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8화 〉118회. (118/297)



〈 118화 〉118회.

3회 초 마지막 타자를 뜬공으로 처리하고 난 뒤, 지은이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서 보니 저기 구석에서 선발 투수였던 선수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선 쭈그려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쯧쯧... 그러게 왜 제구가 안되서...'


지은 역시 투수들이 못 던지고 싶어서 못 던지는게 아니란걸 잘 알고 있지만, 투수가 공을 던지는 포지션이니 만큼 자신이 책임을 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책임을 다 완수하지 못했고 말이다. 두 번째 투수가 그녀에 비해 한 수 아래로 평가되는 만큼, 앞으로의 4회와 5회가 걱정이 되었다.


"지은아,  선두 타자야. 빨리 나가."

"아, 예~"


자신의 차례인지 까먹고 있었던 지은은 코치의 말에 서둘러 준비를 하였다.


타석에 들어서며 1루 관중석에 있는 동국에게 손을 흔들어준 그녀는 투수가 자신과의 승부를 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존에 들어온 공 하나를 쳐서 파울 홈런으로 만들어 버리자 더욱 심해졌다.


결국 볼넷으로 출루하게 된 그녀는 보호대를 벗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 말고 다른 타자, 특히 앞선 타자들이 출루에 성공을 해야, 투수가 그녀와 승부를 펼칠텐데, 그러질 못하고 있으니, 앞으로 투수는 자신을 피할 것 같았다.

팀의 입장에서는 지은을 이렇게 피해버리는게 아쉬운 결과이긴 하지만, 그녀에게는 어쨌거나 1루 관중석과 가까워 졌기에 오히려 좋았다.


"동국씨~!"

지은이 1루 베이스를 밟고선 동국을 향해 손을 흔들자, 동국 역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지은의 이런 모습에 캐슬걸즈의 1루수가 슬쩍 지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관중 분이 애인인가봅니다?"


"아, 네. 그래요. 잘 생겼죠?"

지은이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자, 1루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관중석에 있는 동국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가까워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기에 동국이 잘생겼는지는 잘 확인이 되질 않았지만, 굳이 잘 모르겠다고 말할 필요는 없었기에, 1루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잘 생겼네요."


"히히~ 보는 눈이 있네요. 그래도 눈독 드리면 안되요."


1루수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지은은 다음 타자가 병살타를 때려내자, 기분이 다운되는걸 느꼈다. 병살타를 친 타자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그녀는 이내 더그아웃을 향해 걸어갔다.


4회 초, 1번 타자부터 시작되는 캐슬걸즈의 타선에 지은은 긴장하며 타자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기에 1번 타자는 어떻게든 출루하기 위해 공을 최대한 오래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볼넷을 노리는 타자에게는 빠른 승부가 해답이었고, 지은은 투수에게 가운데 직구를 요구했다.  과감한 요구에 투수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펑~


"스트라잌~!"

역시나 타자는 초구는 지켜볼 생각이었는지, 가운데로 들어오는 직구를 그대로 바라만 보았다. 타자의 얼굴이 찡그려 지는걸 바라보며 지은은 속으로 실소했다.

'흐흐... 좋은 공 놓쳐서 기분이 안 좋지~? 계속 안 좋아라..!'

한가운데 실투를 놓쳤다는 생각 때문인지, 타자는 가운데로 오다 떨어지는 포크볼에 헛스윙 하며 2스트라이크로 몰렸다.


그 후, 어떻게든 커트를 해가며 버티던 타자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에 헛스윙 하며 삼진으로 물러났다.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하고 나서 지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1루로 공을 던졌다.

'공의 위력은 좀 떨어져도, 오늘 제구는 잘 되는거 같군..!'

이런 날에는 컨디션이 좋거나 실력이 뛰어난 타자들만 조심하면 된다. 그런 타자들은 자신이 노리지 않는 공이라도, 제구가 잘 된 공이라도 때려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은은 그러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투수가 제구가   공을 던졌지만, 타자가 그대로 받아 친것이다. 딱히 타자가 노리지 않았던 구종이었지만, 카운트가 몰리자 그냥 때려 버렸고,  공은 그대로 우익수의 키를 넘기는 장타가 되었다.

그에 레이크걸즈 더그아웃에서는 바로 다음 타자를 고의 사구로 내보냈다. 그리하여 비어 있던 1루를 채우고 1사 만루가 되었다.

"아이씨... 여기서 막을 수 있을까..?"

"괜히 1루 주자까지 홈으로 들어오는거 아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걱정을 들으며 동국은 자신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대 1의 스코어에서 결승전이니 어떻게든 점수를 막아야 되니, 비어 있는 1루를 채우는 것도 이해가 갔지만, 반대로 투수가 그대로 안타를 허용한다면 자칫 잘못하단 대량 실점을  수도 있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상황에서 투수가 초구를 던졌다. 제대로 제구가 된 공이 존을 살짝 통과했고, 심판은 당연히 스트라이크를 외쳤다.


'타자는 어떻게든 병살타를 피하려고 하고 있다... 이번에도 최대한 낮게 낮게 가자...'

3회에는 투수가 제구가 제대로 되질 않았지만, 지금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는 어느 정도 제구가 잘 되고 있었다. 그래서 지은은 제구만 낮게 잘 된다면 충분히 아웃시킬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포크볼을 요구한 지은은 투수가 던진 공이 잘 떨어질 것 같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여기서 헛스윙을..! 아니..?!'

헛스윙을  것 같았던 타자는 기어이 자세를 무너뜨리면서 공을 띄웠고, 타구는 생각보다 멀리 뻗었다.

포수 마스크를 벗어 던진 지은은 타구가 생각보다 멀리까지 날라가자 살짝 당황했다. 분명히 타자는 낮은 볼을, 그것도 타격 자세가 무너지며 쳤기 때문에 끽해봐야 내야 플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휴... 엄청 멀리까지 날라갔네...'


전진 배치 되어 있던 좌익수가 겨우 따라가 공을 잡자, 2루 주자는 바로 홈으로 태그 업을 했고, 여유롭게 득점에 성공했다.


다음 타자를 뜬공으로 처리하며 더 이상의 실점은 허용하지 않았으나, 점수는 2대 1로 레이크걸즈가   뒤지게 되었다.


4회  레이크걸즈의 타선 역시 1번부터 시작되는 좋은 타순이었다. 그리고 2번 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가 처음으로 지은의 앞에 주자가 있게 되었다.

'좋아..! 여기서 내가 홈런을 때려 주겠어..!'

동국에게 세레머니를 할 생각을 하며 타석에 들어서던 지은은 캐슬걸즈가 고의 사구를 지시하자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1루가 비어있지 않는데도 고의 사구를 지시할진 몰랐다.


"어쩔수 없지... 다음 타자가  해내길 빌수밖에..."


지은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1루로 걸어갔다.

한편 관중들은 1사 만루의 찬스가 오자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최소한 희생 플라이만 나와도 다시 동점이 되는것이었다.

"진짜 이번엔 1점 내겠지..?"


"여기서 점수 못 내면  싸야지."

관중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국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레이크걸즈가 지은의 원맨팀이라고 해도, 다른 선수들이 그렇게까지 급이 떨어지진 않았다. 최소한 여기서 희생타라도 칠 능력은 됬다... 고 생각했다.

"삼진 아웃~!"

"이런 썅~!!"

"장난해, 이 새끼야! 거기서 삼진이라니!!"


"으아악~!"

4번 타자가 삼진으로 물러나자,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타자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질러댔다. 그리고 기가 차기는 동국도 마찬가지였다.

'저기서 삼진이라니... 차라리 병살타를 안 친게 다행일려나...'


동국은 고개를 숙이고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타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5번 타자 마저 땅볼로 아웃 되며 1사 만루의 찬스를 소득 없이 끝낸 레이크걸즈는 5회 초,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맞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괜찮아! 타자가 잘 친거야!"

지은은 투수가 기가 죽을까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투수에게 공을 던져주었다. 지은의 말대로 이번 안타는 타자가  친 것이었다. 제구가 잘 된 공을 타자가 이렇게 잘 치면 투수는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 타자는  타석에서 2루타를 쳐낸 2번 타자였다. 지은은 긴장을 하며 신중하게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몸쪽 포크볼.'


투수가 던진 초구가 그대로 날아와 몸 쪽으로 살짝 휘었다. 그에 타자는 꼼짝을 못하고선 가만히 지켜만 봤다.

"스트라잌~!"

'이번엔 바깥쪽 직구.'

고개를 끄덕인 투수가 1루 주자를 잠깐 보고 나서는 공을 뿌렸다. 공은 지은이 원한 곳으로 그대로 날아갔고, 타자가 배트를 휘둘러 봤지만, 파울이 되고 말았다.


'이제 여기서 신중해야돼...'


2스트라이크로 몰리면 타자들은 그냥 존에 들어오는 것 같은 공들은 무조건 때리기 마련이라 완전히 타자와 투수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힘대 힘으로 맞붙게 된다면 분명히 투수가 질게 뻔하기에 지은은 투수에게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요구했다.


'제구만 잘 되면 삼진으로 돌려세울수 있어..!'


더군다나 그  공이 바깥쪽 직구였기에 타자가 속을 가능성이 더욱 높았다.

지은의 사인을 받은 투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선 3구를 던졌다.

존을 통과할 것 같은 공에 타자는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공은 슬쩍 휘어지며 타자의 방망이를 피해갔다.

"스윙~! 삼진 아웃~!"

"아, 좋았어!"

어려운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자, 지은은 기뻐하며 투수를 글러브로 가르켰다. 공을 건네받은 투수의 표정도 한결 가벼워 졌다.

무사 1루에서 1사 1루로 바뀐 상황. 여기서 병살타면 이닝이 종료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지은이 요구한 떨어지는 포크볼을 투수가 실투로 던졌다.


따악~


제대로 포크볼이 떨어지지 않은 실투를 타자는 놓치지 않고 깨끗한 좌전 안타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상황은 1사 만루가 되었다.

"또 1사 만루야..?"

"하... 진짜, 우리는 여기서 삼진 당했으니, 니들도 삼진이나 당해라!"


이런 관중들의 외침에 오늘 홈까지 들어올 뻔한 2루타와 희생타를 기록해 2타점을 올린 4번 타자는 깨끗한 희생 플라이로 보답했다. 이번에도 낮게 들어온 볼을 그대로 걷어 올린것이었다.


'씹..! 아주 쳤다 하면 외야로 나가네...'


점수가 3대 1이 되자, 지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지껏 레이크걸즈의 타선을 봤을때, 2점차를 따라 잡기엔 힘들었다.


그 뒤, 또 한번 안타를 허용해 2사 만루가 되었으나, 땅볼로 잘 처리해  이상의 실점을 막아냈지만, 5회 말에 타자들의 타선이 침묵했다.


오늘 레이크걸즈가 친 안타의 개수는 총 2개밖에 되질 않았고, 출루도 지은의 2번의  넷 출루를 포함해 4번밖에 없었다. 그만큼 타자들이 캐슬걸즈의 에이스에게 꽁꽁 묶여 있는 것이었다.


"하... 내가 마지막이구만..."


타석에 들어서며 지은은 관중석을 둘러보았다. 이미 몇몇 1루 관중들은 자리를 빠져 나가고 있었고, 반대로 2루쪽 관중들은 우승을 눈 앞에 두고 들뜬 분위기였다.


"에이씨... 끝났네, 끝났어... 야, 가자."


"후... 그래. 우리 팀이 여기까지 온게 기적이었지..."

주위에서 아쉬운 말들을 하며 자리를 뜨자, 동국은 쓴 웃음을 지으며 경기를 계속 관람하였다. 오늘 경기에서 레이크걸즈의 다른 타자들이 너무 지은을 뒷받침 해주지 못했다. 그러니 지은만 거르면 상관이 없는 타선이 되어 버린것이다.

따악 소리와 함께 지은이 친 타구가 저 멀리로 사라져가자, 투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은은 당연하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베이스들을 돌았다.


"이야~ 그래도 마지막에 지은이 한  하네. 가자."


"어, 그래. 우리 팀에 지은 같은 선수가 있다는게 아깝다."


지은의 솔로 홈런으로 1점 만회하긴 했지만, 관중들은 다음 타자들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고, 역시나 다음 타자는 삼진 아웃 당하며 그렇게 경기가 종료되었다.


최종 스코어는 3-2. 지은이 멀티 홈런을 때려내며 절정에 이른 타격감을 과시했지만, 팀의 패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일산 레이크걸즈의 올해 경기는 끝이 나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