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9화 〉89회. (89/297)



〈 89화 〉89회.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서 변호사는 바로 인사를 하고 떠났고, 아연은 구장에 남아있는 자신의 짐들을 정리했다.


"뭐, 팀 동료들이랑 인사는  해?"


리사의 물음에 아연은 피식 웃고선 고개를 저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가지 뭐"

아연의 말에 리사와 동국은  말 하지 않았다. 팀 생활이 그렇게 좋았던 건 아니였던  같다.
경기장을 떠난 일행은 곧바로 아연의 원룸으로 향했다.


작은 원룸에 들어가 짐을 싸는 아연을 동국과 리사가 도왔다.

"생각보다 짐이 많지가 않네..?"

"어, 여기저기 떠돌아서 그런가 별로 짐을 많이 안 가지고 다니게 되더라고.. 그래서 뭐, 적지..."


"흠.. 그러고 보니 숙소에 가서 너 방 정해야지. 가구들도 사야 되고"

"그렇게까지 해주는거야...? 숙식 제공까지...?"


아연이 감동 받은 표정으로 동국을 바라보자 동국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물론이지. 대신 연봉은 좀 적을거야."


"그, 그럼.. 당연하지...!"

말은 그렇게 해도 왠지 아연은 뭔가 아쉬운 표정이다. 그 표정에 리사가 그녀의 등짝을 때렸다.

"아,  때려~!"

"야, 이 년아! 넌 고마운 줄 알아야돼~! 동국 같은 사람은 찾기 어려워~!"

리사의 잔소리에 아연의 입이 삐죽 나왔다.


"나도 알아, 이년아... 나도 동국이 고맙다고..!"


"알면 잘해, 이년아.. 흐, 물론 한번 해보고 나면 절로 잘 하게 될 거지만 말이야..."


리사의 뜻 모를 중얼거림에 아연은 살짝 이해가 안 갔지만, 그냥 넘어갔다.


짐을 다 정리하고, 일행은 다시 기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늦은 저녁시간이었다.

"너희들 밥 먹었어?"

"아, 밥 정돈 알아서 먹을 수 있어~"

지아의 외침에 앤서니가 동국에게 달라붙어 칭얼댔다.

"진짜 동국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어~! 지아가 해줬는데, 너무 맛이 없었어~"


"야! 방금 전엔 맛있다며 엄청 먹었잖아~!"


앤서니의 고자질에 지아가 어이없어 했다. 저녁 식사 시간 때는 지아, 자신이 해준 밥을 맛있다며 잘 먹어놓고서 이제 와서 동국에겐 저렇게 말을 하다니. 상당한 배신감을 느낀 지아였다.

"아니.. 지아, 너가 해준 밥도 나쁘진않았는데~ 배가 고프기도 하고~ 또 아무리 그래도 동국이 해준 밥이 훨씬  맛있자너~"

앤서니가 그렇게 말하며 2층으로 도망가자 지아가 그녀를 쫓아갔다.

정신 없는 둘의 모습에 동국과 리사는 웃었고, 아직 분위기가 적응이  된 아연은 그냥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오빠, 계약은 잘 해결 된건가요?"

벨리나가 씻었는지 살짝 젖은 머릿결을 수건으로 털며 2층에서 내려왔다. 살짝 발그스레한 그녀의 얼굴에 동국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원하던 대로 계약 했어. 이제 앞으로 아연인 같은 선수가 된거야"

"그래요,  됬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아연 언니"

"어, 어.. 그래"


벨리나의 인사에 아연은 어색해 하며 인사를 받았다. 그녀는 팀 선수들 간에 이렇게 화목한 분위기가 처음일 뿐만 아니라 이들이 같은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이렇게 사이가 좋다는게  이해가 안 갔다.

"저, 근데  특훈..  언제 할꺼야?"


아연이 조심스레 동국에게 묻자, 동국이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벌써 하게? 아직은 서로 어색하니깐 이번  주말에 하자고. 알겠지?"

"어? 어.. 그래"


동국의 배려에 아연은 수긍을 했다.
그렇게 아연이 숙소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
*
*

동국은 재은의 부모님과의 만남을 위해 시내에 위치한 한 커피숍에 갔다. 가서   기다리니 재은과 그녀의 부모님이 등장했다.

상당히  고집 하게 생기신 재은의 아버지와 재은의 나이든 버전인 그녀의 어머니의 등장에 동국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재은 누나의 애인인 동국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동국의 큰소리에 주위의 시선이 몰리자 재은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 알았으니깐 빨리 앉자"


그녀의 재촉에 자리에 앉은 동국과 재은의 부모님. 재은이 동국의 옆자리에 앉자 그녀의 아버지가 뭐라 한소리 했다.

"어허. 넌 왜 거기 옆에 앉냐"

"자리 배치가 이렇게  있는걸 어떡해"


"씁...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재은의 대답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그는 마음에 안 드는 듯 뭐라 중얼거렸다.


잠시 후 두 사람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재은의 아버지는 남주시의 고위 공무원으로 알고 보니 저번 컵대회 우승 행사에서 시장과 함께 동국과 같이 사진도 찍었다고.

동국이  알아본 것에 대해 송구스러워 하자, 그는 손을 내저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하였다.


발키리와의 인연은 또 있었는데, 동국이 민원을 넣었던 교통국 국장이 바로 재은의 아버지였다. 국장이면 상당히 높은 직책이었는데, 동국은 가장 먼저 어떻게 그녀의 아버지와 친해져서 도로 확장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을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오히려 불이익을 줬으면 줬지, 이익을 줄 것 같진 않았다.

재은의 어머니는 지금 임대업을 하고 계시다고. 보아하니 여러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부자인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게 된 건 내, 자네에게 확실하게 말해두기 위함이네. 자네, 이제  이상 우리 재은이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네"


"아빠..!"

아버님의 말씀에 옆에 앉아 있던 재은이 소리쳤다. 당황해 하는 표정을 보아하니 부모님이  이기는 척 허락해 줄거라 생각했나보다.

동국 역시 재은의 아버님이 이렇게 단호하게 대할 줄은 몰랐다. 이 상황이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자네 인물이나 능력이 딸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오히려 지금 이렇게 기자 한다면서 빌빌대고 있는 재은이보단  낫지. 근데 말이야..."


"제가 유부남이라서 그렇습니까...?"


"그래, 그렇네. 무슨 이혼남도 아니고, 유부남이라니! 아무리 자네 부인들과 재은이가 서로 사이가 좋아도 그건 모르는거네. 내 아는 사람들 중에 간혹 있는 케이스들도 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기껏 해봤자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지. 그런데 그런 자네에게 우리 재은이를 맏긴다? 난 반댈세"

아버님의 말에 이어 어머니도 한마디 했다.


"그리고, 자네 부인 중에 1명이 벨벳 그룹 딸래미라며. 그런 부자집 딸내미가 부인으로 있는데 어떻게 우리 재은이를 보내겠어. 그 정도 그룹이면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 집안이 밉보일  있어.

그러면 우리 바깥양반은 안 그래도 정년 얼마 안 남았는데 퇴직 압박 들어오는거고, 내가 하고 있는 임대업에도 압박이 들어올 수 있지. 그러니 미안하지만, 재은이랑은 만나지 말고 그냥 부인 셋이서 오붓하게 살게"

아무래도  분은 동국의 여자들이 재은일 별로 좋게 안 볼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동국이 재은을 바라보며 제대로 설명  했냐는 눈빛을 보내자 재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선 두 사람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 나랑 동국 부인들이랑은 절대 사이가 안 좋지 않다니깐? 오히려 사이가 좋아. 얘들이 얼마나 날 따르는데. 그러니 제발 지레짐작 하지 마"


"맞습니다. 제 부인들이랑 재은 누나랑 서로 사이 좋습니다. 제 부인들도 재은 누나랑의 관계에 대해 다 알고 있구요"


동국과 재은의 해명에 그녀의 어머니는 살짝 마음이 흔들린 눈치였지만, 아버님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둘의 해명을 별로 믿는 눈치가 아니였다.

"하! 거짓말 하지 말게. 내 평생 일부다처 가정이 화목한 걸 본적이 없어. 그러니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고 갈길 가세"

아버님은 그렇게 말을 하고선 음료를 단번에 들이켰다. 그러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그래도 자네가 건실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다니.  실망일세. 가자!"


그렇게 아버님이 자리를 뜨자 어머님은 동국에게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바깥양반이 좀 성격이 단호해가지고, 미안해요. 그래도 솔직히 나도 좀 믿기 어렵네요. 여자의 질투심이란게 있는데... 아마 동국씨 앞에서만 그러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그럼 이만.."

어머님 마저 자리를 뜨자 재은이 동국에게 미안해 하였다. 그녀로서는 오늘 만남이 이렇게 파국으로 끝날 줄은 몰랐을것이다.

"미안, 나중에 연락할게~!"

그렇게 재은 마저 떠나고 나서 동국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하! 힘드네... 왜 진실을 이야기 해줘도 믿질 않으시지...?"


진실을 믿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에 동국은 답답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케이스가 상당히 특이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어머님 말대로 여자도 질투심이 있고, 독점욕이 있는데 동국처럼 일부다처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반대로 만약 벨리나가 일처다부를 한다고 다른 남자를 데리고 오면 동국은 바로 화를 냈을것이다.


하지만 동국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었으니, 바로 동국의 특성인 양기보충이다. 동국도 이제  특성의 숨겨진 효과인 여자의 호감도가 빠르게 오른다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잘생기게 설정한 외모와 좋은 성격, 거기에 능력까지 출중하고, 심지어 정력이 탈인간급인 남자. 그게 바로 동국이었다. 물론 이는 게임이니깐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러한 점들 덕분에 동국의 부인들과 애인들은 서로 화목하게 잘 지냈다. 그리고 재은의 부모님은 이러한 점들을 모르기에 동국의 말을 믿질 못하는 것이고.

"아, 그러고 보니깐 계산도 내가 해야 하는거야...?"

한참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사실에 동국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아버님의 빈 잔을 바라보곤 이어서 어머님이 남기신 커피와 재은의 복숭아 티를 바라봤다.


"복숭아 티는 그래도 마셔야지..."

그렇게 자신이 시킨 음료와 재은의 복숭아 티를 다 마신 동국은 계산을 하고선 커피숍을 나왔다.

"하... 이제 어떡하지...."

재은의 문제로 고민이 깊어진 동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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