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2화 〉162회. (162/297)



〈 162화 〉162회.

"지아야, 잘 하고 와~"

1번 타자로 나서는 지아에게 뽀뽀를 해준 동국이 손으로 파이팅 자세를 취하자, 지아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엄지와 검지로 거수경례를 했다.


"그럼 갔다 오겠슴돠~"


지아가 타석으로 향하자, 동국이 지은에게 말했다.


"누나, 상황 좀 보고 있어. 나는 애들 버프 넣고 있을게."


"알았어, 여보. 다음 차례 될 것 같으면 벨리나 보낼게."

지은과 벨리나에게 부탁한 동국이 다음 타자들인 아연과 리사를 데리고 더그아웃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현아가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제 저기 들어가서 애무를 받는 건가..?'

연습 경기 때는 보지 못했던 광경을 바라보는 현아의 마음은 복잡했다. 현아는 1회 초에 있었던 키스 때문에 아직도 마음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저번 제주도에서 동국의 고백 이후로 현아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도가 갑자기 나가게 된 것이다.

"현아야, 아직도 긴장돼?"

현아의 복잡한 표정을 봤는지, 벨리나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벨리나의 물음에 현아가 고개를 들었다.


"아, 아니. 언니... 그런건 아니야..."

"그럼 뭐 때문에 그러는데? 언니한테 말해봐봐."


벨리나의 말에 현아가 복도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그렇게 현아가 말하는 사이 지아가 2스트라이크가 되자 벨리나가 현아에게 한마디 하고선 다음 타자인 아연을 부르기 위해 복도로 나갔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오빠랑 이어지고 싶으면, 오빠에게 말하고, 아니면 거절한다고 말하는게 좋지 않겠니?"

벨리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현아는 이 애매모호한 상황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제 동국에게 답을 해야 될 때였다.


[쳤습니다. 1루수, 잡아서 베이스 밟으며 아웃시킵니다. 1아웃.]

[꽤나 빠른 공이었는데 1루수 유민아 선수가 잘 잡아 줬어요. 우드페커스가 공격도 공격이지만 수비도 상당히 안정적인 팀이거든요? 초반부터 아주 좋은 수비 보여줍니다.]

지아가 투수와의 7구째 가는 끈질긴 승부 끝에 1루쪽 땅볼로 아웃 되고 말았다. 아웃 되고 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지아에게 약간 상기된 표정의 아연이 투수의 컨디션에 대해 물었다.


"오늘 투수 컨디션 어때보여?"


"포심이랑 포크 볼은 좋아보이는데, 슬라이더는 잘 모르겠어. 딱 한번 보여주기 식으로 던져가지고... 아마 별로 안 좋은  아닐까?"


지아의 말에 아연이 고개를 끄덕이고선, 지아의 엉덩이를  쳤다.

"그래, 넌 벤치에 앉아서 내가 안타 치는거나 보고 있어."


[2번 타자, 2루수 장아연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지난 시즌 김해시 1부 리그에서 활약하다, 발키리에 트레이드 된 선숩니다. 지난 시즌, 타율 0.275에 출루율 0.342를 기록했습니다.]

[프로에 데뷔할 때는 리사 선수와 함께 강릉, 아니 강원도를 대표하는 신인 타자였거든요? 데뷔도 지역 리그 팀에서 했구요. 근데 잦은 부상 때문에 제 기량을 다 펼치지 못한 선수가 바로 장아연 선숩니다.]


[그러고 보니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리사 선수도 이제 발키리에 소속되었군요.]


[그렇습니다. 두 선수가 상당히 친한 사이라고 하는데, 과연 발키리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자, 투수, 던집니다!]

'어쭈..?'

아연은 몸쪽 깊숙하게 직구가 들어오자, 살짝 몸을 빼면서 투수를 쳐다보았다. 김가연은 아연의 시선에도 덤덤히 포수가 던진 공을 되받고선 공을 만지작 거렸다.


쓔욱~


"볼~"


다음 공은 몸쪽에서 몸쪽으로 떨어지는 포크볼이었다. 다시 한번 몸을 살짝 뒤틀며 공을 피한 아연은 배팅 박스에서 벗어나 방망이를 다리 사이에 기대게 하고선 장갑을 점검했다.


'보아하니 의도적으로 몸쪽 승부를 하겠다는거 같은데... 내가 쫄기라도 바란건가..?'


 배합에 대해 생각한 아연은 피식 웃고선 다시 배팅 박스로 들어서서 타격 자세를 잡았다.

'오냐, 내가 제대로 잡아 당겨 주지..!'

[2볼 노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제 3구. 잡아 당긴 타구! 펜스까지 굴러갑니다!! 좌익수 최원주가 빠르게 잡아서 2루에~! 아, 타자 주자 1루로 되돌아 갔군요.]

[타구가 너무  맞았어요. 발사각이 조금만 더 높았으면 그대로 넘어가는 타구거든요? 상당히 빠른 타구 속도, 거기에 좌익수인 최원주 선수가 펜스 플레이를 상당히 잘 해줬어요.]

해설 위원이 아쉬워 하며 상황을 설명하자, 캐스터가 추가로 말했다.

[거기에 장아연 선수가 주력이 빠른 편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안전하게 1루에서 멈췄습니다. 1아웃 상황에서 장아연 선수가 안타를 치고 나갑니다!]


"아이, 아쉽네... 치는 순간 장타였는데..."


좌익수가 빠르게 2루로 송구를 하는걸 보고선 1루로 귀루한 아연이 중얼거렸다. 안타를 친 순간 사색이 되서 타구를 바라본 김가연의 표정은 볼만했지만, 이후 단타가 되자 안도하는 모습에 아연은 아쉬움을 느꼈다.

[1사 1루에서 이제 다음 타자로 리사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지난 시즌 충청 리그 팀인 강릉 드라고니안에서 타율 0.343에 출루율이 무려 0.557이나 됬었습니다.]


캐스터가 읽은 리사의 작년 기록에 실시간 댓글 창에는 리사를 찬양하는 반응들로 넘쳐났다.

- 출루율이 5할이 넘어가면 진짜 2번에 1번은 출루한다는 거잖아 ㄷㄷ

- 당시에 거의 리사와  명의 난쟁이라서... 주자 있으면 그냥 내보냈음...


이런 리사를 막대한 드라고니안은 대체...;;


[거기에 장타율도 6할 4푼 2리나 됬죠. OPS가 1.199이니 충청 리그의 절대 강자였죠.]

[지역 리그를 씹어 먹던 리사가 과연 부상에서 완쾌 했을지..! 자, 이제 승부를..! 하지 않네요... 고의 사구로 리사 선수를 1루로 내보냅니다.]


캐스터가 김이 빠진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확실히 우드페커스 입장에서는 굳이 리사와 승부를 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리사 선수가 1루로 가서 1사 만루 상황. 타석에 AI 포수가 나타납니다.]

[AI 포수 놔두고 굳이 상위 리그에서 괴물 급 활약을 한 리사 선수와 승부를 할 필요가 없죠. 다물 우드페커스에서 아주 전략적으로 판단했다고 보여집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코치를 맡고 있는 지은은 골치가 아파졌다. 이 상황이라면 AI 포수에게 번트를 지시하는게 맞지만, 과연 AI 포수가 희생 번트를 잘 댈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번트 지시가 맞겠지..?"


지은이 벨리나에게 묻자, 벨리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AI 포수에게 안타나 외야 희생 플라이를 기대하긴 힘들죠. 런 앤 히트 작전이 나오기엔 AI 포수가 공을 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언니들도 주력이 빠른 편이 아니니깐요..."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우드페커스라고 모를리가 없었다. 1루수와 2루수가 거의 투수와 같은 선상까지 내려와 압박 수비를 펼쳤다.

이런 상황을 보자 지은은 그냥 번트 말고 강공으로 가는게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벨리나. 어차피 저렇게 압박 수비를 하면 번트를 대도 홈에서 아웃될거 같은데, 차라리 강공으로 갈까..?"


지은의 말에 벨리나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번트를 대서 성공할 확률과 실패할 확률, 그리고 강공으로 나갔을 때의 확률 등을 계산한 벨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괜찮을거 같아요. 자칫 번트 잘못 댔다가 병살타 되느니 강공으로 가는것도..."

"그렇지? 그럼 그냥 강공으로 가야 겠다. 동국도 웬만하면 AI에게 번트 대지 말라고 그랬으니깐..."


벨리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지은이 그대로 강공을 지시했다.

[내야 수비들이 극단적인 전진 수비를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초구! 타자, 헛스윙 합니다!]

[지금 높은 코스의 패스트볼이었거든요? 아마 번트를 댔을  뜬공을 유도하려고 그런거 같은데, 그것보다 지금 타자가 번트 대신 강공을 했다는 거에요! 발키리 벤치는 그냥 강공으로 가는걸까요..?]


지금 AI 포수에게 안타를 기대하는거냐? 그냥 번트나 대라!


- 번트 대면 바로 내야수에게 잡히겠구만, 무슨 번트야? 병살타  바에 차라리 강공이 낫지...


- 이 와중에 감독은 어디 가고 신지은이랑 벨리나만 있냐?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


- 급똥왔나? ㅋㅋㅋ


- 급똥은 킹정이지...

한편 우드페커스 역시 타자가 번트 대신 강공으로 나서자 약간의 혼란에 빠졌다. 이게 진짜 강공으로 가는건지, 아니면 강공으로 생각한 우드페커스가 내야수들을 원위치 하기로 기대해서 그런 건지 헷갈렸다.

그러나 강공으로 해도 타구가 웬만큼 빠르지 않고선 잡힌다고 판단한 우드페커스는 그대로 전진 수비를 유지했다.


[제 2구! 쳤습니다! 높~이 뜬공, 인필드 플라이가 선언되었고, 2루수가 잡았습니다. 2아웃.]


[몸쪽 슬라이더였거든요? 배트를 휘둘렀지만, 빗맞고 말았네요.]

[그러면서 1사 만루가 2사 만루로 바뀌었습니다. 우드페커스 입장에서는 한숨 돌렸네요.]


[반대로 발키리 입장에서는 선취 득점을 얻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쉽게 됬어요. 1사 만루와 2사 만루는 천지차이거든요?]


"쩝... 아깝네..."

타자가 뜬공으로 아웃 되자 지은은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 앉았다. 아쉬워하는 지은을 벨리나가 다독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죠. 번트 잘못 대서 병살타  바에 그냥 혼자 죽는게 낫죠... 그리고 유독 우리 팀 AI 타자들이 번트를  못대더라고요..."

벨리나의 위로에 지은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나저나 괜히 내가 욕을 먹는건 아닌가 몰라... 내가 안 빠졌으면 내 차례였으니 말이야..."


지은은 괜히 귀가 간지러운거 같아서 귀를 후비적 댔다. 그리고 이런 지은의 말처럼 실시간 댓글 창에는 지은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 ㅅㅂ... 원래는 지은이가 나서서 싹쓸이 2루타 치는 각인데...

- 화장실에 쳐박혀 있는 감독은 각성해라!


- 아씨... 다음 타자는 신인인데...


- 보나 마나 땅볼 치고 이닝 종료됬겠지~ 수고~

팬들이 말하는 다음 타자인 현아가 얼굴이 상기된  타석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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