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199회.
3회 초 무사 만루의 위기를 무실점으로 극복하면서 다시 분위기가 발키리 쪽으로 넘어오나 했다. 실제로 2타수 무안타 이던 아연이 선두 타자로 나서 안타를 치고 나가며 추가 득점의 기대감이 높아져 갔었다.
그러나 이어진 리사, 지은이 외야 뜬공으로 아웃되고, 지아마저 땅볼로 아웃 되면서 좋던 분위기가 차분해 졌다.
아니, 다시 파이어우먼즈로 넘어갔다.
선두 타자로 나선 손서아가 안타를 치고 나갔고, 이대연에게 유인구 위주 피칭을 하다가 볼넷을 내주며 다시 무사 만루가 된 것이다.
3회 초와는 다르게 4회 초에는 한다희가 희생 플라이를 쳐서 1점을 내주었다. 그러나 다음 타자에게 병살을 유도하며 추가 실점은 막아 냈다.
그렇게 1-2로 발키리가 아슬아슬하게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5회 초가 되었다.
[2루수 잡아서 1루에, 아웃입니다. 2아웃!]
[벌써 2아웃 이군요. 이제 아웃 카운트 1개만 잡으면 발키리의 승립니다.]
[그러나 마지막 타자가 만만치 않죠? 바로 파이어우먼즈의 2번 타자, 이대연 선숩니다.]
이대연이 타석에 들어서자 원정 팬들은 마지막 희망을 담아 이대연의 이름과 응원가를 외쳤다.
마지막 타자를 앞두고 마운드를 방문한 동국이 앤서니에게 말했다.
"어떻게, 거를까? 아니면 한번 붙어 볼래."
"우웅... 한번 붙어 볼래~!"
동국의 질문에 앤서니가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정면 승부를 택했다.
"여기서 갑자기 드라마처럼 이대연이 동점 홈런을 쏘아 올리진 않겠지?"
"에이, 설마~ 여보야가 타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나본데, 지금까지 타석에서 방망이 한번 제대로 못 휘둘러 봤는데, 한번 정면 승부 한다고 홈런을 치긴 어려워~ 뭐, 안타는 칠 수 있겠지만..."
지은의 확답에 동국은 앤서니와 지은 배터리를 믿기로 하였다. 뭐, 언젠가 리그에서 한번 붙을 수 밖에 없으니 미리 경험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그럼 너희, 둘만 믿는다. 난 더그아웃에서 인터뷰 대답이나 생각하고 있을테니깐?"
동국은 더그아웃으로 되돌아 오면서 연습 스윙을 하고 있는 이대연을 힐끔 바라보았다. 부웅~ 거리며 휘둘러 지는 스윙이 참 매서워 보였다.
'뭐,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4번 연속으로 볼넷을 내주는 것도 꼴사납긴 하지... 설마 홈런을 치기야 하겠어..?'
동국은 더그아웃 벤치에 앉아 차분한 표정으로, 그러나 다리를 떨면서 앤서니와 이대연의 승부를 지켜보았고, 잠시 후.
"따아아악~!!"
그라운드에 울려 퍼지는 타격음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아이, 씨발..."
[이 타구!!! 담장!!! 담장!!! 담장~! 밖으로오오~!!! 이대연이, 파이어우먼즈의 이대연이!!! 이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립니다!!! 스코어 2대 2!!]
[아, 정말 대단하단 말밖에 안 나오네요... 앤서니 선수가 정말 낮게 제구가 잘 된 포심을 던졌거든요? 근데 이대연 선수가 아주 부드러운 스윙으로 정확히 스윗 스팟(sweet spot)에 공을 맞췄어요.]
[정말 대단합니다. 2루쪽 관중석이 아주 흥분의 도가닙니다. 반대로 1루쪽 관중석은 분위기가 싸늘해 졌는데요.]
[방금 전에 동국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한 것도 이대연 선수와의 승부를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한 방문이었던 거 같은데, 이렇게 되면 거르지 않은 걸 후회할 수도 있겠네요.]
[하하, 그렇긴 합니다만 만약 그랬다간 4연타석 볼넷이라서...]
[뭐, 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니깐요. 여기서 앤서니 선수가 아웃 처리를 했다면 이 결정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겠죠. 하지만 지금은 최악의 결과가 되고 말았네요.]
다음 타자를 뜬공으로 처리한 앤서니가 털레털레 고개를 숙이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괜찮아, 이년아! 니가 못 던진게 아니고 이대연이가 잘 친거야."
"하, 하지만..."
그 모습에 지은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앤서니가 더그아웃에 도착하자 동국이 그녀를 껴안고 토닥여 주었다.
"아이고, 괜찮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히잉..."
"다 내 잘못이야. 그러니깐 울지 말어."
훌쩍거리는 그녀를 동국이 다독이는 사이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5회 말, 발키리의 선두 타자는 오늘 투런 홈런을 친 지은이었다. 발키리 선수들은 물론이거니와 홈팬들도 그녀가 장타를 쳐주길 기대하였다.
그러나.
[우익수, 열심히 쫓아 가서... 잡았습니다~!! 우익수 손서아의 멋진 다이빙 캐치!! 이걸 잡아 내는군요!!]
[아, 정말 멋진 수비에요. 이거 빠졌으면 장타였거든요? 팀을 실점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슈퍼 캐칩니다, 아주.]
한방 쳐주길 기대했던 지은이 외야 뜬공으로 아웃되었지만, 지아가 안타를 치면서 득점의 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타석엔 오늘 경기에서 3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현아. 윤서빈이 계속 1루에 견제구를 던지며 지아가 도루 시도를 하는 것을 막는 사이 현아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기서 최소한 진루타라도 쳐야..!'
자신의 실력으로 윤서빈의 공을 건드리기 쉽지 않다는 걸 현아는 잘 알고 있었다. 윤서빈은 잴 것도 없이 강속구를 가운데로 팡팡 집어 넣어도 현아는 삼진만 당했었다.
그랬기에 현아는 내야수들의 위치를 살핀 뒤, 초구에 기습적으로 번트를 댔다. 역시나 한가운데로 들어온 직구를 툭 밀어친 현아.
강속구일수록 번트 대기도 힘들지만 그녀는 타구의 속도를 줄여서 충분히 1루 주자인 지아가 2루에서 살 수 있게 해줬다.
[주현아 선수의 번트로 이제 2사 2루가 되었습니다. 방금 전 번트는 아주 절묘해서 주현아 선수도 살 뻔 했는데 말이죠.]
[네, 주현아 선수가 발이 매우 빠른 선수이지 않습니까? 다만 자신이 살기보단 주자의 진루를 더 신경 쓰느라 아쉽게 아웃 되고 말았죠.]
[5회 말, 2아웃 2루 상황에서 이제 타석에는 장아연 선수가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에서 4타수 1안타를 기록했습니다.]
타석에 들어선 아연은 장비들을 점검하며 각오를 다졌다.
'안타 1개, 딱 안타 1개만 치면 된다..! 그러면 리사도 지은 언니도 아닌, 내가 오늘의 MVP다..!'
물론 투런 홈런을 친 지은이나 5이닝 2실점한 앤서니가 MVP를 받을 수도 있었고, 그 전에 경기에서 이겨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연은 자신이 오늘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공들을 지켜보았다.
'아직까진 윤서빈의 강속구를 받아치긴 힘들어... 그러니 최대한 공을 지켜봐서 존 안으로 들어오는 변화구를 노린다..!'
윤서빈의 변화구는 딱히 장점이 없는, 오히려 밋밋한 구종이었다. 다만 강속구 다음에 날아와서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울 뿐이었다.
그래서 아연은 2스트라이크 이전까진 최대한 공을 끝까지 지켜보며 변화구를 노리기로 하였다.
'이거다..!!'
그리고 2볼 1스트라이크에서 그녀가 기다리던 변화구가 들어왔다.
바깥쪽으로 향하는 슬라이더. 그러나 그 궤적은 밋밋하였고, 아연의 배트는 먹이를 발견하고 급강하 하는 매처럼 아주 매섭게 타구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딱~"
[툭 갖다 밀어친 타구!!! 1루수 몸을 날렸지만 잡아 내지 못하면서 경기 끝납니다!!! 장아연!!! 장아연이 결국 이 경기를 끝냅니다!!!]
[바깥쪽의 슬라이더였는데,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밀어 쳐서 안타를 만들어 냈네요.]
자신이 친 타구가 1루수를 빠져 나가자 1루로 달리던 아연은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홈 팬들을 바라보며 포효했다.
"우오오오!!"
더그아웃에서 초조하게 경기를 바라보고 있던 동국과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그녀를 향해 뛰어갔다.
"사랑한다, 아연아!!"
"아연 언니 짱~!!"
자신을 끌어 안는 동국과 앤서니의 품에서 아연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우호호, 오늘의 주인공은 나야, 나~!'
*
*
*
"오늘 복귀 전에서 선제 투런 홈런을 쏘아 올리며 데일리 MVP로 선정이 되셨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아, 우선 저희 발키리가 1차전 승리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 복귀전 잘 치룬 거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데일리 MVP로 선정된 지은이 리포터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그녀의 손에는 MVP에게 수여되는 화장품 상품권이 들려져 있었다.
지은이 리포터와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아연이 우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받을 줄 알았는데..."
"야, 끝내기를 친 주인공이 왜 이렇게 다운돼있어? 뭐가 문제야?"
동국이 축 처진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묻자 그녀가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난 내가 끝내기를 쳐서 내가 데일리 MVP를 받을 줄 알았거든? 아니, 원래 끝내기를 친 선수에게 줘야 맞지 않나?!"
"뭐, 지은 누나가 2점 홈런을 치기도 했고... 또 복귀 전이기도 하니깐..."
"그래서 지은 언니가 받는게 맞다는거야?!"
동국의 말에 아연이 눈에 쌍심지를 키며 목소리를 높혔다. 그에 동국은 움찔하였다.
"아니, 뭐... 너가 받아도 문제 없지~ 끝내기 안타를 쳤는데~ 근데 왜 이렇게 데일리 MVP에 목숨을 거는거야? 평소엔 인터뷰 같은 것도 별로 안 좋아했잖아."
동국은 은근슬쩍 말을 돌리며 이유를 묻자, 아연이 이렇게 아쉬워 하는 이유를 말했다.
"아니... 오늘 데일리 MVP가 팀의 첫 MVP인것도 있고..."
"음..? 또?"
"오늘 데일리 MVP에게는 100만원어치 화장품 상품권을 준단 말이야..!"
'하, 어쩐지...'
아연이 밝힌 이유를 듣자 동국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아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에휴... 내가 화장품 사 줄게. 그러니 그만 부러워 해."
"어, 정말?! 진짜로?"
"그래."
"아싸~!!"
동국의 말에 아연이 기뻐하며 그를 껴안자, 동국은 그런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컵 대회 1차전은 지은의 투런포와 아연의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발키리가 2-3으로 승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