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6화 〉86회. 아연 (86/297)



〈 86화 〉86회. 아연

'재벌집 딸내미가 나에게 해코지 하면 어떡해...'

드라마 같은 데서 남자 몰래 찾아와 행패 부리는 상황이 너무 자주 나오다 보니 그녀 역시 그런 점을 걱정했다.


아니면 반대로 동국이 그녀를 너무 쉽게 만나려고 했을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재벌집 사위가 굳이 지방 병원 간호사를 만나려고 한다는 게 그냥 엔조이로 만난다고 의심이 들었기 때문.

하여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동국과는 아쉽지만 만나기가 어려웠다.

동국은 이러한 플로렌스의 생각까지는 잘 몰랐지만, 주위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음을 기약했다.

리사의 다리 부분 촬영이 끝이 나고 진료실로 가니 긍정적인, 하지만 동시에 현 상황에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현재 정상적으로 자연 치료가 되고 있긴 하네요. 상당히 빠른 특이 케이스입니다."

"그럼 당장 경기가 가능할까요...?"


리사가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의사에게 물었지만,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당장에 선발 출전은 무리입니다. 제가 한 번 알아보니깐 환자분이 아주 유명한 오구 선수이더군요.. 하하, 제가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나중에 사진 1장만 찍어 주세요"


"아, 네..."


의사가 엉뚱한 말을 하자 리사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리사 선수가 그나마 수비가 제일 편안한 1루긴 하지만 아직 무리가 있고요, 특히 베이스를 돌 때 상당한 무리가 있습니다. 현재 이정도 회복세로 본다면 내년 초? 정도에는 완치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지금 당장 경기에 선발 출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사실 저번 경기에서 대타도 약간 무리였어요. 그나마 홈런을 쳐서 천천히 걸어서 다행이었지, 그냥 안타였으면 달릴  무리였을겁니다. "

의사의 설명에 리사는 이해하면서도 아쉬웠다. 대타로 안타를 치고 1루로 뛰는 것도 약간 무리라니. 다리에 무리를 안 줄려면 무조건 홈런을 쳐야 되는것이다.

의사는 그 밖에 타격할 때도 다리에 무리를 준다며 되도록이면 대타로도 나서지 않는게 좋다고 충고했다.


결국 내년 리그 출전은 가능하지만, 현재 지역 컵대회 예선은 무리라는 결론만 얻고 말았다.

"씁... 이러면 예선은 무리인데..."


동국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혼자 중얼거리자, 리사가 동국에게 말했다.


"전력 차가 그렇게 심한가?"

"어, 그나마 너가 경기에 뛰어 줘야 한번 해볼만 하기라도 한데, 대타도 약간의 부담이 있다고 하니..."

"하긴... 내가 아무리 1부 리그 수준이라고 해도 홈런을 뻥뻥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렇게 차를 몰고 가던 중, 문뜩 동국이 리사에게 물었다.

"리사. 혹시  아는 선수 중에 우리 팀에 올만한, 추천 해줄 만한 선수 없어?"


동국의 물음에 리사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동국. 우선 너가 원하는 선수는 실력보단 외모가 뛰어난 선수지?"


리사의 핵심적인 질문에 동국은 민망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 실력이야  특훈으로 커버가 가능하니깐"


"쯧... 아주 배가 불렀군..."

동국의 대답에 리사는 마음에 안든다는듯 혀를 차면서도 추천해줄만한 선수를 고민해 보았다. 그러다 문뜩 자신의 친한 친구가 떠올랐다.

"아!  명 있군."

그녀의 외침에 기대감을 가지고 동국이 눈빛을 반짝였다.

"누구누구...? 예뻐?"

"그래, 예쁘다. 거기에 몸매도 좋고"

리사의 말에 동국은 속으로 상당히 기뻐했다. 비록 리사가 기분이 언짢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어서 마음껏 기뻐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입꼬리가 올라가는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군데...? 내가 알 만한 선순가....?"


"내 친군데, 장아연이라고 알아? 지금은 1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데...?"


리사의 말에 동국은 잠깐 생각을 해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어디서 들어본거 같기는 한데... 1부 리그 선수들은 프로필 사진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래...? 하긴 걔 얼굴을 봤으면 동국이 기억을 못할 리가 없지. 하여튼 걔는 원래 나랑 같은 동기거든? 그래도 어느 정도 촉망 받던 지역 리그 유망주였는데, 잔 부상이 워낙에 많아가지고.... 결국 지역 리그 팀에서는 나와서 1부 리그 팀들을 전전하고 있어.  할까 싶으면 부상 때문에 시즌아웃되고, 그게 반복되고..."

리사의 설명에 동국은 자신이 몰랐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마 경기도 몇 경기 출장을 못했을 테니 경기 영상에서 찾기도 어려웠을테고, 프로필 사진이 없으면 완전 그녀의 얼굴을 알기 어려운 것이다.

"흐음.. 완전 딱 우리팀 스타일이네"

동국의 말에 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딱 우리 팀에 오면 훨훨 날아다닐 얘지. 재능도 꽤 뛰어나고, 실력도 지역 리그 정도는 되니깐. 다만..."


그녀가 말을 흐리자 동국이 의아하게 쳐다봤다.

"다만 뭐?"


"다만 얘가 선수 생활이 좀 안 풀려서 그런지 성격이 좀 예민해. 예전엔 안 그랬는데 점차 성격이 안 좋아졌지... 숙소 생활을 하다가 얘들이랑 싸울 수도 있어"


"흠... 그래...?"


성격이 문제라...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얘들이  싸움 없이 다들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얘들 성격도 다들 좋아서 그렇긴 하지만 말이다.


'근데 여기서 성격이 안 좋은 얘가 들어온다라...'

동국은 일단 신중하게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그날, 리사는 오랜만에 아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연결음이 들리고 나서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어~ 잘 지냈어~?"

리사의 인사에 아연은 퉁명스럽게 받았다.

"아니, 여전히 잘 못 지내고 있어. 그보다 넌? 큰 부상 당해가지고 은퇴를 하니 마니 하던 얘가 어느새 대타로 나와서 결승 홈러언~? 너, 사실 꾀병 아니야?"

아연의 말에 순간 짜증이 났지만, 리사는 아연이 맨날 부상 때문에 고생한다는 걸 알기에 그녀를 이해했다. 아마 그녀는 속으로 리사가 어떻게 부상에서 회복했는지가 몹시 궁금할꺼였다.

"꾀병은 무슨... 그게 꾀병이었으면 드라고니안에서 날 방출했겠냐? 맨날 리사 원맨팀이라고 욕먹는 팀이... 그냥 빨리 회복하고 있는거지"


"하! 그래, 빨리 회복해서 좋겠네~ 아주 회복력이 트롤급인가보지~? 씨, 난 유리 몸이라서 맨날 고생하는데 누구는 회복력도 괴물이라서 몇날만에 은퇴급 부상이 낫고 말이야..."

그녀의 툴툴대는 말에 리사는 속으로 씨익 하고 웃었다. 그리고선 조용히, 중요한 말을 하듯 작게 이야기를 했다.

"너, 내가 어떻게 빨리 회복했는지 알려줄까....?"


"뭐어?!"

리사의 말에 빽 소리를 지른 아연. 순간 큰소리에 귀가 아픈 리사가 인상을 썼다.


"야!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네... 나 귀 안 먹었어!"


"이년아, 그게 중요해~! 빨리 말해봐...! 뭐, 좋은거라도 먹었어? 뭐, 홍삼? 아니면 전설의 영약? 말만해. 내가 전재산을 털어서라도 그거 살테니깐. 너, 내가 부상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고, 지금도 고생하는지  알잖아... 제발, 알려주라? 응?"

아연의 절절한 애원에 리사는 마음이 짠했다. 예전에는 그저 머리로만 이해했었지만, 자신이 부상을 당해보니 마음으로 이해가 갔다. 쨉도 안되는 것들이 병실 와서 조롱하고 간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근데 아연은 그걸 매년 겪었으니...

"그래, 그래. 내가 알려줄테니깐 만나서 이야기 하자. 그럼 어디ㅅ..."

"내, 내가 갈게!  지금 어디야!! 말만해, 내가 너 부산이라도 당장 간다"


리사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아연의 외침에 리사는 피식 웃고선 발키리의 숙소 위치를 알려주었다.


"남주시? 아, 너가 입단한 팀 위치구나... 일단 알았어. 내가 금방 갈게"


곧바로 전화를 끊은 아연. 그런 아연에 리사는 피식 웃었다.

"짜식... 전화 먼저 뚝 끊는  여전하네... 그나저나 무슨 부산이라도 당장 가... 지가 지금 경상도에 있으면서..."

장아연, 그녀는 리사와 같은 강원도 지역의 유망주였다. 리사 정도로 전국 리그 팀들이 러브콜을 보낼 정도는 아니였지만, 촉망 받던 지역 리그 유망주 정도는 되었다.

그래서 바로 충청 리그 팀에 입단한 그녀는 그  어느 정도 적응을 해 나가다가 불의의 부상을 당하게 된다.

그  22살까지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며 팬들의 유리몸이란 질타를 받았고, 결국 경상도 지역의 1부 리그 팀에 트레이드 된다. 그러나 거기서도 딱히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이적을 거듭한 끝에 현재는 김해시의  1부 리그 팀에 소속되어 있다.

올해도 역시 잔부상으로 별 활약을 하지 못해 팀의 골치거리였던 아연. 부상을 입으면 팀에서 치료비를 지원을 해주어야 되는데 1부 리그 팀에겐 상당한 부담이었다.

매년 1부 리그 팀들이 '이번엔 괜찮아 지겠지...' 라며 그녀를 데리고 가지만 매번 부상을 당해 별로 활약도 못해보고 치료비만 날리게 되자, 이제는 그 지역에서 '화려한 유리병' 이라는 사치품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미 웬만한 지역 부자팀들은 데리고 있어 봤기에  이상 갈만한 팀이 없는게 현실이었다.


팀에 들어와서 선수가 해주는 활약보다 치료비가 더 많으니 데리고 있어봐야 손해만 나는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사에게  전화는 마치 구원처럼 받아드려졌다. 당장 구포역으로 가 ktx를 탄 아연은 몇 시간 뒤 서울역에 도착했다.


"여기가 서울역... 진짜 서울은 몇년만에 온거야...? 그나저나 남주시로 갈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아연이 남주시 발키리 경기장 근처에 도착한건 저녁시간이 거의 다 되서였다. 그것도 근처에서 동국과 리사가 차를 몰고 그녀를 픽업한 시간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아연 선수"


동국은 차에 올라타는 아연을 스캔하며 인사를 했다. 과연 리사가 예쁘다고 할만한 외모였다. 약간 연한 갈색 머리색에 빨간 눈, 거기에 어두워도 알 수 있는 새하얀 얼굴까지. 몸매 역시 리사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굴곡 져 보였다.


"안녕하세요, 기사님"

동국의 인사를 대충 받아 주는 아연의 말에 동국은 순간 당황했다.


'음...? 기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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