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49회. 2부 리그 우승
1회 말 앤서니는 유현예는 땅볼로 잘 잡았지만 이영애에게 깨끗한 중전 안타를 허용했다.
바깥쪽으로 제구가 잘된 직구였는데 이영애가 잘 친것이다. 그러나 앤서니는 다음 타자를 땅볼로 잡아내며 1회 말을 틀어막았다.
2회 초, 지아가 땅볼로 아웃 되자 동국이 지아에게 말했다.
"지아야, 너 혹시 긴장했니?"
"아, 아니거든...!"
지아가 얼굴을 붉히며 부인했다. 아무래도 안타를 치지 못하니 부끄러운가보다.
동국은 그런 지아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친절하게 이야기했다.
"지아야, 긴장되면 말해~ 내가 찐하게 긴장 풀어줄게"
"뭐래~!"
지아는 동국을 뿌리치고선 글러브를 들고 수비를 하러 뛰어갔다.
"짜식... 부끄러워 하기는..."
3회 초.
경기는 지루한 투수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앤서니는 1회에 이영애에게 맞은 안타가 유일하고, 석현 팀 선발 투수 루밍은 퍼펙트 피칭을 이어갔다.
그러나 3회초에 그 흐름이 깨졌다.
1사 상황에서 루밍이 3번 타자에게 큼지막한 2루타를 허용한것. 2볼 상황에서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던진 공을 타자가 그대로 때린것이다.
1사 2루 상황에서 동국은 그대로 번트 대신 강공을 선택했고, 4번 타자는 또 한번의 큼지막한 장타를 때려냈다.
어떻게든 실점을 막기 위해 내외야수 모두 전진 배치 되어 있는 상황에서 펜스까지 굴러가는 장타가 나오자 외야수들은 허겁지겁 공을 쫓아갔고, 우익수가 공을 잡았을 때는 이미 타자 주자가 2루에 거의 다다른 상황이었다.
결국 타자 주자가 그대로 홈을 밟으며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 되었다.
이 희귀한 상황에 홈 팀 관중들도 일어나 박수를 보낼 정도.
루밍은 한번에 2점을 허용하자 낙담한 듯 마운드에서 쪼그려 앉아 일어서지 못했고, 수비수들도 침통한 분위기였다.
반대로 발키리 더그아웃은 난리가 났다.
"우와아아~!!"
"홈런이다, 홈런~!!"
셋이서 서로 껴안아 뽀뽀를 하고 방방 뛰고 난리를 피웠다.
"우와...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일반 타자도 아니고 AI 선수가 하다니... 이건 우리 팀이 이기라는 신의 계시다.."
"이제 앤서니가 이대로 잘 막으면 되겠다"
"에헴~ 내가 다 막아주겠어~"
3회 말, 이영애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앤서니는 다음 타자에게 2루 땅볼을 유도했으나 1루수의 실책으로 타자가 세이프 되고 말았다.
그러나 후속 타자들을 연속 땅볼로 아웃 시키며 실점하지 않았다.
그 이후, 두 투수는 한차례도 출루 시키지 않으며 투수전을 이어갔다.
그리고 5회 말, 석현 팀의 마지막 공격 기회.
여기서 역전 시키지 못하면 석현 팀은 그대로 2위가 확정적이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마운드에는 앤서니가 올라와 있다.
두 타자를 연속해서 땅볼로 잡아낸 앤서니.
타석에는 석현 팀의 마지막 타자인 2번 유현예가 타석에 들어섰다. 유현예는 오늘 경기에서 3타수 무안타.
오늘 경기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한 그녀는 타석에 들어설 때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무조건 직구, 직구만 노린다...!'
현재까지 앤서니의 투구 패턴을 보면 직구로 카운터를 잡고 변화구를 유인구로 사용해 타자의 헛스윙이나 땅볼을 유도해왔다.
그러니 현예는 앤서니가 가장 많이 던지는 직구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앤서니는 유현예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크게 와인드업을 하고선 공을 뿌렸다.
슈우욱~
공은 빠르게 날아와 타자의 몸쪽에 꽂혔다.
"스트라익~"
초구가 직구로 날라왔지만, 유현예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크로스 파이어 딜리버리. 투수가 던진 공이 홈 플레이트를 가로 지르는 공을 의미하며 보통 좌투수가 우타자 몸쪽 공을 던질 때 사용한다.
이런 몸쪽으로 바짝 붙어 들어오는 공은 쳐 봤자 파울이나 땅볼밖에 되질 않는다.
'시발... 이딴 걸 던지면 어쩌자는 거야...'
그러나 유현예는 어떻게 해서든 출루를 해야 하는 상황. 안 그러면 이대로 경기는 끝나게 되고 리그 우승은 물거품이 되버린다.
그녀는 다시 배트를 꽉 쥐고선 투수를 노려봤다.
한편 앤서니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저녁에 고기를 사달라고 동국에게 조를 생각밖에 없었다.
'이런 날은 고기를 먹어 줘야지~ 고기, 고기~'
앤서니는 몸쪽에 한번 던졌으니, 이번엔 바깥쪽으로 던지기로 마음 먹었다.
'받아라~'
슈우욱~
유현예는 바깥쪽으로 날라오는 공에 눈을 반짝였다.
'이건 꼭 친다...!'
그녀는 가볍게 컨택 한다는 느낌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딱~
밀어친 타구는 그대로 1루수 옆을 지나며 우익수 앞 안타가 되었다.
희망의 불씨를 살려낸 현예는 1루 베이스에 서서 한 손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그녀의 세레모니에 관중들이 환호했다.
"우와아아!!"
"아직 경기 끝나지 않았다!!"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지~!"
'아이씨~ 배고픈데...'
그리고 앤서니는 경기가 끝나질 않자 짜증이 났다.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앤서니는 분노의 돌직구를 던졌다.
슈우욱~!
퍽~!
"스트라익~!"
120km 정도 되는 빠른 공에 이영애는 표정이 굳었다.
'전력을 다하는건가...! 그렇지만 그만큼 제구가 안되고 있어... 가운데 공을 노린다...!'
직구 속도가 빨라진 만큼 타격 포인트를 앞쪽으로 옮긴 이영애. 그리고 바로 공이 가운데로 오는 것 같자 그대로 배트를 휘둘렀다.
'아뿔사...! 너무 빨리 판단했다...!'
가운데로 오던 공은 그대로 타자의 몸쪽으로 꺾여 들어갔고, 배트에 빗맞고 말았다.
틱...
공은 떼굴떼굴 굴러 앤서니에게 향했고, 앤서니는 가볍게 공을 잡고선 1루로 던졌다.
"아아아..."
"우와아아~! 우승이다~!"
1루수가 공을 잡자 관중석에서는 탄식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더그아웃에서 대기하고 있던 동국이 뛰쳐나왔고, 좌익수 자리에 있던 지아가 마운드에 있는 앤서니에게로 향했다.
"우아아아~!! 우승이다~!! 우승~!!"
"앤서니, 우리가 해냈어~!!"
둘이 앤서니를 끌어 안고선 환호하자 앤서니가 슬그머니 동국에게 말했다.
"그럼 오늘 고기 먹으러 가자"
"그래!! 고기가 무슨 대수냐~!!"
동국이 환한 얼굴로 환호하며 외치자 그제야 앤서니도 활짝 웃으며 외쳤다.
"와아아~! 고기다, 고기~"
셋이서 마운드에서 얼싸안고 환호하는 걸 보며 관중석에 있던 벨리나는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고, 재은은 카메라로 열심히 그 광경을 찍었다.
"축하해요, 발키리 감독. 이대로 1부 승격전에서도 우승해서 1부 리그로 썩 사라져버려~"
"하하, 감사합니다. 바로 2부 리그에서 사라져 드리죠"
아쉬운 마음을 감추고 축하해 주는 석현 팀 감독과 인사를 나누고선 동국은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이미 더그아웃에는 관중석에 있던 벨리나와 재은이 선수들을 축하해 주고 있었다.
"축하해, 다들~"
"고마워, 벨리나 언니. 재은 언니도 와주셔서 감사해요."
지아의 인사에 재은이 손사래를 쳤다.
"아유, 뭘~ 이럴 땐 당연히 와야지. 근데 여기 아가씨는 누구야?"
재은의 질문에 다가온 동국이 벨리나를 소개했다.
"아참, 누나는 아직 벨리나를 잘 모르겠네. 여기는 벨리나, 내가 팀에 입단 시키려는 투수야"
"안녕하세요, 벨리나 라고 합니다. "
"그리고 여기는 나랑 친한 기자 누나. 이재은이라고 해"
"반가워요. 프리랜서 기자인 이재은이라고 해요"
자기 소개가 끝나고 나서 동국은 이들을 이끌고 가까이에 있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앤서니가 원하는 대로 고기를 부위 별로 시킨 동국은 오늘만큼은 저녁 값 걱정은 안 하기로 했다.
'이제 2부 리그 상금을 받으니 돈 걱정은 한숨 돌렸지...'
2부 리그의 1등 팀에게는 5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2등 팀에게는 3천만원, 나머지 팀에게는 천 만원이 주어지는데 사실 상금만 가지고선 팀을 운영하기엔 무리인 금액이다.
현재 구단 재정에는 지아의 연봉 적금을 포함해 대략 3천만원 정도가 남아 있었다. 여기에 5천만원이 더해지면 상당히 재정이 넉넉해진다.
여기에 1부 리그 승강전에서 탈 상금과 가을에 있을 컵 대회까지 생각하면 돈은 더 많이 들어오게 될터.
'1부 리그로 승격하면 벨벳 그룹과 스폰서 계약도 맺기로 했으니 더 여유로워 지겠지...'
동국이 구단 재정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재은은 열심히 나머지 셋에게 질문을 던지며 취재 아닌 취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어?"
재은이 앤서니에게 질문을 던지자 고기를 우물우물 씹고 있던 앤서니가 다른 고기를 젓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음... 동국에게 고기 사달라는 생각~?"
"풉~!"
앤서니의 엉뚱한 대답에 옆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지아가 뿜을 뻔 했다.
"콜록 콜록...! 진짜 너답다 정말... 난 그때 고교 시절이 떠올라서 울컥했는데.."
"으음... 그렇구나.."
앤서니, 그리고 지아의 대답을 수첩에 적는 재은.
동국은 그런 재은을 향해 농담을 던졌다.
"누나, 계속 그렇게 취재를 할꺼면 취재비를 줘요~"
동국의 말에 슬그머니 취재 수첩을 테이블 밑으로 숨기는 재은.
"하하... 내가 돈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그럼 오늘 밥 사는 건 어때요? 그동안 우리가 무료로 누나 인터뷰에 응해줬잖아요"
"에에~? 그, 그러진 말아줄래..."
앤서니가 폭풍 흡입하는 걸 바라본 재은이 동국에게 팔짱을 끼며 애원했다. 그런 재은의 육탄 공세에 동국의 입꼬리가 씰룩댔다.
"큼큼... 그럼 나중에 한번 밥 사요, 알겠죠?"
"아, 고마워. 정말"
재은이 팔짱을 풀자 동국이 아쉬워 하며 쩝쩝댔다. 그런 동국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지아의 눈길에 동국이 지아에게 한소리 했다.
"지아야, 오늘 4타수 무안타더라"
동국의 팩폭에 지아가 눈길을 슬그머니 돌렸다.
동국이 재은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근데 누나는 인터넷 언론사 하나 자그맣게 하는거 어때요?"
동국의 말에 재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나도 그 생각 안 해본건 아닌데, 생각보다 복잡하기도 하고, 돈도 어느 정도 들고, 무엇보다 기삿거리가 별로 없어"
"음...? 기삿거리요?"
"그래... 사람들이 내가 프리랜서라고 별로 응대를 안 해준단 말이지... 그리고 기자 벌이도 그렇게 좋지도 않고..."
재은은 그렇게 한탄하며 구워져 있는 고기를 낼름 먹었다. 동국은 그런 재은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