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화 〉209회.
비엔나가 오고 나서 며칠 뒤, 동국은 앤서니에게 비엔나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앤, 비엔나 코치 어때? 좋아?"
"움... 좋아~!"
동국의 물음에 잠깐 볼을 부풀리며 생각을 하던 앤서니는 이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억지로 훈련 안 시키고~ 재밌게 놀아줘서 좋아~!"
앤서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저리주저리 자신과 비엔나 간에 있었던 훈련 내용들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상당히 만족스러워 하는 앤서니를 뒤로 하고 이번엔 벨리나에게 가서 비엔나에 대해 물어보았다.
"비엔나 코치님이요? 상당히 친절하세요. 자신이 겪으셨던 여러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기도 하고, 투구 폼이나 자세 같은 것들도 신경 써 주세요. 아, 요즘엔 슬라이더를 배우고 있어요."
"오, 슬라이더?"
"네, 스크류볼과 커브도 좋지만, 슬라이더도 있으면 좋다고요. 제가 스크류볼 때문에 우완인데도 좌타에 강하고 우타에 약하니 슬라이더로 대비를 하자고 하시더군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
전반적으로 비엔나가 동국이 부탁한 내용들을 잘 따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오구에 대해 잘 모르는 구단주가 이리저리 간섭한다고 무시하는게 아니라 잘 따라 주니 자연스럽게 동국은 그녀를 좋게 볼 수 밖에 없었다.
'후후... 역시 얼굴값 하는 거지...'
투수 코치는 아주 성공적으로 영입한 동국이었지만, 반대로 감독인 델루나는 예상대로 빈둥빈둥 놀고만 있었다.
바지 감독으로 영입하려 한 목표에 너무 부합되게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동국과 재은이 당황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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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말, 어느 날. 동국이 다른 여자와의 섹스 후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때 현아가 안방에 들어왔다.
"음? 현아, 너 차롄가?"
동국이 섹스를 하기 위해 찾아온 줄 알고 그녀에게 다가가자 현아가 고개를 저었다.
"하하, 그거 때문에 온건 아니고..."
현아가 주저하며 말을 잇지 못하자, 동국은 차분하게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저, 저기, 오빠..?"
"응, 편안하게 말하렴. 뭣하면 일단 섹스를 하면ㅅ..."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저기...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계속 동국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하지 않는 현아. 뭘 말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동국은 점차 답답하면서도 궁금했다.
'뭐지..? 무슨 일 있나..? 딱히 없을텐데... 아! 혹시 고아원 동기들에게 무슨 일이 있나..?'
혼자 이것저것 추측을 하던 중, 현아가 동국을 찾아 온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역 리그 경기에서 주전 멤버로 활약하긴 좀 무리가 아닐까 싶어서... 그래서 새로운 외야수를 구하는게 팀 입장에선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
현아가 힘겹게 한 말에 동국은 속으로 납득 했다. 현재 현아의 실력이 조금 더 상승을 해서 F+에서 E 등급으로 늘긴 했지만, 지역 리그 평균 등급인 C 등급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대략적으로 성적을 예상해 보자면 OPS 0.3 정도..? 타율도 아니고 출루율+장타율의 합계인 OPS가 0.3이란건 타석에서 그냥 허수아비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음... 현아야, 너도 충분히 가치가 있어. 타석에서 투수의 투구수를 늘리고, 수비에선 빠른 발을 이용해서 수비 기여가 크잖니. 그리고 일단 나갔다 하면 도루도 쉽게 성공하ㄱ..."
"오빠. 1부 리그에선 투구수를 늘릴 수 있었지만, 지역 리그 수준에선 그게 안 된다는 거 컵 대회에서 봤잖아... 수비도 범위가 넓긴 하지만 어깨가 약하고... 도루도 뭘 루상에 나가야 하든지 말든지 하지..."
우울하게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하는 현아의 모습에 동국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현아야, 나랑 섹스만 계속, 꾸준히 하면 실력이 잠재력에 상관 없이 계속 오르는 거 알고 있지?"
"응..."
"결국엔 너도 충분히 지역 리그 급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너무 오래 걸리는 걸..! 지금 당장은 난 1부 리그 급 선수인걸..! 팬들은 날 지역 리그 선수로 볼텐데, 내 실력이 팬들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없어..."
약간 울분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하는 현아를 동국은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어린 나이에 너무 무거운 부담을 짊어지게 한게 아닌지 동국은 마음이 무거워 졌다.
"후... 그래, 일단 니 말은 잘 알겠어. 회의 때 한번 말해볼게. 그리고 현아야..."
"... 왜 오빠..."
동국이 그녀를 부르자 작게 대꾸하는 현아. 동국은 그런 현아의 팔을 잡고서 자신이 앉아 있던 침대로 끌어 들였다.
"꺄악~ 오빠~!"
"섹스가 실력 향상과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되는거 알고 있지? 후후, 우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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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서 현아는 자신을 대신할 새로운 선수 영입을 요구했어. 이에 대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해?"
현아의 요구와 타격 코치 선임에 대해서 소집된 회의에서 동국이 현아의 말을 설명하였다.
"후아암~ 뭐, 실력이 많이 모자라긴 하지... 다만 동국의 특성 때문에 몇 년 정도 기다리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데 굳이 영입할 필요가 있을까~?"
하품을 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 델루나 감독. 그녀는 굳이 새로운 타자를 영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현아 선수의 정신적인 부분이에요.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 몇 년을 견딜 수 없는거라구요. 전 몇 년 동안 현아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새로운 타자를 영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감독 옆에 앉아 있는 투수 코치 비엔나는 현아의 멘탈적인 부분을 생각해서 새로운 타자를 영입하자고 말했다.
"한마디로 스탑갭(stopgap)을 말하는 거죠?"
"네, 그렇죠. 나이 든 베테랑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니까 딱 몇 년 동안 사용하기 알맞죠."
스탑갭(stopgap). 임시방편이란 뜻으로 유망주가 성장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 주는 용도로 사용되는 선수를 주로 이야기 한다.
"아니 무슨 스탑갭이야~ 다른 팀들 보면 현아랑 비슷한 실력을 지닌 선수들도 잘만 주전으로 활약 하더만... 그냥 멘탈적인 부분만 케어 해 주면 충분히 뛸 수 있어."
하긴 컵 대회 1차전에서 맞붙었던 화성 파이어우먼즈의 포수도 등급이 E+이었다. 델루나 말대로 다른 팀에서도 E급 선수를 주전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우리 팀에 C 급 정도 되는 선수가 추가되면 진짜 타선은 상위권 이에요. 저희 팀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수 있지 않나요?"
"아니, 우리 팀에 C 급 선수 추가된다고 우승 후보가 되는게 아니잖아. 차라리 그 돈으로 내 월급이나 올려줘!"
델루나가 목소리를 높이자, 동국이 차분히 그녀에게 말했다.
"누나."
"왜."
"누나, 월급 안 받잖아. 대신 용돈을 받지."
"씨이... 그럼 내 용돈이나 올려줘~!! 로맨스 소설 정기권 끊게!"
비엔나, 델루나가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동안, 나연이 투수 코치 리스트를 휙휙 넘기더니 이내 한명을 동국에게 보여주었다.
"저기, 오빠? 여기 이 사람은 어때요?"
"음..? 예쁘게 생기긴 했네. 몸매도 잘 빠졌고..."
나연이 보여준 문서에는 흰색 머리에 금색 눈동자를 한 쭉쭉 뻗은 몸매의 여성이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문서에 나와 있는 인물 정보는 확인하지 않고 외모만 평가한 동국을 나연이 찰싹 때렸다.
"아니, 사진 말고요~ 인물 정보를 확인을 해야죠~!"
"크흐흠..! 어디 보자... 이름 김수정. 경남 지역 리그 팀 '부산 북이들'에서 외야수로 활약. 이번에 FA를 신청... 왜, 이 선수를 스탑갭으로 영입하자고?"
"아뇨, 전 이 선수를 타자 코치로 영입 할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문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베테랑으로서 팀 동료들에게 타격 자세에 대해 설명을 자주 해주는데, 소질이 있다더군요."
"그래서 선수 겸 코치, 즉 플레잉 코치로 영입을 하자는 거지?"
"네, 맞아요."
나연의 의견은 나쁘지 않았다. 타격 코치가 필요한 우리 팀에 코치로 일하면서 동시에 현아 대신 경기에 나갈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반대로 다른 코치들에 비해 연봉은 좀 더 많이 줘야 하겠지만 말이다.
"음... 근데 보아하니 감독에게 항명을 했었다고 나와 있네..? 그래서 지금 소속 팀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직 리그가 개막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긴 했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아무도 그녀를 데리고 가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연히 감독에게 항명한 것 때문이었다.
"네, 듣기로는 감독의 행동이 약간 강압적 이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잡음이 많이 있었다고 하네요."
"강압적? 음..."
나연의 설명에 동국은 델루나 감독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 회의 중에 휴대폰으로 딴짓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전혀 그런거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재은 누나, 어떻게 생각해?"
동국의 물음에 재은이 구단 재정 상황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상관 없을 거 같애. 돈은 뭐 넉넉하게 있긴 하지. 다만 그렇다고 굳이 퍼 줄 필요는 없지. 딱히 찾는 팀이 없다며?"
"네, 기량도 점점 감소하는 데다 나이도 내년이면 30살이라서... 거기에 감독에게 항명까지 했으니 원하는 팀이 별로 없죠. 아마 이대로 은퇴하거나 1, 2부 리그 팀에서 싼 값에 뛰지 않을까 예상 됩니다."
"그렇지? 그럼 우리가 싸게 데리고 올 수 있겠네. 코치지만 경기도 뛸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면 쉽게 넘어올 것 같네. 더군다나 동국의 특성 때문에 기량이 더 상승할 수 있다고 하면..."
"안 오고는 못 배기죠."
“후후후…”
“흐흐흐…”
뭔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짓는 재은과 나연. 그런 그녀들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동국은 비엔나와 델루나에게도 의사를 물어보았다.
"비엔나 코치님은 동의하시죠?"
"네, 물론이죠."
"델루나 누나는?"
"몰라, 알아서 해. 내 돈 나가는 것도 아닌데 뭐."
"그럼 재은 누나가 한번 연락 해봐. 플레잉 코치로 영입하고 싶다고."
그렇게 회의는 김수정 선수를 플레잉 코치로 영입하자고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