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56회.
딱~
그대로 살짝 낮은 공을 친 타자는 1루로 뛰었고, 타구는 앤서니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앤서니가 반사적으로 타구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공이 빨라 잡지 못하였고, 그대로 안타가 되었다.
"와... 이걸 치네..."
앤서니는 1루 베이스에 서 있는 2번 타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사 만루의 위기 상황. 그러나 앤서니는 걱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감이 있었다.
타석에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 3번 타자가 들어섰고, 앤서니는 가뿐하게 내야 뜬공으로 아웃시켰다. 다음 타자까지 땅볼 처리 하면서 앤서니는 또 한번의 위기를 막아냈다.
"좋아, 좋아~! 이렇게 또 위기를 막아냈으니 3회 말에 찬스가 온다~!"
동국은 박수를 치며 더그아웃 입구에서 앤서니와 지아를 맞이했다.
"근데 동국~ 2번 타자, 진짜 잘 쳐~"
앤서니가 벤치에 앉으며 엄지를 들어올리자, 동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앤, 다음에는 그냥 계속 유인구만 던져. 뭣하면 볼넷 내준다는 생각으로"
동국의 말에 앤서니의 표정에 불만이 서렸다.
"에에~? 굳이 그래야 겠어~? 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은데..."
앤서니의 말에 동국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그럼 상황 봐서 점수 차가 많이 나면 니 마음대로 해. 대신 박빙의 상황이면 내 말대로 하는거다?"
"응, 알았어~"
동국의 말에 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에 어떻게 2번 타자를 상대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3회 말.
다시 선두 타자로 지아가 타석에 들어섰다. 한아지는 지아에게 신중에 신중을 기해 공을 던졌고, 풀카운트 상황에서 체인지업 대신 직구를 던져 지아를 땅볼 처리하였다.
"아오~ 짜증나.."
땅볼 아웃 되자 지아는 짜증을 내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고, 한아지는 그런 지아를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가 온 상황인지 한아지의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이윽고 연속 안타를 허용해 1사 만루가 되자 마운드로 양곡 팀 감독이 올라왔다.
"아지야, 더 던질 수 있겠냐. 너 너무 무리하는 것 같다.."
감독의 말에 한아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확실히 연투를 해서 그런가 컨디션이 그렇게 좋진 않았다. 그러나 재수 없는 최지아가 승격하는 건 더 꼴 보기 싫었다.
"이번 이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맡겨 주세요!"
한아지의 말에 감독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선 마운드를 내려왔다. 사실 이대로 한아지를 내리고 AI투수를 올린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아질 거란 보장이 없었다. 감독은 그저 한아지가 투혼을 발휘하길 바랄 뿐이었다.
타석엔 오늘 장타 2개를 때려낸 4번 타자가 들어섰다. 비록 AI타자기는 하지만 한아지는 마치 지아를 상대하듯 조심스럽게 투구를 하였다.
틱~
제구가 잘 된 체인지업에 빗맞은 타구. 그러나 병살타로 이어지진 못하고, 타자 주자만 아웃시켰다.
그렇게 한 점 더 실점한 2사 2루 상황에서 5번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면서 결국 한아지는 강판 되고 말았다.
"아이, 아쉽네... 내가 홈런 날려주려고 그랬는데~"
지아가 방망이를 휘두르며 마운드에서 내려가고 있는 한아지를 바라보았다.
"야, 그래도 이제 4점이나 냈어. 이 정도면 이겼다고 봐야지. 야호~"
동국은 이제 승격을 기정 사실로 보고 마냥 기뻤다.
한아지가 마운드를 내려가고 나타난 AI투수. 지아는 외야로 잘 맞은 타구를 날렸지만, 좌익수의 호수비에 뜬공 처리 되고 말았다.
4회 초.
동국은 점수 차이가 4점이나 나자 앤서니보고 마음 편히 던지라고 말했다.
"그럼 직구 던져도 돼?"
"음... 그래, 니 마음대로 해~"
"히히, 알았어~"
앤의 말에 동국은 잠깐 고민했지만, 그냥 앤서니 마음대로 하게 하였고, 앤은 신나하며 마운드로 향했다.
'이렇게 성장해 가는거지...'
언제까지 동국이 직접 구종을 정해줄 순 없었다. 그저 앤서니가 성장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구종을 던져야 할지 배우길 바랬다.
마운드에 선 앤서니는 다시 직구를 던져 보기로 마음 먹었다.
'계속 변화구만 던졌으니, 이제 직구가 나오면 못 치지 않을까...?'
앤서니의 생각이 맞는지, 초구로 직구를 던졌으나 타자는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래, 이번엔 몸쪽이닷~!'
우타자의 몸쪽으로 직구를 던진 앤서니. 그러나 공이 손에서 빠지면서 그만 타자를 맞추고 말았다. AI 타자는 아픈 기색도 없이 묵묵히 1루로 향했다.
'아이씨... 진짜 직구가 왜 이러지...'
강속구 투수라는 자부심이 있는 앤서니에게는 자신이 자신 있어 하는 직구가 계속 말을 안 듣자, 고민에 빠졌다.
'쯧, 일단 변화구 위주로 던져야 겠다...'
그렇게 커브와 슬라이더만 던져서 1번 타자를 내야 뜬공으로 잡고, 타석엔 2번 타자가 들어섰다.
타자와 직구로 승부할지, 아니면 동국 말대로 변화구로 승부 할지 고민하던 앤서니는 결국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최소한 오늘은 직구를 버리자... 변화구로만 승부하자'
현실을 인정한 앤서니는 2번 타자와 변화구로 승부를 이어갔고, 결국 타자는 떨어지는 커브를 빗맞추고 말았다. 전 타석에서 그랬던 것처럼 타구 방향이 좋지 않았고, 2루수가 잡아 1루 주자를 아웃 시키고 1루로 송구했다. 다만 타자의 전력 질주로 병살타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앤서니는 2번 타자를 막아냈다는거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나에겐 훌륭한 변화구들도 있으니깐...!'
그렇게 마음가짐을 바꾼 앤서니는 3번 타자를 또다시 땅볼로 처리하며 실점하지 않았다.
그렇게 앤서니가 매 이닝 주자를 출루 시키며 위기 상황이 닥쳐와도 꾸역꾸역 막아내는데 반해, 상대 팀인 양곡 팀은 그렇지 못했다.
4회 말, 2사까지 잘 잡아 놓고는 안타와 2루타로 또다시 실점한 양곡 팀.
그 와중에 2사 2루의 상황에서 뜬공으로 물러난 지아. 지아는 지금 5타수 1안타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물론 그 안타가 2루타이긴 한데 말이지..."
동국이 아웃 당하고 와서 글러브를 손에 끼우는 지아를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지아의 표정이 붉어졌다.
"뭐! 팀이 이기고 있으니깐 그냥 여유롭게 하는거지..."
"흐흥... 그런거야...?"
"그, 그래~! 난 이만 수비하러 가보겠어...!"
그러고선 빠르게 도망가는 지아.
그런 지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동국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면 지아가 큰 경기에 약하단 말이지...'
앤서니는 잘 하는걸 보면 왠지 가슴 크기에 따라 담력이 큰 것 같았다...
한편 평상시와는 다르게 재은과 따로 앉은 벨리나였다. 그 이유는 당연히 같이 온 새어머니, 비올렛 때문이었다.
"이제 5회 초만 남았어요...! 승격이 눈 앞에..."
감격스러워 하는 벨리나를 비올렛은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좋으니...?"
"네, 당연하죠...! 이제 프로 무대에 데뷔도 할 수 있고, 동국 오빠와도 같이 살 수 있으니..."
마지막엔 뭘 상상했는지 볼이 빨개지는 벨리나.
그런 벨리나의 표정에 비올렛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너 이렇게 되면 동국이랑 결혼해야 하는거 알지...?"
비올렛의 말에 벨리나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 동국 오빠면 괜찮아요. 아니, 좋아요.."
"애초에 내가 제시한 말도 안되는 조건을 이렇게 달성할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가을 컵대회 우승을 목표로 할걸 그랬나..."
비올렛의 중얼거림에 벨리나가 빽 소리쳤다.
"아니 컵 대회는 나중에 전국 대회 팀들도 참가를 하는데 무슨 2부 리그 창단 팀이 우승을 해욧~!"
벨리나의 큰소리에 비올렛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벨리나를 한대 찰싹 때렸다.
"얘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큰소리야. 말이 그렇다는거지... 에휴... 제대로 된 사윗감 얻나 싶었는데 바람둥이라니.."
"동국 오빠가 어디가 어때서요~! 실력도 좋고! 얼굴도 잘생겼고! 성격도 나쁘지 않고! 가정적이고!"
"그걸 말이라고 하니...! 아무리 그래도 여자가 여러명이잖니...! 그리고 니 엄마가 대기업 회장이야! 이 정도면 너가 아까워!"
비올렛의 잔소리에 벨리나는 고개를 돌렸다.
"흥, 나중에 발키리 팀도 덩치가 커질거에요! 지금 전국 리그 팀들이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데...!"
"아이고~ 전국 리그까지 언제 승격한다니..."
그렇게 두 모녀가 떠드는 사이 5회 초, 양곡 팀의 마지막 공격이 진행되었다.
마운드에는 여전히 앤서니가 올랐고, 선두 타자는 4번부터였다.
초구로 커브를 던진 앤서니. 그러나 제구가 잘 안된 실투가 날라갔고, AI 타자는 그걸 그대로 잡아 당겼다.
지아 키를 넘기는 타구가 나왔고, 지아는 빠르게 펜스 플레이를 하였다. 펜스 맞고 튕긴 공을 그대로 잡고선 2루로 레이저 송구를 한 지아.
그 덕분에 AI 타자는 허겁지겁 1루로 되돌아갔다.
"와아아~!!"
지아의 엄청난 수비에 관중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우와~!! 우리 지아, 최고다~!!"
벨리나 역시 기립 박수를 하며 외쳤다. 그리고 옆에 있던 비올렛은 지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별 볼일 없는 선수를 저렇게 키워내는거 보면 능력이 있긴 있어... 그래도 벨리나에 비하면 아깝긴 하지만..'
앤서니는 두 타자를 연속 땅볼 처리하며 비록 1점 내주긴 했지만 2아웃까지 잡아냈다.
그리고 타석엔 오늘 4타수 3안타의 2번 타자가 들어섰다.
'깔끔하게 막고 경기를 끝내자...!'
앤서니는 더 이상의 출루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타자를 바라봤다.
'어떤 구종이 좋을까...? 커브? 슬라이더...? 아니면 역으로 직구...?!'
앤서니는 역으로 지금 자신이 가장 던지지 않을 것 같은 직구를 던지기로 했다.
슈우욱~
앤이 던진 하이패스트볼에 타자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스트라익~"
생각지도 못한 직구에 타자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리고 앤서니는 포수의 미트에 꽂힌 직구의 위력에 자신감을 가졌다.
'그래... 직구로만 승부를 본다...!'
그 뒤 앤서니는 계속해서 직구만 던졌고, 이제 타자도 어느 정도 앤서니의 생각을 눈치챘다.
2볼 2스트라이크 상황. 어느 때보다 방망이를 꽉 쥔 타자와 전력으로 공을 던지는 투수.
'이걸로 끝낸다...!'
앤서니가 전력으로 던진 공이 그대로 스트라이크 존 낮은 곳을 향해 쏘아졌고, 타자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아갔다.
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