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7화 〉187회. (187/297)



〈 187화 〉187회.

16강전에서 매화 해토로에게 승리를 거둔 벨벳 발키리의 다음 상대는 용인 리그 팀과의 승부에서 승리한 안산 리그의 상록 메이든헤어이다.


"메이든헤어는 우리와의 경기에서 그들의 에이스인 좌투수 이명아 선수를 선발로 내세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회의실에서 열린 전력 분석에서 나연의 말에 지아가 이상하단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나연 언니. 그럼 메이든헤어는 16강전에서 1선발을 안 내세우고 2선발을 올린거야?"


지아의 말에 다들 그 점이 이상하게 생각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토너먼트 경기에서 1선발보다 2선발을 먼저 올린다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자, 이 자료는 메이든헤어의 상대 리그였던 용인 1부 리그의 성적표입니다. 보시다시피 1등 팀이 경기 리그 팀인 제일 크라운즈의 2군 팀입니다. 그래서 승강전에 2등 팀이 참가하게 된것이죠."

2군 팀이 승강전에 참가할 수 없기에 그보다 전력이 떨어지는 2등 팀이 승강전에 참가를 하게 된것이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2선발을 내세우고도 승리를  수 있던 것이다.

"다분히 저희 팀을 의식한 행동이라고   있죠. 그럼 선발 투수인 이명아 선수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이명아 선수는..."


동국은 옆에 앉아있는 지은의 배를 쓰다듬으며 설명을 듣고 있는 선수들을 둘러보았다.

리사와 벨리나가 제일 진지하게 듣고 있었고, 아연도 나름 열심히 듣고 있었다. 지아는 멍 때리고 있었고, 현아는 배를 만질 때마다 일부러 약한 신음을 내는 지은을 흘깃거렸다. 마지막으로 앤서니는 자신이 나가는 경기가 아니라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마 어딘가에서 놀고 있겠지...

"누나, 좀 조용히 해... 그리고 지아, 현아야. 집중해."

동국의 말에 멍 때리고 있던 지아가 흠칫 하더니 나연의 설명에 집중하였고, 현아 역시 고개를 돌렸다.


"여보, 이건 내가 내는게 아니야. 우리 아기가 아빠의 손길을 느끼는거라고. 그러니 이건 어쩔 수가 없는거지."


지은의 말도 안되는 소리에 동국은 기가 찼다. 동국이 보기엔 다른 부인들에게 자신이 임신한걸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런 억지 주장을 하는 지은의 모습이 귀여워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선 계속 배를 만졌다.


*
*
*

안산에 있는 상록 메이든헤어의  구장에서 펼쳐지는 8강전. 사실상 가장 강한 전력이라고 평가 받는 발키리와의 경기였기에 홈 팬들은  경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발키리만 이기면 승격이다! 이번엔 꼭 승격하자!!"

"저 연예인 오구단 같은 발키리를 무찌르고 4강전 가자~!!"

열정적인 홈 팬들의 함성에 비해 발키리 원정 팬들은 상대적으로 차분했다. 그들은 그저 선수들을 찍을 대포 카메라를 점검할 뿐이었다.


"어제 발키리 갤러리 봤냐? 앤서니 엄청 예쁘게 나왔더라."

"야, 예쁘게 나왔더라..? 인마, 우리 앤서니는 실물이 훨씬 예뻐..! 내가 진짜 오늘 앤서니님의 실물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선발이 벨리나님이라서..."


발키리 팬들이 두런두런 선수들의 외모를 찬양하고 있을때, 경기가 시작되었다.


[상록 메이든헤어의 선발 투수는 에이스 이명아 선숩니다. 시즌 14승 2패에 평균 자책점 1.23을 기록했습니다. 화요일 경기에 안 올리고 오늘 경기에 올렸다는 건 그만큼 벨벳 발키리의 전력을 경계하는 거겠죠?]

[예, 그렇다고 봐야죠. 거기에 화요일 경기의 상대가 상대적으로 전력이 떨어졌다는 것도 한몫 했다고 보여집니다.]

[발키리의 선두 타자는 리사 선숩니다. 리사 선수의 실력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매우 매우 뛰어나죠. 과연 메이든헤어에선 리사 선수를 고의 사구로 내보낼지 궁금하군요.]

[리사 선수가 뛰어난 선수이긴 하지만 이명아 선수도 리그에서 최고의 투수로 불리던 선숩니다. 아마 정면 승부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해설 위원을 말처럼 메이든헤어는 웬만하면 고의 사구를 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1번 타자를 내내 고의 사구로 내보낸다는 건 엄청 불리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명아는 포심과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를 자유자재로 다룰  있는 팔색조 투수이다. 거기에다 좌투수이기까지 하니 안산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이다. 이런 투수가 지레 겁 먹어 고의 사구를 주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1부 리그에선 변화구 각각이 완성도가 높았을지 몰라도 리사의 눈엔 그렇게 위력 있어 보이지 않았다.


딱~

[3구! 2루수 키를 가볍게 넘기는 안탑니다. 선두 타자가 출루에 성공하는 벨벳 발키리!]

리사가 아무렇지 않게 제구가 잘  체인지업을 때려 안타를 만들자 이명아는 1루로 뛰어가는 리사를 보며 분해 했다.


'그렇게 가볍게 안타를 만들다니... 지역 리그 실력이 어디 간건 아니란 말이지..? 그러나  역시 1부 리그 최고의 투수... 쉽게 지지 않는다..!'


[비록 리사 선수에게 안타를 허용하긴 했지만 메이든헤어는 본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타를 허용했는데 본전이요?]


해설 위원의 말에 캐스터가 의아해 하며 반문했다.


[안타를 맞으면 손해 아닌가요..?]


[하하, 보통 선수들이야 그렇지만 리사 선수는 다르지 않습니까. 리사 선수는 고의 사구 아니면 장타에요. 그런데 장타는 허용하지 않았으니 뭐, 본전인거죠.]


해설 위원의 말대로 리사는 오히려 장타를 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 하고 있었다.

리사가 안타를  상황에서 아연 역시 이명아의 직구를 밀어내 안타를 만들어 냈다. 무사 만루 상황에서 지아는 팀 내에서 가장 많은 타점과 가장 많은 희생타를 친 타자 답게 가볍게 타구를 외야로 보내 리사가 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였다.

2회  1아웃 상황에서 다시 리사의 타석이 되었다. 이명아는 이번에도 정면 승부 하였고,  결과는 1회와는 달랐다.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 외야수들 키를 훌쩍 넘어 펜스 근처에 떨어집니다! 리사가 여유 있게 2루에 도착합니다! 1사 이후에 2루타가 터지는 벨벳 발키리!]


[아, 지금도 제구가 잘 된 공이거든요? 이건 리사 선수가  쳤다고  수밖에 없어요.]


리사는 이명아의 백도어 슬라이더를 그대로 날려버렸고, 타구는 약간 우중간에 치우친 타구가 되었다. 우익수가 열심히 쫓아가 공을 던졌을 땐 이미 리사가 2루에 거의 다다른 상태였다.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보내는 환호와 원정 팬들의 함성에 근엄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준 리사. 그런 그녀의 표정에 여러 대포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졌다.

"어휴, 포스가 장난이 아니야, 우리 여왕님."


"이게 우리 여왕님의 위엄이지. 장타를 치고서 아무렇지 않다는 저 표정..! 크으~! 취한다~!"


이후 리사는 아연의 희생 플라이로 여유 있게 홈을 밟아 한 점을 더 추가했다.

순탄하게 발키리쪽으로 경기가 흐르나 싶었으나, 메이든헤어는 곧바로 반격을 하였다.

메이든헤어는 리그에서 막강한 위력을 과시한 1, 2, 3번 트리오가 있다. D급인 좌타자 박만영, D+급인 우타자 정주현, D급인 좌타자 홍창화가 주인공들이다.

1회에는 홍창화에게만 안타를 허용하고서 나머지 타자들을 잘 막았던 벨리나였지만 2회에는 1번 타자 박만영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잡아 당긴 타구가 1루수 키를 넘었습니다! 깔끔한 안타! 1사 1루 상황에서 2번 타자 정주현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첫 타석에선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났었는데, 과연 안타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평상시라면 지은이 타자가 노리는 공을 알려줬을터. 그러나 지금 지은은 집에 머물고 있어서 벨리나, 자신이 생각을 해야 됬다.


'첫 타석에선 커브를 걷어 올려서 뜬공이 되었지... 그럼 직구와 스크류볼 위주로 승부를 봐야겠다...'

투구 패턴을 생각한 벨리나가 초구로 높은 코스의 포심을 던졌다. 존의 상단 쪽에 꽂히는 하이 패스트볼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커브, 스크류볼의 조화 때문에 벨리나는 주로 하이 패스트볼을 많이 던졌었다.

그러나 장타를 노리고 있던 정주현에게 높은 포심은 딱 원하던 먹잇감이었다.


딱~!

[잘 맞은 타구!! 좌익수가 쫓아갔지만 어림 없는 타굽니다!! 1루 주자 2루 돌아 홈으로! 타자 주자 2루까지~!! 들어갑니다!! 1타점 2루타!! 상록 메이든헤어가 1점을 만회합니다! 스코어 2-1!]


[아... 장타를 노리고 있던 정주현 선수에게 높은 코스는 좀 안일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완전히 높으면 모를까 존에 걸치는 공이었거든요?]


[이제 득점권 상황에서 홍창화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홍창화 선수가 여기서 타점 하나 올려 주기를 홈 팬들은 간절히 바랄 것 같습니다.]

캐스터의 말대로 경기장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홈 팬들은 그녀가 최소한 희생 플라이라도 쳐주기를 바라며 목이 터져라 그녀를 응원했다.

"홍창화! 안타 하나면 동점이다!!"

"제발 외야로만 날려줘~!!"


다음 타자가 E 등급의 1루수였기에 벨리나는 유인구 위주로 승부를 펼쳤다. 여차하면 그녀를 거르고 다음 타자와 승부를 봐도 되기 때문이다.

동국 역시 수비수들을 전진 배치 시키며 실점을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딱~

[높게 뜬공~! 우익수 잡았고, 2루 주자 태그업! 홈에서~!! 세잎~!! 세잎입니다!! 기어코 동점을 만드는 메이든헤어! 홈 팬들이 경기장이 떠나가라 함성을 질르는군요.]

[벨리나 선수는 걸러도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 유인구 위주로 공을 던졌거든요? 근데 방금 전 공은 커브였는데 살짝 몰렸어요. 그리고 그 공을 홍창화 선수가 놓치지 않았구요.]

[공을 잡은 최지아 선수가 강한 어깨로 한번 노려봤지만 정주현 선수가 포수의 미트를 피하면서  플레이트를 쓸었습니다.]

[일반적인 포수라면 충분히 승부가 가능했지만, AI 포수라서 좀 아쉬웠어요.]


[자, 이렇게 메이든헤어가  점 추가하면서 승부는 다시 원점이 되었습니다.]


동국은 환호하는 홈 팬들을 바라보며 오늘 경기가 상당히 힘든 싸움이 될 것이란 걸 느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