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192회. 지역 리그 승강전
화요일에 열리는 3차전의 상대는 작년 경기 지역 컵대회 예선에서 우승했던 수원 리그의 장안 캐슬걸즈이다.
작년 컵대회 예선 결승전에서 지은이 속해있던 일산 레이크걸즈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강팀이다.
가히 경기 지역 1부 리그 팀들 중 가장 강한 팀들끼리 맞붙는 만큼 많은 오구 팬들의 관심이 집중 되었다.
발키리 팬들과 캐슬걸즈 팬들로 구리 벨벳 경기장의 관중석이 가득 찼다. 매번 승강전 3차전에서 패배하며 승격의 바로 직전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던 캐슬걸즈 팬들은 이번에야 말로 승격을 해야 한다며 워밍업 중인 캐슬걸즈 타자들을 응원했다.
"이번에야 말로 승격하자!"
"창단 첫 승격을 보기 위해 구리까지 왔다!!"
"캐슬걸즈 화이팅!!"
열심히 목청을 높이는 그들은 비록 발키리의 에이스, 앤서니가 패가 하나도 없는 극강의 투수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막강 타선이 앤서니를 이길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반대로 발키리 팬들은 여유 있게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뭐, 오늘 선발이 앤서니인데 뭐가 걱정이야~"
"그렇지. 그나저나 오늘 리사가 홈런을 칠까?"
"아, 당연히 치겠지. 데스티니가 정면 승부 하는 순간, 쾅~! 몰라?"
"흐흐, 오늘 또 팬 게시판이 난리가 나겠군... 이번에야 말로 베스트 게시물에 뽑히고 말겠어..!"
경기가 시작되기 전, 동국은 선수들과 함께 각오를 다졌다.
"오늘 이기면 드디어 우리 팀은 지역 리그 팀이 된다. 캐슬걸즈 타선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앤서니보단 한 수 아래다. 앤서니, 너는 긴장하지 말고 지은 누나가 보내는 사인 보고 볼 배합만 잘하면 돼. 알았지?"
오늘 경기는 홈 경기였기에 지은이 더그아웃으로 나왔다. 그녀가 있기에 앤서니는 타자들이 노리는 구종을 쉽게 알아챌 수 있게 되었다.
"응, 알았어~!"
진지한 표정으로 앤서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엄청 중요한 경기라는 걸 그녀 역시 잘 알고 있기에 저번과 같이 지은의 사인을 무시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오늘 캐슬걸즈 선발 투수인 데스티니가 비록 구종이 많지만, 반대로 말하면 딱히 결정구가 없는 투수다. 그러니 차분하게 보면 충분히 때릴 수 있어. 넉넉하게 득점해서 쉽게 가자고. 자, 파이팅 한번 하자. 발키리 파이팅!"
"파이팅~!"
다같이 파이팅을 외치며 텐션을 올리는 선수들. 그녀들이 그라운드로 향하면서 1회 초가 시작되었다.
[자, 1회 초, 캐슬걸즈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선두 타자는 2루수 황재희 선숩니다. 리그에서 3할 타율에 5홈런, 2도루를 기록했습니다.]
[호타준족의 타자죠. 캐슬걸즈의 1,2,3번 타자들을 투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숨이 턱 막힐겁니다.]
황재희의 실력 등급은 D+ 정도. 리그 성적을 보면 알 수 있지만 1부 리그 최상위 실력이다. 그러나 앤서니에게 안타를 뽑아내기엔 실력이 떨어졌다.
[헛스윙~! 삼진 아웃~!! 앤서니 선수가 선두 타자를 깔끔하게 삼진으로 잡습니다!]
[볼카운트가 몰리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어요. 더군다나 앤서니 선수의 커브가 워낙에 각이 커서 더욱 당할 수 밖에 없었죠.]
황재희는 몸쪽으로 떨어지는 커브에 헛스윙 하며 그대로 아웃당했다. 그녀는 헛스윙을 하고 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더그아웃으로 되돌아 갔다.
[다음 타자는 우익수 메리 선숩니다. 리그에서 3할 4푼의 타율, 4할 1푼의 출루율, 6할 8푼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10홈런을 때려낸 MVP 타잡니다.]
[1부 리그 실력을 뛰어 넘어 지역 리그 급 선수라고 평가 받는 타잡니다. 앤서니 선수도 긴장해야 할겁니다.]
확실히 그녀의 등급은 C등급으로 지역 리그 평균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도 자신의 실력을 잘 아는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역시 방금 전 타자와 마찬가지로 직구를 노리는건가..? 흠~ 내 직구가 그렇게 만만한가..? 왜 다들 내 직구만 노리지..?'
앤서니는 지은이 보낸 사인을 받고선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강속구는 타자들이 함부로 칠 수 없는 공이긴 하지만, 그녀가 던지는 변화구들이 워낙에 각도가 커서 상대적으로 타자들이 직구를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또 확률적으로도 앤서니가 던지는 구종 중 직구의 구사 비율이 가장 높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럼 일단 초구는 슬라이더로~'
앤서니가 던진 슬라이더가 좌타자 몸쪽으로 향하다가 급격히 바깥쪽 존을 살짝 통과했다. 그 엄청난 움직임에 메리는 꿈쩍도 하지 못했다.
'뭐, 이런 공이 다 있어..?!'
메리는 황당하다는 듯 포수의 미트와 마운드에 서 있는 앤서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가볍게 1 스트라이크를 잡은 앤서니는 이어진 2구로 몸쪽 존을 살짝 벗어나는 높은 포심을 던졌다.
자신이 노리는 직구가 들어오자 메리가 배트를 휘둘렀지만, 배트 위쪽에 맞으면서 뒤로 가는 파울이 되고 말았다.
[2 스트라이크로 몰리는 메리 선숩니다.]
[이렇게 되면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죠. 메리 선수는 앤서니 선수의 유인구를 조심해야 합니다.]
해설 위원의 말대로 메리는 앤서니가 다음 공으로 유인구를 던질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앤서니가 던진 커브에 황급히 배트를 휘둘러야만 했다. 각도를 보아하니 낮은 존을 통과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커트를 해야..!'
이대로 가다간 루킹 삼진을 당할 것으로 생각되었기에 메리는 커트를 하기 위해 배트를 휘둘렀다. 그러나 앤서니의 커브는 그녀의 생각보다 더 떨어졌고, 공을 배트에 맞추긴 했지만, 인플레이 타구가 되고 말았다.
[2루수 여유 있게 잡아서 1루에~ 아웃입니다! 메리 선수가 허무하게 아웃 당하고 말았군요.]
[메리 선수의 스윙이 조금 늦었죠. 거기에 존 아래에 떨어지는 유인구였습니다. 이러니 메리 선수가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낼 수가 없었죠.]
[2아웃 상황에서 3번 타자 1루수 배지나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5개의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아직 어린 선순데 이정도 하는거 보면 정말 앞으로 가 기대되는 선수죠.]
앞서 두 타자가 모두 변화구에 당하자, 배지나는 커브를 노리기로 마음 먹었다.
'좌타인 나에겐 슬라이더는 치기 힘들어... 보아하니 직구는 던질 것 같지도 않고. 그럼 커브를 노려야지.'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배지나에게 앤서니는 초구로 존의 상단을 통과하는 강속구를 꽂아 넣었다.
"스트라잌~!"
[시속 135km의 강속구를 꽂아 넣는 앤서니!]
[배지나 선수가 배트를 내밀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곧이어 앤서니가 던진 슬라이더가 바깥쪽 존을 통과하며 순식간에 카운트가 몰리게 되었다.
[빠르게 2 스트라이크를 잡는 앤서니 선숩니다.]
[정말 공격적으로 투구를 하네요. 자신감이 넘쳐요!]
이렇게 되자 배지나의 마음이 변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존을 통과할 것 같은 공들은 커트를 해가며 타석에서 버텨야 됬다.
'흐흐. 여기서 너가 원하던 커브를 던져줄게~ 다만 스트라이크는 아니야~'
앤서니가 던진 커브 공이 메리에게 던졌던 것처럼 높은 곳에서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보통의 커브보다 떨어지는 각이 더 컸기에 타자들은 존을 통과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3구는 파울이 되는군요. 배지나 선수가 아슬아슬하게 커트를 해냅니다.]
[방금전 공이 메리 선수가 당한 커브거든요? 이 공이 메리 선수는 인플레이 타구가 되면서 아웃되었고, 배지나 선수는 파울이 되서 살았네요.]
배지나가 친 타구가 라인을 살짝 벗어나자 앤서니는 속으로 아쉬워 하였다.
'칫~ 저 공이 라인 안으로 들어왔으면 평범한 땅볼인데...'
2 스트라이크로 카운트가 몰리게 되면 보통 타자들은 머리를 비우고 존 안에 들어올 것 같은 공들은 모조리 커트를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럴 경우엔 지은이 타자의 생각을 읽기가 힘들었다.
'모르겠다고..? 흠... 커브 다음엔 몸쪽 하이 패스트볼이다..!'
높은 코스의 직구와 높은 곳에서 뚝 떨어지는 커브의 조합은 마치 중국집에서의 짜장면과 짬뽕과도 같았다.
슈우욱~
앤서니가 던진 강속구가 높은 코스로 나오자 배지나의 배트가 한 박자 늦게 휘둘러 졌다. 유인구인 커브인지 확인하다가 늦은 것이다.
'크읏..!'
앤서니의 공을 힘으로 밀어친 배지나. 정타가 되진 않았지만, 행운이 따랐는지 1루수 키를 살짝 넘기는 안타가 되었다.
[1루수! 점프했지만 잡질 못하는군요! 2사 후에 캐슬걸즈의 첫 안타가 나옵니다!]
[몸쪽 직구를 힘으로 밀어냈네요. 여기서 배지나 타자가 힘이 조금이라도 딸렸다면 내야 플라이였을 겁니다.]
"흐음... 앤서니의 공을 힘으로 이겨내다니. 꽤나 재능이 있구만?"
1루수인 리사가 배지나를 글러브로 툭 치며 칭찬하자, 배지나가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존경하는 선수 중 한 명인 리사에게 칭찬을 받자 배지나의 표정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한편 앤서니는 배지나가 자신의 강속구를 힘으로 받아치자 기분이 살짝 나빠졌다. 더군다나 1루에서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자 더욱 짜증났다.
"세잎~"
"세잎~!"
몇 번 견제구를 날리며 배지나가 왔다 갔다 하게 하며 분풀이를 한 앤서니는 그 다음 타자인 장서연(E+)를 포심으로만 삼구 삼진을 잡으며 이닝을 마무리 했다.
1회 말. 발키리의 선두 타자로 나선 선수는 리사가 아니라 지아였다. 동국은 이제 더 이상 상대 팀이 리사를 고의 사구로 내보내지 않고, 정면 승부를 한다는 걸 깨닫고 그녀의 장타를 활용하기 위해 발 빠른 지아를 1번에 배치했다.
'너가 출루를 해야 경기가 잘 풀린다. 오늘 3출루 이상 하면 내가 너 소원 1개 들어줄게.'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동국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지아는 각오를 다졌다.
'내가 꼭 3출루 이상 해서 오빠에게 소원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