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27회. 시군 2부 리그
동국과 지아가 나누던 말을 듣던 앤이 동국을 바라보았다.
"동국, 나 이 계약서 마음에 안 들어"
앤서니가 굳은 표정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거부하자, 동국과 지아의 표정이 굳었다.
동국은 앤이 계약서를 거부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뭐지...? 돈이 너무 적은건가? 하지만 이제 남는 돈이 별로 없는데... 어떻게든 올해만 넘기면 된다고 설득 시켜야 되나... 근데 얘가 계약을 거부하면 어쩌자는거지...? 어디 갈 곳은 있나?'
이제야 마음에 드는 투수를 구했는데, 그것도 엄청 이쁘고 몸매도 좋고, 심지어 재능도 뛰어난 투수를 말이다. 앤이 입단을 거부한다면, 발키리의 올해 우승과 승격도 힘들어진다.
지아 역시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괜히 자기가 농담 삼아 한 말에 앤이 거부하나 싶고, 앤이 이대로 나가면, 팀이 우승하기 힘들다는것과, 심지어 다른 2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원수들을 엿 먹이는것까지, 등등...
"저, 앤서니...? 뭐가 마음에 안 드는거야?"
동국이 조심스럽게 묻자 앤이 단호하게 답했다.
"그냥 전부 다~"
동국은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그럼 어떻게 계약서를 바꾸면 좋겠어?"
"난 일단 우리가 계약서를 쓰는 거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가족끼리 계약서라니~ 너무 복잡하잖아~"
앤의 말에 순간 동국과 지아의 긴장이 확 풀렸다.
'아직까지 그 얘기라니... 처음부터 이해를 못 했었구만...'
앤서니가 계약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동국은 한결 편안하게 앤에게 설명했다.
"앤, 보통 부부가 결혼을 할 때 혼인 신고서란걸 작성을 하잖아?"
"그렇지~"
"그리고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출생 신고를 하고, 맞지?"
"응~"
앤은 동국이 말한 예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만약 결혼을 했는데도 혼인 신고를 안하고, 아이를 낳았는데도 출생 신고를 안 하면 어떻게 될까"
"웅... 글세~? 그냥 잘 살지 않을까~?"
앤의 대답에 동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쉽지만 아니야. 신고를 안 하면, 사람들이 결혼 사실이나 출생 사실을 모르잖니"
"아...? 그런가...?"
"그렇지. 그러니 선수 입단 계약도 마찬가지야. 너가 입단 계약서를 써야 사람들이 널 발키리 선수라고 알 수 있어"
그제야 앤이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해 됬으면, 이제 계약서에서 고치고 싶은 항목들을 말해봐"
동국의 말에 앤이 계약서의 한 부분을 손으로 가르켰다.
"난 여기가 마음에 안 들어. 아무리 그래도 돈을 받는건 좀 그런거 같애... 어차피 동국이 밥도 만들어 주고 그러잖아~ 그리고, 동국 돈이 없다며..."
앤의 말에 동국은 감동을 받았다.
'앤은 진짜로 날 가족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암, 그렇고 말고. 가족끼리 굳이 돈을 각자 쓸 필요는 없지'
"그러면 이렇게 하자. 계약서에는 돈을 받는 걸로 하고, 실제로는 돈 대신 앤이 1달에 1번, 나에게 부탁 한가지를 할 수 있게 하자. 어때~?"
동국의 제안에 앤의 얼굴이 밝아졌다.
"진짜~? 그럼 막 놀이공원 놀러 가자고 해도 돼~?"
앤의 어린애 같은 질문에 동국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 물론 그렇지~ 우리 앤서니, 놀이공원 가고 싶었어~?"
동국의 말에 앤이 신나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응~!! 나 진짜로 놀이공원 가보고 싶어~!! 나 한번도 못 가봤단 말이야~! 맨날 테레비에서만 봤어~"
"그럼 주말에 놀러가자"
"우와~!! 신난다~!!"
앤서니는 기뻐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
*
*
동국이 순간 식겁한 앤서니의 계약 건이 그렇게 마무리 되고 나서 목요일까지 평화롭고 음란한 일상이 이어졌다.
오구 훈련은 최소한으로 하고선 나머지 시간은 오로지 섹스만 하는 그런 삶.
특성에 정력 강화 기능도 있는지, 동국 자신도 불가사의할 정도로 정력이 강하다 못해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그 덕에 정신 못 차리는 건 지아와 앤이었다.
지아는 웬만해선 적당히 하자고 말하고 싶으나, 하루가 지날 때마다 실력이 약간씩이라도 상승하는 게 체감이 될 정도라서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냥 당했다.
반대로 앤서니는 그냥 이런 쾌락 가득한 삶에 상당히 만족하며 즐겼다.
목요일 날 아침.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가볍게 섹스를 한 셋은 아침을 먹었다.
밥을 먹으며 동국은 그동안 자신이 생각해본 가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경기 때 성행위를 하면 일시적인 버프를 받지 않나 싶어"
동국의 말에 지아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찐한 스킨십을 하고 나서 내가 홈런을 쳤지. 충분히 가능하고, 설사 동국의 특성에 그런 능력이 없다고 해도 징크스 적인 부분에서 가능한 일이야"
하긴 운동선수들을 보면 별의 별 징크스가 다 있다는데, 찐한 스킨십을 하는 거야 뭐... 나야 좋지.
"그럼 진짜 사랑의 힘이 있는거야~?"
앤이 신나하며 말하자 동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오늘 한번 본격적으로 시험을 해보고 결과를 확인해봐야지. 만약 평소보다 결과가 훨씬 더 좋다면 계속 시도해 봐야지"
그렇게 말을 하고선, 둘을 쳐다보았다.
"그러니 빨리 밥 먹어. 경기 전까지 계속 섹스해야지"
"하, 진짜...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경기 1시간 전까지 끝내면 될꺼야. 자, 빨리 먹어~"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기 1시간이 남아 서야 겨우 섹스를 멈춘 셋이었다.
석현 팀과의 홈 2차전 경기.
1회 초. 동국은 앤서니 대신 AI 선수를 선발 투수로 올렸다. 아무래도 저번 경기에서 완투를 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1번 타자를 땅볼로 잡은 선발은 다음 타자로 유현예를 맞이했다.
"외야수들은 다 뒤로 물러나서 수비해!"
동국은 장타를 의식해 외야수들을 펜스 가까이로 이동하게 하였다. 그리고 동국의 우려대로 유현예는 장타를 날렸다. 다행히 좌익수인 지아가 강한 어깨로 2루로 빠르게 송구해 유현예가 2루까지 가는 걸 막았다.
하지만 원래 수비 배치대로 하면 좌익수의 키를 훌쩍 넘기는 장타였기에, 유현예는 1루에서 아쉬워했다.
3번 이영애는 지아의 수비 능력을 의식해서 그런지, 공을 밀어 치려고 시도하였고, 그 때문인지 공은 외야까지 멀리 뻗긴 했으나, 우익수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1루 주자인 유현예가 2루로 태그 업 하기엔 충분했다.
2사 2루의 위기 상황. 동국은 이번엔 반대로 외야수들을 전진 배치 시켜 실점을 막고자 했고, 결과적으로 타자가 친 빠른 공을 지아가 잡아 땅볼 처리 시킬 수 있었다. 아마 외야수를 전진 배치 시켰다고 해도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면 내야 안타가 될 코스였다.
"좌익수 수비 능력이 대단하구만.... 쯧"
석현 팀 감독과 선수들은 아쉬워 했음이 당연했다.
반대로 동국과 앤은 실점을 막는 모습에 환호했다.
"우리 지아, 수비 너무 잘해~!"
"하... 나의 작전 능력~ 무섭다, 무서워~"
1회 말 석현 팀의 선발 투수도 AI 선수가 올라왔다. 비록 저번 경기에서 루밍이 선발로 던지긴 했지만 조기 강판을 했기 때문에 경기 초반엔 AI선수로 가다가 이길 것 같으면 루밍을 올릴 것 같다.
1회 말이 시작되기 직전. 바로 1번 타자로 나서야 되는 지아를 동국이 새로 만든 구석진 자리로 이끌었다.
구석에 칸막이를 설치해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든것.
"꼭 해야돼...?"
아직도 마땅찮은 지아가 머뭇거리자, 동국은 과감하게 입을 맞추었다. 동국이 먼저 입을 맞추자, 지아 역시 입술을 벌렸고, 곧이어 서로의 혀가 만나 얽혔다.
그러며 왼손으론 지아의 엉덩이를 웅켜쥐고, 오른 손으론 가슴을 살살 주물렀다.
"파하.....!"
얼마간 이어진 찐한 스킨십이 끝나고, 입을 뗀 지아가 크게 숨을 들이 마셨다.
"자자, 가서 장타 때리고 와"
동국이 엉덩이를 토닥이며 지아를 격려했다.
타석에 들어서기 직전에 스킨십을 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실력이 상승한 건진 모르겠지만, 지아는 공이 더 잘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느낌 그대로 우중간을 가르는 장타를 뽑아냈다. 그대로 무사 2루 찬스.
"좋았어~!"
"사랑의 파워~!!"
장타를 지켜본 동국과 앤은 환호성을 질렀다. 장타가 많지 않은 지아였기에, 이번 2루타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버프가 존재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제 1루쪽 땅볼, 아니면 외야 플라이만이라도 나와도 되는 상황.
동국은 안전하게 점수를 얻기 위해 번트를 지시했다.
그러나,
픽~
하는 소리와 함께 번트 시도한 공이 높게 솟구쳤고, 그대로 투수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엌...! 뒷목이야...!"
허무하게 아웃 카운트를 날려먹자 동국은 뒷목을 잡으며 벤치에 주저 앉았다.
"동국... 괜찮아...?"
"일단 이번 타석에서 번트 성공하면 돼...!"
동국은 다음 타자에게도 번트를 지시했다.
그러나,
틱~
틱~
"스트으~라잌~ 아웃~!!"
"끄어엌~!!"
3번 타자는 파울, 파울, 스윙 삼진으로 또 다시 아웃 되고 말았다.
동국은 삼진 아웃 당하고 나서 사라져 가는 AI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답답한 가슴을 두들겼다.
그리고 마지막 타자마저 땅볼로 아웃 되며 무사 2루라는 절호의 찬스가 그대로 사라졌다.
2루타를 치고 덕 아웃으로 돌아온 지아는 시뻘개진 얼굴을 하고선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동국을 힐끗 보고선 수비를 하러 조용히 나갔다.
앤만이 그런 지아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반대로 석현 팀 덕 아웃은 분위기가 좋아졌다. 1회 초의 기회를 살리지 못해 아쉬웠는데, 발키리 팀은 더한 기회를 날려먹었기 때문.
"득점 찬스에서 득점을 하지 못하면 분위기가 넘어오는 건 상식이지. 이번에 점수를 내자고!"
"네에~!"
석현 팀이 기세 좋게 2회 초를 시작했으나, 선두 타자는 믿을게 못 되는 AI선수부터 이다.
"아웃~!"
"아웃~!!"
선두 타자로 나선 5번 타자가 땅볼 아웃, 1번 타자가 뜬공 처리 되며 2아웃 상황에서 2번 유현예가 타석에 들어섰다.
앞선 1회에 장타성 안타를 뽑아냈기에 동국은 이번에도 수비 위치를 뒤로 옮겼으며, 뒤로 옮긴 우익수 앞에 타구를 날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