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16회 앤서니
"저기요?"
"응? 뭐냐~?"
"옆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응, 그래라~"
초면에 반말이라니.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었으나, 말투나 표정을 보아하니 약간 부족해보인다. 덜떨어졌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그런 이미지라 뭐랄까, 기분이 나쁘다기 보다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느낌?
"오구를 좋아하시나 봐요?"
동국이 슥 물어보자, 그녀는 동국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경기장만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엄청 좋아한다~ 그래서 자주 경기장에 놀러온다~ 너도 오구 좋아 하나~?"
"네, 저도 오구를 좋아하지요. 특히 여자 오구를 좋아합니다."
동국의 말에 그제서야 그녀는 경기장에서 시선을 때고 동국을 바라보았다.
"정말이냐~! 이럴수가~! 우리 친구하자!"
응? 벌써? 너무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거 아닌가? 뭔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바보 같았다.
'내가 누군 줄 알고 친구를 하재?'
"그래요, 이제부터 친구 해요"
"우와~! 나도 이제 친구가 생겼다~!"
그녀는 아싸~ 거리며 두 손으로 화이팅 자세를 취했다. 음... 그렇게 좋아할 일인가? 아무래도 그녀는 친구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저기, 그러면 이제 친구니까 반말해도 되지?"
"응! 너도 반말해~"
동국이 조심스레 묻자 그녀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근데, 너 이름이 뭐니?"
"내 이름? 그러고 보니 자기 소개도 안했네~? 내 이름은 앤서니, 나이는 20살이야. 이제 성인이지~ 사는 곳은 남주시 마동읍 석현리 주공아파트, 101동 1104호야"
앤서니,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나이를 표시하며 자기 소개를 하였다.
흠...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소개할 줄은 몰랐는데.
앤서니는 그렇게 자기 소개를 하고 난 다음에 날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응? 나도 해야 하나?'
"너도 자기소개 해야지~ 우리 할머니가 상대방이 인사를 하면 자기도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어~ 그러니 내가 자기 소개를 했으니, 너도 자기 소개 해~"
할머니 분이 아주 제대로 가르치셨군...
"그래, 알았어. 내 이름은 동국이야. 나이는 25살이고..."
"사는 곳은~?"
"음... 사는 곳은 남주시 수석면 입수리에 위치한 발키리 숙소에서 살아"
사는 곳까지는 굳이 말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앤서니가 묻는 바람에 대답했다.
앤서니는 내가 사는 곳을 말해주자 갑자기 자기 혼자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그래? 무슨 일 있어?"
"아! 맞아! 발키리! 이번에 새로 생긴 오구팀이잖아~! 근데 거기서 니가 왜 살아~?"
오옷.. 그래도 우리 팀을 아는 구만.
동국은 앤서니에게 자신이 발키리 팀 감독이라고 알려주었다.
"우와~! 진짜~! 나 거기 가보고 싶어~!! 나 거기 가보고 싶었는데~ 거기 너무 멀어서 못갔어... 버스 기사 아저씨가 거기까지 안간데... 그래서 나 슬펐어..."
흠... 이런 미모의 여성이 거길 가보고 싶어 한다니... 좀 더 친해질 필요가 있겠어.
"그래? 흠... 그래, 좋아. 내가 거기 데려다 줄게"
동국이 인심 썼다는 듯 그녀에게 말하자 앤서니는 펄쩍 뛰며 좋아했다.
‘오우야, 저 움직임 좀 봐! 엄청난 출렁임이다.’
주위 사람들도 다 쳐다보는 것 같아 동국은 앤서니를 진정시켰다.
"그나저나 앤서니, 혹시 오구를 직접 해보고 싶은 생각 없어?"
"해보고 싶어~ 근데 집에 공이 없어서 한번도 못 해봤어~! 나도 공 던지고 싶은데~"
"그럼 거기 가서 내가 공 던질 수 있게 해줄게"
"진짜~! 우와~! 고마워~!!"
앤서니가 너무나 고마운 나머지 동국을 꽉 안았다.
‘아아. 이 풍만함. 마치 빵빵한 쿠션이 있는 것 같은 포근함.’
동국은 흐뭇해하며 앤서니를 같이 안았다.
"하하, 뭘 그렇게까지..."
"나 진짜 공 던지고 싶었는데~ 너무 너무 좋아~!!"
"그래~?"
동국은 잠시 이 순진한 아가씨를 낚는 게 양심에 찔렸지만, 이내 자신이 잘 해주면 된다고 생각하고선 앤서니에게 말했다.
"그렇게 고마우면 나중에 내 부탁 1개만 들어줘"
"응, 응! 알았어~"
앤서니는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기쁨에 별 생각도 안하고 동국의 부탁을 받아드리기로 했다.
동국은 석현과 마우리 간의 경기를 지켜보며 앤서니에게 여러가지를 물어보았고, 앤서니는 신나해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펼쳤다.
앤서니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살아 왔다. 부모를 어떻게 잃었는지는 자신도 잘 모르는 것 같았고, 그녀의 할머니도 앤서니에게 자세히 알려주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할머니와 둘이서 낡은 아파트에서 생활해 왔는데, 대부분의 집안 일은 할머니가 도맡아 해왔다고 한다.
하긴 동국이 봤을 때도 앤서니는 아이 같은 면이 있어, 어느 날 집안을 다 태워 먹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학교는 중학교까지 대안 학교 비슷한 걸 다녔었는데, 고등학교는 안 갔다고 한다. 앤서니는 학교를 안 가는 거에 아무 생각이 없었고, 할머니 말에 따르면 집안에 돈이 없어서 못 보낸다고 하셨단다.
그러던 중 며칠 전에 평소 앓고 지내던 지병이 갑자기 악화되 쓰러지셨다고 한다. 앤서니는 깜짝 놀라 119에 울면서 전화를 했고, 구급차가 서둘러 도착해 할머니를 응급실로 모셨지만, 끝내 돌아가셨다고 한다.
앤서니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하며 다시 한번 슬픔이 북받쳐오는지 울음을 터트렸고, 동국은 그녀를 껴안고선 달랬다.
"그래, 그래. 착하지~ 할머니도 너가 울고 슬퍼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실꺼야"
"흐윽... 왜애~?"
"그야, 앤서니가 슬프면 할머니도 슬퍼지지 않겠어?"
"흑..! 그러쿠나... 알았어, 나도 이제 슬퍼지지 않을꺼야"
"그래, 그러니 이제 그만 뚝! 하자"
"응, 뚝! 훌쩍~"
앤서니는 울음을 그치고, 눈가의 눈물을 닦아냈다.
그나저나 앤서니는 하나 뿐인 보호자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거지?
"앤서니, 그래서 지금을 어떻게 살고 있어?"
동국이 그녀에게 묻자 앤서니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으응~ 일단 의사 선생님이 할머니 장례식이란 걸 치러야 한다고 해서 치뤘는데, 돈을 받아야 된데. 근데 나 지금 돈이 만원밖에 없어서 못 내고 있어..."
그러면서 꼬깃꼬깃 구겨진 만원 짜리 지폐를 보여 주는 앤서니. 그 모습에 동국은 그녀를 책임지기로 했다.
"그럼 일단 너네 집부터 가자. 거기서 돈이 있나 찾아보는거야"
"응~? 그러면 너네 오구장 못가는거야~? 공 못 던지는거야~? 그런거야~? 흑...!"
앤서니는 할머니 장례식 비용보다 오구장에서 공을 던지는게 더 중요한걸까?
아마 그 중요성을 잘 모르는거겠지. 몸은 이렇게 20살, 그 이상으로 자랐으면서 정신은 몇 분전에 만난 동국이 봐도 상당히 어려 보였다.
진짜 별 일 없이 잘 자란 거 같아 다행이다. 아니, 오늘 이렇게 만나지 못했다면, 앤서니는 아마 할머니 없이 홀로 힘겹게 살아야 했었을것이다.
"아니야, 내가 약속한다고 했잖아. 그니까 뚝!"
"진짜지~?"
"응, 약속~!"
그녀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나서야 다시금 방긋 웃었다.
석현 팀에는 3명의 선수가 있다.
투수 1명에 타자 2명인데, 투수는 한주 팀과는 다르게 제구파 투수이다.
그녀의 이름은 루밍으로 구속은 AI선수보다도 약간 떨어지지만 제구가 정교해 선수가 원하는 위치로 거의 던질 수 있다고 한다.
던질 수 있는 구종으로는 포심과 슬라이더, 커브로 제구 뿐만이 아니라 타자와의 머리 싸움에도 능해 강속구 투수와는 다른 의미로 삼진을 잘 잡아 낸다고 한다.
작년 기록은 15승 5패, 1.38의 평균 자책점으로 작년 최다 승과 최저 자책점을 기록한 선수이다.
승리 부분이야 석현 팀에 실제 투수가 1명밖에 없으니 한주 팀의 투수들이 승 수를 나눠 가진 것에 비해 유리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자책점 부분을 보면 그녀가 명실상부 2부 리그 최강자라는 걸 알 수 있다.
평균 자책점이 1점대인 선수는 그녀 혼자이기 때문.
그녀는 그런 자신의 명성과 실력에 걸맞게 오늘 경기에서도 맹 활약을 하고 있다. 1, 2번 타자는 맞춰 잡는 피칭으로 몇 구 안 던지고 아웃을 잡더니 마우리 팀의 3번 타자인 아줌마에게는 삼구 삼진으로 이닝을 끝냈다.
아줌마는 직구를 연신 노리는 스윙을 했으나, 루밍은 계속 변화구를 던지며 헛스윙을 유도해 냈다.
참고로 마우리 팀의 아줌마의 이름은 신도연, 작년 성적은 타율 0.254에 출루율 0.301, 장타율 0.421로 그렇게 좋은 성적은 아니었다.
석현 팀의 공격 때 선두 타자가 출루에 성공하고 다음 타자가 들어섰다.
2루수인 유현예로 지난 시즌 3할에 약간 못 미치는 0.298의 타율, 0.352의 출루율, 0.487의 장타율을 기록, 홈런 1개를 쳐낸 거포다.
그녀는 바로 장타를 때려 내 1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드리고, 자신은 2루까지 갔다.
시원한 장타로 선취점을 획득하자 홈 팀 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고, 동국 옆에 앉자 있던 앤서니 역시 일어나서 마구 박수를 쳐댔다.
"석현 팀 팬이야?"
"응~? 아니, 그건 아닌데에, 사람들이 좋아하니깐, 나도 좋아져~"
앤서니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보러 오구장을 찾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이 기뻐하면 자신도 기뻐하고, 아쉬워 하면 자신도 아쉬워 했으니 말이다.
'흠... 진짜 특이한 아이야...'
다음 타자는 석현 팀의 또 다른 거포, 1루수 이영애다.
이영애는 방금 전 2루타를 친 유현예보다 더 뛰어난 타자로 작년 0.348의 타율, 0.421의 출루율, 0.543의 장타율을 기록했고, 홈런도 3개를 때려냈다.
한주 팀의 이호련이 1방에 좀 더 치중 했다면, 이영애는 단타와 장타, 둘 다 잘 치는 그런 유형의 선수이다.
이영애는 투수가 던진 공을 가볍게 툭 밀었고, 공은 우익수의 키를 살짝 넘기는 안타가 되었다. 비록 2루까지 가진 못했지만, 상황에 맞게 타격 함으로서 손쉽게 타점을 올린 것 이었다.
결국 이날 경기에서 석현 팀은 마우리 팀에 완승을 거두었다. 최종 스코어 0-3.
루밍은 탈삼진 4개를 잡으며 완봉승을 거두었고, 유현예는 4타수 2안타에 1개의 장타, 1득점을 올렸다. 이영애는 3타수 2안타에 1볼넷, 1타점을 올리며 활약했다.
반면에 마우리 팀의 타자 신도연은 4타수 1안타에 삼진만 2개 당하면서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아니, 작년 기록을 감안했을 때 비슷한 활약을 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