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100회. 지은
"후... 벨리나, 너는 뭐 없니..?"
재은이 벨리나에게 묻자 벨리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 하... 전 딱히 없어요. 그러면 약속은 언제인가요?"
"아, 내일은 쉬고 모레에 어떻니?"
재은의 말에 다들 괜찮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넷이서 약속 장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동안 리사와 아연이 슬그머니 동국에게로 접근했다.
"동국. 근데 왜 재은 언니는 우리보곤 안 물어보지..?"
"맞아, 맞아. 우리도 동국 애인인데."
둘이 섭섭해 하자 동국이 쓰게 웃고선 대답했다.
"그래도 쟤네 셋은 내 정식 부인이잖아. 그러니 저러는거지."
"그, 그런가... 흠, 그런거라면..."
"어쩔수 없지..."
동국의 설명에 그녀들은 아쉬워 하면서도 수긍을 했다.
얼추 짐을 다 정리할 무렵 동국은 이 근처에 그 유명한 호수 공원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미친년이 호수 공원이 좋아서 팀을 선택했을 정도라니 꽤나 괜찮겠지..? 한번 가 볼까?'
호수 공원에 대해 궁금해진 동국은 그녀들에게 제안했다.
"얘들아, 짐 다 정리하고 호수 공원에 놀러 가보는 거 어때?"
"좋아~!"
"그럼 저녁은 밖에서 먹는거야?"
"음... 그렇지."
"얼마나 좋으면 그 미친년이 선택했는지 한번 확인해봐야 겠군."
그렇게 정리를 끝낸 일행들은 재은까지 포함해 다같이 호수 공원에 갔다.
주차장에 버스를 대고선 내리니 가을이라 그런지 낙엽 진 거리가 일행을 반겼다.
"가을이라 그런가 단풍 색으로 다 물들었네."
"그러게. 예쁘다."
"우리 단풍 구경 가러 안가?"
울긋불긋한 나무들을 감상하며 걷다가 문득 지아가 동국에게 말했다.
'흠... 단풍 구경이라...'
그러고 보면 이쯤이 단풍철이었던가..? 아마 뉴스에서 그랬던 거 같으니 그럴것이다. 호수 공원의 나무들만 봐도 다 단풍이 들었으니...
지아의 의견에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의 의견을 내놨다.
"단풍 구경 갈려면 산에 가야되는데, 설악산 어때?"
"너무 힘들지 않을까? 그냥 북한산은 어때?"
"난 아무데나 좋아~"
이런저런 산들이 나오는 가운데 벨리나가 문득 외쳤다.
"여름에 갔던 별장은 어때요? 거기도 주위가 산이라서 좋은데."
"오, 그거 좋은 생각!"
벨리나의 말에 동국이 손바닥을 마주치며 동의했다. 저번에 갔을 때도 좋았는데, 그 때는 주위 계곡에 밖에 가질 못했었지. 이번엔 근처 산길을 따라 구경 가면 좋을 것 같았다.
"에에~? 거기도 좋긴 한데, 난 유명한 산에 가보고 싶은데~"
지아가 아쉬워 하자, 동국이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거기도 가면 되지. 뭐가 뭔제야. 우리 이제 컵 대회도 끝났겠다, 할게 없어."
"히히, 그렇네~"
동국의 말대로 이제 올해에는 모든 경기가 다 끝이 났다. 물론 오구계에서는 계속해서 지역 컵대회, 전국 컵대회, 그리고 오구 월드컵까지 연달아 있지만, 그거야 남의 이야기였다.
이제 앞으로 뭘 할건지에 대해 떠들다 보니 호수 공원 내에 있는 작은 동물원에 도착했다. 자그마한 동물원이었는데, 새나 양 같은 크기가 작은 동물들이 여러 마리 있었다.
"오... 공원 안에 동물원도 있네..?"
"그러게... 규모가 커서 그런가..?"
공원 안에 동물원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대단했다.
"오빠, 저거 귀엽다~"
지아가 슬쩍 동국의 팔에 팔짱을 끼자 곧바로 앤서니도 반대편 팔에 팔짱을 꼈다. 양 팔에서 느껴지는 물컹함에 동국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다람쥐가 귀엽네."
실제 호수 공원이 어떠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선 상당히 잘 되어 있었다. 오히려 규모가 더 큰 거 같았다. 마치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주위를 둘러보니 리사와 아연이 서로 구경하고 있었고, 재은이 벨리나에게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동국과 일행들은 동물원에서 사진도 찍고 여유롭게 구경을 하다가 옆에 있는 분수대로 향했다. 분수대에서는 여러 조명들과 함께 노래에 맞춰 분수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건 밤에 보면 더 좋겠네."
"밤에 하는 분수쇼..? 후훗... 내가 침대에서 보여 줄까?"
사람이 바뀌어서 이제 동국의 양 옆에는 리사와 아연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둘의 뭉클함을 마음껏 느끼고 있던 동국은 리사가 분수쇼를 보며 말을 하자 음흉하게 웃으며 농담을 했다.
"동국. 우리 모두를 상대 할 수 있겠어..?"
"우리야 좋은데..?"
동국의 농담에 둘은 오히려 자신들의 가슴을 더 바싹 뭉개며 유혹했다. 둘의 유혹하는 표정에 동국의 목젖이 꿀꺽 하고 움직였다.
"음... 경기 하고 나서 피곤하지 않을까..?"
"난 경기 안 뛰었잖아."
"솔직히 벨리나만 쉬면 돼~"
동국이 약한 소리를 하자 기세가 등등해진 둘이 동국을 몰아붙였다. 동국이 오늘 함 허리를 고생 시켜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어어?!"
큰 소리에 고개를 돌린 셋. 트레이닝 복을 입은 한 여성이 손가락으로 셋을 가리키며 놀라고 있었다.
"뭐지, 우릴 아는 팬인가..?"
"그럴수도..."
아직까진 그렇게 유명하지 않아 사람들이 잘 못 알아보지만 리사 같은 경우는 그래도 유명했으니 알아보는 팬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여성이 가까이로 다가오자 점차 인상이 찡그려졌는데, 다름 아닌 오늘 경기에서 도발을 한 지은이었다.
지은은 감독이 웬일로 일찍 끝내줘서 기분 좋게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오늘 만점 활약에 동국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상당히 뿌듯했다.
"이런 날엔 호수 공원에서 산책이나 할까..?"
마침 날씨도 좋겠다,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남았으니 지은은 여유롭게 옷을 갈아 입고선 호수 공원으로 향했다.
매일 다니던 산책로를 따라 걷던 그녀는 분수대 근처에서 낯이 익은 남자를 발견했다.
"어..? 저 사람은..?"
여자 2명과 팔짱을 끼고선 분수쇼를 감상하는 남자. 바로 그녀의 남자, 동국이었다.
'아, 아니... 저렇게 알콩달콩 하게 있다니..! 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 마음까지 알렸는데에~!'
지은은 분명 동국이 자신에 대한 생각 때문에 열심히 고민을 하고 있을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시로 자신의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혹시나 경기가 끝이 나고 동국이 계약 하자며 전화를 걸까봐.
그렇게 두근거리며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작 동국은 여자들을 끼고선 희희낙락하고 있다니!
지은이 시뻘개진 표정으로 셋에게 다가갔다.
"뭐, 뭐야, 쟤..."
"왜 저렇게 혼자 흥분해서 오는거야..?"
"아, 잘됬어. 내가 경기 때 혼쭐을 못 내줘서 아쉬웠는데, 여기서 결판을 내자."
아연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정작 동국의 팔을 꼬옥 붙잡았다. 그 모습에 동국이 어이없이 그녀를 바라보는 사이, 어느새 가까이로 다가온 지은이 빽 소리를 질렀다.
"동국씨! 어떻게 여기서 이렇게 여자들이랑 히히덕 거리고 있을 수가 있어요!!"
"네..?"
지은의 외침에 순간 동국을 비롯해 리사와 아연은 당황해서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얼빠진 표정을 지을뿐이었다.
"뭐, 뭐야..?"
"바람 피다 걸린거야..?"
지아의 외침에 주위 사람들이 수군대자, 동국은 빨개진 얼굴로 지은에게 말했다.
"아니, 당신이 뭔데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합니까?! 이 여자들, 다 내 애인들이에요!"
동국의 외침에 이번에도 주위 사람들이 수군댔다.
"뭐, 뭐야..?"
"여자가 2명이나 된다고..?"
동국이 그렇게 외치자 지은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어떻게 자신에게 그렇게 대답을 한단 말인가... 자신이 얼마나 동국을 좋아하는데...
정작 자신이 직접적으로 동국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 하지 않은건 생각하지 않는 지은이었다. 그녀는 홈런 치고 한 세레머니로 동국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렸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동국이 느낀 마음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도, 동국씨... 어떻게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어요..? 내가 동국 씨에게 보여 줬던 그 마음은요..! 내 마음은 뭔데..!"
지은이 울먹이며 동국에게 소리치자 동국은 황당하게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리사와 아연은 순간 멈짓했다.
'뭐지..? 혹시 동국이랑 저 년 사이에 뭔가 있었나..?'
'설마 우리 몰래 만나는 사이였나..?'
어느새 주위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 치정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일행들이 몰려왔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꽤 많이 있는 상황이었다.
"뭐야? 뭔일인데..?"
"그러게~ 듣기론 사각 관계라는데~"
지아와 앤서니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고개를 내밀어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려고 하자, 벨리나와 재은은 그냥 관심을 끄고서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뭔일 있나 보네... 어머, 언니. 이 꽃이 너무 예뻐요~"
"오, 그렇네~ 이 꽃 이름이 뭐지..?"
한편 동국은 지은의 말에 심히 당황했다.
'뭐지... 난 오늘 저 여자를 처음 만났는데..? 그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이 모인거지...'
"아, 아니. 저기요. 전 오늘 지은 선수를 처음 만났는데 무슨 마음을 줘요? 진짜 이상한 소리 하지 마요."
동국의 말에 그제야 확신이 들었는지 리사와 아연도 소리를 높혔다.
"맞아, 진짜 이상한 여자야."
"그리고 왜 홈런 치고 나서 우리한테 도발 한거야? 어? 말해봐, 이 년아!"
아연이 홈런 후 세레머니에 대해 이야기 하자, 지은이 그녀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그래요, 내가 홈런 치고 동국 씨에게 내 마음을 표현했잖아요! 내 윙크를 받아줬으면서! 어떻게 여기서 여자들이랑 팔짱을 끼고선 노닥거릴 수 있어요! 난 동국씨 연락을 얼마나 조마조마 하게 기달렸는데!"
"으응..?"
지은의 말이 순간 이해가 가지 않은 셋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순간 자신이 들은 소리가 맞는지 서로를 쳐다보는 셋.
"지금 내가 들은 게 제대로 들은건가..?"
"그러게... 그게 도발이 아니였나..?"
엉망진창이 된 마음을 정리하며 동국이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홈런 치고 우리, 아니 나에게 윙크를 한게..?"
"그래요, 나의 이 마음! 동국 씨를 향한 나의 마음을 고백한건데..! 흑..!"
지은은 울먹거리며 동국의 물음에 대답을 하고선 눈물을 뿌리며 어디론가 뛰쳐나갔다.
"어, 어..."
하지만 주위 관중들이 많아 제때 사라지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동국과 둘은 멍하니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