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220회. 스프링 캠프
선수들이 훈련을 하기 전, 몸을 풀기 위해 경기장을 한 바퀴 돌고 있다. 그리고 경기장 한쪽에서는 코치들이 서로 떠들고 있었다.
며칠 계속 같이 행동하다 보니 다들 친해진 코치들 이었다. 물론 따로 행동하는 델루나와는 아직 어색하지만 말이다.
"수정 씨. 어제, 어떻게 됐어..? 구단주 님이랑... 했어..?"
투수 코치인 비엔나가 수정에게 은근하게 물었다. 수비 코치인 에일리 역시 궁금한지 아닌 척 하면서도 귀를 세웠다.
비엔나의 물음에 수정을 황홀했던 어제의 경험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압도적인 쾌감. 머릿속이 새하얘 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경험이었다.
이런 쾌감을 경험해 버렸으니, 앞으로 애인들과 섹스를 할 때 쾌감을 못 느끼는게 아닌지 걱정이 들 정도였다.
"정말... 대단했어요. 제가 지금까지 많은 남자들은 만나 왔고, 현재 애인도 여러명 이지만... 구단주 님은 진짜 최고였어요. 제가 절정을 몇 번이나 느꼈는지..."
수정이 얼굴을 붉히며 소감을 말하자, 비엔나와 에일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 했다.
평상시 그녀들이 본 수정은 상당히 개방적이었고, 많은 경험이 있어 보였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대단하다고 느낄 정도라니...
"진짜..? 그렇게 좋았단 말이야..?"
"네, 거기에 정력은 얼마나 좋은지... 진짜 쉬지 않고 하더라구요. 듣자 하니 하루 종일 할 수도 있다네요."
"어머어머~ 정말 대단하다..!"
하루 종일 할 수 있다는 말에 비엔나가 입을 막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남자들은 다 한두번이 끝이었는데, 하루 종일 할 수 있다니... 역시 여러 아내랑 사는 남자는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었다.
"코치님들도 한번 경험해 보세요. 실력이나 특성이 상승하는 건 둘째 치고 쾌감 하나만으로도 구단주랑 해볼 가치가 있어요."
"그래..? 나중에 한번 접근해 봐야 겠다~"
비엔나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에일리 역시 말은 안 하지만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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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팀들과의 연습 경기를 한 발키리. 이번엔 다른 지역 리그 팀들과의 연습 경기 일정이 잡혔다.
첫 번째 상대는 바로 충청 리그의 강릉 드라고니안. 충청 리그는 충청도와 대전, 세종과 강원도 지역 리그이다. 그리고 강릉 드라고니안은 리그에서 하위권 정도 되는 실력을 지녔다.
원래 강릉 드라고니안은 리사의 전 소속 팀이었다. 그러나 코치진과의 갈등, 그리고 은퇴를 고려할만한 수준의 부상을 입자, 드라고니안은 리사를 바로 방출시켰다.
동국은 부상을 입은 리사를 데리고 와서 특성을 이용해 치료해 주었고, 지금은 팀의 중심 타자로서 맹 활약을 하고 있다.
리사 영입 후 펄펄 날아다닌 발키리와는 다르게, 중심 타자이자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던 리사를 방출한 드라고니안은 리그 성적이 급격히 하락하였다.
리사와 넷 난쟁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리사가 팀 전력에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컸다. 그런 리사가 빠졌으니 성적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드라고니안의 코치가 리사에게 금지 약물을 몰래 먹이려 하고, 일부러 사구를 유도했다는 것이 밝혀져 많은 팬들이 등을 돌렸다.
이래저래 대형 악재가 터진 드라고니안은 작년 간신히 리그 강등을 면하였다.
다음 연습 경기 상대가 강릉 드라고니안이라는 소식에 리사는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였다.
"리사, 드라고니안이랑 한다는 소식에 기합이 팍 들어간거야?"
타격 훈련을 하고 있는 리사 옆으로 아연이 다가왔다. 매섭게 돌린 스윙에 오구 공이 저 멀리 외야로 뻗어갔다. 리사의 타구를 눈으로 쫓던 아연. 그런 아연을 힐끔 쳐다본 리사가 입을 열었다.
"그래, 리그가 달라서 붙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연습 경기로 붙게 된다고 하니 뭔가 느낌이 다르군."
다시 날아오는 배팅볼. 리사의 배트가 힘차게 휘둘러졌다. 따악 소리와 함께 빠르게 날아가는 타구.
리사는 경기 중에 저런 타구를 여러번 볼 수 있게 묵묵히 훈련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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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드라고니안 선수들이 발키리 경기장에 들어섰다. 리사는 몇 년 동안 함께 뛰었던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드라고니안 선수들도 리사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힐끔힐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리사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에서 많은 감정들을 느꼈다. 질시, 질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 이었다.
특히나 병문안을 온다는 핑계로 자신을 조롱하고 갔던 선배와 후배. 김수영과 이별아는 리사를 잔뜩 째려보며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고 있었다.
"자, 자. 오늘 경기는 리사와 안 좋은 인연이 있는 강릉 드라고니안이다. 잔뜩 두들겨 주자고."
"네엣~!"
동국은 선수들, 하나 하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오늘 선발 투수인 벨리나는 물론이고 다른 선수들도 진지한 시선으로 동국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 중에는 동국과 눈을 마주치고는 얼굴을 붉히는 수정도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드라고니안의 1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녀는 리사가 부상을 입었을 때 병문안을 핑계로 가서는 잔뜩 비꼬는 말만 하고 온 후배이다.
그녀의 이름은 이별아. C급 선수로 수비 포지션은 우익수. 우타 선수이다. 이별아는 리사가 있을 적에 항상 열심히 안 한다고 잔소리를 들었다.
리사가 보기에 이별아는 항상 경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꽤나 괜찮은 주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웃 될 것 같으면 설렁설렁 뛰어서 세잎이 될 것 같아도 아웃이 되곤 했다.
거기에 훈련도 대충 하고 항상 놀기 바쁜 그녀는 리사와 상극이었다. 재능이 있으면서도 대충 하는 그녀를 리사는 좋게 보지 않았다.
이별아는 타격 자세를 잡으며 힐끔 1루 베이스 근처에서 서 있는 리사를 바라보았다.
'칫..! 아주 은퇴를 했어야 했는데..! 어째서 부상이 다 나아서는...'
리사는 항상 자신에게 똑바로 하라고, 열심히 하라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아웃 될게 뻔히 보이는데도 그녀는 항상 최선을 다해서 뛰라고 하였다. 이별아가 보기에 그건 자신이 타점을 올리기 위해 하는 소리였다.
홈까지 뛰지 않고 2루에서 멈추면 리사는 항상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그게 이별아는 너무 싫었다.
거기에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 싶은 이별아에게는 리사는 너무 고지식한 꼰대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훈련밖에 없는 듯 했다.
리사를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이별아에게 포수인 지은이 말을 걸었다.
"야, 너가 우리 리사 괴롭혔다며? 나이도 어린게..."
그 말에 이별아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누가 누굴 괴롭혀..?! 항상 나보고 똑바로 하라고 꼰대질 한게 누군데..!'
그녀가 생각하기에 오히려 자신이 괴롭힘을 당했으면 당했었다.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같은 팀원이라고 리사를 옹호하는 것 같아 상당히 불쾌했다.
뭐라 대꾸하려던 이별아는 투수가 공을 던지자 황급히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딴 생각을 하던 그녀가 칠만큼 벨리나의 공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거기에 벨리나가 빠른 공을 던져서 더욱 맞추기 어려웠다.
헛스윙을 하고 만 이별아는 짜증이 치솟았다. 이 영악한 나이든 포수는 비겁하게도 심리전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훈련을 열심히 할 생각은 안하고 선배 무시나 하고 말이야. 어?"
"아니, 뭔..!"
이번에야 말로 한소리 하려던 이별아. 그러나 벨리나가 와인드 업에 들어가자 입을 다물고는 집중을 하였다.
틱~
"파울~!"
'아우~! 씨~!!'
존에 꽉 차게 들어오는 밋밋한 슬라이더. 그러나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 했는지 빗 맞아 파울이 되고 말았다. 평상시 같았으면 충분히 안타로 만들 수 있는 공이었다.
"야, 지금이라도 리사에게 미안하다면 4타수 4삼진으로 깔끔하게 끝내자. 안 그러면 넌 사람 새끼도 아니다."
지은의 입은 쉬지도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별아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였다.
'참자, 참아...'
이별아는 지은의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리기로 마음 먹었다. 벌써 노 볼 2 스트라이크였다. 이대로 허무하게 아웃 당하긴 싫었다.
'어떻게, 한 개를 뺄까..? 노 볼 2 스트라이크니깐 유인구를 던질 확률이 높겠지..?'
벨리나가 던진 공이 바깥쪽 높은 코스로 날아왔다. 그에 이별아는 순간적으로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로 판단했다. 그러나.
"헛스윙~! 삼진 아웃! 벨리나 선수가 첫 타자를 기분 좋게 삼진으로 마무리 하네요."
"바깥쪽에서 존으로 슬쩍 들어오는 스크류볼이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존으로 슬쩍 들어오는 공을 물끄러미 바라본 이별아는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흠..? 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이렇게 3구 삼진으로 아웃 돼주고."
지은의 말에 이별아는 그녀를 힘껏 째려보고는 씩씩대며 원정팀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그에 지은은 이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쯧... 정신을 차린게 아니라 실력이 떨어지는 거였구만..?"
다음 타자는 좌익수 김수영. 이별아와 같이 리사의 병문안을 왔던 선배이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이별아가 씩씩대며 김수영에게 다가왔다.
"언니! 저 포수에게 휘둘리면 안돼요..! 아주 리사가 우리를 얼마나 나쁜 년으로 만들어 놨는지... 계속 우릴 욕하면서 흔들더라고요."
"하..! 그래..?"
포수가 트래시 토크로 타자들을 흔든단 말에 김수영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배팅 박스에 들어섰다.
"너도 우리 리사 괴롭혔다며?"
지은은 이번에도 타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김수영은 이별아와는 다르게 바로 맞받아 쳤다.
"허! 누가 그래요?"
보나 마나 리사가 자신들의 뒷담화를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번 물어보았다.
그러나 지은의 대답은 그녀가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니 얼굴이 이야기 해주던데? 니들이 우리 리사 괴롭혔다고."
사실 이별아나 김수영의 얼굴은 평범하게 생겼다. 그렇기에 지은의 대답을 들은 김수영은 어이가 없었다.
뭐라 대꾸를 하려던 김수영. 그러나 그 순간 벨리나의 빠른 공이 날아왔다.
"스트라잌~!"
'하, 씨..! 별아가 말한게 바로 이런거였구나.'
김수영은 어느 순간 발키리 포수의 심리전에 휘말렸다는 걸 알아챘다. 그래서 그냥 입을 꾹 다물고서 타격에 집중했다.
"선배가 돼가지고 말이야, 잘하는 후배 칭찬은 하지 못할망정 시샘이나 하고 말이야... 그래서 되겠어?"
"..."
지은이 계속 뭐라 그랬지만, 김수정은 묵묵히 벨리나에게만 집중했다. 아니,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씨발..! 진짜 시끄럽네...'
벨리나가 던진 공이 김수영의 몸쪽으로 날아왔다. 약간 밋밋해 보이는 슬라이더. 김수영이 눈을 반짝이며 배트를 휘둘렀다.
딱~!
잡아 당긴 타구가 우측 파울 지역 바깥으로 떨어졌다. 타구를 끝까지 쫓아가본 지아였지만, 경기장 펜스 바깥으로 떨어져서 잡지 못했다.
"칫..! 조금 빨랐나..?"
김수영은 아쉬움을 삼키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음 같아선 장타를 때려내 자신을 비방하는 포수와 꼴 보기 싫은 리사를 비웃어 주고 싶었다.
'투수의 수준이 낮아. 충분히 칠 수 있어..!'
계속해서 떠들어 대는 지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타격에 집중하는 김수영. 그녀의 눈에 벨리나의 커브가 보였다.
'가운데로 몰리는 커브인가..! 좋아, 이대로 장타를 날린다..!'
호기롭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김수영. 그러나 공이 홈 플레이트 근처로 날아오는 그 짧은 순간, 김수영의 인상이 찡그려 졌다.
'공이 바깥으로 휘잖아..?!'
커브인줄 알았던 궤적. 그러나 벨리나가 던진 구종은 커브가 아니라 스크류볼 이었다. 가운데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공에 김수영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두 타자 연속 3구 삼진!! 아~ 우리 벨리나 선수,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아 보이네요!"
"커브인줄 알았던 공이 다른 궤적으로 떨어지면 타자는 당황할 수 밖에 없죠. 정말 좋은 공이었습니다."
김수영이 삼진을 당하자 지은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권선징악이다, 이년아."
지은의 말에 김수영은 배트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그저 씩씩대며 더그아웃으로 되돌아 갔다.
이후 3번 타자를 뜬공으로 처리한 벨리나. 그녀는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며 지은에게 물었다.
"언니, 타자들이랑 무슨 이야기를 나눴어요?"
벨리나의 물음에 지은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어. 아니, 우리 여보야가 드라고니안 1, 2번 타자들을 좀 혼내달라고 말하더라구~ 그래서 내가 잔소리 좀 했어~"
"아, 그래요..?"
"나중에 여보야에게 상 달라고 해야지~"
무슨 상상을 하는지 얼굴을 붉히는 지은. 그런 지은을 바라보며 벨리나는 타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타자들 얼굴이 잔소리 들은 수준이 아닌 거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