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170회. 1부 리그
오늘 자동 오구단의 선발 투수는 팀의 에이스인 우투수, 최지선으로, 포심과 체인지업, 커브를 던진다.
구종 가치는 거의 다 고만고만한 수준으로 실력 등급은 리그 평균인 E급 이었다. 현아를 빼고선 넉넉하게 실력들이 앞섰다.
그래서 그런지 자동 오구단은 우리 팀 타자들을 상당히 경계하였다. 선두 타자로 나선 지아에게 안타를 허용하자, 곧바로 다음 타자인 리사를 고의 사구로 보냈다.
"치잇..."
오늘도 고의 사구로 1루로 출루하게 되자, 리사는 아쉬움에 혀를 한번 차고선 1루로 걸어 나갔다. 그녀는 이대로 계속 고의 사구로 내보내지다간 타격 감을 잃어버릴까 걱정이었다.
여기까진 우드페커스도 비슷했지만, 자동 오구단은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3번 타자인 아연이도 고의 사구로 내보냈다. 무사에 밀어내기로 1점을 내준것이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며 아연이 1루로 걸어 나갔고, 그와 동시에 2루에 있던 지아가 홈으로 걸어 들어갔다.
"허, 저렇게까지 한단 말이야..?"
아연을 고의 사구로 내보내는 것을 보며 지은이 중얼거렸다. 전력 분석용 촬영을 하고 있던 나연 역시 자동 오구단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전력 분석한 느낌이네요..."
밀어내기로 득점에 성공한 지아도 연신 고개를 갸웃 거리며 더그아웃으로 되돌아 왔다.
"쓰읍... 무슨 의돈지 모르겠네... 설마 앤서니에게 점수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걸까..?"
이렇게 하면 대량 실점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찔끔 식 실점을 계속 하게 된다. 지금 발키리의 선발 투수가 앤서니였기에 실력이 떨어지는 자동 타자들이 그녀에게서 점수를 내기 힘들었다.
1대 0으로 지나, 5대 0으로 지나, 지는 건 똑같았기에 더욱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아의 중얼거림에 대한 답은 곧바로 자동 팀이 보여주었다. AI 타자가 타선에 들어서자 내야수들이 전진 배치를 하였다.
그리고 투수는 타자에게 계속 체인지업만을 던졌다. 명백히 땅볼을 유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AI 타자는 땅볼을 쳤고, 최지선이 곧바로 잡아서 홈으로 송구, 2루 주자를 아웃시켰다. 이어 포수가 1루로 송구, 타자 주자를 아웃시켰다.
투수-포수-1루수로 이어지는 깔끔한 더블 플레이에 홈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왔다. 반대로 발키리 선수들은 귀신 같이 발생한 병살타에 침음을 냈다.
이어진 현아의 타석에서 땅볼을 유도해 3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은 자동 오구단. 반대로 발키리는 무사 만루의 기회에서 밀어내기 타점만 올리며 득점을 끝냈다.
"설마 계속 이렇게 진행되는 건 아니겠지..?"
지은의 이런 중얼거림은 현실이 되었다. 2회 초, 다시 선두 타자로 나선 지아가 외야 뜬공으로 아웃되자, 자동 오구단은 더욱 빠르게 리사와 아연을 고의 사구로 내보냈다.
1사 만루의 상황에서 다시 AI 타자의 차례가 되었고, 1회 초와 마찬가지로 병살타를 치며 이닝이 종료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지은이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AI 포수가 저렇게 도움 안되는 행동을 할 때마다 괜히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이거 참... 차라리 가만히 삼진이나 당하라고 해야 하나..."
"선발 투수 최지선의 체인지업이 일반 타자들에겐 별로 위력적이지 않지만, AI 타자에겐 땅볼 유도로 제격인걸 몰랐네요..."
지은의 중얼거림에 자동 팀의 투수인 최지선의 체인지업 영상을 살펴본 나연이 죄송해 하며 고개를 숙였다.
전력 분석원이라면 이런 상황을 예측을 했어야 했는데, AI 타자에 대한걸 생각하지 못한게 패착이었다.
"맞아, 앞으ㄹ... 읍읍..!"
"하하, 앞으로 잘 하면 되죠. 그렇죠?"
자책하는 나연에게 한 소리 하려는 지은의 입을 막은 벨리나가 그녀를 위로했다. 어차피 앤서니를 자동 타자들이 공략할 수 있을 리 없었고, 타자들도 충분히 점수를 낼 수 있었으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보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 거 같나요. 무슨 의견이 있나요?"
"AI 타자는 그냥 삼진 처리 하고, 현아 선수의 타석 때 런 앤 히트 작전을 펼치면 충분히 가능 할 것 같아요. 몇 번 그렇게 해서 성공한 전례도 있고요."
현아가 펼치는 런 앤 히트 작전은 일반적인 자살 스퀴즈 번트와는 다르게 번트를 댄 타자 역시 살아야 됐다.
물론 1사 상황에선 희생 번트여도 상관 없지만, 2사 상황에서는 타자도 살아야 됬다. 그리고 저번 경기에서 이 작전이 성공 하기도 했고 말이다.
나연의 의견에 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 경기에서도 그렇게 해서 점수를 올린 적이 있는 만큼 괜찮은 의견인 것 같았다.
"그럼 조금 있다가 동국에게 한번 말을 해봐야 겠다."
마침 복도 문을 열고 앤서니와 동국이 더그아웃으로 되돌아 왔다. 양기를 가득 흡수한 앤서니와 선수들이 2회 말 수비를 위해 그라운드로 향하자 동국이 벤치에 털썩 앉았다.
"아이고~ 힘들다."
"동국, 우리 대책을 한번 세워야 할 것 같아."
지은이 동국의 옆자리에 앉아 말하자, 동국이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손을 그녀의 뒤쪽으로 뻗었다. 그리고는 지은의 바지 안쪽으로 손을 집어 넣어 그녀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흐읏..!"
탱글한 엉덩이의 촉감이 마치 찹쌀떡을 만지는 듯 했다. 동국이 지은의 엉덩이를 만지자, 경기를 바라보던 벨리나와 너튜브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던 재은은 은근 힐끔거리며 동국의 손을 바라보았다.
반면에 나연은 앤서니의 투구 동작을 촬영에 집중하느라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무슨 대책? 누나가 임신 때문에 섹스를 하지 못하는 문제..?"
동국의 손가락이 그녀의 엉덩이 골을 스윽 문지르자 지은의 몸이 살짝 떨려왔다.
"으읏... 아니, 멍청아. 지금 AI 타석 때 2번이나 병살타가 나왔잖아. 병살타 때문에 계속 흐름이 끊기잖아."
"아아, 그 얘기 하는거였어? 그래서, 대책이 있어?"
"어, 나연이가 AI 타자는 삼진 당하게 하고, 현아의 타석 때 런 앤 히트 작전을 쓰자네? 저번처럼? 여보는 어떻게 생각해?"
그에 동국은 지은의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을 때고선 팔짱을 끼며 고민을 했다. AI 타자가 땅볼 말고 뜬공이나 안타를 칠 확률, 그리고 현아가 내야 안타를 칠 확률 등을 생각해 보았다.
"뭐,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렇게 하자."
"어? 어, 그래, 알았어."
동국의 스킨십이 멈추자 은근 아쉬워하던 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앤서니의 폭풍 3연속 삼진으로 2회 말이 종료되었다.
동국은 의기양양하게 더그아웃으로 되돌아 오는 앤서니를 환하게 미소 지으며 반겼다.
3회 초, 선두 타자로 현아가 나섰다. 그녀가 출루에 성공한다면 이후 상위 타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중요한 타석이었다.
내,외야수들은 현아의 내야 안타를 의식해서 상당히 앞쪽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동국은 현아에게 어깨동무를 하고선 손으로 내야수들을 가리켰다.
"현아야, 정타를 만들다기 보단 번트 하듯 툭 밀어쳐봐."
"번트..?"
"그래, 번트. 변화구들 말고, 투수가 직구를 던질 때 내야수 키를 넘긴다고 생각하고 한번 공을 띄워봐. 알았지?"
"응, 알았어..!"
그리고 직구가 올 때까지 기다리던 현아는 투수가 직구를 던지자 바로 번트 모션을 취했다. 그에 내야수들이 앞쪽으로 달려나왔다.
통~
현아의 배트에 맞아 높게 떠오른 타구. 하지만 현아의 바람과는 다르게 너무 높게 떠올랐다.
"아웃~!"
그대로 2루수가 공을 잡으며 내야 뜬공으로 아웃 된 현아.
"히잉..."
그녀는 2루수 글러브를 한번 바라보고선 아쉬워 하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하지만 조금 있다가 아쉬움을 만회할 기회가 한번 더 찾아 왔다.
지아의 2루타와 리사, 아연의 연속 고의 사구로 1점을 얻은 상황에서 작전대로 AI 타자가 그저 공을 바라만 보며 루킹 삼진을 당했다.
그리고 2사 만루 상황에서 현아가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여기서 추가 실점을 하게 된다면 승부가 완전히 발키리 쪽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에 자동 선수들은 필사의 각오로 경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건 현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답답할 정도로 전진 배치 되어 있는 내야수들 때문에 계속 아웃 되고 있는 상황에 그녀는 새로운 방법으로 활로를 뚫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 타석에선 너무 띄우는 데만 집중했어. 이번엔 결대로 밀어 친다고 생각하고...'
저번 타석에선 선두 타자로 나섰기에 원하는 공을 노려서 번트를 시도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작전이 걸려 있기에 초구부터 배트를 내야 했다. 그래서 더욱 정확하게 번트를 대야 한다.
마운드에 서 있는 최지선이 긴장된 표정으로 와인드업을 하고선 공을 던졌다. 그녀가 던진 구종은 직구처럼 오다가 가라 앉는 체인지업 이었다.
낮게 날아오는 공이었기에 푸시 번트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대로 공을 흘려 보내기엔 이미 2루 주자인 리사가 홈으로 달려오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파울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럴 경우 자동 팀에서 작전을 눈치채 2루 주자가 견제로 인해 제때 뛸 수 없을 수 있었다. 아니면 피치 아웃으로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다 허무하게 아웃 당할 수도 있었다.
'최대한 세게 치자..!'
결국 푸시 번트는 포기한 현아가 번트 자세에서 어정쩡한 타격 자세로 자세를 바꿔 공을 쳤다.
틱~!
배트에 맞은 공이 그대로 2루수와 투수 사이로 굴러갔다. 그에 2루수가 서둘러 달려가 손으로 공을 잡고선 그대로 1루로 던졌다.
1루에는 우익수가 포구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빠르게 달려나간 현아가 우익수가 공을 잡으려는 모습에 그대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였다.
촤아악~!
공과 거의 동시에 베이스를 터치한 현아. 관중들과 선수들의 시선이 심판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