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80회.
한 편, 타석에는 4번 타자로 포수인 선수가 들어왔다.
그녀는 포수인 관계로 수 싸움에 능했는데, 타격 실력은 좀 떨어지지만 게스히팅을 잘했다.
'저 정도 어린 선수는 나에게 껌이지...'
그녀는 마운드에 선 앤서니가 상당히 만만했다. 앤서니의 정신이 약간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더 그랬다. 비록 전 타석에서 땅볼로 아웃 되긴 했지만 말이다.
'오늘은 패스트볼 비중이 높으니 일단 패스트볼을 노려볼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오직 직구만을 노리기로 결심했다.
앤서니는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초구는 자신이 방금 전에 던졌던 강속구를 던지기로 마음 먹었다.
자신 있게 던진 공은 포수 미트를 향해 날라갔고, 타자는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다.
틱~
그러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아웃~"
"아웃~!"
빗 맞은 타구가 2루수에게로 굴러갔고, 2루수는 1루 주자를 아웃 시키고 난 다음 여유 있게 1루로 송구, 아웃시켰다.
수 싸움에는 능하지만, 정작 타격 능력이 뒷받침 되질 못했던 것이다.
"나이스 플레이~!"
"앤서니, 아주 좋은데? 이대로만 가지고"
4회 말.
5번 타자를 깔끔하게 삼진으로 돌려세운 앤서니. 다시 상위타순부터 타순이 시작되었다.
이미 벨리나가 5회에 올라오기로 되어 있었기에, 앤서니의 마지막 이닝.
'실력 자체가 생각했던 거보다 상당히 뛰어나. 일단 무조건 출루에 우선을 두자...'
타석에 들어서며 어떻게든 출루를 하자고 마음 먹은 1번 타자. 그녀는 최대한 방망이를 짧게 쥐고선 볼넷, 아니면 내야 안타를 치더라도 출루하기 위해 노력했다.
'좌타자니깐 슬라이더를 던져볼까?'
앤서니의 슬라이더는 상당히 각이 크기에 좌 타자에게 던지면 거의 마구와도 같은 구종이다. 앤서니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기에 타자의 몸쪽에서 존을 통과하는 궤적의 슬라이더를 던졌다.
'읏...! 몸쪽공인가...?! 그럼 나야 땡큐지...!'
앤서니가 원한 그림은 타자가 맞는 줄 알고 몸을 슬쩍 피했을 때 공이 유유히 존을 통과하는것이었다.
다만 타자의 출루에 대한 집념은 앤서니의 생각보다 더 심했고, 공이 꺾이기도 전에 몸을 들이댔다.
퍽~!
팔꿈치 보호대에 맞아 통증이 그리 심하진 않았는지, 타자는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으로 1루로 걸어나갔다.
'또... 일부러 몸에 맞았어...!'
전에도 한 번 이런 경험이 있었다. 그때도 타자가 일부러 몸에 맞았고, 그 다음 타석에서 안타를 내준 기억이 있었다.
그런 경험 때문에 동국 역시 바로 마운드를 방문했다.
"앤서니, 일단 심호흡부터"
"흡~ 하~ 흡~ 하~"
"그래, 잘했어. 타자가 일부러 맞았다는거 알지?"
"응, 잘 알아. 스트라이크가 되기도 전에 몸을 들이밀었어"
"그래, 너가 잘못한게 아니니깐 흔들리지 말고, 침착하게 하자고. 다음 타자가 오늘 유일하게 안타를 때려낸 2번 타자니깐 조심조심 하면서 던져. 알겠지?"
동국의 말에 앤서니는 살짝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은 정면 승부를 하고 싶었다.
"여차하면 내보내란 말이야?"
"앤서니가 살짝 인상을 쓰자, 동국은 그녀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걸 깨달았다.
'음... 그냥 앤서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냅둘까...? 아니면 그래도 결승전인데 최대한 조심스럽게 갈까...?'
고민하던 동국은 그냥 앤서니가 원하는 대로 정면승부를 하게 하도록 마음 먹었다. 어차피 2번 타자랑 어렵게 승부를 해서 내보내게 된다면 1사 만루고, 또다시 우드페커스의 중심 타자랑 연결된다. 그러느니 차라리 승부를 하는게 더 나을수도 있다. 어차피 오구는 투수가 웬만하면 이기는 게임이니깐.
"그래, 앤서니 하고 싶은 대로 해. 직구만 던지고 싶으면 던지고, 변화구만 던지고 싶으면 변화구만 던져. 어차피 이게 다 경험이고, 오늘 경기에서 우리가 앞서 나가는 것도 다 너가 우드페커스의 타선을 잘 묶어서 그런거니깐"
동국의 말에 그제야 앤서니가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 동국~! 내가 이번 이닝 잘 틀어막고 동국에게 내 가슴 만질 수 있게 해줄게"
"크흠... 그래, 알았어"
더그아웃으로 향하며 동국은 앤서니가 이 위기를 잘 극복해서 꼭 앤서니의 가슴을 만졌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동국이 돌아가고 나서 2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녀는 꼭 점수를 내겠다는 의지를 눈빛으로 보였고, 앤서니 역시 절대로 실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일단 초구 스트라이크부터 잡자. 그래서 볼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는거야...!'
'일단 신중하게 가자. 여기서 병살타가 나오면 게임 끝난다...'
이런 둘의 생각 덕분인지 앤서니가 초구로 던진 바깥쪽 직구를 타자는 그대로 지켜만 보았다.
"스트~라잌~"
'좋아..! 이제 유인구를 하나 던진다...!'
'씁... 바깥쪽 빠지는 줄 알았는데 들어왔나...'
높은 곳에서 낮게 떨어지는 커브볼이 들어오자, 타자는 하나 더 지켜봤고, 그대로 살짝 볼이 되었다. 타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앤서니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럼 이번엔 몸쪽 공이다'
몸쪽 직구. 앤서니가 자주 던지는 코스로, 상당히 재미를 봤던 코스다. 이른바 크로스 파이어. 앤서니는 이번에도 자신이 이길 것이라 확신하고 공을 던졌다.
다만 이번 타자는 앤서니가 전에 상대하던 타자들과는 한 차원 더 높은 타자였다.
제대로 제구가 된 공이었고, 타자의 방망이가 휘둘러졌다.
따악~!
타자는 그대로 공을 잡아당겼고, 치자마자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우와아아아아~!!!"
홈 팬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베이스를 돌았고, 앤서니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하! 씨... 저걸 치네... 여태껏 앤서니의 필승 코스였는데..."
동국의 중얼거림에 리사가 위로했다. 그녀가 봤을땐, 잘 던지고 잘 친것뿐이었다.
"앤서니도 충분히 좋은 공을 던졌어. 다만 타자가 잘 쳤을뿐..."
"앤서니가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벨리나가 고개를 숙인 앤서니를 바라보며 걱정하자, 동국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도, 앤서니가 멘탈이 좋으니 훌훌 털고 잘 일어날거야"
동국의 생각대로 앤서니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냥 처음 홈런을 맞았다 정도...?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공을 던졌고, 그 공을 맞았으니, 그냥 잘 쳤다고 인정하고 넘어갔다.
'쩝... 그래, 그럴 수 있는거지~ 힝~ 그래도 아쉽다~'
1-2로 역전된 상황에서 다물 우드페커스는 더 달아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성과를 내지는 못했는데, 3번 타자의 큼지막한 타구는 지아의 호수비에 막혀 뜬공처리되었고, 다음 타자 역시 앤서니의 구위에 밀려 땅볼 처리 되었다.
그렇게 4회 말이 끝이 났고, 앤서니는 아쉬워 하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힝~ 미안해 동국~ 내가 무실점으로 막아 내서 동국이 가슴 만질 수 있도록 해줬어야 되는데..."
앤서니의 그 발언에 같이 들어오던 지아가 이상한 눈으로 동국을 쳐다봤다.
"오빠는 그러고 싶어?"
지아의 경멸 섞인 눈빛에 동국은 황당했다.
"야! 앤서니가 먼저 그런거야~! 내가 요구한게 아니에요"
"흠... 그래...? 하지만 오빠가 그런 말을 하는게 더 자연스러운데..."
지아의 말에 옆에 있던 리사와 벨리나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럽게 자신을 몰아가는 분위기에 동국은 황당했지만, 한편으로는 앤서니가 역전 홈런을 쳐서 분위기가 쳐질 때 이렇게 되자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5회 초에 지아가 선두타자지? 일로 와봐. 내가 앤서니 가슴을 못 만지니 니 가슴이라도 만져야 겠다."
"헐~ 내가 앤서니 대용이야? 그런거야?"
동국의 말에 지아는 투덜거리면서도 동국에게 안겼다. 그렇게 사랑의 힘을 가득 채우고 타석에 들어서는 지아.
그런 지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동국이 리사에게 말했다.
"리사, 준비해. 지아 바로 다음에 대타로 나간다"
"오케이~! 내가 한 건 해주지~!"
동국의 말에 리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방망이를 잡으려고 하다가 멈짓했다.
"잠깐, 동국. 나는 왜 스킨십을 안 해줘. 나도 사랑의 힘 버프 좀 받자고"
리사의 말에 동국은 슬며시 웃으며 리사의 손을 잡고 복도로 나갔다....
리사와 동국이 복도에서 사랑의 배터리를 채우고 있을때, 지아는 우드페커스의 4회 말처럼 어떻게든 출루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단 나가서 도루를 하든 뭘 하는거야...!'
비록 우드페커스의 포수가 도루 저지를 상당히 잘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일단 무조건 출루를 해야 했다.
'지금...!'
2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계속해서 커트를 하다가 결국 8구째의 공을 받아친 지아. 1루수가 몸을 날렸지만, 잡지 못했고, 결국 안타를 신고했다.
마지막 불씨를 살려낸 지아는 힐끔 타석을 봤다가 깜짝 놀랐다.
지아 뿐만이 아니라 관중들 대부분 놀랐는데, 바로 리사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저번에 기사에서 재활이 좀 걸린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게... 그래도 대타는 가능 한건가...?"
리사는 1부 리그가 아니라 지역 리그에서 최고 수준의 타자였다. 전국 리그에서도 크게 활약할 수 있는 타자라는 평가가 있는 타자. 그런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투수는 잔뜩 긴장했다.
"씹....! 리사 아직 재활중이라며...! 근데 이렇게 타석에 들어서는건 반칙이지...!"
안 그래도 발 빠른 주자가 1루에 있어서 거슬리는데 타석에는 그 유명한 리사라니...
그녀는 제발 리사의 실력이 예전만 못하기를 기원했다.
리사는 타석에 들어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관중들의 환호성, 마운드에 선 투수의 긴장한 표정. 그라운드의 이 분위기.
비록 경기장을 떠난지는 몇 달이 안 됐지만, 평생 못 돌아올 것 같았던 타석에 다시 섰다는게 너무나도 기쁘고 좋았다.
'이게 다 동국 덕분이지...'
리사는 자신의 은인이자 연인인 동국을 한번 바라보고 난 다음에 긴장감에 땀을 뻘뻘 흘리는 투수를 노려봤다.
'와라...! 내가 다시 복귀했다는 걸 세상에 알려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