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216회. 스프링 캠프
종신 시스터즈와의 연습 경기가 열리는 날. 동국은 출전하는 선수들 중에 리사를 빼고 대신 수정을 넣었다.
대만 리그 팀인 시스터즈와의 경기에서 굳이 S- 급인 리사를 출전시킬 필요가 없었다. 대신 수정의 실력을 확인해봐야 했다. 그래서 수정이 1루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선발 투수는 벨리나로 그녀는 겨울 동안 동국과의 특훈 덕에 D에서 D+로 한 단계 성장하였다. 거기에 기존의 포심, 커브, 스크류볼에 슬라이더를 추가하여 4가지 구종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오늘 경기에서는 새로 익힌 슬라이더를 중점적으로 점검하기로 하였다.
거기에 코치들의 버프와 '특별한 유니폼'의 효과를 체감해 보는 것도 중요한 점검 사항이었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저는 발키리의 단장, 이재은 입니다. 옆에 있는 분은 저희 구단 전력 담당 직원인 장나연 입니다."
"안녕하세요, 장나연 입니다. 잘 부탁 드려요~"
포수 쪽 벤치에서는 재은과 나연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발키리는 이번에 연습경기를 너튜브로 중계하기로 하였다.
발키리의 인기와 많은 콘텐츠들로 인해 발키리 계정의 구독자는 5만명을 돌파하였다. 이는 다른 지역 리그 팀들에 비해 1.5배에서 2배 정도 많은 수치이다.
경기는 시스터즈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시스터즈의 1번 타자는 D+ 등급의 선수로 이름은 왕 머시기 였는데, 중국어라 그런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딱~
1번 타자가 벨리나가 던진 슬라이더를 그대로 잡아 당겨서 안타를 만들었다. 가운데로 몰린 실투였다.
바로 안타를 허용하긴 했지만 벨리나는 슬라이더를 던지는 걸 두려워 하지 않았다.
2번 타자를 상대로 슬라이더와 포심으로 카운터를 잡은 그녀는 스크류볼로 땅볼을 유도했다.
빠르게 땅볼 타구를 향해 달려간 아연이 포구를 한 다음 2루로 달려오는 1루 주자를 태그 아웃시키고, 1루로 송구하였다.
1루가 어색한지 수정의 포구가 살짝 불안했지만 별 실수 없이 타자를 아웃시켰다.
"김수정 선수가 장아연 선수의 송구를 침착하게 포구하네요."
"네, 김수정 선수 겸 코치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플레잉 코치로 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시즌 중에는 주현아 선수와 번갈아 가며 나올 예정입니다만, 오늘은 리사 선수를 대신해서 1루수로 출전하게 됐습니다."
병살타를 처리하는 장면을 보면서 너튜브 실시간 댓글들이 마구 달렸다.
- 슬라이더는 아직까진 그저그런듯. 스크류볼은 좋지만...
- 그나저나 진짜 벨리나는 슬라이더를 연마해야 겠다. 앤서니는 좌완이라 좌타에 강하고, 벨리나도 스크류볼 때문에 좌타에 강하니 우타에 강한 투수가 없어..;;
- 김수정 진짜 발 빠른 똑딱인데 발이 느려졌으니... 최지아가 수비 범위가 넓어서 다행이지 다른 팀이었으면 1루수 봐야 하는데.
- 똑딱이 1루수 누가 씀?? 그냥 하위 리그로 내려가야 할 실력임. 딱 봐도 외모 보고 뽑았구만.
- 근데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선수 외모 보고 왔잖아.
- ㅇㅈ.
- ㅇㅈ2.
그 뒤 벨리나는 3번 타자에게 다시 안타를 허용했지만, 다음 타자에게 스크류볼로 땅볼을 유도하며 이닝을 마쳤다.
"슬라이더 어땠어?"
동국의 물음에 벨리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 아직까진 만족스럽진 않아요. 그래도 처음에 비해선 많이 발전했으니, 앞으로도 나아지겠죠."
겨울 동안 동국과 주구장창 특훈만 해서 그런지 벨리나는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 상승했다는게 느껴졌다.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해도 막혀있던 실력 상승의 벽이 허물어 졌다는게 그녀는 마냥 좋았다.
벨리나가 투수 코치인 비엔나에게 다가가 피칭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1회 말이 시작되었다.
종신 시스터즈의 선발 투수는 팀의 좌완 에이스인 카멜라 라는 선수이다. 평균 이상의 포심과 체인지업, 수준급의 슬라이더, 그리고 가끔 커브를 던지는 선수이다.
발키리의 1번 타자는 현아다. 이번 경기는 연습 경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경험이 많이 필요한 현아가 톱 타자로 나서게 되었다.
그녀는 몇 번 공을 커트하며 투구수를 늘렸지만, 얼마 안가 카멜라의 슬라이더에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 시즌 때 쟤 안 봐서 이제 다행이네. 그래도 김수정이 수비는 안 돼도 똑딱질은 잘 하지.
- 그래도 주현아가 공격은 안돼도 수비는 나쁘지 않음. 발이 빨라서 범위도 넓고.
- 오구 한지도 별로 안돼서 저 정도면 괜찮긴 한데, 그래도 아직 부족한게 많지. 발키리는 2군 팀 안 만드나? 쟤는 1부 리그에서 묵혀놔야 되는데.
- 그러게. 단장님!!! 발키리는 2군 팀 안 만드나요???
실시간 댓글 창에 2군 팀에 대한 질문이 여러번 나오자 그걸 본 재은이 답변을 하였다.
"어, 음... 2군 팀이요? 아직까지 계획은 없습니다."
지역 리그 팀이나 전국 리그 팀이 2군을 만드는건 사실 강제가 아니다. 만들 수 있다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안 만들어도 상관은 없었다.
다만 선수 뎁스를 두껍게 하기 위해서 웬만한 팀들은 다 2군 팀을 운영하고 있다. 본 팀에 소속될 수 있는 선수는 선발 타자 5명과 대기 타자 1명, 투수 2명밖에 안 된다.
따라서 유망주를 키우거나 대체 선수를 위해서 2군 팀을 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갑자기 주전 포수가 부상을 입을 경우 2군에서 뛰고 있는 포수로 대체하는 것이다.
유망주를 키우는데 적절한 동국의 특성과 새로 생긴 잠재력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합치면 뛰어난 선수들을 2군에서 육성 시킬 수 있었다.
전력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발키리는 2군 팀을 만드는게 여러모로 좋았다. 다만 바로 그 점 때문에 2군 팀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유망주를 모집하면 동국은 그 선수와 특훈을 해야 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동국을 제외한 나머지 부인들이 은근히 반대를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2군 팀이 발키리 전력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를 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탐탁지 못 한 것이다.
물론 동국이 밀어붙인다면 결국 반대하지 않겠지만, 동국은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서 내버려 두고 있었다.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 때문에 발키리는 2군 팀을 만들 계획이 없었다. 다만 이런 사정들은 팬들에게 설명하긴 힘들었다.
- 아니 왜 계획이 없지..? 빨리 만들어야 되는거 아닌가?
- 마자마자. 오구계의 발전을 위해서 2군 팀을 꾸려야지.
- 신지은 올해 벌써 30대임. 게다가 출산까지 해서 언제 에이징 커브가 올지 모르는데, 빨리 포수를 육성을 해야지.
- 마냥 상위 리그에서 경험치 쌓는다고 실력이 느는게 아닌데... 주현아는 딱 1부 리그에서 뛰어야 하는데...
팬들의 걱정 어린 댓글들에도 재은은 2군 팀에 대해서 더 이상의 추가 설명을 하지 않았다.
현아와 지아가 아웃 되고 난 다음에 3번 타자로 나선 아연이 가볍게 안타를 치고 나갔다. 그리고 다음 타자는 바로 수정이었다.
수정의 실력은 D+. 공격이 C-이고 수비가 D였다. 잠재력은 C급 이었는데, 기량이 하락한 지금 D+인걸 보면 그래도 자신의 잠재력을 거의 다 개화 시켰다고 봐도 무리가 없었다.
그녀의 수비 능력이 전성기에 비해서 하락했다고는 하지만, 수비 등급에서는 현아와 같은 D 등급 이었다. 현아가 빠른 발로 수비 범위가 넓다면 수정은 현아에 비해서 느린 대신 다른 전반적인 부분이 앞서는 것 같았다.
그녀의 특성은 '2 스트라이크 이후 상황에서 컨택률 상승' 이라는 조건부 특성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녀의 컨택률은 82%이지만 2 스트라이크 이후 컨택률은 90%까지 상승했다.
대부분의 타자들이 2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컨택률이 감소한다는걸 생각한다면 특성의 효과가 확실했다.
동국에게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실력과 특성을 알게 된 수정은 긴가민가 했지만, 동국의 말에 따라 2 스트라이크가 될 때까지 실투가 아닌 이상 스윙 하지 않기로 하였다.
데이터 상으로도 2 스트라이크 이후에 자신의 컨택률이 좋다는게 증명되니 안 따를 수 없었다.
1볼 1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카멜라가 바깥쪽으로 꽉 차게 들어오는 커브를 던졌다.
이제 2 스트라이크 상황.
수정은 배트를 꽉 쥐고서 카멜라를 노려보았다.
'2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내 특성이 발동한다고 했지... 어디 한번 느껴볼까..?'
1루에 있는 아연을 힐끔 본 카멜라가 포수를 향해 공을 던졌다. 바깥쪽으로 절묘하게 흐르는 슬라이더. 쳐 봤자 좋은 타구가 안 나올게 뻔한, 아주 좋은 공이었다.
커트를 하기 위해 배트를 쭉 내민 수정.
틱~
"파울~!"
쉽게 커트를 한 그녀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방금 전 상황을 복기했다. 확실히 평상시 같았으면 커트 하기 버거웠겠지만, 지금은 보다 편안한 느낌이었다.
"파울~!"
"파울~!"
"볼~"
"파울~!"
공을 계속 커트 해 갈수록 수정의 표정엔 점점 확신이 생겼다.
"음... 확실히 커트를 잘 하는 구만..?"
신나게 카멜라의 공을 커트 해 내고 있는 수정을 바라보며 동국이 중얼거렸다. 그에 옆에 앉아 있던 리사가 말했다.
"그래도 선구안이 그렇게 뛰어나 보이진 않아. 볼인 공도 방망이가 나오는군."
"... 리사, 2 스트라이크 상황이니 웬만한 공에는 다 방망이가 나오는게 보통 아니야..?"
"그렇긴 하지만, 나라면 골라낼 수 있다."
애초에 리사와 수정의 실력 차이는 엄청나게 크지만 동국은 그녀의 말에 별말 안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컨택만 잘 하면 뭐하나. 안타를 만들어 내야지."
리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정의 빗 맞은 타구가 2루수에게 잡혔다. 2루수가 가볍게 베이스를 밟으며 이닝이 마무리 되었다.
그 뒤로 각 팀은 점수를 못 낸 채 2회를 끝냈다. 3회 초까지 벨리나는 2루타 1방만을 허용하며 시스터즈의 타선을 틀어막았다.
평균 실력이 D+인 시스터즈의 타선을 벨리나가 무실점으로 막는 것은 상당한 호투였다. 거기에 뜬공 없이 땅볼만 6개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타자들이 주로 치는 공이 슬라이더와 스크류볼이라서 그런지 땅볼이 유독 많았는데, 그 덕분에 죽어나는건 내야수들, 그리고 투수인 벨리나 였다.
지아와 현아가 하품만 하며 외야에서 어슬렁 거리는 동안 아연과 수정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땅볼 타구를 잡았다.
특히 좌익수 출신인 수정은 내야 수비가 어색한지 간간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다만 아직까지 실책이 나오진 않았다.
"흠... 김수정 선수님?"
"왜 그러시죠, 수비 코치님?"
수비 코치인 에일리가 수정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수정은 의아해 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선수들 훈련 할 때 같이 훈련 하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네..?"
"미안한 말이지만, 내야 수비가 안정감이 별로 없어요. 내야 수비 훈련을 같이 하시는게 어떠신가요."
수비 코치가 타격 코치인 수정에게 내야 수비 연습을 좀 하라고 하자 수정은 어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1루수가 아니라 외야수였다. 내야 수비가 어색한건 당연한 것이었다.
"저, 저기요, 에일리씨? 일단 전 선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격 코치에요. 선수들과 같이 훈련하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 좌익수지 1루수가 아니랍니다. 오늘 경기는 연습 경기라 땜빵으로 나온거고요. 아시잖아요."
수정이 황당해 하며 말하자, 에일리는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수정은 에일리가 자신의 말에 납득을 했다고 이해했다.
속으로 별꼴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 경기를 바라보려 한 수정. 그러나 에일리가 다시 말을 걸었다.
"수정 선수님. 수정 선수님이 좌익수이긴 하지만 1루수로 출전을 안 한다고 확신하실 수 있나요?"
"네..? 이봐요, 단장님께서 절 외야수로 쓰신다고 하셨어요!"
수정이 목소리를 높혔지만, 에일리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수정이 에일리보다 1살 더 많았지만, 에일리는 기죽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
"그럼 팀의 상황과 상관 없이 좌익수로만 출전 하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 그건 아니지만..."
위에서 1루를 보라고 시키면 그것에 따라야 하는게 선수였다. 더군다나 전문 1루수도 아니고 알바로 1루를 보라는 거면 더욱 거절하기 힘들었다.
"그럼 나중에 수비 훈련 때 나오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에일리는 그렇게 제 말 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수정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멍 하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