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135회.
근처 구석에 마련된 벤치로 이동해 앉은 동국은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아까 명함을 봐서 알겠지만, 현재 1부 리그 팀을 운영하고 있는 동국이라고 해요. 그쪽 학생 이름은 어떻게...?"
"아, 저는 주현아 라고 합니다. 지금 고 3이에요."
"그래요, 예쁜 이름이군요..."
그렇게 중얼거린 동국은 본격적으로 그녀를 설득 시키기 시작했다.
"우선 오구에 대해 관심이 있나요?"
"오구요..? 음... 가끔 보긴 하는데, 그렇게 관심이 있진 않아요..."
"어, 그래요? 이거 참 아쉽군요. 그럼 육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현아양 몸을 보면 다른 운동도 잘 할 거 같은데..."
물론 동국이 어떠한 안목이 있어서 그녀가 운동을 잘 할 거 같은 몸을 지녔다고 말을 하는건 아니었다. 그저 달리기가 빠르니 다른 종목도 잘 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는 것일뿐.
그러나 이런 동국의 추측이 맞긴 했는지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정을 설명했다.
"제가 고아라서... 운동 종목 중에 육상이 제일 쉽고 돈도 적게 들 거 같더라구요. 그저 달리기만 하면 되니깐요."
"으음... 그랬군요."
고아라... 고아인데 그래도 밝은 표정을 보니 어렵게 자란 거 같진 않았다. 그래도 돈이 문제니까 육상을 한거겠지..?
"그럼 고아원에서 사는건가요?"
"네, 그렇죠. 어릴 때부터 고아원에서 살고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던 동국은 문득 고아들은 성인이 되면 고아원을 떠나야 한다는 뉴스를 티비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근데, 제가 알기론 성인이 되면 고아원을 나와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럼 이제 지낼 곳은 있나요..?"
동국의 말에 현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실 이 문제는 그녀가 거의 고등학교 3년 내내 고민하고 걱정하던 문제이기도 했다.
성인이 되면 나라에서 지원한 몇 백 만원을 가지고 독립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체대와 같이 대학교를 가게 되면 더 연장이 가능하긴 하지만, 등록금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저희 발키리는 전원 숙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지원을 하죠. 숙소도 상당히 좋다고 자부합니다. 팀 분위기도 가족 같은 분위기로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없을거에요."
숙식을 제공한다는 말에 그녀는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육상 선수를 한다고 해도 어디 실업 팀에 소속되지 않는 한 돈을 벌 길이 막막하고, 막상 소속된다고 해도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제가 오구를 해 본적이 없어서... 제가 도움이 될까요..?"
"아, 물론이죠. 제가 봤을 때 현아 학생은 금방 배울 수 있을겁니다. 거기에 저희 팀은 실력을 급상승 시키는 특별한 훈련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현아를 설득 시키고 있을 때 동국의 휴대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지아였다. 아마 질의 응답 시간이 다 끝나서 자신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오빠, 어디야? 어딘데 코빼기도 안 보여?"
"어, 이제 갈게. 거기 정자에 있는거지?"
"어, 빨리 와!"
"짜식... 괜히 화를 내기는..."
전화를 끊은 동국은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임을 느끼곤 현아에게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연락처를 휴대폰에 저장 하고선 그녀에게 잘 생각해 보고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제가 일정이 있어서, 이만 일어나야 겠네요. 현아 선수 궁금한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시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만..."
동국이 자리를 뜨자, 현아는 자신에게 열린 새로운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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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출발하려는 오구부 학생들 뒤로 지아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동국을 찾고 있었다.
'아니 내가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으면 사진이나 찍으면서 흐뭇하게 바라볼 것이지. 어딜 싸돌아 다니는거야..?"
지아는 왠지 동국이 자신이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는 것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고 느꼈다. 그렇게 혼자 툴툴대고 있을 때 운동장 구석에서 동국이 나와 지아에게 뛰어 왔다.
"어딜 그리 갔다고 오는거야..! 저 쪽은 벤치가 있는 장손데, 설마 낮잠 잔 건 아니지..?"
지아가 화가 난 표정으로 동국에게 묻자, 동국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해명했다.
"에, 에이~ 그럴리가~ 새로운 영입 후보를 발견해서, 설득한다고 그랬어. 말도 없이 사라져서 미안해."
"치... 예쁘고 어린 마누라가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면 좀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사진도 찍고 그러란 말이야..! 가만 보면 요즘 오빤 나에게 관심이 별로 없는 거 같애..."
그녀가 내심 서운했는지 투덜대자, 동국이 슬쩍 지아를 백허그 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우리 지아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데. 그리고 너가 얘들에게 열심히 설명하는거 내가 다 동영상으로 찍었어~ 지금 보여줄까?"
동국이 그녀를 달래자, 그녀는 서운한 마음이 조금 가시는 걸 느꼈다.
"흠흠... 그래..? 그럼 다행이구... 아, 이제 그만 껴안아~ 주변에서 다 쳐다보잖아~"
지아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부끄러워 했지만, 동국은 오히려 더 세게 껴안았다. 눈치를 보니 그녀가 괜히 쑥스러워서 하는 말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싫은데~ 이대로 식당까지 갈건데~"
"아이, 차암~ 나 진짜 부끄럽단 말이야~"
그녀가 몇 번 더 투정을 부리고 나서야 동국은 그녀를 품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지아의 손을 잡고선 오구부 일행의 뒤를 쫓아 걸으며 지아가 동국에게 새로운 영입 후보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나저나 새로운 영입 후보란게 누구야? 우리 오구부에는 동국이 눈독 드릴만한 선수가 없는데..?"
지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동국이 말한 영입 후보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녀는 동국이 선수를 보는 기준이 무조건 외모란 걸 잘 알고 있기에 한미고 오구부에는 마땅한 미녀가 없나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오구부 감독은 은근히 학생들이 발키리에 뽑혔으면 하고 바라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아니면 다른 학생이야? 우리 학교에 유명한 미녀가 나 말고 있었나..?"
지아의 말에 동국은 웃으며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
"으이그~ 너도 너가 예쁘다는 걸 알고 있었구나~?"
"아, 당연하지~ 나도 거울을 보고 사는데 당연히 알 수 밖에 없지~ 내가 한미고 얼짱 출신이야~ 근데 진짜 누구야?"
지아의 물음에 동국은 현아에 대해 설명을 했다.
"아, 내가 계속 서 있는 1학년 학생들이 안쓰러워서 자리를 양보하고선 학교 구경을 했지. 근데 육상부 학생들이 운동장 트랙을 도는게 보이더라고."
"내가 하는 이야기가 지루해서 빠져 나온건 아니고..?"
지아의 말에 속으로 뜨끔했지만, 맹렬히 부인했다. 여기서 만약 인정했다간 지아가 삐질게 눈에 훤했기 때문이다.
"아니이~! 그럴 리가 있겠니~? 난 단지 서있는 학생들이 불쌍해서 그런거야. 아, 아무튼 그 학생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학생이 있더라고."
"걔가 예뻤어?"
"처음엔 학생들 무리 사이에 있어서 잘 안보였는데, 운동장에 단상이 있잖아? 거기 올라가서 보니깐 잘 보이더라고. 아주 지아, 너만큼은 아니지만 예쁘더라고."
"훗, 그래..?"
동국의 아부에 지아의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아, 그럼~! 아무튼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100m? 50m? 잘은 모르겠는데, 단거리 달리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봤는데, 엄청 빠르더라. 빠르기는 지아, 너보다 빠른거 같애."
"오호... 그래애~?"
지아가 놀라며 반문했다. 지아, 자신도 빠르기라면 어디에서 뒤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거야 오구 선수들 기준이었고, 달리기를 전문으로 하는 육상 선수를 기준으로 따지면 또 달라지긴 하겠지만...
"어, 그렇다니깐. 아, 식당에 도착했네. 이 이야긴 나중에 다시 해줄게."
식당에 도착하자 동국은 하던 이야기를 멈추었다. 아무래도 오구부 학생들 앞에서 육상부 학생을 스카우트 한다고는 말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동국군! 진짜 여기가 맞나요? 여긴 우리가 먹기엔 너무 비쌀거 같은데..?"
감독이 동국에게 걱정을 하며 식당을 바라보았다. 많이 먹기로 유명한 오구부 학생들이 먹기엔 너무 가격대가 있는 음식점이었기 때문이다.
"하하, 이 정돈 충분합니다. 마음껏 드셔도 됩니다..."
동국 역시 처음 본 순간 오구부 학생들이 많이 먹을걸 직감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냥 기분이나 내야지...
동국의 말에 학생들은 큰소리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는 신나게 식당으로 들어갔다. 미리 예약한 자리에 가보니 이미 여러 음식들이 준비 되어 있었다.
"자, 마음껏 먹고, 부족하면 말해요. 내가 더 시켜줄테니."
"감사합니다, 형부!"
3학년 학생 중 한 명이 동국을 형부라고 부르자, 동국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형부라고 처음 불렸기에 왠지 쑥스러웠다.
"하하, 마음껏 먹어요."
그렇게 다들 배가 고팠는지 아주 폭풍 흡입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먹성이 가장 좋은 앤서니가 잔뜩 있는거 같았다.
"오빠, 진짜 괜찮겠어..? 거의 백 만원 가까이 나갈거 같은데..?"
지아가 작게 소곤대자, 동국은 웃으며 중얼거렸다.
"지아, 너가 팀에 해준 것만으로도 이 정돈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그러니 너도 부담 같지 말고 많이 먹어..."
동국의 말에 그녀는 그렇게 약간의 걱정을 없애곤 웃고 떠들며 맛있게 음식들을 먹었다. 동국은 속으로 눈물을 흘렸지만 말이다...
식사를 다 하고 나서 계산대에서 계산을 한 동국은 영수증에 찍힌 150만원이 넘는 금액에 머리가 어질했지만, 내색하지 않고서 학생들의 감사 인사를 받았다.
다시 학교로 돌아 와서 지아는 학생들을 직접 코치하며 학생들의 어려움과 질문들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동국은 열심히 휴대폰으로 촬영하였다.
"어때요, 학생들의 실력이 나쁘지 않죠?"
지아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을때, 감독이 슬그머니 동국의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 예. 다들 열심히 훈련하네요."
동국이 봤을때, 잘 하는 학생들도 실력이 2부 리그 정도로 그리 높아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었다.
가끔 동국을 힐끔힐끔 처다보는게, 혹시나 발키리에 입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기야 오구부에서 만년 백업이었던 지아가 입단을 했는데, 그런 지아보다 잘 하는 선수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