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176회.
풀 카운트 상황에서 다물 우드페커스의 선발 투수 김가연이 던진 공의 구종은 포크볼이었다. 풀 카운트에서 유인구를 던지는 과감한 선택을 한것이다.
다만 그 포크볼이 제대로 떨어지지 못하고, 밋밋하게 풀려 버렸다. 그리고 이런 포크볼은 아연에게는 그저 배팅볼이었다.
따아악~!!
[쳤습니다~!!! 좌익수 뒤로, 좌익수 뒤로~!!]
큰 타구음과 함께 타구가 쏜살같이 하늘 높이 뻗어 갔다. 김가연은 맞자마자 그대로 주저 앉아 버렸고, 아연은 자신이 친 타구를 바라보고선 방망이를 무심하게 던져버렸다.
[아, 넘어갔어요.]
[담장, 넘어갑니다~!! 장아연 선수가 0대 0의 팽팽한 승부에서 투런 홈런을 쏘아 옵립니다~!!!]
여유롭게 베이스를 돌던 아연은 2루 베이스를 밟으며 환호하는 원정 팬들에게 손 키스를 날렸다. 그러자 팬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포수를 지나쳐 홈 플레이트를 밟은 아연은 다음 타석을 기다리고 있는 리사에게 의기양양하게 다가갔다.
"마! 니 홈런 쳐 봤나!"
1회 초에 리사가 아연에게 홈런도 못 치냐며 잔소리를 했었다. 그리고 그걸 김해에 있었을 때 배웠던 사투리로 되 갚은 것이다.
"니도 홈런 치고 온나!"
부들부들 떠는 리사의 어깨를 두드려준 아연이 지아와 함께 위풍당당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지은과 벨리나의 축하를 온 몸으로 받는 그녀들의 모습에 리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수모... 홈런으로 갚아주겠어..!'
[하하, 발키리 더그아웃에서 아연과 지아 선수를 격하게 반겨주네요.]
[리사 선수와도 대기 타석에서 뭐라 말을 주고 받고선 들어가던데 아마 리사 선수가 아연 선수를 축하해 준거겠죠? 보기 좋네요.]
리사는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녀가 홈런을 칠 기회는 오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우드페커스에서는 고의 사구로 그녀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인상을 찌푸리며 1루로 걸어가는 리사. 그런 리사를 아연이 씨익 웃으며 바라보았다.
[4회 초, 1사 1루 상황. 타석에는 1번 타자 주현아 선수가 들어섭니다. 오늘 3타수 무안타에 병살 1개를 기록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보통 병살타는 발이 느린 선수들이 주로 치지 않나요? 그런데 보면 의외로 주현아 선수가 병살타가 꽤 있습니다?]
현아의 기록지를 살펴보던 캐스터가 의아해 하며 해설 위원에게 물었다. 그에 해설 위원이 우드페커스의 수비 배치를 가리켰다.
[그건 상대 팀들의 수비 시프트 때문입니다. 보시면 외야수까지 내야 가까이로 배치된 극단적인 전진 수비를 펼치고 있는데, 이게 현아 선수가 외야까지 가는 타구를 날린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저렇게 수비수들을 배치 시킬 수가 있고, 땅볼을 쳤을 경우 빠르게 더블 플레이가 가능한 거죠.]
[그럼 주현아 선수가 타구를 외야로 보내기만 하면 되겠네요?]
[그렇죠. 주현아 선수는 최대한 타구를 멀리 보내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캐스터와 해설 위원이 말하는 내용을 동국과 현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평생 배트 한번 안 잡아 봤고, 원래 팔 근육이 별로 없었기에 아직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고 있질 않았다.
"스트라잌."
"스트라잌~"
"볼."
"파울~"
"파울~!"
"볼."
"파울~"
하지만 타석에서의 끈질긴 모습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컨택에는 자신이 있으니 배트를 가볍게 쥐고선 갖다 대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힘에 밀려 저절로 파울이 되었다.
[역시 상당히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주현아 선숩니다. 지금 공을 7개나 던졌거든요?]
[김가연 선수의 투구 수가 벌써 53개나 됩니다. 5회를 생각하면 투구 수가 많은 편이에요.]
아닌게 아니라 투수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아주 얄밉게 툭툭 커트만 하고 있으니 약이 올랐다.
'진짜 마음 같아선 몸에 맞춰버리고 싶네..!'
하지만 다음 타자가 2루타를 친 지아라는걸 생각하면 1사 만루는 상당히 위험했다. 어떻게든 2아웃을 만들고 지아를 상대해야 했다.
[2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제8구!]
김가연이 던진 공이 존 아래를 향해 날아왔다. 현아는 이번에도 가볍게 맞춘다는 생각으로 배트를 내밀었다.
'어..?'
그러나 공은 생각보다 느리게, 그리고 더 가라 앉았다. 그에 어떻게든 배트를 움직여 공을 맞추려 했으나, 아직 그 정도로 배트 컨트롤 실력이 늘진 않았었다.
[스윙~!! 삼진 아웃!! 김가연이 삼진을 잡고 포효합니다!]
[아, 주현아 타자가 웬만한 존 근처로 오는 공은 다 커트를 하고 있으니깐, 아예 원바운드 되는 포크볼을 던졌어요. 그리고 거기에 주현아 선수가 속았네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되돌아 가는 주현아 선수. 이제 다음 타자는 최지아 선숩니다.]
무사 1루에서 2사 1루가 된 상황. 김가연은 그 기세를 몰아 지아를 외야 뜬공 처리하며 더 이상의 추가 실점을 하지 않았다.
4회 말.
[쳤습니다! 깨끗한 안타! 1사 이후에 출루에 성공하는 우드페커스!]
[김서빈 선수, 오늘 멀티 히트에요. 타격감이 상당히 좋아 보이네요.]
우드페커스의 2번 타자, 김서빈이 투수 키를 넘기는 중전 안타를 뽑아 냈다. 앤서니가 공을 잡으려고 글러브를 뻗어 봤지만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3번 타자, 1루수 유민아의 타석.
[아! 공이 뒤로 빠졌습니다!! 포수가 공을 주우러 가는 사이 1루 주자는 2루로 여유 있게 들어갑니다!!]
[포일로 기록되는 군요. 앤서니 선수 상당히 아쉬워 합니다.]
앤서니가 던진 커브를 AI 포수가 잡질 못하면서 공이 뒤로 빠지고 말았다. 1사 1루에서 순식간에 1사 2루, 실점 위기가 된것이다.
[쳤습니다! 높이 뜬 공, 좌익수 잡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2루 주자, 홈으로 뜁니다. 유민아 선수의 희생 플라이로 득점에 성공하는 우드페커스! 점수 2대 1이 되었습니다.]
[앤서니 선수의 첫 실점이군요. 포수의 포일로 기록돼서 자책점은 아니지만, 상당히 아쉽겠네요.]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은 앤서니가 털레털레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언니... 얘 빨리 낳아..."
"어, 그, 그래..."
벤치에 털썩 앉은 앤서니가 지은의 볼록한 배를 보며 힘없이 말했다. 앤서니의 아쉬움 가득한 분위기에 괴팍한 지은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우드페커스의 만회점으로 인해 2대 1인 상황. 분위기는 상당히 묘했다. 우드페커스 팬들은 5회 초를 잘 막고, 5회 말에 역전을 노리는 분위기였고, 반대로 발키리 팬들은 5회 초에 분위기를 반전시킬 추가점이 나오길 희망했다.
그리고, 선두 타자로 나선 아연의 뜬공과 AI 타자의 삼진으로 2아웃이 되자, 분위기는 우드페커스 쪽으로 넘어가는듯 했다.
비록 리사가 고의 사구로 1루로 나가 있긴 했지만, 다음 타자가 오늘 4타수 무안타에 삼진 1개, 병살 1개를 기록한 현아였기 때문이다.
타석에 들어서는 현아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다. 벌써부터 수비수들의 긴장감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이대로 안타 없이 경기를 끝낼 순 없어..! 반드시 안타를 치고 말겠어..!'
배팅 박스에 들어서기 전 현아는 배트를 힘차게 몇 번 돌리고선 타격 자세를 잡았다.
'하, 참 내... 무슨 홈런이라도 칠 것처럼 그러네... 저러고선 또 잔뜩 커트나 하겠지~'
마운드에서 그 광경을 바라본 김가연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외야로 공을 날리지도 못하는 년이 표정은 마치 홈런 타자의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현아가 타격 자세를 잡자, 김가연은 바로 공을 던졌다. 그녀가 던진 공은 힘 빼고 던진 직구.
투구 수가 많기도 하고, 현아는 2스트라이크 이전까진 배트를 내질 않기 때문에 그냥 마음 편히 던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당히 안일한 판단이었다. 현아는 김가연의 생각과는 다르게 초구부터 바로 배트를 휘둘렀다.
딱~!
[지금 김가연 선수의 투구 수가 60개가 넘었는데요, 주현아 선수가 얼마나 더 늘려ㅈ, 쳤어요!! 쳤습니다! 우익수 키를 넘어가는 안타!
우익수, 허겁지겁 주워서 바로 2루! 던지질 않는군요. 주자, 2루에서 멈췄군요.]
[발 빠른 주자였으면 홈까지 노려볼만 했지만, 1루 주자가 리사 선수였어요. 원래 걸음이 빠른 편이 아니었고, 부상 당한 경험도 있어서 그런지 안전하게 2루에서 멈췄네요.]
"끼얏호~!"
현아는 1루 베이스를 밟고 나서는 원정 응원석을 향해 어퍼컷 세레머니를 날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에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발키리 팬들. 반대로 홈 팬들은 이닝을 끝내야 될 때 끝내지 못한 것에 대해 불안해 했다.
현아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자 우드페커스 코치가 바로 마운드를 방문했다. 하지만 투수를 교체하지는 않았는데, 비록 투구 수가 많긴 하지만, 다음 타자인 지아가 오늘 4타수 1안타로 그리 타격감이 좋진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1안타가 장타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 타구! 좌익수 앞에 떨어집니다! 2루 주자 이미 홈을 밟았고, 1루 주자! 홈으로~! 홈에서~!! 세잎~!! 세잎입니다! 최지아가 승부에 쐐기를 박는 2타점 적시타를 때려냅니다! 스코어 4대 1!]
2아웃 상황에서 공이 맞자마자 주자들은 모두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발 빠른 현아가 그대로 홈에서 살아남으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발키리 쪽으로 넘어갔다.
이후 아연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며 다시 만루를 만든 김가연은 리사와 승부를 하지 않고 고의 사구를 내주면서 다시 1점을 실점했다.
우드페커스는 5회 말, 마지막 공격에서 출루를 하지 못하며 삼자 범퇴로 끝나고 말았다.
[주현아가 타구를 잡으며 경기가 종료됩니다. 최종 스코어 5대 1. 벨벳 발키리가 승리하며 9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앤서니의 구위에 우드페커스 선수들이 별다른 활약을 해주지 못했어요. 그나마 포수의 포일로 1점을 얻은게 전부거든요?
반면에 김가연은 4회까지는 2실점으로 막강한 발키리의 타선을 상대로 그래도 선전하고 있었는데, 5회에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어요.
이닝을 끝내야 할때, 주현아 선수에게 안타를 허용한 것이 컸다고 보여집니다.]
[저희는 목요일, 오북 경기장에서 오북 오구단과 자동 오구단의 경기 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