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204회. 델루나
충격적인 패배 이후 집 분위기는 많이 안 좋았다. 특히 5회 말에 올라와서 1이닝 6실점 패전 투수가 된 벨리나는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벨리나, 문 좀 열어봐."
"..."
동국이 문을 두드려 봐도 열리지 않는 벨리나의 방문. 몇 번 더 방문을 두드린 동국은 그녀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대신 비올렛을 불렀다.
"누나가 가서 위로 좀 해줘요."
"에휴, 그래야지..."
집에서 은지를 돌보며 경기를 지켜봤던 비올렛이기에 무슨 상황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엄마야, 문 좀 열어봐."
비올렛이 방문을 두드리자 그제야 문을 열어 주는 벨리나. 실컷 울었는지 그녀의 눈이 빨개져 있었다.
"어이구... 많이 울었나보네."
"흑... 엄마..."
비올렛을 보자 다시 울음이 터져 나온 벨리나가 비올렛의 품에 안겼다. 그런 그녀를 토닥이며 비올렛은 벨리나를 다독였다.
비올렛의 품 안에서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벨리나는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토해냈다.
"내가 과연 이 팀에 필요한 존잴까요, 엄마..? 그냥 벨벳 그룹에 입사해서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맨 처음엔 자신의 말에 반대하며 오구 선수가 됐던 벨리나가 한번 털리고 나서 이렇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비올렛은 그녀가 평소에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알게 되었다.
"나, 난... 앤서니처럼 타자들을 막지 못하는데..! 차라리 새로운 투수를 구하는게..!"
"벨리나. 넌 지금도 잘 하고 있어."
"네에..?"
비올렛의 말에 벨리나가 눈물 진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처음을 생각해 보렴. 그때 너는 대학 리그에서 그저 그런 불펜 투수였잖니. 근데 지금은 어때? 지금은 1부 리그에서도 1선발 급 활약을 했잖니. 넌 지금도 잘 하고 있어."
"그렇긴 하지만..."
"앤서니를 너무 신경 쓰지 마렴. 앤서니는 논외로 치고, 너에게 집중하렴. 넌 항상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노력할꺼잖니. 그거면 충분하단다. 동국이 있으니 넌 너의 한계치를 매번 뛰어넘을 테니 말이다."
비올렛의 말이 맞았다. 처음에 대학 리그에서 뛸 때만 해도 벨리나, 자신이 프로에 입단하게 될 줄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1부 리그 팀에 입단하게 되었어도 자신이 이렇게 잘할 줄은 생각 못했고 말이다.
동국의 특성으로 작지만 꾸준하게 실력도 늘테니 꾸준하기만 하다면 언젠가 충분히 지역 리그, 아니 전국 리그에서도 활약할 수 있을터였다.
벨리나가 많이 진정된 듯 하자 비올렛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동국을 불렀다.
"자기~! 이제 들어와도 돼~!"
"아니, 어머니... 동국 오빠에게 자기는 좀..."
"아니, 왜~? 그렇게 불러도 상관 없지~"
비올렛이 동국을 자기라고 부르자, 벨리나가 떨떠름해 하였다. 그러던가 말던가 비올렛은 방 안으로 들어온 동국에게 팔짱을 끼며 그를 침대에 앉혔다.
"벨리나, 난 못 들어오게 하고, 누나는 들어오게 하다니..."
"아, 저, 그게... 오빠에게 죄송해서... 오빠는 절 믿고 마무리로 올렸을텐데..."
동국이 농담으로 한 말에 벨리나가 진지하게 받아드리자, 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그러자 비올렛이 동국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아니, 왜 우리 애를 기를 죽이고 그래~!"
"아, 아니... 농담으로 말했는데... 미안해, 벨리나."
"아니에요, 괜찮아요..."
"자, 자. 안 좋은 일이 있을 땐 섹스를 하면 나아지지. 우리 오랜만에 다같이 섹스나 할까?"
"네~?! 아니, 그래도..."
벨리나의 뜬금없는 3P 제안에 비올렛이 얼굴을 붉히며 놀랐다.
"벨리나, 그럼 나 빼고 둘이서 하려고 그랬어?"
"아, 아니. 저기, 그런게 아니라..."
"후훗, 오랜만에 모녀덮밥이라니... 이거 벌써부터 꼴리는군..!"
벨리나가 당황해서 허둥지둥 거리는 사이 동국은 흥분한 표정으로 옷을 벗으며 그녀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
*
*
며칠 뒤, 동국과 재은은 감독 후보인 델루나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사는 집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아! 여기에요, 여기~!"
일행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절로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미녀가 동국과 재은을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 어우야..."
"흐음~?"
생각보다 멀쩡한 모습, 아니 약간은 화려한 모습에 동국과 재은, 둘 다 서로를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혹시, 델루나씨..?"
"네, 맞아요. 처음 뵙겠습니다. 델루나 라고 해요."
동국의 확인에 꾸벅 인사를 하는 델루나. 가슴골이 파인 옷을 입고서 고개를 숙이니 그 아찔한 계곡에 동국의 시선이 절로 향했다.
"크흠흠..! 전 벨벳 발키리 대외 활동 담당인 이재은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구단주 겸 감독을 맡고 있는 동국이구요."
동국의 시선이 어디로 향했는지 눈치 챈 재은이 동국을 팔꿈치로 툭 치면서 자기 소개를 했다.
"발키리 구단주인 동국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호호, 네, 구단주님."
동국이 손을 건네 악수를 청하자 델루나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았다.
'흐읏..!'
그러면서 델루나가 슬쩍 손가락으로 동국의 손바닥을 스윽 긁자 동국은 순간 몸이 떨릴 뻔 했다.
'뭐지, 나에게 관심 있나..? 으흥, 그러면 나야 땡큔데...'
이런 면접 장소에서 정장 대신 저런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왔다는 건 분명 자신을 유혹하는 거라고 동국은 생각했다.
자리에 앉고 나서 동국과 재은은 본격적으로 델루나를 면접 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 사람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면서 은근슬쩍 상체를 앞으로 기우렸다.
왼쪽 팔을 앞에 있는 테이블에 얹고선 그 위에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올리니, 동국의 시선이 다시금 그녀의 가슴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어우, 어우야..!'
그러면서 은근 동국에게 고혹적인 눈빛을 보내는 델루나. 그녀의 이런 행동에 동국의 고간이 꿈틀거렸다.
동국이 델루나의 가슴골을 훔쳐보는 사이 면접이 끝이 났다.
"자, 수고하셨구요, 결과는 저희가 며칠 뒤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머, 벌써 끝났네요. 저기, 이대로 끝내긴 아쉬우니까 다른데로 장소를 옮기는 거 어떨까요?"
재은이 면접이 끝나고 나서 헤어지려 하자, 델루나는 동국에게 미소를 날리며 2차를 제안했다.
"아, 그ㄹ..."
"하하,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죠. 면접, 수고하셨습니다."
"뭐, 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요."
델루나의 제안에 동국은 좋다고 수락하려 했으나, 중간에 재은이 동국의 말을 끊으며 2차를 거절했다.
그렇게 만남이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국은 약간의 서운함과 의아함, 짜증을 담아 재은에게 말했다.
"누나, 방금 전에 왜 거절한거야? 2차 가도 좋았잖아?"
"흐, 그 여자 가슴골이 좋았던 건 아니고?"
재은이 동국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자, 동국은 시선을 돌렸다.
"크흐흠..! 뭐, 그런 것도 있고..."
"아주, 동국, 널 유혹하려고 작정을 했더만? 면접 자리에 그렇게 가슴골이 파인 옷을 입고 오질 않나... 아주 상체를 숙여 가면서 너에게 자기 가슴 보여주려고 안달이 났더만."
재은의 투덜거리는 말에 동국은 델루나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단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 내 생각이 이상한게 아니었어. 근데 그러면 좋은거 아닌가?"
"뭐, 그렇기야 하겠지만... 기분 나쁘잖아! 그렇게 대놓고 유혹을 하는데..! 그리고 쉽게 보이지 않아야 협상에서 승리할 수 있어."
"흐흐, 우리 누나, 기분이 나빴구나~ 그럼 잠시 우리 누나, 기분 좀 풀고 갈까?"
동국은 재은의 질투에 실실 웃으며 몰고 가던 차를 길가다 보인 한가한 주차장의 구석진 자리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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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루나는 현재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몇 년 동안 수입이 없이 지출만 있었으니 돈을 계속 까먹을 수 밖에.
항상 자식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그녀의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그녀는 그대로 집에서 뒹굴 거리는 백수가 되었다.
하는 일이라곤 오구 커뮤니티에서 눈팅하거나 가끔 글 쓰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계속 생활을 해오다 보니 점차 통장의 잔고만 줄어들어 갔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집에서 고독사 하겠다는 심정에 자신이 예전에 일했던 구단들에 문의를 돌렸지만, 되돌아온 답변은 싸늘하기만 했다.
그러던 찰나에 들어온 발키리의 면접 제안. 몇 년 만에 지역 리그로 승격할 만큼 앞날이 창창하고 유망한 구단에서 자신에게 제안을, 그것도 감독 면접을 제안하자, 델루나는 마치 하늘에서 금 동아줄이 내려온 것만 같았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굶어 죽지 말라고 날 도우셨구나..!'
그 후 델루나는 본격적으로 발키리에 대해서, 그리고 현 감독으로 있는 동국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단주이자 감독인 동국이 여자를 심히 밝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동국이 여자와 몇 번 만나다가 헤이지는게 아니라 책임까지 지는 남자라는 사실도 말이다.
자신의 외모와 몸매가 남자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델루나는 동국을 꼬셔서 취집 아닌 취집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얼굴만 예쁘면 실력 상관 없이 데리고 사는 것 같은데, 나라고 왜 못하겠어? 비록 이제 30대가 됐긴 했지만, 아직 창창하다고..!'
델루나는 면접 날 하루 전 난장판이었던 집안 청소를 싹 했다. 혹시 진도가 나가 집에 올 수도 있기 때문.
은근 가슴을 부각 시키는 옷을 입고, 언제 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인 화장도 풀 메이크업으로 한 델루나는 그렇게 완전 무장을 하고 면접을 볼 카페에 갔다.
'확실히 잘 생기긴 했네..! 근데 옆에 있는 여자는 누구지..?'
카페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델루나는 사진으로 봤던 동국이 한 여자와 함께 들어오자 그들을 불렀다. 그러면서 그녀는 동국 옆에 있는 예쁘게 생긴 여자가 거슬렸다.
'아이씨... 여자가 옆에 있으면 2차 가기 힘든데...'
"전 벨벳 발키리 대외 활동 담당인 이재은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구단주 겸 감독을 맡고 있는 동국이구요."
자기 소개를 통해 여자가 전직 오구 기자이자 현재는 구단의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재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씨... 실물이 사진보다 예쁘잖아..? 그나저나 옆에 아내가 있는데, 남편을 유혹해야 한다라...'
델루나는 재은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먹고 살 길은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은근슬젖 동국을 유혹했다.
'후후, 거의 다 넘어 왔네..! 이제 2차 제안만 성공하면..?!'
동국의 시선이 계속 자신의 가슴골에 가 있다는 걸 느낀 델루나는 면접이 끝나자 2차를 제안했다. 그리고 재은에 의해 거절 당했다.
자신의 유혹이 재은에게 들켰다는 사실을 깨달은 델루나는 카페를 나가는 재은의 뒷모습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나쁜 년..! 그냥 너네 식탁에 숟가락만 얹겠다는데..! 이렇게 방해를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