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76회.
4회 말.
AI타자들이 AI투수의 공에 헛스윙을 하는 것을 바라보며 리사는 동국이 해준 상대 팀 2번 타자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음... 상당히 뛰어난 선수군..."
혹여나 앤서니가 들을까 봐 리사가 작게 이야기 하자 동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중에 크게 될 선수야... 다만 외모가 아쉬울 따름이지"
동국의 말에 멀리서 수비 위치에 서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리사.
"상당히 다부지게 생겼군."
"그래, 적어도 내 스타일은 아니야.."
그렇게 둘이서 쑥덕대고 있자, 앤서니가 다가왔다.
"둘이 뭔 이야기를 그렇게 해~?"
"어? 아, 2번 타자가 아주 나쁜 년이라고, 흉 보고 있었어"
앤서니의 질문에 동국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그녀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맞는 말이야. 내 배려하는 마음을 그렇게 악용하다니~! 아주 나쁜 사람이야~ 그보다 동국~ 나 특훈 좀 해줘~"
앤서니의 말에 동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찐하게 하자고"
동국과 앤서니가 특훈실에서 한 찐한 특훈 덕분인지, 5회 초 앤서니는 삼자범퇴로 타자들을 처리하며 경기를 끝냈다.
특히 지난 경기와 마찬가지로 2번 타자가 마지막 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는데, 앤서니는 동국의 말처럼 몸쪽에 바짝 붙는 강속구를 연신 던지며 타자의 마음이 위축되도록 만들었다.
결국 타자는 힘없이 헛스윙 하며 삼진으로 아웃 되고 말았다.
최종 스코어 0-4로 벨벳 발키리의 승리였다.
선발 투수로 나선 앤서니는 5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한 피칭을 보여줬다. 3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활약했는데, 다만 2개의 사 사구가 아쉬웠다.
1번 타자로 나선 지아는 4타석 3타수 2안타 2타점의 활약을 했다. 거기에 1득점과 1도루, 1개의 희생타를 기록했다.
이렇게 두 명의 활약에 힘입어 기분 좋게 첫 경기를 이긴 발키리 팀.
다음 상대는 아마 내일쯤 알려지게 될터였다.
6개 팀이 서로 경기를 해서 3개 팀이 살아 남는다. 그러면 이 3팀 중 부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할 1팀을 랜덤으로 뽑고, 나머지 두 팀이 목요일 날 경기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어느 구장에서 경기를 할지도 결정을 한다.
동국은 경기가 끝이 나고 말했던 대로 재은을 집에 초대했다.
재은은 확 달라진 외관과 규모에 상당히 감탄하며 구경했다.
"우와... 진짜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렇게 마당을 꾸며 놓다니... 돈 많이 들었겠는데?"
재은이 조경수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동국이 대꾸를 했다.
"한 10억 정도 들었어"
"10억...? 그 정도에 이 정도면 꽤 괜찮은데? 건설사가 어디야? 나도 좀 알자"
재은의 말에 동국이 뒤통수를 긁었다. 시스템에서 숙소 증축 기능을 이용한 거라 다른 사람들은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재은의 말에 동국은 대충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다.
"어어... 나중에, 나중에 알려줄게. 그보다 이제 집 안으로 들어가자. 저녁밥 해야지"
"아, 알았어... 아니면 너 먼저 들어갈래? 난 이 마당 좀 구경 하다 갈게. 난 아파트에서 살아서 그런지 이런 마당은 좀 신기하다"
재은의 말에 동국은 먼저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경기를 치룬 지아와 앤서니가 허기질테고, 무엇보다 인원수가 많아서 빨리 준비를 해야 했다.
'어째 난 게임을 하는걸까, 아니면 가사일을 하는걸까...'
아무리 동국이 바지 감독이라 선수들을 케어하는게 일이라지만, 게임임에도 별로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아와 앤서니, 둘이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이제 벨리나와 리사까지 있으니 집안일이 더 늘었다. 빨랫감만 해도 2배나 늘어난것이다.
'메이드를 구해야 하나...? 근데 그러면 돈은 누가내... 또 비올렛에게 손 벌리기엔 너무 그렇지...'
결국 한숨을 쉬며 주방으로 향하는 동국. 오늘도 그는 열심히 요리를 한다....
대형 식탁에서 다같이 식사를 하는 동국과 여자들.
앤서니는 여전히 폭풍처럼 흡입하고 있고, 나머지는 떠들면서 밥을 먹고 있다.
"그래서 내가 재은 언니에게 말했지. '난 동국의 애인이 아닌 사람과는 굳이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그러니 결국 재은 언니가 인정을 한거지. '그래, 난 동국의 애인이다!'."
"야!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리사가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자, 재은이 얼굴이 빨개져서 반박했다. 하지만 리사는 그저 코웃음 칠 뿐이었다.
"뭐, 뉘앙스만 비슷하면 되는거지, 뭐"
"아오~! 이게~!"
동국과 부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말해버리다니. 재은은 눈치가 보여서 어쩔 줄 몰라했다.
하지만, 지아를 비롯한 벨리나는 그저 올게 왔다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재은 언니도 동국의 하렘에 끼기로 마음 먹은거에요? 뭐, 동국이 어떻게든 들이대는 걸 보니 이럴 줄은 알았지만..."
지아의 물음에 재은이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그렇게 됬어.."
재은이 미안한 표정을 짓자, 지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 굳이 그렇게 미안해 할 필요 없어요. 어차피 뭐 이렇게 될 예정이었는데 뭐... 사실 동국이 호감을 보인 여자 중에 안 넘어온 여자가 어디 있나? 다 넘어 왔지... 아주 카사노바가 따로 없어~!"
지아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동국을 발로 퍽 찼다. 그러자 동국이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야~! 아프잖아~!"
"아프라고 때린거니깐 아프지~!"
지아가 메롱 거리며 동국을 약 올리자 동국의 표정이 음흉해 졌다.
"지아, 너가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몇 시간 뒤에 보자고..."
동국의 말에 급격히 사색이 된 지아. 동국이 저렇게 나오면 자신은 거의 쾌락의 바다에서 허우적댈게 뻔했다.
황급히 젓가락으로 고기 반찬을 집어서 동국의 입으로 가져다 대는 지아.
"자, 우리 오빠~ 아~"
"흐흐, 아~"
그래도 지아의 애교를 곧바로 받아드리는 동국이였다. 다만 밤에 적정 수준을 유지할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동국과 지아가 둘이서 티격태격 하는 동안 재은은 벨리나에게 숙소 증축 비용의 출처에 대해 듣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리사도 궁금했는지 주의 깊게 들었다.
"그럼 완전 너네 집 돈으로 지었다는거잖아~? 이렇게 좋은 집을~! 와, 동국, 완전 기둥서방이네~!"
재은이 동국을 보며 큰소리로 말하자, 동국이 능글거리며 맞받아 쳤다.
"누나도 내 기둥 맛 볼껴~?"
"이씨~! 뭐라는거야~!"
동국을 놀리려다가 되려 당한 재은이 얼굴만 붉혔다.
한편 리사는 의문이었던 점이 해결돼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쩐지 이제 1부 리그로 승격한 팀이 이렇게 좋은 숙소에서 지내나 싶었지... 다 벨리나네 덕분이었구만...?"
"뭐, 그렇긴 해도 어차피 발키리 팀은 이 정돈 충분히 벌 수 있는 팀이에요. 그리고 신혼 집 같은 개념이라서 뭐..."
벨리나와 같은 재벌 입장에서는 이 정도 신혼 집은 사실 별거 아니었기에 리사는 납득이 갔다. 강남에 집 한 채만 마련하려고 해도 이것보다 돈이 훨씬 많이 드는 세상에서 10억 정도야 뭐...
식사를 하고 난 뒤, 동국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 동안 여자들은 거실에 옹기종기 앉아 재은과 리사에게 신혼 여행 때 일어났던 일들을 떠들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야외에서 해대는데 아주...!"
"어머어머...! 밖에서 그랬단 말이야...?"
"네~! 아주 부끄러워서... 낮에 옆 숙소 사람 보기가 민망하더라니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어..."
지아가 동국과 숙소 밖에서 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재은은 볼이 붉어진 채로 열심히 들었다. 그러면서 계속 주방에 있는 동국을 흘깃거리면서 쳐다보는게 아무래도 그때 당시를 상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아, 너 말은 그렇게 해도 엄청 느꼈었잖아~ 막, 안돼~! 거리면서, 읍읍...!"
"이게 못하는 말이 없어~!"
앤서니가 그때 당시 지아의 상황을 폭로하려고 하자 지아가 황급히 앤서니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벌써 말이 나온 상황이었다.
"으흠... 지아, 너 은근히 즐기는 스타일이었구나~? 말은 그렇게 해도 말이야"
"아, 그런거 아니야~!"
리사가 다 알겠다는 표정을 짓자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부인하는 지아. 그러나 재은 역시 자신을 요상하게 바라보자 결국 고개를 숙이는 지아였다.
"이번에 이렇게 넷이서 가서 재밌었으니, 다음에는 리사 언니와 재은 언니까지 포함해서 6명이서 다같이 여행가죠. 컵 대회 끝나고 겨울 여행 어때요?"
벨리나의 제안에 다들 기대감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스키장인가아~? 아니면 온천~?"
앤서니가 제일 먼저 흥분해서 떠들어댔고, 지아와 리사 역시 얼굴이 상기되었다.
"스키장~? 스키장 좋지~!"
"아니면 오히려 남쪽으로 전지훈련을 다녀올 수도 있지!"
"그럼 그건 그냥 스프링 캠프 아닌가...?"
다만 재은 혼자 약간의 걱정을 하고 있을뿐.
'얘들 말 들어보면 단체로 섹스할 분위기 인데 그럼 난 어떡하지....?'
재은은 진정으로 겨울 여행이 다가오기 전에 동국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재은의 부모님은 지역 유지로 남주시의 고위 공무원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비교적 엄한 분위기에서 잘아온 재은. 아마 이대로 살다가 어디 같은 지역 유지의 아들과 결혼할 팔자였다.
재은은 그때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기자 일을 하며 청춘을 보내는것이었다. 사실 남주시 홍보 잡지 기자도 아버지 빽으로 하는것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실력이 있기에 일을 하고 있는것이었지만, 영향이 있는건 사실이었다.
하여튼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남자와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여행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라는거고, 과연 자신의 부모님이 여자가 많은 남자를 용인을 할까...?
'물론 동국의 능력만 보면 오히려 반길지도 모르겠지만...'
특히 부인 중 한 명이 벨벳 그룹 외동딸인걸 보면 그럴 가능성도 다분하지만, 확실한건 모른다는것이었다.
재은은 조만간 부모님께 동국과의 만남을 밝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