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8화 〉98회. (98/297)



〈 98화 〉98회.

"저새낀 뭐지..?"


리사의 중얼거림에 동국은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어이가 없으면 오히려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는데, 아마 지금이 그런 상황이 아닐까 싶었다.


"하, 나~ 증말,  도네..! 저 새끼 진짜 사람 빡 치게 만드네~?"

리사는 잔뜩 흥분을 해서는 씩씩대며 손 부채로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저 언니야 좀 이상한 사람 같애..."


앤서니 역시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앤서니라고 해도 지은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점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진짜 괴짜라더니... 이런 의미 였나..?"

동국 역시 화가 너무 나면 오히려 마음이 차가워진다는걸 느꼈다.


"동국. 선택해봐. 지금 타자를 맞추는게 좋을까, 아니면 나중에 저 미친년이 타석에 들어서면 그때 맞추는게 좋을까?"

리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보복구에 대해 묻자, 동국 역시 심각하게 고민했다. 자신이 봤을 때도 이번 지은의 세레머니는 너무 나갔다. 베트플립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지만, 원정팀 더그아웃을 향해 윙크를 하고 손가락 총을 날리다니..? 이건 명백히 우리를 조롱하는것이었다.


"흠..."


동국은 고민을 하면서 지은의 다음 타석에 들어선 타자를 한번 쳐다봤다.
그녀는 지은의 행동에 사색이 되어서는 벨리나의 초구가 들어오자마자 마치 번트 대듯이 갖다 대고는 1루로 뛰지도 않고 바로 더그아웃으로 줄행랑을 쳤다.

"..."


리사와 동국은 물론이고 타자가 번트를 대자 반사적으로 뛰쳐나간 벨리나와 아연 역시 황당해 하며 도망간 타자를 쳐다보았다.

"음... 일단 애꿎은 타자들은 맞추지 말자..."


"그, 그러는게 좋겠다..."

동국과 리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벨리나는 지은에게 홈런을 맞자마자 뭔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무거운 짐이 같이 날아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 내 자신을 인정하자. 아직은 내게 허락되지 않은 위치다...'


동국의 말대로 오늘 경기는 보너스와 같은 경기.  그대로 앞으로, 내년에 경험할 경기를 미리 경험한 거라고 치자. 그러니 지금  순간을 즐기자.


마음을 편히 먹자 왠지 컨디션이  좋아진것 같았다. 이것이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마음을 비우는 걸까..?

벨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남은 두 타자를 깔끔하게, 물론 4번 타자의 모습은 너무 이상했지만, 처리하고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더그아웃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아니, 진짜 그 미친년은 도대체 뭐지? 진짜 순간 뛰어가서 뒤통수에 날라차기를 할뻔했다니깐~?"

"하, 나도 어이가 없더라...  우리를 보고 윙크를 하는데,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더라고? 마치 내가 본걸 부정하는 느낌..?"


"어머, 진짜 더그아웃을 향해 윙크를 했어? 난 멀리서 봐서 그냥 뭔가 삿대질을 하나 싶었는데..."


선수들이 다들 하나같이 열불을 내고 있자 벨리나는 의아해 하며 슬그머니 동국에게 다가가 물었다.

"오빠, 이게 무슨 말이에요? 왠 미친년..?"


벨리나의 말에 오히려 동국이 이상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음..? 너 신지은이가  짓을 했는지 못봤어?"


"어... 난 홈런 맞고 그냥 하늘만 쳐다봐서... 타자를 안 봐서 모르겠는데..?"


벨리나의 말에 동국은 한숨을 내쉬고선 지은이 한 행동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이 계속될수록 벨리나의 눈동자와 입이 점차 커졌다.


"...그렇게 된거야..."

"헐..."

동국이 설명이 끝이 나자 그녀는 커진 눈동자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채 고개를 돌려 홈 팀 더그아웃을 바라보고선 다시 동국을 바라봤다.


"그럼 어떻게 해요? 다음에 그 타자가 타석에 서면 맞춰버릴까요?"

벨리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선수들이 목청을 높혔다.

"아, 당연하지! 머리를 날려버려!"


"맞아, 맞아! 만약 너에게 달려들면 내가 더그아웃에서 뛰쳐나갈게!"

"나도 뛰어갈게! 비록 좌익수라 조금 멀긴 한데... 2루수인 아연 언니가 있으니깐."

"마, 맞아..! 내, 내가 막아줄게..!"

지아의 말에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내는 아연이 좀 그랬지만, 하여튼 선수들 역시 잔뜩 흥분해서는 보복구를 날리라고 목소리를 높혔다.


"흠... 그래, 일단 보복구를 던지는 걸로 하자. 물론 상황 봐서 안 그럴 수도 있지만."


동국의 말에 벨리나는 각오를 다지며 홈팀 더그아웃을 쳐다봤다.


한편 레이크걸즈 더그아웃도 지은의 행동 때문에 난리가 났다. 홈런을 치고 나서 상대팀 더그아웃을 향해 세레머니라니! 다음 타자가 얼마나 놀랐으면 번트를 대고선 도망갔을까.


"야!  미쳤니!"

감독의 호통에 지은은 뭐가 문제냐는듯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요."


"뭐가요오~? 하!  미친년에, 진짜. 뭐가 잘못되는지도 모르는구나... 홈런을 치고 나서 원정팀 더그아웃에다가 세레머니를 하면 어떡해!!"


감독이 답답한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쳤지만, 지은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난 동국씨에게 내 마음을 전했을뿐이에요~!"

"뭐, 동국씨~? 하, 참..."

지은의 말에 감독은 기가 찼고, 주위 선수들과 코치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질 않아 서로 어리둥절했다.


"그래요, 이 참에 말씀드릴게요. 전 동국씨의 사진을  순간 사랑에 빠졌어요! 딱 보는 순간 '아,  사람은 내 사람이구나!' 를 느꼈다고요! 그래서 이번 FA때 발키리로 이적할거에요!"

지은의 폭탄 선언에 감독과 코치진은 물론 선수들까지 얼이 빠졌다.


'아니, 아무리 미쳐도 그렇지... 사랑 때문에 팀을 옮기겠다고..?'

'저 미친년이 우리 팀엔 호수공원에 꽂혀서 이적하겠다더니, 이제는 남자에 꽂혀서 이적을 한다니...'


'아니 그럼 왜 그런 도발을 한거지..?'

사람들의 생각에 그런 의문이 들때쯤, 감독이 모든 사람들의 궁금한 점에 대해 물어봤다.

"야, 그러면  발키리 더그아웃을 향해 도발을 한거야? 오히려 조용히, 차분하게 행동해야 되는거 아니야?"

하지만 감독의 말에 지은은 오히려 이상하다는듯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도발요? 전 동국씨에게 사랑의 윙크를 날렸을뿐이에요!"

"그, 그러면 홈플레이트를 밟고선 더그아웃을 향해 삿대질 한거는?"

"그건 삿대질이 아니라 사랑의 총이죠~ 빵야, 빵야~!"

그러면서 손가락 총을 난사하는 지은의 행동에 감독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오, 제발...!"


다른 선수들의 반응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지은만이 이 상황을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흠... 다들 내가 떠난다고 하니 마음이 심란한가보네... 하긴 내가  이 팀을 하드케리 하긴 했지...'

지은은 다 이해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 그래, 알았다. 계약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고, 지금은 수비나 제대로 하자. 자, 어서 나가."

감독의 말에 선수들이 수비를 하러 우르르 나갔다. 그리고 지은 역시 포수 장비를 끼려 하자 감독이 그런 그녀를 말렸다.


"지은아, 넌 오늘 열심히 활약을 했으니 이만 먼저 집으로 가거라."


감독의 말에 지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화를 내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배려를 하다니..?

"... 앞으로 별로 볼 일이 별로 없을거 같아 미리미리 쉬게 할려고 그러는거야. 그리고 지금 경기도 많이 기울어져 있기도 하고."

감독의 설명에 지은은 별 생각 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동국씨의 얼굴을 더 보지 못하는건 아쉽지만, 그거야 나중에 실컷 보면 되는거고. 곧 있으면 떠날 호수 공원에 들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 같았다.


지은이 그렇게 더그아웃을 빠져 나가자 감독은 진이 다 빠진 듯 벤치에 철썩 하고 앉았다. 그러자 감독 주위로 코치진들이 몰려왔다.


"감독님, 어떻게 합니까? 이대로 지은이가 나가면 안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지금 지은이가 이 팀 전체의 전력에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데..."

코치진들의 걱정에 감독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손을 내저었다.

"아, 아. 조용! 우리가 잡는다고 지은이가 잡힐 선순가? 아니잖아? 지은이가 일산 호수 공원이 마음에 든다는 황당한 이유로 우리 팀을 선택한 거처럼 감독이 잘생겼다고 팀을 이적하겠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막나..? 그냥 앞으로를 대비해야지..."


감독은 그렇게 말을 하고선 주위를 힐끔 처다보고선 코치  1명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발키리 더그아웃에 찾아가서 조용히 사과해. 우리 팀 선수가 홈런을 쳐서 너무 흥분해서 실례를 했다고 말이야. 우리 팀도 사과하는 마음에서 4회부터 AI를 대신 내보내겠다고 말이야."


감독의 말에 코치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 말씀은..?"

"그래, 우리야 지은이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게됬지만, 발키리 측은 이 황당한 사실을 모를거 아니야. 그냥 저 년이 싸가지가 제대로 없구나 하고 이만 갈고 있겠지. 그러다가 이렇게 우리가 대응을 하면 그대로 지은을 만날 일도 없이 악연으로 기억되겠지. 우리가 괜히 남 좋은 일을 하진 말자고."

감독의 계략에 코치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감명 받았는지 감독을 바라보는 눈빛에 한층 존경이 담겼다. 감독 역시 코치들의 존경의 눈빛을 느꼈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4회 초, 1사 상황에서 지아는 허탈한 얼굴로 타석에 들어섰다. 지아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 레이크걸즈의 코치 1명이 발키리의 더그아웃으로 찾아와 지은의 행동에 대해 사과를 했다.

코치의 말로는 지은이 원래부터 약간 싸가지가 없는 선수였는데 오늘 그렇게 무례한 행동을 할 줄은 자신들도 몰랐다고. 그래서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신들의 주력 타자이자 포수인 지은을 경기에서 빼고, 대신 AI선수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자 지은에게 보복구를 던질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사과를 해왔는데 다른 선수에게 던질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상황은 찜찜하게 해결되었고, 발키리의 선수들 역시 기분이 찜찜하긴 마찬가지였다.


"뭔가 한대 때려놓고서 바로 부모가 와서 사과하는 상황 같다..."


"아니면 누가 벨튀하고 간거 같애..."

"아우~! 진짜  년에게 한 대 때렸어야 되는데..!"

아연이 아쉬워 하자 리사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럼 진짜 날라차기를 하지 그랬어?"

리사의 말에 아연은 살짝 당황한듯 눈동자를 굴리다가 대답했다.

"아, 아, 진짜 그럴껄 그랬나봐... 하, 하, 하..."


아연의 태도에 리사는 피식 웃었다. 아연은 혹시나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을 때 자신이 맞아서 혹시라도 부상을 입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니 몸이 유리몸인거 다 아니깐 그만 찔려해~"


리사의 말에 아연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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