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143회. 프로포즈 준비
밤새 사정을 한 동국과 그 사정을 받아 준 지은은 일요일 오후가 돼서야 침대에서 나올 수가 있었다.
밝은 얼굴로 동국과 팔짱을 끼고선 자신의 배를 문지르며 나오는 지은의 모습에 비올렛이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아주 입이 귀에 걸렸네."
"어, 아주 좋아~ 아주 정자들이 내 자궁에서 살아 숨쉬는거 같아."
비올렛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지은이 행복한 목소리로 말하자, 비올렛의 인상은 더 찌그러졌다.
"치이... 나도 빨리 정리를 해야지..."
주변 환경 때문인지 삶의 목표가 점차 바뀌는 비올렛이었다.
점심을 먹으며 동국이 선수들에게 말했다.
"다들 11월에 캠프가 있는거 잘 알고 있지? 제주도로 일주일 동안 갔다 오면 여기 경기장이랑 숙소가 구리로 옮겨질거야."
"근데 왜 제주도야? 차라리 해외로 가지?"
비올렛의 말에 동국이 대답했다.
"뭘 굳이 해외로 가요. 제주도도 따듯한데. 그리고 솔직히 이번 캠프는 경기장 이전 공사 때문에 집을 비워두는 개념이라서..."
"뭐야, 그런거야~? 그럼 제주도 구경이나 가야겠네~"
"나 제주도 한번도 안 가봤는데~! 히히~!"
"앤서니, 넌 남주시 밖으로 나가 본적이 없잖아..."
제주도에 간다는 것에 신이 난 여자들을 비올렛이 부럽게 바라보았다. 자신은 일이 있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
'이 놈의 일..! 진짜 빠르게 정리 하든지 해야지, 원..!'
밥을 다 먹고 나서 동국이 장비 스폰서 와 제주도 캠프 때문에 재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음? 어쩐일이야."
"아, 뭐 물어볼 것도 있고, 또 우리가 이번에 제주도로 캠프를 떠나거든?"
"캠프..?"
저번에 별장으로 여행을 갔으면서 또 어딜 간다는 말에 재은은 얘네들은 놀러 가기만 하나 싶었다.
"어, 전지 훈련 같은 개념이랄까..? 물론 굳이 갈 필요는 없는 캠프긴 한데, 경기장이랑 숙소를 이전하려면 우리가 집을 비워줘야 되잖아. 그래서 겸사겸사 가기로 했는데, 누나도 갈거지?"
"내가..? 난 발키리 직원도 아닌데?"
"어차피 놀러 가는 개념이라서, 누나도 가도 상관 없어. 우리가 남이야?"
동국의 남이냐는 말에 재은은 아직 프러포즈를 받지 않았으니, 남이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러니... 그럼 저번처럼 돈은 너가 내는거야?"
저번 별장 여행 때 재은은 자신의 짐만 챙겼다. 그래서 이번에도 자신은 몸만 챙기면 되는지 묻는 것이다. 은근히 짠돌이 기질이 있는 재은이었다.
"왜, 이번엔 누나도 돈 내게?"
"어? 아이~ 나 하나 끼는 게 얼마나 든다고 그래애~ 그냥 가게 해주라~"
동국의 말에 애교를 부리는 재은. 그런 재은의 목소리에 동국은 피식 웃었다.
"흐흐, 평상시에 안 하던 애교를 들으니 기분이 좋네. 그래, 알았어. 다음 주 월요일 날 갈거니깐 미리 준비해둬. 5일 동안 있을거니깐 짐 잘 준비하고."
"그래, 알았어~!"
"아, 그리고 누나 혹시 아는 오구 장비 회사 있어?"
동국의 말에 재은이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프리랜서 기자로서 아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장비 회사 사람 이랑은 인연이 없었다.
"음... 내가 아는 사람은 없는데... 왜? 근데?"
"아, 우리 팀이 장비 스폰서를 한번 구해볼까 하고. 메인 스폰서에다가 지역 스폰서까지 받았는데 장비 스폰서도 구해봐야지."
"그래..? 근데 장비 스폰서는 구하기 조금 힘들껄..?"
"어, 왜..?"
"내가 잘은 모르는데 보통 장비 스폰서는 지역 리그 팀들부터 해준다고 하더라고. 그 이하 리그 팀들은 그냥 사서 쓰게 한데. 그래서 아마 힘들지 않을까..?"
재은의 말에 동국이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렇다면 장비 스폰서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후우... 그래, 알았어. 그럼 그때 봐."
"어~"
전화를 끊고 나서 동국은 재은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그녀의 부모님이 언제 결혼 하냐고 물으실 만큼, 이제 그녀와의 관계를 확정 지어야 했다.
'재은 누나도 있고, 지은 누나도 있고... 비올렛 누님은 어떻게 하지..? 그리고 리사와 아연인..?'
리사는 확실히 자신과 결혼할 마음이 있어 보였지만, 아연은 아직 결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비올렛 같은 경우는 벨리나의 어머니라 상당히 애매했다.
'물론 애인 사이니까 프러포즈를 해도 상관은 없지만, 혼인신고를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을까..? 그래도 안 하면 서운할테니깐 하는게 낫겠지..?'
동국은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벨리나의 방으로 향했다. 부인 셋 중에서는 그래도 벨리나가 가장 믿음 직 스러웠다.
"벨리나, 들어간다."
벨리나의 방으로 들어가니 벨리나가 없었다. 그래서 지하 연습장에 가니 벨리나가 리사, 아연과 연습 중에 있었다.
따악~!
벨리나가 전력 투구를 하는 것 같은데도 리사는 아주 쉽게 잘 맞은 타구를 만들어 냈다. 그래도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는지, 리사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벨리나를 칭찬했다.
"요즘에 많이 좋아졌어, 벨리나."
"감사합니다, 언니."
"이게 바로 특훈의 힘인건가..? 그래도 연습을 게을리 하면 안되는거 알고 있지?"
"네, 아연 언니."
그녀들의 모습을 보던 동국이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허험. 벨리나,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동국의 말에 고개를 갸웃한 벨리나가 동국에게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오빠?"
"여기선 말고, 니 방 가서 이야기 하자."
동국과 벨리나가 그렇게 사라지자 리사와 아연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나..?"
"그러게..."
*
*
*
벨리나의 방 안에 들어가서 그녀의 침대에 앉자, 그녀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오빠, 무슨 일이에요.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그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동국을 보자, 동국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그런게 아니라. 이번에 제주도로 캠프를 가잖아."
"그렇죠."
"그때 내가 애인들에게 프러포즈를 하려고 하거든?"
"그런데요..?"
부인에게 애인과의 프러포즈에 대해 묻는 장면은 뭔가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벨리나는 속으로 재은과 리사를 축하해 주었다.
'축하해요, 언니들..! 드디어 프러포즈를 받게 되겠네요..!'
"우선 리사는 확실히 나와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거겠지..?"
동국의 물음에 벨리나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저번에 저희끼리 별장 산 정상에 올랐을때, 프러포즈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에 동국이 절로 흥미를 보였다.
"오호, 그랬어?"
"네, 그 때, 재은 언니가 오빠가 프러포즈를 안 한다고 상당히 서운해 하더라고요. 혹시나 별장에서 프러포즈를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더라고요."
벨리나의 말에 동국은 속으로 당황했다. 자신은 전혀 생각을 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음... 어쩐지 요즘에 재은 누나의 분위기가 조금 차갑더라...'
그제야 그 이유를 안 동국은 이제라도 프러포즈를 준비하게 되서 다행이라고도 한편으로 생각을 했다. 아마 여기서 더 늦어졌더라면 삐짐의 강도가 더 세졌겠지...
"아, 그리고 아연인 어때? 걔는 아직 결혼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
동국의 말에 벨리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벨리나, 자신이 봐도 아연은 아직 동국 오빠와의 결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제가 슬며시 떠보긴 할게요."
"그래, 그래주면 고맙지. 마지막으로 말이야..."
"뭔데요?"
"비올렛 누님은 어떻게 해야 할까..?"
동국의 말에 벨리나가 순간 멈짓했다. 확실히 자신의 새어머니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녀의 태도를 보면 동국과의 결혼은 물론 아이까지 바라는 눈치였다.
애초에 같이 살려고 숙소를 이전하게 한 것 보면 그럴 마음이 충분해 보였다. 다만 중요한건 그녀가 벨리나의 새어머니라는 점이다.
"으음..! 확실히 문제긴 하네요... 세간의 시선도 있고 하니..."
"그래서 일단 프러포즈는 하되, 결혼은 나중에 할까 생각 중이야."
"결혼은 나중에요..?"
"그래. 아니면 프러포즈를 하고 난 다음에 누님이랑 서로 상의를 하던지 해야지. 근데 넌, 누님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걸 반대하는건 아니지?"
동국이 혹시나 하고 묻자, 벨리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찬성이죠. 저희 어머니가 요즘에 얼마나 얼굴이 밝아졌는데요. 그리고 또 동국 오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잘 알고요. 최근에는 임신하고 싶어서 전문 경영인을 내세우고, 당신은 일선에서 물러날 계획까지 가지고 계세요."
"어, 그래? 하긴, 저번에 누님이 임신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지. 그럼 나중에 아연이 생각이 어떤지 나에게 말해줘."
"네, 알았어요. 아, 그리고 나중에 반지 사러 갈때, 저랑 같이 사러가요. 저번에 프러포즈를 할 때는 너무 티가 났어요."
벨리나의 말에 동국이 깜짝 놀랐다. 동국은 아직도 서프라이즈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진짜~?! 내 서프라이즈가 실패였단 말이야..?"
동국이 진심으로 놀라는 모습에 벨리나가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여행 가자고 말하는게 너무 어색하잖아요. 그리고 자주 안 가던 외출을 하던 것도 이상했고요. 그때 외출할때, 바로 반지 사러 간다는 걸 눈치챘는걸요?"
"허어... 그랬단 말이야..? 이거 참..."
벨리나의 설명에 동국은 허탈해 하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쉽게 눈치를 챘었다니... 괜히 허술하게 프러포즈를 준비한게 아닌가 미안해졌다.
"그래도 저희는 진심으로 감동 받았어요. 그러니 그렇게 아쉬워 하지 않으셔도 되요."
동국이 아쉬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표정을 짓자, 벨리나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동국을 껴안았다.
"벨리나..."
그녀의 말에 동국은 괜히 감동을 받았다. 그러고선 자신을 껴안은 벨리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빠..."
서로의 눈이 맞았고, 점점 입술이 가까워졌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될때까지, 벨리나의 방에선 뜨거운 열풍이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