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119회.
"자, 모두들 수고 했고, 그동안 쌓인 피로들을 당분간 푹 쉬면서 해결하라고. 그리고 끝나고 회식 있으니깐, 다들 필히 참석들 해. 이만 해산!"
"수고하셨습니다."
경기가 끝이 나고 레이크걸즈 감독이 짐을 정리하는 지은을 불렀다. 아무래도 재계약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역시나 감독실로 따라 가니 감독이 지은에게 재계약에 대해 물어보았다.
"지은아, 정말 재계약 안 할거냐..? 너 없으면 우리 팀 다시 추락한다는 거 잘 알잖냐."
"감독님. 전 이미 마음이 확고해요. 더 이상 이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감독이 팀 사정을 말하며 지은을 설득하려고 했으나, 지은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녀의 단호한 말에도 감독은 계속 지은을 설득해 나갔다. 지은이 없으면 올해와 같은 성적은 내기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감독으로선 어떻게든 설득을 시켜야 했다.
"지은아, 원하는 거 있으면 우리가 다 맞춰줄게. 훈련이 힘든 거 같으면, 훈련 시간도 조절할 수 있고, 투수들이 말을 잘 안 듣는 거 같으면, 내가 따끔하게 말을 할게. 그러니 제발 재계약, 아니 딱 1년만이라도 더 하는게 어떻겠니..?"
감독의 여러 제안에도 지은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선 꾸벅 고개를 숙였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지금 감독은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니였기에, 지은은 그래도 예의를 차리고 싶었다.
"감독님, 애초에 제가 이 팀에 온 이유는 일산 호수 공원이 가깝다는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지, 여기 팀을 보고 온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지금 팀을 이적하겠다는 것도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고요. 그러니 감독님께서 어떻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셔도 제 마음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녀의 말에 결국 감독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은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결국 재계약을 포기한것이다. 애초에 지은은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이니 재계약을 안 한다고 하면 안 하는것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감독은 내년 시즌의 전력 약화가 눈에 보여 지은에게 매달린 것이고.
"후우... 그래, 니 뜻이 그렇다면 알겠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일단 계약이 올해까지니, 올해까지 살아도 된단다. 나중에 짐 빼게 되면 구단에 연락 주렴. 그리고 회식엔 참석할꺼지? 거기서 송별회 해야지."
"어, 회식이요..?"
끝나고 동국과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던 지은은 송별회란 말에 머뭇거렸다. 비록 팀원들과 그렇게 친한 편은 아니었긴 하지만, 그래도 1년을 함께 한 사인데 송별회 없이 헤어지긴 좀 그랬다.
하지만 동국과 찐한 스킨십을 한 상태라서 그녀는 여기서 동국과 진도를 더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그대로 집으로 초대를 해서...
결국 동국과 동료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고민하던 지은은 동국에게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그냥 동국에게 결정을 맡기기로 한것이다.
"감독님, 제가 일행이 있어서 잠시만요."
"어, 어. 그래."
감독님께 양해를 구한 지은은 감독실에서 나와 동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은씨? 마무리가 좀 늦게 끝나나봐요?"
동국의 말에 그녀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동국은 경기가 끝나고 자신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안 나오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을것이다.
"아, 미안해요. 감독님께서 재계약 때문에 절 부르셔가지고... 감독님께는 재계약 안 하겠다고 확답을 하긴 했는데, 끝나고 회식이 있다고 하네요..."
"아, 회식이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이제 마지막 회식일테니, 거의 송별회 자리잖아요. 그런 자리를 빠지면 안 되죠."
"미안해요... 저 때문에 동국씨 기다리고 있었을텐데. 아, 지금 어디에요? 그래도 인사는 하고 싶어요."
지은의 말에 동국이 자신이 지금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에 지은은 감독님께 회식 장소를 전해 듣고선, 동국에게로 달려갔다.
"동국씨~!"
경기장 입구에서 동국이 기다리고 있자, 그녀가 동국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 안았다. 지은이 자신을 끌어 안자, 동국은 웃으며 그녀를 같이 안았다.
"미안해요... 동국씨가 이렇게 와 주셨는데, 같이 저녁도 못 먹고..."
"아니에요, 송별회가 더 중요하죠. 저녁이야 나중에 매일 같이 먹을텐데요, 뭘. 송별회 잘 해요."
동국의 매일 같이 저녁을 먹을 거란 말에, 지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이제 팀 활동도 모두 다 끝이 났으니, 발키리에 입단하는 일만 남은것이다.
"저기, 동국씨. 저랑은 계약 언제 할거에요? 이제 레이크걸즈 활동도 다 끝이 났는데, 계약 해야죠."
그녀의 말에 동국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하긴, 이제 경기도 끝이 났으니 계약을 해도 무방했다. 계약을 미룰 필요도 딱히 없으니, 동국은 빠르게 계약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지은씨 팀에 입단하면 같이 숙소에서 살아야 되는거 잘 알죠?"
"네! 당연하죠!"
"그럼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짐들을 다 정리해야 되니깐 언제가 좋겠어요? 이사 하는게?"
"한... 수요일쯤이 괜찮을 거 같아요. 내일 짐들을 다 정리하고, 수요일 날 이사를 가죠."
"그렇게 빨리요..?"
"네! 전 빨리 숙소로 가고 싶어요! 그리고 애초에 원룸이라서 별로 가져갈 짐들도 없어요."
"뭐, 그래요. 그럼 수요일 날 제가 다시 찾아갈게요. 회식 잘 해요~"
"네~ 그럼 수요일 날 만나요~"
지은이 떠나고 나자 동국은 근처 벤치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지은이 발키리에 오게 되면 발키리는 거의 완전체가 되는 것이었다. 구하기 어렵다는 포수를 지은과 같은 뛰어난 선수로 채우는 것이니 말이다. 남은 건 우익수 자리 뿐이었다.
물론 투 타자에서 1명씩 백업 선수를 엔트리에 추가할 수 있지만, 이건 그렇게 필수적이진 않았다. 그러니 지금 남은 건 우익수를 구하는 것 뿐이었다.
'신인들 중에 마땅한 선수가 없으니... 기존 선수들의 이적이나 FA를 노려봐야 되나..?'
어디서 선수를 구해야 될지 고민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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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이 되서 동국은 다시 일산을 방문했다. 바로 지은의 짐을 옮기기 위해서이다. 화요일 날 짐을 정리한 그녀의 말에 따르면 생각보다 짐이 별로 없어서 당황했다고. 그래서 동국 혼자 일산으로 향했다.
미리 알려준 그녀의 원룸 주소로 향하니 한 눈에 호수 공원이 보이는 높은 오피스텔이 나타났다.
"이야, 그래도 레이크걸즈에서 꽤나 신경을 써줬나보네.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게 해주고..."
그냥 봐도 월세가 비싸 보이는 오피스텔이었는데, 무상으로 내줬다니. 새삼 레이크걸즈에서 얼마나 지은을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층수 역시 상당히 높은 층수여서 동국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전망 하난 끝내주겠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 동국의 품에 파고들었다.
"동국씨~! 오랜만이에요!"
"하하... 그런가요..?"
"네~! 하... 동국씨 냄새..!"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적나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세게 동국을 끌어 안은 지은은 동국의 냄새를 킁카킁카 맡기 시작했다.
"크흠... 지은씨..? 왜 남의 냄새를..."
"하아~ 동국씨 냄새, 너무 좋아요..! 진짜 이 냄새로 향수 만들고 싶어..!"
그녀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동국의 품에서 계속 냄새를 맡자, 동국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팔의 냄새를 한번 맡아보았다. 그냥 옷 냄새만 날 뿐이었다.
"자자, 복도에서 이러지 말고 우선 안으로 들어갑시다."
"하아... 네, 그래요!"
동국의 품에서 벗어나질 않는 그녀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집 현관에는 여러 캐리어들과 박스들이 놓여 있었다.
"이게 짐의 전부에요?"
"네에~ 이것만 가지고 가면 이제 여기랑은 빠이에요~ 그리고 드디어 동국씨랑 같이 살게 되는거죠~ 후후..!"
그녀의 표정을 보니 벌써부터 동국과 같이 산다는 생각에 흥분한 표정이었다. 귀가 빨개진걸 보아하니 무슨 야한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동국 역시 오늘 밤이 기대되긴 마찬가지 였다. 아마 오늘 밤, 그녀와 첫날밤을 보낼 수 있을터였다.
그녀의 집은 원룸은 아니고, 투룸? 정도 되보였다. 거실과 자그마한 부엌, 화장실, 그리고 안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확실히 동국의 예상대로 거실 창문으로는 호수 공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야~ 전망 하난 좋네요..!"
"그렇죠~? 여기 야경은 얼마나 좋은지... 다만 전 호수 공원보다 동국씨가 더 좋아요~!"
다시금 동국을 껴안는 그녀의 행동에 동국은 웃으며 그녀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자주,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시하는 그녀의 행동이 동국은 이제 좋아졌다.
"어떻게, 바로 출발할까요?"
"네~! 그래요~! 빨리 발키리 숙소로 가고 싶어요~!"
바로 출발할 거냐는 동국의 물음에 그녀는 활기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대답에 동국은 주위를 둘러보며 혹시 놔두고 가는 짐이 없는지 확인했다.
"놨두고 가는 물건 없죠?"
"네~ 제가 다 확인 했어요~"
"그래요, 그럼 이제 떠납시다."
그렇게 지은은 1년 동안 살았던 일산을 떠나 발키리가 있는 남주시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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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발키리 숙소에 처음 도착해서 느낀건, 오구선수 숙소 답지 않다는것이었다. 아연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이 처음 와서 느낀 것처럼 그녀 역시 숙소가 마치 부잣집 같다고 느낀것이다.
"숙소가 엄청 좋네요~! 이런 곳에서 이제 살게 된다니~ 너무 좋네요~"
"숙소가 아니라 집이니깐요. 좋은 집에서 살아야죠. 잠시만요, 얘들 불러올게요."
동국이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선 짐들을 나르기 위해 얘들을 불렀다. 동국의 부름에 내려온 얘들이 지은에게 어색하게 인사하고는 짐들을 하나 씩 들었다.
일단 짐들을 거실에다가 놨두고선, 동국이 지은에게 방을 고르라고 말했다.
"지은씨, 위로 올라가서 마음에 드는 방, 한번 골라봐요."
동국의 말에 그녀가 기대감을 가지고 동국에게 물었다.
"혹시 동국씨랑 같이 써도 되요~?"
"아하하... 그건 좀... 저희는 일단 다 다른 방을 써요. 물론 같이 자고 싶으면 언제든 안방에서 자긴 하지만요."
동국의 말에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분명 같이 자도 된다는 말에 그러는 거였다.
"그, 그럼..! 언제든 찾아가도 되는건가요..!"
"그럼요. 오늘밤, 기대해요."
그녀의 물음에 동국이 슬쩍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자 그녀의 얼굴이 완전 새빨개졌다.
동국이 지은의 귓가에 뭐라 속삭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연이 리사에게 말했다.
"저런거 보면 아주 선수가 따로 없는 거 같애..."
"음... 그렇지..."
원래 동국과 가장 가까운 방을 쓸려고 했던 지은은 옆방들이 모두 차 있단 사실에 아쉬워 하며 결국 남은 방 중에 가장 가까운 방을 선택했다.
이제 그녀의 방이 된 방에 지은을 짐들을 가져다 놓고선, 동국은 지은에게 집 구조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그 사이 지은의 환영회를 위해 미리 주문해 왔던 음식들이 도착하자, 여자들이 음식들을 거실에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