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94회.
다음날이 되서 목요일에 있을 예선 2차전의 상대가 결정났다. 상대는 파주 우승팀을 꺾고 올라온 고양 1부 리그의 일산 레이크걸즈 팀.
이 팀은 다른 팀들과는 다르게 전체적인 선수들의 실력은 1부 리그 상위 급이긴 하지만 지역 리그 급은 아니였다. 그러나 이 팀엔 상당히 뛰어난 포수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신지은. 그녀의 실력은 1부 리그를 벗어나 지역 리그에서도 상급이라고 알려져 있다. 강한 어깨를 통한 도루 저지와 안정적인 포구, 거기에 뛰어난 타격실력까지.
이렇게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어 애초에 지역 리그 팀의 주전 포수였던 그녀는 성격 불화로 인해 FA가 되자마자 일산 레이크걸즈 팀에 이적을 하게 되었다.
듣기로는 그녀의 성격이 상당히 괴팍하다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도 상당하다고 한다. 거기에 한번 뭐에 꽂히면 거기에만 집착을 한다고.
그래서 팀원들과, 특히 투수들과의 싸움이 맨날 일어났다고 한다.
직구를 던지라고 사인을 보냈는데, 투수가 말을 듣지 않고 변화구를 던지거나 그러면 바로 마운드로 뛰쳐 올라간다고. 그래서 경기 중에 싸우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한다.
그러면 투수가 양보를 하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투수 역시 한 고집하는 성격이었고, 무엇보다 팀의 에이스였다.
팀의 에이스다보니 지은이 원하는 대로 던지지 않아도 잘 막아냈고, 그럴수록 둘의 사이는 안 좋아졌다.
결국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FA가 가능해지자마자 팀을 떠났다.
그녀가 FA로 풀리자 수많은 팀들이 그녀를 노렸다. 지역 리그 팀들 뿐만 아니라 포수가 아쉬운 전국 리그 팀까지 그녀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녀가 최종적으로 이적한 팀은 바로 고양시의 1부 리그 팀인 일산 레이크걸즈였다.
레이크걸즈도 그냥 찔러본거였는데, 덜커덕 월척이 걸리자 심히 당황해 하면서도 상당히 기뻐했다. 비록 1년짜리 단기 계약이지만 그녀 덕분에 1부 리그에서 우승도 해보고, 고양시 컵대회에서도 우승을 한것이다.
그럼 그녀는 왜 다른 팀들을 놔두고 조건도 부족한 레이크걸즈를 선택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그녀가 일산 호수공원에 꽂혔기 때문이다. 우연히 호수공원에 오게 된 그녀는 호수공원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고, 그 근처 팀인 일산 레이크걸즈에 입단하게 된것이다.
그녀는 팀에서 마련해준 호수공원이 잘 보이는 집에서 살면서 매일 호수공원을 산책하는걸 낙으로 살았다.
오늘도 그녀는 호수공원을 산책하고선 경기장을 찾았다. 그녀가 들어서자 주위 선수들은 물론 코치진들도 함부로 그녀를 건드리지 못하고 자리에서 슬쩍 물러났다.
이는 그녀의 성격도 성격이지만 내년에 다시 FA 계약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것도 있다.
신지은까지 온 걸 확인하자 레이크걸즈 감독은 다음 경기의 상대팀을 발표했다.
"흠흠. 다 왔으니 목요일에 있을 예선 2차전의 상대를 발표하겠다. 상대는 요즘 기세가 매서운 남주시의 벨벳 발키리로 결정이 되었다."
감독의 발표에 선수들은 물론 코치들까지 술렁거렸다.
"벨벳 발키리..? 거긴 어디야..?"
"아, 나 저번에 기사 봤어. 거기 리사가 새로 입단한 팀이야."
"리사? 그 강릉 드라고니안의 리사..?! 그 선수 부상 때문에 은퇴한다고 하지 않았어?"
"발키리에서 재활중이래. 듣자 하니 경기 막판에 대타로 등장해서 활약이 어마 어마 하다는데? 아주 역전 홈런에 역전 2루타... 완전 양민학살 하는거지."
선수들과 코치들이 수군대자 감독이 박수를 쳐서 주위를 집중시켰다.
"자자.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벨벳 발키리는 올 해에 새로 창단한 신생팀이다."
지역 컵대회 예선에 오른 팀이 신생팀이란 소리에 다시 한번 웅성거리는 사람들.
"창단하자마자 2부 리그를 폭격하고 1부 리그로 승격, 남주시 컵대회에 우승을 하고, 그 기세를 이어서 분당 슈거걸즈에 역전승을 거두고 2차전에 올라온 팀이다. 만만하게 볼 팀이 아니지."
감독은 이 말을 하고선 미리 준비해둔 PPT 자료를 스크린에 비췄다. 첫 화면에는 발키리의 에이스인 앤서니의 얼굴이 나왔다.
"헐..? 뭐야, 왜 이렇게 예뻐..?"
한 선수의 중얼거림에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앤서니란 발키리의 에이스 투수는 모든걸 다 가졌지.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그리고 실력도 뛰어난 차세대 스타지. 이 투수는 3가지 구종을 던진다. 먼저 130km 대의 강속구."
감독이 화면을 넘기자 앤서니가 강속구를 던지는 영상이 나왔다. 그 빠르기에 선수들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저게 130km 강속구인가..?"
"저걸 어떻게 친대..."
감독은 화면을 넘겨 이번엔 앤서니가 커브를 던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낙차 큰 커브에 선수들이 감탄하고, 마지막으로 각도 큰 슬라이더에 또 놀랐다.
하지만 지은은 그저 시큰둥할 뿐이었다. 아마 저 투수의 실력이 지역 리그 정도로 보여지는데, 그 정도면 1부 리그 팀인 레이크걸즈에게는 벅차겠지만, 자신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저 투수는 이미 월요일 경기에서 4이닝을 던졌다고 알려졌으니 아마 우리 팀과의 경기에서는 나오지 않을거였다.
지은의 생각대로 감독은 다음 화면에서 벨리나의 얼굴이 있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해야 되는 투수는 발키리의 에이스가 아닌 2선발 벨리나이다. 음... 보시다시피 그녀 역시 상당히 예쁘게 생겼지... 하여튼 이게 중요한게 아니고, 그녀는 그래도 할만하다. 실력 역시 방금 전에 보여줬던 앤서니보단 한 두 단계 떨어지는 수준이다."
처음에 확 실력이 뛰어난 선수를 보여주고, 다음에 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투수를 보여 주니 선수들의 표정이 할만 하다고 바뀐 것을 감독은 느낄 수 있었다. 뭐, 제일 중요한 지은은 시큰둥한 표정이지만 말이다.
"벨리나는 직구와 커브, 그리고 특이하게 스크류볼을 던진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직구와 커브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다. 중요한건 스크류볼이지."
벨리나의 구종을 소개하며 그녀가 던지는 각 구종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감독의 말대로 스크류볼의 저 궤적은 상당히 치기가 어려워 보였다. 선수들이 멍하니 스크류볼의 투구 영상을 지켜볼때, 지은 역시 상당히 흥미롭게 벨리나의 스크류볼을 바라보았다.
'흠... 스크류볼이라니... 상당히 특이하군...'
벨리나의 스크류볼에 살짝 흥미가 생기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살짝이었다. 그녀는 다시 시큰둥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자, 그러면 이번에 발키리의 타자들을 소개하겠다. 현재 발키리의 타자는 총 3명이다. 우선 여러분도 잘 아는 충청 리그의 슈퍼 스타'였던' 리사다. 그녀는 현재 부상에서 재활 중에 있어서 경기 막판에 대타로 출전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리사가 대타로 나와 임팩트 있는 활약을 펼치는 영상이 나오자 선수들은 감탄사를 냈다.
"우와... 엄청 멋있어..!"
"진짜... 어쩜 저기서 저런 홈런이 나올까... 진짜 스타는 스타다..."
영상을 보고선 선수들이, 특히 투수들이 상당히 놀라자 감독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타격 실력은 거의 전국 리그 급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투수들은 자존심 상해 하지 말고 주자에 상관 없이 무조건 고의사구로 내보낼걸로 알고 있도록. 그녀는 현재 재활중이라서 주루 실력은 형편 없으니 말이야. 알겠나?"
"네..!"
투수들이 반항 없이 감독의 지시에 동의하자, 감독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선 다음 타자를 소개 했다.
"다음 타자는 발키리의 창단 선수인 최지아다. 그녀는 좌익수로, 상당히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를 지녔지. 거기에 컨택 능력도 뛰어나고, 한 방도 있다. 도루도 자주 성공하는 만능 5툴 플레이어지. 어디까지나 1부 리그에 한해서지만."
지아의 활약 영상을 틀어준 감독은 마지막 선수를 소개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예선전부터 발키리에 입단하게 된 장아연이다. 그녀는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신인 때 바로 지역 리그에 입단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인해 재능을 꽃 피우지 못한 케이스지. 그래서 여러 팀을 전전하다 이번에 새로 발키리에 입단하게 되었다. 전형적인 2루 거포로, 수비도 꽤 잘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다만 경기에 출전한 날보다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아 자료가 부족하긴 한데, 아마 타격 능력은 지역 리그 급은 되는 걸로 판단된다."
감독의 설명에 지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보기에는 비록 선수들이 부족하긴 하지만 있는 선수들의 능력이 뛰어나 운 좋게 어찌저찌 여기까지 올라온 것으로 보였다. 비록 그 운은 여기까지인듯 보였지만...
"아 참. 마지막으로 발키리의 감독이다. 선수들이 예쁜 것처럼 감독 역시 상당히 잘생겼다. 듣자 하니 선수들이랑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국의 사진이 담긴 화면을 보여 주는 감독.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란 소리에 선수들은 시큰둥 했지만, 지은의 시선은 동국의 사진에 고정되었다.
'자, 잘생겼어..! 딱 내 이상형이야...'
지은은 처음으로 발견한 자신의 이상형에 시야가 딱 동국의 사진으로 제한되는 걸 느꼈다.
그녀의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자 주변 선수들은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고, 감독은 왠지 이글거리는 그녀의 눈빛에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이상으로 벨벳 발키리의 소개를 마치겠다. 이제 투수 코치와 타격 코치들이 발키리 선수들에 대한 대처법을 알려줄테니 각자 따라가도록. 이상."
"자, 자. 이제 훈련하자."
코치들이 선수들을 데리러 갈려고 하는 동안 지은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사그러질줄을 몰랐다. 타격 코치가 그녀를 건드리자 그제야 시선을 돌리는 지은.
"자, 지은아. 뭐해. 훈련 하러 가야지."
코치의 말에 지은이 굳은 표정으로 코치에게 말했다.
"저, 뭐 좀 찾아 볼게 있어서 이번 훈련엔 참석 안 할게요!"
그러고는 어디론가 사라지는 지은.
그런 지은의 뒷모습을 바라본 코치는 인상을 한번 찡그리고는 선수들에게로 돌아갔다.
"에휴... 진짜 실력이 깡패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