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6화 〉166회. (166/297)



〈 166화 〉166회.

"좋아, 벨리나. 앞으로 그렇게 당당하게 해."


"고마워요, 오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선수들을 동국이 격려했다.

"지아, 너 수비 아주 좋았어."


"히힛~! 내가 또 잘났지~"

"그리고, 현아 너도. 빠르게 타구를 쫓아가는 모습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어."


동국의 칭찬에 현아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슬쩍 동국의 사타구니를 움켜쥐고 가는 현아. 마치 이렇게 좋아진게 다 동국의 자지 덕분이라는 것 같았다.

1회 말, 우드페커스의 좌투수 안소연은 선두 타자로 나선 지아를 땅볼로 잡아내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그리고 1아웃, 주자가 없는 상황, 리사의 타석에서 안소연은 호기롭게 리사에게 고의 사구를 주지 않고 정면 승부를 했다.


아무래도 우드페커스 벤치에서도 한번 리사의 실력이 어느 정도까지 회복이 됐는지 확인을 해보는 측면도 있었을것이다.

"스트라잌~!"

바깥쪽 직구가 존을 통과하자 리사가 마운드에 있는 투수를 한번 바라보고는 슬쩍 웃었다.


베팅 박스 앞 뒤를 배트로 쿡쿡 찌른 리사가 방망이를 꽉 쥐고선 타격 자세를 잡았다.


자세를 잡은 리사에게서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지자 안소연은 침을 꿀꺽 삼키고선 와인드업을 했다.

따아악~!!

그리고 리사는 안소연의 우타자 결정구인 체인지업을 그대로 담장 밖으로 넘겨버리며 우드페커스 벤치에 자신의 실력을 뽐냈다.


담장 밖으로 향하는 타구의 궤적을 확인한 리사가 손목 스냅을 이용해 배트를 던지고선 여유롭게 1루를 향해 출발했다.

"리사 언니, 멋있다아~!!"

앤서니의 환호성과 지은의 엄지 척에 시크한 표정으로 두 손가락 거수경례를  리사의 모습에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잿빛 머리를 휘날리며 베이스를 도는 리사의 모습은 마치 오만한 야구의 여신과도 같았다.  광경을 발키리 선수들과 홈 팬들은 기뻐하며 바라보았고, 우드페커스 선수들과 원정 팬들은 침울하게 쳐다보았다.

리사에게 홈런을 얻어맞아 정신이 혼미했는지, 다음 타자인 아연에게 장타를 허용하며 1사 2루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AI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한숨 돌린 우드페커스는 이어지는 타석에서 5번 타자 주현아를 상대하게 되었다.

동국으로부터 기를 잔뜩 받고서 타석에 들어선 현아. 그녀는 동국으로부터  앤 히트 작전을 부여받았다.

한마디로 2루에 있는 아연이 홈으로 뛰면 자신이 번트를 대든  하든 무조건 공을 치는 작전이었다.

남들이 보면 2아웃 상황에서 무슨 이상한 짓거리냐고 그러겠지만, 동국은 현아의 빠른 발을 믿고 있었다.


동국이 생각하기에 아연이 홈에서 아웃 될 가능성이 현아가 1루에서 아웃 될 가능성보다 더 많아 보일 정도였다.

초구부터 공에 배트를 갖다 대야 하는 현아는 긴장을 하며 타격 자세를 취했다.

'한번에 바로 성공한다..!'

안소연이 공을 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2루에 있던 아연이 홈으로 쇄도했다. 안소연이 던진 공은 몸쪽으로 오다 존을 통과하는 슬라이더였다.
현아는 침착하게 푸시 번트 하듯 방망이를 잡고선 1루 선상으로 공을 밀었다.


"저쪽!"


공이 떼굴떼굴 굴러가자 안소연이 바로 공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나 좌타자였기에 투구 동작으로 인해 약간의 딜레이가 발생했다.


그걸 아는 안소연이 공을 잡자마자 1루를 향해 송구를 했다. 하지만 1루수가 공을 잡았을 때는 이미 현아가 베이스를 밟고 난 뒤였다.

"세잎~!!"


"우와아아!!"


저번 1차전에 이어 이번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자 관중들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박수를 보냈고, 안소연을 비롯한 우드페커스 선수들은 허탈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약간은 운이 좋게 점수를 얻고 나서 추가 점수를 낼 수 있는 찬스가 찾아 왔다. 다음 타자가 바로 지아였는데, 지아 다음 타자가 리사이니, 지아가 출루만 하게 된다면 추가 득점을 할 확률이 대폭 상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점을 우드페커스 배터리도  알고 있었다. 안소연은 현아가 도루를 시도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으며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했다.

그리하여 2사 2루, 1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안소연의 결정구인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에 지아의 배트가 따라 나왔다.

'으읏..! 어떻게든 맞춘닷..!'

자세가 무너지면서 배트에 공을 맞춘 지아. 그 바람에 타구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고, 공은 2루 선상을 따라 굴렀다.

지아는 1루로 전력 질주를 하면서 제발 공이 파울이 되거나 아니면 2루수의 송구가 빗나가길 빌었다.

지아의 주력도 꽤나 빨랐기에 2루수의 대처가 조금만 늦어도 충분히 방금 전처럼 내야 안타가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승기가 완전히 발키리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우드페커스의 2루수는 팀 내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김서빈이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맨손으로 공을 잡아서 바로 1루로 쏘았다.

"아웃!"


간발의 차이로 아웃이 되자 달리던 속도를 줄이며 지아가 눈을  감은 채 아쉬워했고, 이 상황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던 안소연은 자신의 글러브를 팡팡 치며 기뻐했다.

2회 초, 2아웃까지 잘 잡은 벨리나는 2번 타자인 김서빈에게 안타를 허용 했다. 꽤나 큰 타구음을 내며 외야로 날아가는 공에 장타를 직감한 벨리나.


타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열심히 공을 쫓아가고 있는 현아의 뒷모습이 보였다. 맨 처음 타구 판단이 아쉬워서 바로 뒤로 쫓아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빠른 발로 공이 떨어지자 마자 바로 커트 할 수 있었다.


남들이 보면 2루타를 단타로 막아낸 것에 대해 감탄할 수 있었지만, 당사자인 현아는 처음 타구 판단이 아쉽게 느껴졌다.


'타구음이 듣자마자 뒤로 뛰어갔으면 잡을  있었는데...'


그리고 이러한 아쉬움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곧바로 찾아왔다. 다음 타자인 유민아가 친 타구가 다시 좌측 방향으로 날아간 것.


타구의 방향을 보면 점차 파울 라인 바깥으로 흘러가는 궤적이었다. 그러나 동국이 현아와 지아의 수비 범위를 생각하고 외야 쪽을 꽤나 넓게 해 놨기에 경기장 바깥으로 떨어지진 않을 듯 보였다.

'내가 잡는닷..!'

빠르게 공을 쫓아간 현아가 손을 뻗었고, 이내 공이 그녀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펜스와 부딫혔다.

제발 타구가 잡혔기를 바라는 벨리나와 제발 타구를 잡지 못했길 바란 유민아의 시선 속에 현아가 글러브를 들어 올렸다.


"이예에에에~!!"


현아의 글러브 안에 공이 잡혀 있자, 벨리나가 환호성을 지르며 더그아웃으로 향했고, 유민아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야, 현아, 너 아주 나이스 수비였어!"


더그아웃 입구에서 현아가 오길 기다린 벨리나가 현아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칭찬하자, 현아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언니. 그 정도면 다들 잡을  있는걸. 그보다 그 전 타구를 잡을 수 있었는데, 안타가  게 아쉽지."


현아의 말에 벨리나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수비 범위가 넓은 외야수들이 상당히 든든하게 느껴졌다.

3회 초, 발키리의 위기가 찾아 왔다. 선두 타자로 나선 한태연에게 안타를 허용한 벨리나는 이후 5번 타자에게 뜬공을 유도하며 1아웃을 잡았다.

그러나 다음 타자인 E+ 등급의 최원주에게 다시 안타를 허용하며 1사 만루가 되었다. 그리고 타석엔 벨리나보다 1등급은 높은 김서빈이 들어섰다.

"벨리나, 우리 팀 외야수들 수비 범위가 엄청 넓은  알고 있지?"


흐름을 끊고자 마운드를 방문한 동국이 벨리나에게 묻자, 벨리나가 웃으며 슬쩍 고개를 돌려 외야에서 어슬렁 거리는 현아와 지아를 바라보았다.

"그럼요. 장타 허용할 걱정 하지 말라는 거죠?"


"그래, 넘어가지만 않으면 되니깐, 마음 편히 가져. 알겠지? 어차피 리사랑 아연이 점수를 내줄꺼야."

"그래, 나만 믿으라고."


동국의 말에 가까이로 다가와 있던 아연이 소리쳤다. 표정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내야수의 모습에 벨리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더라도 단타야. 편하게 던지자고.'

그리고 그와 동시에 김서빈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장타 노리다간 외야수에게 잡힐 분위기야. 그렇다고 희생 플라이 노리기에는 발키리 타선이 너무 막강해... 정확히 컨택 한다고 생각하고, 단타를 노리자.'

이러한 투수와 타자의 생각이 일치해서 그런지, 벨리나가 던진 직구를 김서빈은 가볍게 밀어쳤다. 리사의 키를 살짝 넘겨 지아 앞에 떨어진 타구.

발 빠른 1루 주자가 2루를 거쳐 홈까지 시도할까 했지만, 지아의 강력한  송구에 발길을 멈췄다.


맞아도 단타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진짜로 안타를 맞자, 벨리나는 아쉬움에 마운드의 흙을 발로 찼다.

1루수 유민아가 타석에 들어서 타격 자세를 잡자, 벨리나는 지은의 사인을 확인했다.

'직구를 노린단 말이지... 그럼 변화구 위주로 승부해야지...'

바로 직전의 안타도 직구를 쳐서 만들어진 안타기에 벨리나는 더욱 커브와 스크류볼 위주로 던지기로 마음 먹었다.

"스트라이크~!"


벨리나의 커브가 스트라이크 존의 낮은 코스를 통과했다. 그리고 보여주기 식으로 던진 하이 패스트볼.

유민아의 배트가 반쯤 나왔다 들어갔다. 그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벨리나가 살짝 혀를 찼다.


1볼 1스트라이크 상황, 벨리나는 바깥쪽에서 가운데로 떨어지는 백도어 스크류볼을 던졌다.

'아앗..!'


하지만 약간 밋밋하게 들어간 공. 이 실투성 공을 유민아가 놓치지 않고 배트를 휘둘렀다.

딱~!

그녀가 잡아 당긴 타구가 총알 같이 아연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연이 몸을 날렸지만 이미 타구는 지나가고 난 뒤였다.

상당히 빠른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여서 1루 주자가 홈까지 들어오기엔 무리였지만, 동점이 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아직도 1아웃 상황이었다.

그리고 타석엔 3회 초에 선두 타자로 나서 안타를 때린 4번 한태연이 들어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