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7화 〉97회. (97/297)



〈 97화 〉97회.

3회 초가 아연의 삼진을 비롯해 땅볼과 뜬공으로 마무리 되자 동국의 인상은 펴질줄 몰랐다.


"흐음... 공격이 너무 안 풀리는군..."

뭔가 타선이 꽉 막혀 있는 느낌. 지아와 아연이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다. 동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선발 투수의 실력은 그렇게까지 뛰어난 편은 아니였다. 어디까지나 1부 리그에서 잘 하는 정도랄까..? 물론 오구라는 종목이 언제나 투수가 이길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스포츠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아와 아연의 말에 의하면 뭔가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상대 팀에서 우리 타자들에 대해서 공략을 철저하게 한것일까..?


아무튼 발키리에 불리한 것임은 틀림이 없다.

3회 말이 되어서 벨리나는 첫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카운터를 잡으려고 던진 커브를 그대로 받아쳤다.


벨리나가 이렇게 고전하는 걸 보면 레이크걸즈의 타선은 발키리와는 완전 반대되는 분위기다.


커브를 던져 안타를 맞자 벨리나는 다음 타자에게 계속해서 스크류볼을 던져 땅볼을 유도해 냈다. 다만 병살타까진 연결되지 못해 1사 2루의 상황이 되었다.


'스크류볼을 계속 남발하면 안 좋은데...'

벨리나는 약간씩 통증이 느껴지는 팔을 부여 잡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동국과의 특훈으로 인해 부상 위험이 현저히 떨어지긴 했지만, 많이 던지면 통증이 있긴 했다.

그리고 이러한 통증보다 더 큰 문제는 타자들이 스크류볼의 궤적에 익숙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스크류볼의 가장  장점은 생소함이다. 커브가 올 것이라고 궤적을 예상하고 배트를 휘두르는데 공의 궤적이 달라 헛스윙을 하거나 빗맞추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스크류볼을 많이 관찰을 해서  궤적이 눈에 익으면 커브랑 별 반 다른게 없어지는 것이다.
물론 몇번 봤다고 궤적이 바로 익숙해지진 않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결정구는 결정구 답게 중요할 때 써야 하는 법. 되도록이면 직구와 커브로 카운터를 잡아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없어...'

그러나 벨리나는 자신의 공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왠지 던지면 다 맞을 것 같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저기 타석에 서 있는 2번 타자 역시 1부 리그에서는 그래도 3할에 홈런도 여러  치는 거포다. 자신보다 뛰어난 타자인것이다.

이런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제구에 더 집중하게 되고, 그럴수록 볼이 많아졌다.


'아... 안되는데... 여기서 승부를 해야 3번 타자랑 승부를 안 할텐데...'

문득 이 2번 타자 다음 타자가 지은이란 사실이 떠올라 벨리나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볼카운트는 자신에게 불리한 3-1 상황이었다. 결국 제발 땅볼을 치라며 던진 스크류볼을 타자가 골라내면서 볼넷이 되고 말았다.

타자를 볼넷으로 내주게 되자 마운드로 동국이 방문했다. 동국의 표정은 상당히 걱정스러워 보였는데,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 벨리나의 안색이 심히  좋았기 때문이다.

"벨리나."


"네에..."


"많이 힘들어?"


동국의 물음에 벨리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벨리나의 모습에 동국은 그녀를 살며시 껴안아 주었다.


"뭐가 그렇게 힘들어..?"


"타자들과 승부하는게요... 뭔가 제 공에 자신감이 없고, 타자들은 제가 던질 때마다  안타로 만들 것만 같고... 불안해요..."

벨리나의 고백에 동국은 그녀를 껴안고 있던 손을 풀어 그녀의 얼굴을 잡고 자신의 눈을 바라보게 했다.


"벨리나. 그럼 안타를 맞으면 되지! 안타를 맞는 걸 두려워 하지 마!"


동국의 강렬한 눈빛에 벨리나의 눈빛이 떨렸다.
투수는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면  되는데 왜 안타를 맞으라고 하는걸까.

"그러면 안 되는거잖아요. 지금 경기는 중요한 경기이자 토너먼트 경기인데... 지금 지면 끝인거잖아요."

벨리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항변하자 동국은 살짝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벨리나의 말대로  경기가 토너먼트 경기이고, 또 지면  대회에서 탈락하는건 맞지만, 그렇게까지 중요한 경기는 아니였다.

동국에게 의미 있는 경기는 사실 남주시 컵대회 결승전이었다. 거기서 이김으로서 목표가 달성된것이다. 지금의 경기 지역 컵 대회는 사실 보너스 같은 개념이었다.

'갓 1부 리그에 승격한 팀이 지역 리그 팀들을 넘보는건 사실 너무 간거지...'

하여튼 동국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벨리나에게 자신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벨리나. 물론 그렇긴 한데,  이 경기가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한 경기라고 생각하지 않아.  경기는, 그래, 약간 보너스 같은 경기랄까? 그러니 그렇게 부담감을 가질 필요 없이 여유를 가져."


동국의 말에 벨리나의 약간 물기 있는 눈가가 점차 차가워졌다. 그 모습에 동국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벨리나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러면 왜 맨 처음에 3번 타자를 거르라고 그랬어요! 보너스 같은 개념이면 그냥 붙어도 상관 없었잖아요!"


벨리나의 항의에 동국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생각해보니 앞뒤가  맞긴 했다.


"어... 그렇긴 한데... 음... 미안해. 그럼 그냥 앞으로 니 맘대로 해."

동국의 말에 허탈한 표정을 짓는 벨리나.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마운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선 말했다.

"그래요, 알았어요. 이제 마음이 차분해졌으니, 그만 돌아가요."

"그, 그래. 마음 편히 가져."


동국이 재빨리 사라지자 벨리나는 피식 미소를 짓고선 동국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바보...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경기의 중요성을 깎아내리다니..."


그녀가 보기에 자신이 너무 힘들어 하니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일부러 오늘 경기를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보너스 게임이라고 평가 절하 하는 것 같았다. 그런 동국의 배려심에 벨리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걸 느꼈다.

"벨리나를 잘 다독이고 왔어?"


리사의 질문에 동국은 벤치에 철석 앉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경기니깐 마음 편히 가지라고 말했지."


동국의 말에 리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시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기라니?"


"아, 아. 야, 생각을 해봐. 지금 우리 실력으로 이정도까지 온 것도 솔직히 운이 좋은거지. 더 바라면 염치가 없는거지, 다른 팀들에게. 그러면 결국엔 질 싸움을 하기 마련이고 그게 오늘인거지. 솔직히 아직 벨리나의 실력이 떨어지는건 사실이잖아. 그러니 이기면 좋은거지만 지는게 당연한, 그러니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기지."


동국이 작게 속삭이자, 리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하긴 리사,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벨리나의 실력이 딸리긴 했다.

"근데 내가 신지은이를 거르라고 그랬다며, 막 날 째려보는데... 와, 순간 식겁했잖아..."


동국이 벨리나의 눈빛을 떠올렸는지, 몸을 살짝 부르르 떨자 리사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선 피식 웃었다.

"하긴, 앞뒤가 안 맞았으니 짜증날만도 하네."

한편 동국과 벨리나가 마운드 위에서 서로 껴안고 있는 동안 타석에서 지은은 그 모습을 상당히 짜증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 쌍년..! 감히 내 눈앞에서 당당하게 동국씨를 껴안아..?! 저, 저, 부러운 년..! 억! 동국씨랑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어..! 꺄악..! 부러워..!'


동국과 벨리나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며 속으로 부러움과 질시를 느끼고 있던 지은은 벨리나가 동국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짓자, 자신의 가슴속이 뜨거워 지는걸 느꼈다.


'하... 아주 로맨스 드라마를 찍는군... 정작 여주인공은 아직 등장도 안했는데..!'

지은은 어느새 동국을 주인공으로  드라마의 메인 여주인공은 자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 드라마에선 동국이 주변 여성진들의 형편없는 실력에 실망할때쯤 실력이 아주 아주 뛰어난 자신이 등장해 동국을 구해주는, 그런 내용이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나라고..!'


따악~!


그런 지은의 생각이 옳다는 듯 그녀는 벨리나가 던진 직구를 그대로 잡아 당겼다. 시원하게 배트를 던져버린 지은은 그대로 서서 타구를 감상하다가 넘어간게 확실해 지자 그제야 천천히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홈 팬들의 뜨거운 응원 소리를 들으며 손을 흔들어준 지은은 마운드에 서 있는 벨리나를 바라보았다.


'후훗... 진히로인은 나라고. 너가 아니라~'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벨리나의 모습은 지은의 마음에 썩 드는 모습이었다.

'어..?!'

하지만 벨리나가 고개를 내렸을 때의 표정은 살짝 후련해보여, 지은은 안면을 살짝 씰룩거렸다.

'뭐, 뭐야..! 왜 저런 표정을 짓는거지..?!'

왠지 모를 짜증이 느껴진 지은은 2루 베이스를 향해 가며 좌익수와 2루수의 표정도 살폈다. 좌익수의 표정은 약간 허탈해 하는 표정이었고, 2루수는 천천히 걷고 있는 자신을 째려보고 있었다.

"빨리  걷죠..? 무슨 동네 마실 나왔어요?"

보다 못한 아연이 짜증을 내자 지은은 슥 턱을 살짝 들고선 썩소를 날려줬다.


"후후... 진 히로인 등장 씬이라서 스킵할  없어~"


"뭔 헛소리야..."

지은의 말을 이해를 못한 아연이 중얼거렸지만, 지은은 그런 그녀를 상큼하게 지나쳐 원정팀 더그아웃을 바라봤다.

원정팀 더그아웃에서는 동국이 양 쪽에 여자 선수 2명을 끼고 앉아 있었다. 둘  자신보다 살짝 딸리는 것 같지만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나쁘지 않아 보여서 짜증이 났지만, 지은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동국에게 윙크했다.


'좋아..! 이제 동국 씨의 마음속에  모습이 깊이 각인됬겠지..? 후후~ 지금은 이렇게 떠나지만 조금 있다가 다시 봐요~'


지은은 홈 플레이트를 밟고 서는 동국을 향해 손가락을 총 모양으로 만들고선 빵야~  날리고선 홈  더그아웃으로 되돌아갔다.


"....."

그리고 그 모습을 동국을 비롯해 발키리 선수들은 황당하게 바라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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