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79회.
월요일이 되서 남주시 컵대회 결승전이 다물 우드페커스의 홈 경기장에서 열렸다.
다물 팀이 돈이 많다는 걸 증명하듯 경기장은 상당히 좋았다. 관중석도 많이 있고, 풍부한 재정의 원천인 광고판도 많았다.
경기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결승전인 점도 있고, 우드페커스의 팬들이 많은 점도 있었지만, 발키리에 입단했다던 리사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다.
"리사 선수 화이팅~!!"
"리사 선수 응원합니다!!"
그들은 리사가 다시 복귀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상당히 기뻐하며 이 경기장에 찾은것이다. 리사 역시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응원에 화답했다.
"널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 많이 있네"
동국이 그 모습을 보고 말하자, 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고마우신 분들이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내가 타석에 들어설 수 있을까?"
리사의 물음에 동국이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타 정도면 가능하겠지."
"고마워."
"뭘 이런걸 가지고.."
1회 초. 발키리의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마운드에 선 우드페커스의 투수는 좌 투수로 아마 지아를 겨냥해 올린 것 같았다. 물론 두 선발 모두 실력엔 별 차이가 없으나 그래도 좌투수가 좀 더 떨어졌다.
어찌 보면 다행이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지아가 좌 투수를 상대해 본적이 별로 없다는 게 불안 요소라면 불안요소였다. 또 대체로 좌 타자가 좌 투수에게 약하기도 하고 말이다.
타석에 들어선 지아는 1-2 카운트에서 계속해서 투수가 던지는 공을 커트 해 나가며 기회를 옅봤고, 결국 정면으로 타구를 날려보냈다.
탁~
하지만 2루수가 잽싸게 몸을 날려 중전 안타 성 타구를 잡아냈다. 그리곤 1루로 송구. 간발의 차로 먼저 아웃 되고 말았다.
"이야~ 저걸 잡아내네..."
동국이 2루수의 호수비에 감탄하자, 리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공격형 선수인거 같은데 수비도 뛰어나군... 괜찮은 선수야"
리사의 말대로 우드페커스의 내야수들은 다 거포형 선수들이었다. 그런데 저런 수비라니...
"아, 진짜 아쉽다~"
지아가 덕아웃에 들어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에 동국은 지아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타구 좋았는데, 아쉽다"
"그러게... 나도 치는 순간 안타다! 했는데 말이야...."
지아가 이렇게 호수비에 막히면서 아웃되고 나서, 나머지 AI 타자들 역시 뜬공과 땅볼로 아웃되며 빠르게 1회 초가 끝이 났다.
"앤서니! 너의 힘을 보여줘~!"
"응~! 내가 무실점으로 사랑의 힘을 증명하겠어!"
앤서니는 당당하게 마운드로 향했고, 동국은 그런 앤서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잘 할 수 있겠지...?"
"그럼. 앤서니는 1부 리그 정도야 충분히 틀어 막을 수 있어"
"맞아요, 분명 잘 할거에요"
리사와 벨리나의 대답에 동국 역시 앤서니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1번 타자로 좌타인 좌익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녀는 앤서니의 패스트볼을 받아쳤는데, 살짝 2루 쪽으로 크게 바운드 되는 타구를 날렸다.
앤서니는 재빨리 타구를 잡아 1루로 송구를 했고, 간발의 차로 아웃을 시켰다.
"잘했어! 앤서니~!"
동국이 큰 소리로 응원하자, 앤서니가 고개를 돌려 동국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휴... 저 타구 아마 2루수가 잡았으면 세이프 됬겠지?"
"아마도. 1번 타자 답게 상당히 빠르군. 더군다나 좌타니 더 그렇지"
"앤서니가 대처를 잘 했네요"
앤서니가 무슨 생각으로 2루수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잡아 송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론 큰 일을 한 셈이다.
선두 타자를 잘 잡아서 그런지 2번, 3번 타자 역시 땅볼로 처리한 앤서니.
그렇게 양 팀 다 1회는 삼자범퇴로 끝이 났다.
2회 초. 다시 2아웃 상황에서 지아의 차례가 왔다.
초구 패스트볼을 빗맞춰 파울이 되고, 그 다음에 날라온 포크볼에 헛스윙한 지아.
'씁... 벌써 2스트라이크라니... 일단 존에 들어오는거 같으면 무조건 커트해야지...'
3구는 상당히 높게 들어오는 패스트볼이었다. 아마 하이 패스트볼을 던질려다가 살짝 제구가 안된 거 같았다.
다시 패스트볼이 몸쪽으로 들어오자 커트한 지아. 그 뒤 존을 통과하는 포크볼을 커트하고 낮게 들어오는 패스트볼은 지켜보며 2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결국 바깥쪽에 들어오는 패스트볼에 헛스윙을 한 지아.
지아는 고개를 떨구고 덕아웃으로 돌아갔고, 투수는 자신의 글러브를 손으로 팡팡 치며 기뻐했다.
3회 초.
두 선발 투수의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출루한 선수가 1명도 없는 상황에서 1아웃에 3번 타자가 2루수 키를 넘기는 안타를 쳤다. 2루수가 어떻게든 잡으려고 몸을 띄웠지만, 잡을 수 없었다.
AI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해서 인지, 아니면 경기의 중요성 때문인지 투수의 제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4번 타자는 그런 제구가 흔들려 볼인 공을 건드려 아웃 되긴 했으나, 1루 주자를 2루까진 보냈다.
"오! 좋다, 좋아~! 이러면 일단 지아까진 오겠다! 지아야, 잠깐 복도로 나갈까? 벨리나는 지아 타석 될 것 같으면 불러줘!"
"네, 알았어요~"
동국은 지아에게 기를 불어주기 위해 지아의 손을 잡고선 더그아웃 뒤편에 연결된 복도로 나갔다. 우드페커스의 구장은 꽤 잘 되어 있어서 이렇게 복도와 더그아웃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게 동국과 지아가 텅 빈 복도에서 찐한 스킨십을 하는 동안 투수는 5번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고야 말았다.
투수가 흔들리는 모습에 우드페커스 투수 코치가 바로 마운드로 올라왔고, 몇 번의 대화 끝에 그녀를 내리기로 하였다.
우드페커스의 에이스가 올라와 몸을 풀고 연습 투구를 하면서 지아와 동국의 스킨십 시간을 자신들도 모르게 착실히 늘려주었고, 지아는 사랑의 힘을 풀로 채우고선 타석에 들어섰다.
'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타석에 임한 지아. 마운드에 선 교체된 투수는 이 2사 만루의 상황이 떨리긴 하는지, 아니면 포수가 요구를 했는지, 초구로 떨어지는 포크볼을 선택했다.
그러나 지아의 눈에는 구종이 포크볼인게 환하게 보였다.
꿈쩍도 안 하는 지아의 모습에 이번엔 몸쪽 깊은 곳에 직구를 찔러 넣는 투수. 하지만 이번에도 지아는 살짝 피하기만 할 뿐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2볼 노 스트라이크의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 투수는 결국 카운트를 잡기 위해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밖에 없었고, 지아는 그 공을 놓치지 않았다.
딱~!
제대로 맞은 타구가 투수 옆을 스치며 날라갔고, 1회 때 호수비를 보인 2루수가 몸을 날렸지만 잡지 못했다.
1-0. 지아가 귀중한 선취점을 올려냈다.
지아가 안타를 때리자 더그아웃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서로 껴안으며 기뻐했다.
"우와아아~!! 지아가 해냈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지아 역시 두 손을 불끈 쥐며 좋아라 했다. 반대로 투수는 선취점을 내 줬다는 것에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발키리는 연이어 계속된 2사 만루의 찬스에서 후속타가 터지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우드페커스는 반격에 나섰다.
딱~!
1회에 멋진 호수비를 보여줬던 2루수 2번 타자가 펜스까지 굴러가는 장타를 때려낸 것이다.
'씹... 장타다...! '
지아는 맞자 마자 장타임을 직감하고 뒤로 뛰기 시작했다. 지아의 예감대로 타구는 펜스까지 날라갔다. 지아가 잡기에는 무리였기에 바로 펜스 플레이에 대비했고, 펜스를 맞고 튕겨져 나온 공을 바로 잡아 2루로 쏘았다.
지아의 좋은 수비와 강한 어깨로 발이 그렇게 빠르지 않은 타자는 장타를 치고도 2루로 진출하지 못하고 1루에 머물러야 됬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장타를 허용한 건 사실. 앤서니는 긴장을 바짝 한 채 다음 타자를 맞이했다.
'내가 제일 자신 있는 공으로 승부하자'
앤서니는 그렇게 생각하며 빠른 공을 연달아 던졌고, 타자는 반응을 하지 못했다.
2스트라이크 상황.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
여기서 앤서니는 커브를 던져 패스트볼에 대비를 할 타자의 헛점을 노리려고 했으나, 존을 통과하지 못했다.
'아, 아쉽다... 타자가 꼼짝을 못하고 바라만 봤는데...'
앤서니가 계속해서 직구만 던지다가 커브를 던지자 타자의 머릿속은 복잡해 졌다.
'직구? 아니면 다시 커브? 그것도 아니면 던지지 않은 슬라이더...?'
그리고 앤서니는 이런 혼란에 빠진 타자의 머릿속을 꿰뚫어버릴듯이 130km의 강속구를 존에 꽂아 넣었다.
펑~!
"스트라잌 아웃~!"
"우와... 130km야...! 1부 리그에서 130이라니...!"
"저 투수 정말 빠른데...? 얼굴, 몸매도 좋은데 저런 강속구라니..."
전광판에 찍힌 구속에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보통 지역 리그에서나 130km가 찍히는 걸 생각하면 앤서니의 구속은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발키리의 더그아웃도 마찬가지였다.
"동국. 앤서니가 원래 저 정도 나왔었나...?"
"어... 아니...? 보통 120km 때 였는데...? 구속이 늘었네"
"앤서니가 부럽네요... 전 그 정도 구속이 안 나오는데..."
리사와 동국이 감탄하는 사이 벨리나의 기분이 축 처졌다. 앤서니는 저렇게 발전하는데 자신은 아직 그대로인것 같아 속상했다.
"아니, 벨리나. 너가 아직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서 그러는데, 너도 많이 발전했어. 너도 깜짝 놀랄걸?"
동국의 위로에 벨리나가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 모습에 동국은 마운드를 한번 바라보고는 벨리나에게 말했다.
"그럼 벨리나, 몸 풀어. 내가 상황 봐서 널 경기 후반에 올려줄게"
동국의 말에 벨리나는 물론이고 리사까지 놀랐다.
"저, 정말로요...?"
"동국. 이 중요한 경기에...?"
"어. 난 벨리나의 실력을 믿어. 그녀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어. 그러니 리사 너가 벨리나 몸 푸는거 좀 도와줘"
동국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하자 벨리나는 감동을 해 살짝 눈시울이 붉어졌고, 리사는 동국의 믿음에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