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115회.
새로 옮길 부지를 결정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 동국은 바로 리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그래서 결국 홈 구장을 이전을 한다고?"
"어, 일단 그렇게 계획을 잡아 놨어. 너도 한번 봐야 되는데, 언제 올래?"
"음... 일단 다음 주에 갈게. 그래도 집에 오니 또 1주일은 있어야 될 거 같네..."
"그래, 편하게 생각해. 그럼 나중에 보자."
리사와 통화를 한 동국은 아연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아연 역시 다음 주에 오기로 했다.
지은에게도 이 사실을 알릴까 하다가 말았다. 지은은 아직 지금 숙소에서 살지도 않기에 그냥 처음부터 새로 옮긴 숙소에서 지내면 된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동국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지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휴대폰에 뜨는 지은의 이름에 동국은 피식 웃고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동국씨~! 잘 지내셨어요~? 전 요즘에 경기 준비한다고 바빠 죽겠어요~"
"지금 날짜에 경기를 준비한다는 건 참 좋은 일이죠. 그보다 전 지금 지은 씨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동국의 말에 지은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동국이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단 말에 상당히 흥분한 것이다.
"어머~! 진짜로요~!! 히히, 전 항상 동국씨 생각밖에 안 한답니다~!"
"허허, 그렇습니까? 이거 기분 좋군요. 아 참, 저희가 이번에 홈 구장을 남주시에서 구리시로 이전을 할 것 같아요."
"어머, 그래요~?? 언제 할 생각인데요?"
"아마 마무리 캠프 때 하지 않을까 싶네요."
"마무리 캠프요?"
동국의 말에 지은은 깜짝 놀랐다. 지역 리그 팀들도 아니고 1부 리그 팀이 마무리 캠프라니... 그녀는 발키리가 조금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동국씨, 마무리 캠프는 조금 무리하는 거 아닌가요..? 지역 리그 팀들 중에서도 마무리 캠프는 안 하는 팀들도 있는데..."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그래도 마무리 캠프 갈 돈은 있습니다. 선수들 연봉도 다른팀들보다 별로 안 나가서 지출도 별로 없구요."
동국의 말에 지은은 의아했다. 다른팀들보다 지출이 별로 없다니..? 팀에 신인 선수들이 많아서 그런걸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연봉이 별로 안 나간다니..?"
"아, 저희 팀의 선수들중에 3명이 제 부인이잖습니까. 그래서 부인들 연봉은 다 팀의 재정으로 들어가고, 리사와 아연은 막판에 계약을 했으니 딱히 돈이 들어가지 않은거죠. 올해에 대회 상금을 많이 받기도 했고요."
"그, 그렇군요..!"
선수들이 부인들이라서 연봉을 받지 않는다니... 그럼 지은, 자신도 동국의 여자가 되려면 연봉을 받지 말아야 될까..?
'하지만 난 이것저것 살게 많은데...'
지은은 이렇게 걱정을 하다가 조심스레 동국에게 부인들의 생활에 대해 물어보았다.
"저기, 동국씨..? 그러면 부인들의 불만은 없나요..? 부인들도 여기저기 살게 많을텐데..?"
지은의 물음에 동국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딱히 그녀들이 뭐라 그런 적은 없는 거 같았다. 앤서니야 고기만 원할 뿐이고, 지아는 그렇게 많은 돈을 쓰지 않았다. 가끔 화장품이랑 옷을 산다고 돈을 요구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벨리나는... 원래 돈이 많았다.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자 지은은 뭔가 고민이 있는 말투로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에 동국은 그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일요일날, 동국은 다시 강릉으로 가서 리사와 아연을 데리러 갔다. 먼저 아연의 집 근처로 가서 그녀에게 전화를 거니 아연이 그녀의 부모님과 함께 캐리어를 끌고 내려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발키리 감독, 동국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아연이 엄마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 아연이 잘 부탁드려요."
아연의 부모님의 눈치를 보니 아직 아연이 동국과의 사이에 대해 밝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동국은 아연을 잘 부탁한다는 부모님의 부탁을 웃으며 받아드렸다.
"하하, 그럼요. 아연 선수가 얼마나 잘 하는데요, 앞으로 팀에 많은 보탬이 될겁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서 아연은 차에 올라타서 부모님이 안 보이자 바로 동국에게 달라붙었다.
"동국~! 진짜 오랜만이야~!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야, 야! 나 지금 운전중이잖아! 달라 붙으면 어떡해?"
"뭐, 어때~ 어차피 반 자율주행인데. 그보다 동국은 나 안 보고 싶었어? 난 엄청 보고 싶었는데?"
아연이 잔뜩 기대감을 가지고 동국에게 물어보자, 동국은 당연히 보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아연이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였는데, 일주일 가량 못 봤다고 이렇게 달라붙다니. 동국은 새삼 아연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이제 리사네 집에 가는거야?"
"어, 그렇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뭐, 추석 지내고 그냥 빈둥거렸지. 가족들이랑 근처로 바람도 쐬고 그랬어. 그나저나 홈 구장을 이전한다는 건 뭐야? 진짜 이전하는거야?"
아연이 홈 구장 이전에 대해 궁금해 하자 동국은 리사가 오면 이야기 해주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리사도 들어야 되는 이야기니깐 말이다.
리사네 집에 다 와갈쯤에 연락을 하니, 집 앞에 도착을 했을 땐 이미 리사가 나와 있었다.
"리사야, 잘 지냈어?"
동국이 차에서 내려 그녀를 맞이하자, 그녀는 동국에게 달려와 품에 안겼다. 온 몸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부드러움에 동국은 절로 미소를 지었다.
"동국~! 보고싶었다~!"
"허허, 얘네들이 일주일 사이에 어리광이 늘었어. 근데 리사, 부모님은 안 나오셨어?"
동국이 리사에게 묻자, 그녀가 슬쩍 자신의 집을 바라보았다.
"아아, 내가 그냥 나오지 말라고 했다. 뭘 굳이 나오냐고 그랬거든."
그러나 리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집에서 누군가 나왔다. 그냥 봐도 리사의 어머니인게 분명한 중년 여성분이었다.
"어머~! 리사야! 너 지금 뭐하는거니~?"
"헉! 어, 엄마..!"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리사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번졌다. 그녀는 화들짝 동국의 품에서 빠져나왔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안녕하십니까, 발키리 감독인 동국이라고 합니다."
동국이 리사의 엄마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그녀는 호호 웃으며 다가왔다.
"호호, 그래요. 전 리사의 엄마에요. 아연이도 옆에 있었구나?"
"안녕하셨어요, 아줌마."
"그래, 너도 리사랑 같은 팀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쁘던지. 그보다..."
아연과 인사를 나눈 그녀는 슬쩍 동국과 리사를 번갈아 보았다. 그녀의 눈빛에 리사의 얼굴이 빨개졌다.
"둘은 무슨 사이에요? 뭐, 아무 사이도 아닌데, 그냥 껴안고 그러나~?"
"어, 엄마, 그게 말이야..."
리사가 뭔가 변명을 할려고 했지만, 그보다 동국의 말이 더 빨랐다.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리사의 애인인 동국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동국이 꾸벅 인사하자, 리사의 엄마는 호호 웃으며 리사를 흘겨봤다.
"호호, 그래요. 어쩐지 리사가 집에 왔을 때 뭔가 인상이 달라졌더라니깐~ 그보다 딸내미라고 있는 년은 이렇게 애인이 생겼는데도, 말도 안 하고 말이야. 엄마 보고 나오지 말라고 하던게 다 이유가 있었구만~"
"크흠... 일부러 말 안 할려고 그런건 아니다."
"어이구~ 어련하시겠어~ 그보다 동국씨~? 집에 들어가서 차라도 한잔하시겠어요?"
"아, 물론이죠."
"그래요, 내가 딸내미 남자친구를 봤는데, 그냥 보낼 순 없지. 들어와요. 아연이도 들어오고."
리사의 집은 아담한 단독주택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자그마한 마당에 텃밭과 운동 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동국이 운동 기구를 바라보자, 리사의 엄마가 동국에게 말했다.
"우리 얘가 집에 있는 내내 어찌나 운동을 하던지~ 제가 리사보고 부상도 입은 얘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했는데, 콧방귀도 안 뀌더라구요. 동국씨가 뭐라고 해보세요."
"하하, 그런가요? 제가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하겠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와, 리사의 엄마는 그들에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부엌으로 가 차를 준비했다. 아연은 그래도 자주 놀러왔는지 별로 어색해 하지 않았지만, 동국은 두리번 거리며 집안을 둘러봤다.
"미안하다, 동국. 내가 조금 조심할걸 그랬다."
"뭐가, 너 일주일 동안 운동한거? 추석인데 좀 푹 쉬지 그랬어."
"아, 아니. 그거 말고. 이렇게 집에 온 거 말이다. 많이 당황했을텐데 말이야."
리사가 미안해 하자, 동국은 피식 웃고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차피 리사와 계속 이런 관계가 유지되면 언젠가 한번은 경험해야 하는 일이었다. 비록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됬어. 어차피 정식으로 인사를 드려야 했어. 그보다 어머님이 참 미인이셔. 아주 리사, 너가 왜 이렇게 이쁜지 알겠어."
동국의 말에 리사가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크흠...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다."
그 때, 리사의 엄마가 쟁반에 차와 과일을 가지고 왔다. 그녀는 동국과 리사가 다정하게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선 웃으며 말했다.
"호호~ 아주 보기 좋네~ 그보다 동국씬 나이가 어떻게 되요? 부모님은 뭐하지고?"
"아, 나이는 리사랑 동갑인 25살 입니다. 부모님은 안 계시고요."
"어머, 그래요. 내가 괜한 걸 물어본 건 아닌가 모르겠네. 그럼 리사랑은 어떻게 연인 관계가 된거에요?"
동국이 부모님이 없다는 말에 그녀가 미안한 표정을 짓더니 얼른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그녀의 배려 아닌 배려에 동국이 천천히 리사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같이 숙소에서 살면서 서로 좋아하게 된 거 같습니다. 어느 순간 연인이 됬다고나 할까요?"
"그래요? 역시 남녀가 같은 공간에서 지내다 보면 서로 눈이 맞을 수밖에 없다니깐~ 그보다..."
그녀가 말을 흐리며 눈치를 보자, 동국과 리사가 긴장했다. 도대체 뭔 말을 할려고 뜸을 드리는걸까? 반면 아연은 과일을 먹으며 남일 보듯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동국씨가 결혼을 했다는 소리를 리사에게 들은 거 같은데, 사실이에요?"
동국의 결혼 이야기에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한 둘. 동국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지금 현재 부인이 3명 있습니다."
"어머~ 3명이나~? 우리 동국씨 엄청 능력있네~ 하긴 이렇게 잘생기고 능력도 좋으면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지~"
예상 외로 리사의 엄마는 동국의 결혼에 대해 그렇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동국과 리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 내가 말 놔도 되겠죠?"
"아, 예. 물론이죠. 편하게 말씀하세요, 어머님"
"호호, 내가 어머님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바깥양반도 우리 동국 씨를 한번 봐야 하는데, 마침 일요일이라서 낚시를 가서 없네. 하여튼 별로 도움도 안되는 양반이야."
아무래도 리사의 아버님은 낚시하러 가신 모양이었다. 동국에게는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2명보다는 1명을 더 상대하기 편하니 말이다.
"그럼 동국씨 아주 밤에 고생하겠어~? 우리 바깥양반은 이제 힘도 못 쓰는데, 동국씬 부인이 3명에 리사까지 있으니깐~ 호호~"
어머니가 눈빛을 빛내며 동국을 바라보며 웃자, 동국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면 리사의 어머님은 리사의 어머님 답게 아직까지 미모가 유지되고 있었다. 몸매 역시 리사가 누굴 닮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풍만함 그 자체였다. 다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뱃살도 약간 있어보이지만, 가슴이랑 엉덩이를 본다면 딱히 흠도 아니였다.
동국을 바라보는 어머님의 눈빛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리사가 황급히 어머님에게 말했다.
"엄마, 이제 가야될거 같다. 지금 출발해야 늦게 도착하지 않지. 아쉽지만 이제는 진짜 가야 돼."
"어머,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됬니~ 아쉬운데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그러니~ 내가 맛있게 대접해줄텐데... 후후..."
그러며 동국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모습에 리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사가 일어나자 다들 엉거주춤하게 일어났다.
"그럼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머님."
"그래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나중에 강릉 올 일 있으면 놀러와요.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자고 가도 되니깐... 후후..."
"하하, 예. 그럼 이만..."
"안녕히 게세요, 아줌마."
"그래, 아연이도 잘 가렴~"
어머님은 뭔가 아쉬워 하며 동국과 일행들을 보냈고, 동국 역시 뭔가 아쉬웠다. 리사만이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고 말이다.
그렇게 거진 일주일 만에 리사와 아연이 다시 숙소로 돌아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