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140회.
"우선 현아 학생이 가장 바라는건 당연히 계약 기간이 길고 방출 걱정이 없는거겠죠?"
동국이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자, 현아가 민망한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현아에게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자신의 진로를 육상에서 오구로 바꾸는 것이니 만큼 얼마나 안정적이냐는 그녀의 인생이 달려있었다.
그녀의 반응에 동국은 미리 준비해 왔던 계약서의 몇몇 부분을 수정했다. 우선 계약 기간을 FA를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인 8년에서 15년으로 대폭 늘렸다.
15년이면 현아가 계약 기간을 다 채웠을 때 나이가 35살인 초 장기 계약인 셈이다. 이 정도면 그녀가 상당히 안정감을 느낄것이었다. 물론 동국은 계약 기간을 10년으로 잡든, 20년으로 잡든 상관없이 그녀를 내보낼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또한 세부 조건에 선수의 방출이나 계약 해지, 이적 등을 선수와 구단, 모두가 동의해야 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조건은 그 어디에도 없는 조건으로 선수가 아무리 못해도 팀에서 쫓아낼 수 없는, 선수에게 극도로 유리해 보이는 조건이었다.
물론 이것도 동국은 딱히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그녀가 아무리 못해도 내쫓을 생각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는 단지 그녀가 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할 요소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대신 동국은 위의 조건들을 핑계로 계약금을 없애고, 연봉도 1부 리그 최저 연봉인 3천만원이 아닌 2부 리그 최저 연봉보다도 낮은 1500만원으로 책정했다.
최저 연봉은 말 그대로 1부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받아야 할 최저 연봉으로 1부 리그 팀들은 무조건 지켜야 하지만, 동국은 생활비를 명분으로 이걸 깎은것이다.
그 밖에 숙소 지원과 식사 지원, 생활용품 지원 등등의 기타 사항들을 추가한 동국이 그녀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자, 한번 봐 봐요."
동국이 건낸 계약서를 찬찬히 살펴보던 현아의 눈이 점차 커졌다. 계약 기간이 상당히 긴 것도 긴것이지만, 무엇보다 방출 거부권이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어찌 보면 황당하기까지 한 조항이 있는 것에 그녀는 상당히 놀랐다.
"지, 진짜, 이렇게 계약을 하시겠다고요..? 제가 방출을 거부할 수 있다는건가요..?"
"정확히 말하면 구단, 즉 저와 현아 선수가 서로 합의를 해야지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거죠. 반대로 현아 선수가 계약 해지를 요구했을 때 제가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 그렇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요... 현아는 뒷말을 속으로 삼킨 채 계속 계약서를 살펴보았다. 계약서에는 최저 연봉으로 3천만원을 지급하지만 생활비로 1500만원을 제한 나머지인 1500만원을 지급한다고 나와 있었다.
'1년 생활비로 1500만원은 좀 많은 거 아닌가..?'
1500만원이나 뺀다는 조항에 현아는 너무 많이 가져 가는 게 아닌가 한번 생각을 해보았다.
'일단 지원금으로 받은 돈을 원룸 보증금으로 쓰고, 알바를 하면서 월세랑 생활비를 번다. 그러고 육상 대회에 출전해 상금을 탄다..?'
그러나 이렇게 생활을 한다면 딱히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냥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삶밖엔 되질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말 있는 용기를 다 쥐어 짜서 현아는 동국에게 연봉에 대해 말했다.
"저, 저기... 생활비로 1500만원이나 하는건... 조금..."
"응? 저기, 생활비로 1500만원을 가져간다고 했어? 오빠가?"
현아의 말에 지아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현아에게 물었다. 그에 현아가 동국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지아가 동국의 팔을 찰싹 때렸다.
"아니, 뭘 그렇게 많이 가져가~! 아주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아파, 이놈아. 그리고 1500만원이면 나쁘지 않지 않냐?"
"뭐가 나쁘지 않아? 얘가 입단하는 팀은 나처럼 2부 리그 팀이 아니라 1부 리그 팀이야. 그럼 당연히 3천을 다 줘야지. 나도 처음엔 2천만원, 다 줬잖아?"
지아의 말에 동국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소곤댔다.
"야, 쟨 그때의 너보다 실력이 더 떨어지잖아. 그럼 당연히 더 적게 받아야지."
그 말에 지아가 한숨을 내쉬고선 동국에게 귓속말을 했다.
"어차피 나중에 우리처럼 다 가져갈거잖아. 그럼 차라리 통 크게 돈을 줘서 호감도나 높혀. 왜 그렇게 근시안적으로 생각을 해? 오빠, 바보야?"
귓속말을 하고서 동국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지아의 눈빛에 동국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리며 뒷머릴 긁적였다.
'하긴... 그렇군...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어... 어차피 나중에 다 가져갈건데...'
한편 현아는 자신의 말에 둘이 계속 귓속말을 하자 괜히 안절부절 못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사실 이 자리는 제안을 거절한 현아를 설득하기 위한 자리였으나, 긴 계약 기간과 방출 거부권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조항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그녀가 계약을 하고 싶어 했다.
'15년 동안 매년 1500만원씩 받기만 해도 2억원이 넘는 금액... 거기에 내 실력에 따라 연봉이 더 오른다고 그랬으니, 3억원 이상 버는 것도 꿈이 아니야..!'
35살에 3억원이 넘게 가지고 있으면 상당한 거였다. 그것도 고아인 자신이 말이다. 나중에 결혼 자금이나 내 집 마련도 가능한 금액이 3억 이었다.
지아의 말대로 현아의 호감도나 쌓자는 식으로 연봉을 1500만원에서 4천만원으로 올릴 생각을 하던 동국은 그녀에게 언제 특훈에 대해 설명할지 생각을 해보았다.
'비 시즌 기간 내에 실력을 적어도 1부 리그 급으로 끌어 올리려면 열심히 특훈을 해야 하는데... 그럼 일찍 말하는게 나을테고. 근데 특훈 때문에 계약을 안 한다고 그러면 어떡하지..?'
그 때 마침 주문한 음료가 나왔는지 진동 벨이 울리자 동국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지아도 같이 일으켜 세웠다.
"음료가 나온 거 같으니, 가지고 올게요. 지아야, 가자."
"엉? 왜 나까지... 그냥 오빠 혼자 갔다 오지..."
지아는 투덜대긴 했지만 동국이 그녀를 일으켜 세우자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섰다. 동국은 그녀와 같이 걸으며 작게 특훈에 대해 물어보았다.
"저기, 지아야."
"왜 오빠."
"현아에게 특훈에 대해 언제 말해야 될까?"
동국의 물음에 지아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커피와 음료가 담긴 쟁반을 들고선 대답했다.
"음... 일단 친해지고 난 다음에 이야기 하는게 나을거 같은데?"
"어, 왜..? 현아 실력 생각하면 되도록이면 빨리 시작해야 되는데..."
동국이 현아의 실력을 걱정하며 이야기 하자, 지아가 걸음을 멈추고 동국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오빠, 쟤가 지금 오구에 대한 열정이 있어? 그냥 안정적인 삶을 원해서 오구를 하려고 하는거잖아. 근데 그런 소리를 해봐. 뭐라고 생각을 하겠어? 보나 마나 수작 질을 한다고 생각하겠지."
"아, 그런가..."
하긴 현아는 리사나 벨리나처럼 오구에 대한 열정과 갈망이 없었다. 그녀들이야 오구를 계속 하고 싶다는 욕구로 동국의 제안을 받아드렸지만, 현아는 그런게 없었다.
오히려 동국의 말을 안 좋게 받아드리고 계약을 거절할 가능성이 높았다. 지아의 말에 동국은 현아와 충분히 친해지고 난 다음에, 그러니까 지아와 같은 케이스로 특훈을 진행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지아랑은 특훈이란 개념 없이 둘의 관계만으로 섹스를 했으니깐, 현아 역시 섹스를 할 만한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것이다.
19살 고교생이 어떻게 부인이 3명이나 있는 유부남에게 사랑을 느끼겠냐만, 동국은 자신의 특성의 힘을 믿었다. 분명 천천히 호감도를 올려줄게 분명했다.
"그리고 아직 미성년자라서 특훈을 하지도 못하잖아."
이어진 지아의 말에 동국은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 그러고 보니 현아는 아직 고3이었다. 이 게임은 미성년자와의 섹스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국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럼 나중에 말 해야 겠다."
동국과 지아가 커피와 음료를 가지고 오자 그때까지 계속 계약서를 보고 있던 현아가 엉거주춤하게 일어섰다.
"아, 앉아 있어요. 그래, 연봉이 조금 아쉽다는 거죠?"
"아, 아니에요!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많은걸 바란거 같아요. 감독님께서 절 위해서 이렇게 계약 기간도 길게 잡아주고, 방출 거부권 같은 조항도 추가해주셨는데, 연봉이 적은것쯤이야... 그리고 제가 실력이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니깐요.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연봉을 올리면 되죠..."
현아는 굳이 1명만이 가면 될 음료 가져오기를 2명이서 간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꼈었다. 혹시나 계약을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된것이다. 애초에 그녀가 거절 의사를 밝혔었기에 더욱 동국이 계약을 단념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동국은 자신의 눈치를 보며 괜찮다고 말하는 현아의 모습에 지금이 바로 연봉을 인상할 타이밍이라고 봤다.
"하하, 아니에요. 충분히 낮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이런 동국의 마음을 모르는 현아는 동국의 말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동국이 계약을 포기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 저! 계, 계약 할게요. 그러니 제발 계약을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이에요..."
동국의 말에 갑자기 일어나며 동국의 손을 꼬옥 붙잡은 현아가 동국에게 계약을 하겠다며 애원을 했다. 그에 당황한 동국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현아 학생..? 저흰 아직 계약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연봉이 적다는 현아 학생의 말을 받아드려 연봉을 올려줄게요."
"저, 정말로요..?!"
현아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에 카페에 있던 다른 손님들이 셋을 바라보았으나 현아는 그들의 시선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혹시나 하고 말해본건데 바로 올려주겠다니... 현아는 이게 혹시 몰래 카메라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동국이 그녀에게 준 계약서를 다시 가지고 와서 연봉을 3천에서 4천으로 올리고, 생활비 부분을 지워 다시 그녀에게 건냈다.
"자, 실수령금을 4천만원으로 바꿨어요. 어때요, 괜찮죠?"
"다, 당연히 괜찮죠! 어디다가 사인하면 되나요?"
현아가 계약서에 적힌 4천만원이란 금액에 흥분을 하며 계약할 의사를 표시하자, 동국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여기다가 사인하면 되요, 현아 학생."
드디어 발키리의 주전 멤버가 모두 정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