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147회.
숙소에 돌아오고 나서 다들 잘 준비를 했다. 현아는 동국의 배려로 학교 선배인 지아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비록 학교에 다닐 때 지아와는 안면이 없었지만, 생각을 해보면 오구부에 엄청 예쁜 선배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던 거 같았다.
지아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하며 서로 친해져갔다. 지아 역시 현아에게 많은걸 묻고, 대답도 잘 해주면서 거리감을 좁혀갔다.
그렇게 서로 침대에 누워서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현아는 동국이 여러 부인들, 그리고 애인들이 있다는 것을 지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나 같으면 참기 힘들거 같은데... 어떻게 지아 언니는 다른 여자들을 용납할 수 있는걸까..?'
듣자 하니 지아가 처음으로 동국과 연인이 되었다고 했는데, 다른 연인이 생겼을 때 지아가 반대를 안 한게 의문이었다.
자칫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이었기에 현아는 조심스럽게 지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저기. 언니... 좀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언니가 동국 오빠의 첫 연인이라고 들었거든..?"
"그런데?"
"근데 어떻게 다른 여자들을 인정할 수 있었어..? 아, 대답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돼."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현아의 목소리에 지아는 피식 웃었다. 남들이 보면 상당히 이상할 수 있는 관계였다.
비록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중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음...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동국의 특성 때문에 여러 선수들과 섹스를 해야 한다고 대답하면 간단하지만, 아직 현아에게 동국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건 일렀다.
하지만 특성을 제외하더라도 다른 이유들도 있었다. 솔직히 두 번째 여자인 앤서니는 동국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기적적으로 동국과 인연이 닿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걱정인게 앤서니였다. 아이 자체도 상당히 순수하고 그래서 지아와 빠르게 친해졌고. 무엇보다도 이미 진도가 다 나가 있었기에 지아가 뭐라 그럴 수가 없었다.
다음 여자인 벨리나. 솔직히 벨리나를 왜 받아드렸는지 지아는 자신도 잘 몰랐다. 그저 어느 순간 받아드리게 되었다.
뭐, 벨리나와 지아가 서로 사이가 좋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동국의 특성 때문이다. 동국의 특성 때문에 잔뜩 올라간 호감도가 동국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만든 것이다.
지아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른 여자들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현아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현아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무슨 생각으로 지아가 받아드리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으음... 그렇구나... 그럼 언니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거야..?"
"뭐, 그렇지. 언니들도 좋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자연스럽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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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나는 재은과 같은 방을 쓰게 됬는데, 침대의 이불을 정리하던 재은에게 벨리나가 불쑥 말을 걸었다.
"언니, 동국 오빠에게 프러포즈 할꺼죠?"
그녀의 말에 재은의 움직임이 그대로 정지했다. 그리곤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천천히 재은의 고개가 돌아갔다.
"너,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당혹감으로 인해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완전히 푸르게 변한 것 같았다. 그런 재은의 표정을 바라보며 벨리나가 웃으며 말했다.
"뭐, 언니들의 움직임이 너무 티가 났다고나 할까요..? 평소 잘 안 가던 쇼핑을, 그것도 단체로 가는게 상당히 이상하잖아요."
"너, 그거 동국에게 말 안했지? 그치?"
벨리나의 말에 재은이 다급하게 외쳤다. 프러포즈는 서프라이즈여야 하는데, 동국이 벌써부터 알고 있다면...
'아니, 상관이 없나..? 어차피 프러포즈는 그냥 요식 행위일 뿐인가..?'
생각해보면 동국과 딱히 프러포즈를 하지 않아도 결혼은 기정 사실이었다. 그저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한다는 선언이라고나 할까..?
그런 생각이 들자 재은의 감정은 빠르게 차분해졌다.
"아니, 아직 말 안 했어요~ 말 하지도 않을거고요. 다만 확인 차원 이랄까..?"
"어이구, 별걸 다 확인하네. 벨리나, 은근히 음흉한 구석이 있어~?"
"아이, 뭘요~ 그럼 프러포즈는 언제 할꺼에요?"
벨리나의 질문에 재은이 침대에 누우며 대답했다.
"뭐, 수요일 날 저녁에 하려고. 목요일 날 하기엔 너무 늦는 거 같고 그래서 훈련이 끝나는 수요일 날이 디데이야."
"으흥~ 그렇구나~"
벨리나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면서 동국과 계획한 프러포즈 실행 일자를 앞당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애초 동국과 함께 계획한 프러포즈 날짜가 바로 수요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자가 프러포즈를 하는게 더 모양새가 있고, 그녀들도 더 좋아할 것이다.
'그럴려면 프러포즈를 할 틈을 보이면 안되는건가..? 아니면 그냥 내일 하자고 해..?'
이것 저것 생각해보던 벨리나는 골치가 아파지는걸 느꼈다. 프러포즈를 언니들보다 먼저 해야 하는데, 동국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안되는 것이었다. 벨리나는 무슨 핑계로 동국을 설득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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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선수들은 아침을 먹고서 바로 아카데미로 향했다. 그리고 다들 훈련을 하고 있을때, 동국과 벨리나는 프러포즈에 대해 상의를 했다.
"프러포즈를 조금 일찍 하는게 어때요?"
"음..? 왜..? 무슨 일 있어?"
프러포즈를 앞당기자는 벨리나의 제안에 동국이 의아해 했다. 출발하기 전에 다 계획을 짜 놨는데, 이제 와서 변경하자는 건 조금 이상했다.
"생각을 해보니까 각자 프러포즈를 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더라고요... 그러니 일찍 하자는 거죠."
"흐음... 그런가..? 뭐, 난 상관없긴 한데..."
"그리고 기왕이면 빨리 하는게 더 기분이 좋죠."
벨리나의 설명이 별로 대단하진 않았지만, 동국은 그녀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동국이 생각했을때, 오늘 하나 내일 하나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국과 벨리나는 우선 지은과 재은부터 하기로 하였다. 그녀들은 남들이 훈련할 때 휴게실에서 시간만 죽치고 있기 때문이다.
"잘 하고 와요~!"
"그래, 알았어."
다시 훈련을 해야 하는 벨리나와 헤어진 동국은 휴게실로 돌아갔다.
"어디 갔다 온거야, 자기~ 내가 찾았잖아~"
동국이 들어오자마자 지은이 동국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그 모습에 재은이 살짝 눈꼴시려운지 인상을 썼다.
"우리, 심심한데 주변에 돌아다닐까?"
"어머, 진짜~! 나야 좋지~"
동국의 제안에 지은이 반색을 하며 찬성했다. 휴게실에만 있으려니 상당히 지루했던 것이다. 반대로 재은은 딱히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 그냥 여기 있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냥 여기 있을게. 둘이서 갔다와."
그에 동국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어떻게 따로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알아서 자리를 마련해 준것이다.
"히히, 그럼 우리 둘이서 오붓하게 가자~"
재은이 빠지자 지은은 기쁜 감정을 감추지 않고서 동국과 팔짱을 꼈다. 그렇게 아카데미에서 나온 지은과 동국은 바닷가로 향했다.
아카데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아 바닷가가 있었는데, 그 주위로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산책로를 따라 둘은 다정하게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이제 11월인데 여기는 아직도 이렇게 따뜻하니, 좋다~ 그치, 자기야?"
경기도와는 확연히 다른 제주도의 따뜻한 날씨를 즐기며 지은이 말하자, 동국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렇네, 누나. 어, 저기 포토존인가봐. 저기로 한번 가보자."
동국이 가리킨 곳에는 하트 모양의 구조물이 있었다. 하트 모양의 테두리에 내부가 뚫려 있어서 사진을 찍으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와, 여기 진짜 풍경 좋다~! 저 쪽에 섬도 보이고 좋네. 자, 자기야, 저기 서봐~"
지은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 하자 동국이 우선 구조물 가운데에 섰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나서 이번엔 지은이 구조물에 서서 포즈를 잡았다.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여러 번 사진을 찍었을때, 동국은 바로 지금 프러포즈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천천히 지은에게로 다가갔다.
"자기야, 사진 다 찍었어?"
"누나..."
동국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하던 지은은 동국이 진지한 표정으로 다가오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러나 이어진 동국의 말에 점차 심장이 두근거렸다.
"난 누나랑 앞으로 계속 함께하고 싶어. 이렇게 서로 여행도 다니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싶어. 나랑 결혼해줘, 누나."
동국이 내민 반지에 지은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나왔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 지은이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동국이 지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자, 지은이 손을 들어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분홍빛 반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기야~!!"
지은이 울음을 터트리며 동국을 와락 껴안자 동국 역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지은의 울음이 그치고 나서 동국은 지은과 함께 근처 벤치에 앉았다. 동국의 팔을 꼭 붙들은 지은은 계속해서 믿기지가 않는지 자신의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히히~ 너무 좋다~ 내가 진짜로 우리 자기에게 프러포즈를 받게 되다니~"
지은의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자 동국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사실... 아, 아니야."
엉겁결에 여자들의 프러포즈 계획을 말하려고 했던 지은은 말을 얼버무렸다. 동국을 향한 프러포즈는 다함께 하기로 했기에 자신이 미리 말하면 안됬었다.
"음? 뭔데?"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다른 얘들에게도 할꺼야?"
지은의 물음에 동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지은에게 했으니 오후에는 재은에게 해야 했다. 리사와 아연은 상황을 봐 가면서 오늘 하던지, 아니면 내일 하던지 해야 했다.
"일단 오후에 재은 언니에게 할거니깐 누나가 좀 도와줘."
"흐음~ 내가 가장 먼저 프러포즈를 받은거지?"
"어, 누나가 제일 먼저야."
"히히, 그래애~?"
남의 프러포즈를 도와야 한다는 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이 가장 먼저 프러포즈를 받았다는 것에 만족한 지은은 넓은 마음으로 동국을 돕기로 했다.
그 이후로 동국과 지은은 알콩달콩 하게 꼭 붙어 다니며 제주도의 바닷가를 둘러보다가 점심 때가 되서 아카데미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