국과 껴안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결국 홈런 축하 세레머니지만 정작 홈런을 친 당사자가 없는 가운데 세리머니가 이루어졌다. 축하를 하는 코치들이나 축하를 받는 리사, 아연 모두 뻘줌하였다.
[흠... 지은 선수가 동국 구단주와 팔짱을 끼고서 어디론가 급히 가는군요..? 어딜 그리 급히 가는 걸까요..?]
중계 카메라가 발키리의 더그아웃을 촬영할 때 동국과 지은이 복도로 빠져나가는 장면이 잡혔다. 그에 캐스터가 궁금해 하자, 해설 위원이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글세요... 뭐, 여러 이야기가 나오기는 합니다만 가장 정확한 건 당사자들만이 알겠죠... 참고로 동국 구단주와 신지은 선수는 서로 부부 사입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자, 신지은 선수의 만루포로 발키리가 0대 3으로 앞서고 있는 가운데, 아직 1회, 그것도 무사라는게 파이어우먼즈 입장에서는 암담할 것 같군요. 다음 타자는 최지아 선숩니다.]
황급히 주제를 바꾸는 캐스터. 하지만 사람들이 궁금증을 가지기엔 충분했다. 그 전엔 아무 생각 없이 보거나 아니면 시청자들이 적어서 별로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면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궁금증을 가지는 것이다. 특히나 해설자가 '서로 부부사이'라고 한 말이 너무 의미심장해 더 궁금증을 느꼈다.
지은의 홈런 이후 지아가 안타를 치고 나가 도루까지 성공하였다. 그 뒤 현아의 땅볼 타구 때 홈을 밟으며 점수는 0-4가 되었다.
4회 말.
[다시금 찾아온 무사 만루의 상황. 타석에는 이번에도 신지은 선숩니다.]
[3회 말에도 무사 만루의 상황이 있었고, 그 때도 신지은 선수였죠. 전 타석에선 외야 희생 플라이를 쳐서 1점 더 달아난 발키리였는데, 과연 이번엔 대량 득점에 성공할지 궁금합니다.]
아연의 안타와 리사의 볼넷으로 만들어진 상황. 마운드에 서 있는 윤서빈은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지 땀을 흘리며 긴장하고 있었다.
[윤서빈 선수의 체력이 많이 떨어져 보이는군요. 파이어우먼즈 벤치에서 결단을 내려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다음 경기를 생각하면 윤서빈 선수가 최대한 이닝을 끝내줬으면 하겠지만, 오히려 팀의 사기만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개막전부터 대패를 하게 된다면 초반 분위기가 말이 아니게 되거든요.]
안 그래도 제구가 랜덤인 상황에서 체력까지 떨어지니 더욱 제구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한가운데로 던졌다간 1회 때 같이 홈런을 맞을 위험이 있었다. 결국 리사와 마찬가지로 보더라인을 목표로 투구를 하였고, 그 결과는 밀어내기 볼넷이었다.
[아, 결국 볼넷, 밀어내기 볼넷이 나오는군요. 점수 0대 6이 됩니다.]
[이쯤되면 투수를 바꿔야 되지 않나 싶네요. 아니면 최지아 선수나 주현아 선수까지 처리하게 할 생각인 걸까요..?]
[최지아 선수는 오늘 경기 3타수 1안타를 기록했고, 주현아 선수는 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고 있네요. 그런데 주현아 선수는 몰라도 최지아 선수를 막기엔 무리지 않나 싶습니다.]
해설의 말대로 파이어우먼즈 벤치는 다음 경기를 생각해서 윤서빈이 최대한 이닝을 처리해줬으면 하고 있었다. 발키리의 상위 타선은 어쩔 수 없지만, 하위 타선은 해볼만 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 판단은 너무 안일한 것이었다.
[쳤습니다! 2루수 키 넘기는 타구! 안탑니다!! 주자들 모두 한 베이스 씩 더 진출을 합니다. 점수 0대 7! 크게 앞서나가는 벨벳 발키립니다.]
[아, 너무 한가운데였어요. 거기에 경기 초반과는 다르게 볼에 힘이 많이 떨어진 상태거든요? 이러면 최지아 선수가 충분히 칠 수 있습니다.]
경기가 너무 일방적으로 흘러가자 잔칫집 분위기던 홈 팬들도 함성을 자제하기 시작했고, 2루 쪽 관중석은 점차 빈자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2루수 잡아서 1루에 던집니다. 타자 주자만 아웃 시키면서 점수 0대 8이 됩니다.]
현아의 땅볼 타구 때 2루 주자인 지은이 홈을 밟으며 점수가 0-8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아연의 차례가 되자 드디어 파이어우먼즈의 투수 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했다.
2루에 있던 지아는 윤서빈이 괴로운 표정으로 원정팀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것을 안쓰럽게 보았다. 아무리 다음 경기에 지장이 없게 하기 위해서 라지만 8실점이나 할 만큼 계속 놔두는 건 너무 했다.
[드디어 투수 교체를 하는군요. 윤서빈 선수에게 참 가혹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
[파이어우먼즈의 점수가 어느 정도 생겼으면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투수 교체를 빠르게 가져갔을 텐데, 공격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3회 초와 4회 초에 선두 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갔지만, 그 이후로는 모조리 다 범타였거든요? 특히 3회 초에 이대연 선수가 2루타를 치면서 무사 2루의 찬스가 생겼지만, 내야 뜬공, 내야 땅볼, 삼진으로 득점에 실패한게 너무 컸어요.]
[그만큼 앤서니 선수가 강력하다는 거겠죠.]
[반대로 파이어우먼즈의 상위 타자들과 하위 타자들의 수준이 너무 차이가 난다는 거죠. 손서아 선수와 이대연 선수를 제외하면 그 어떤 타자들도 타구를 외야로 보내질 못하고 있어요.]
윤서빈에 이어 바뀐 투수로 좌투수인 고효주 선수가 마운드에 섰다. 고효주는 윤서빈의 하위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한 선수로 그녀 역시 포심의 구위는 좋지만 제구가 안되는 상황이다.
[장아연 선수, 초구부터 타격했습니다. 높이 뜬공! 좌익수 잡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2루 주자, 태그업! 여유 있게 홈에 도착합니다. 점수 0대 9. 윤서빈 선수의 자책점이 9점이 되네요.]
[2루에 있던 주자는 어쩔 수 없다고 치고, 이제 리사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 아웃 카운트에요.]
[오늘 경기 1타수 무안타인 리사 선수. 그러나 볼넷이 3개에 2득점을 기록했습니다.]
리사 역시 지아처럼 윤서빈이 안쓰러웠다. 개막전부터 자책점이 9점이나 된다는게 얼마나 괴로울지 투수가 아니어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거기에 지금은 바뀐 투수였으니 지금 점수를 내도 고효주의 자책점이었다.
따악~!!
고효주는 윤서빈의 하위 버전. 그런 선수가 리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갔네요, 홈런입니다. 리사 선수의 솔로 홈런이 터졌습니다. 점수 0대 10.]
[리사 선수에게 한가운데 몰린 공은 너무 안일한거죠. 외야수들이 미동조차 하지 않고 타구를 바라만 봤습니다.]
홈런을 쳤음에도 담담히 베이스를 도는 리사. 그런 가운데 이제 2루쪽 관중석은 거의 텅 비었다.
"어휴... 야, 살살해. 이제 그만 경기 끝내자."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리사에게 대기 타석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은이 말했다. 특훈실에서도 사랑을 나누긴 했지만, 그녀는 집에 가서 본격적으로 동국에게 상을 받고 싶었다.
"언니, 프로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지."
"그래, 그래. 알았어~"
리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지은이 손사래를 치며 대충 대답을 하고서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초구를 바로 타격했다.
[높이 뜬공~! 좌익수 뒤로, 좌익수 뒤로. 워닝 트랙에서 잡아냅니다. 조금만 더 뻗었으면 홈런이었는데 말이죠.]
[그러게요, 신지은 선수 입장에선 아쉽겠네요.]
지은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되돌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