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13회 벨리나 어머니와의 만남
상대팀 선발 투수인 강시리는 저번 경기와는 다르게 2회까지 발키리의 타선을 그럭저럭 잘 틀어막고 있었다.
선두 타자가 2루수쪽으로 땅볼을 쳤을 때도 편안하게 타자가 아웃 되는 광경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2루수는 평범한 땅볼을 더듬었고, 공을 황급히 던졌을 때는 이미 타자 주자가 1루 베이스를 밟은 뒤였다.
"하... 그래, 상관 없어. 1회때도 선두 타자가 출루했지만, 잘 막았잖아... 이번에도 그럴꺼야"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2루수 홀로그램을 보며 시리는 짜증이 치솟았지만, 짜증을 내봤자 자신만 우스워질뿐이다.
"이번에도 병살타를 노리는거야..."
한편 동국은 1회때처럼 병살타가 될 위험을 줄이고자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했다. 타자는 번트를 성공시켰고, 비록 1루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하고 투수에게 태그 되 아웃 되었지만 1루 주자는 무사히 2루에 안착했다.
다음 타자들은 안타를 쳤던 5번과 지아였기에 득점을 할 수 있을 꺼라 동국은 기대했다.
"최소한 지아가 쳐주겠지... 그렇지?"
동국이 지아를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지아는 배트를 휘두르며 대답했다.
"내가 진짜 안타 치고 오면 감독 오빠 궁둥이를 차버릴꺼야"
"크크, 그랬으면 좋겠다."
동국은 자신의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웃었고, 지아는 그 모습을 짜증 나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강시리는 초구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던져 간을 보기로 하였다.
"볼~"
그러나 타자는 꼼짝을 하지 않았고, 이어진 직구에는 배트를 내밀었으나 뒤로 가는 파울이 되었다.
"타자가 직구를 노리나?"
시리는 이번엔 낮은 쪽으로 패스트볼을 던졌다. 하지만 타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시리는 인상을 썼다.
"다시 한번.."
카운트를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해 강속구를 날렸지만 제구가 안되며 존을 벗어났고, 3볼 1스트라이크가 되었다.
포수가 던진 공을 받은 뒤 시리는 정면에 보이는 2루 주자를 바라보며 다음 공으로 뭘 던질지 고민했다.
'또 다시 패스트볼? 그러나 제구가 안되면 어쩌지? 변화구? 에이, 그냥 나 자신을 믿자'
시리는 또 다시 전력으로 공을 뿌렸고, 다행이 이번엔 존 안으로 들어왔다.
풀카운트 상황, 계속해서 직구만 던졌으니, 이번엔 변화구로 허를 찌르고자 한 시리. 그러나 제구가 안되며 결국 볼넷을 내주고야 말았다.
"이런... 여기서 볼넷이라니... 최악이군"
다음 타자는 발키리 팀의 유일한 실제 선수인 지아였다.
한주 팀 덕 아웃에서 타임을 요청하고선,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했다.
"시리야, 여기서 볼넷을 내주면 어떻해?"
"죄송합니다."
"내가 봤을 때 타자가 너의 강속구를 못쳤어. 근데 너가 도망다닌거지. 전력으로 승부하라고, 알았어?"
"넷, 알겠습니다."
감독은 시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우리는 이번 경기는 꼭 투수 교체 없이 마무리 지어야 된다. 알제? 너가 많이 힘들겠지만, 맞춰 잡는다고 생각하고 던져"
감독은 그 말만 남기고서 덕 아웃으로 돌아갔고, 심판이 경기 재개를 선언했다.
투수와 감독이 마운드에서 쑥덕거리던 걸 방망이를 휘두르며 지켜보던 지아가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 투수는 강속구가 장점이지. 근데 제구가 안돼서 최소 1번은 카운트를 잡기 위해 변화구를 던질거다. 그걸 노리자'
지아는 변화구의 궤적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공을 기달렸다.
초구, 빠른 볼이 날라왔으나 약간 높았다.
다음 공에서는 직구가 존을 통과했으나 지아는 가만히 있었다.
제 3구, 투수도 지아가 변화구를 노린다는 걸 얼추 예상했는지 다시 한번 빠른 공을 던졌으나, 원바운드 되었다. 포수가 황급히 블로킹을 해 겨우 공이 뒤로 빠지는 걸 막았다.
만약 막지 못했다면 어이없게 실점을 했을터. 포수에게 공을 건네받는 투수의 얼굴이 창백하다.
'지금이다'
지아는 지금 타이밍이 투수가 변화구를 던질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선, 배트를 꽉 쥐었다.
그리고, 높은 코스로 날아오던 공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고, 지아는 벼락같이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공은 그대로 배트 중앙에 맞았고, 빠른 속도로 저 멀리 외야로 날라갔다. 공의 궤적을 보고 전진 배치 되어 있던 외야수들이 황급히 뒤로 향했지만 지아와 같은 호수비는 보여 주지 못했고, 그대로 장타가 되었다.
2루 주자는 물론 1루 주자도 모두 홈으로 들어왔고, 지아 역시 여유 있게 2루에 안착했다.
0-0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동국은 맞는 순간 장타임을 직감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했고, 공이 외야 깊숙한 곳에 떨어지자 다시 한번 환호했다.
지아가 2루에서 양 손을 번쩍 들고 기뻐하자 동국 역시 두 손을 흔들면서 엉덩이를 씰룩댔다.
지아는 그 광경을 보고 부끄러워 얼굴을 가렸으나, 동국이 엉덩이를 씰룩댄 의미를 모르는 시리는 그 행동이 자신을 놀리는 거라 생각했다.
"저, 썩을 놈이 얼굴만 반반하면 다야? 내가 본때를 보여주겠어"
동국의 도발 아닌 도발에 화가 난 시리는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속구만 던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다음 타자는 시리의 속구를 때려 비록 아웃 되긴 했지만, 2루 주자를 불러들이기에는 충분했다.
점수는 3대 0이 되었다.
"그래, 이제 아웃 카운트 1개만 잡으면 된다..."
시리는 잘 안 풀리는 경기에 화가 나는 마음을 추스르며 중얼거렸다.
그 후 몸에 맞는 공을 내주며 다시 위기에 몰리긴 했으나, 침착하게 공을 뿌려 다음 타자를 우익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이닝을 끝맞췄다.
그 후 경기는 빠르게 진행됬다. 4회 초 5번 타자가 볼넷으로 출루하긴 했으나 다음 타자였던 지아가 병살타를 치며 기회를 날렸고, 4회 말에 선두 타자로 나선 이호련이 3번째 안타를 쳤으나 득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최종 스코어 3-0으로 발키리 팀이 이겨 총 2승 2무의 성적을 내고 있다.
경기가 끝나고 동국은 벨리나에게 다가갔다.
"어땠나요, 이번 경기?"
"후~ 네, 확실히 감독님의 특성은 인정할만 하네요"
벨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어 말했다.
"혹시, 저희 어머니를 만나 주실 수 있나요?"
그녀의 말에 동국은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이죠. 아마 결심이 서신 것 같군요"
"예, 그러면 나중에 약속 시간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벨리나는 인사를 하고선 경기장을 떠났다.
부모님과의 약속을 잡는 걸 보니 이제 거의 다 넘어온 것 같았다. 이번 경기의 승리와 더불어 또 하나의 기분 좋은 일에 동국은 콧노래를 불었다.
물론 지아가 엉덩이를 대라고 말하기 전까지 말이다. 사람들이 떠난 경기장에 외마디 비명만이 들렸다...
주말에 동국은 벨리나의 어머니와 만나기로 하였다. 약속 장소는 부유한 동네로 유명한 곳에 위치한 카페였다.
카페에 들어가 주위를 살펴보니 창가 쪽에 앉자 있는 벨리나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약간 보랏빛의 머릿결을 지닌 미녀가 있었다.
'설마 옆에 있는 미녀가 어머니? 닮은거라곤 미녀라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은데...?'
가까이 가서 보니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일단 머리 색부터 가 벨리나는 금발인데 어머니로 추정되는 미녀는 보라색이다. 나이도 3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벨리나씨?"
"아, 어서오세요"
동국이 가까이 가자 벨리나와 옆의 미녀가 자리에 일어나서 반겼다.
"옆에 계신 분께서 어머니십니까?"
"아, 네. 맞아요. 저희 어머니세요"
진짜로 어머니가 맞다니... 벨리나가 졸업반 대학생이란 걸 감안하면 최소 40대 후반이어야 되는데, 저런 동안 외모라니.
동국의 불신 어린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벨리나의 어머니가 자신을 소개했다.
"반가워요. 벨리나의 새어머니인 비올렛이라고 해요"
아, 새어머니... 확실히 벨리나의 친어머니라고 생각하기엔 별로 닮지도 않았고, 너무 젊어보였다. 아무래도 벨리나의 친부가 새 장가를 간 모양이었다.
비올렛은 동국에게 명함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벨벳 그룹의 회장이기도 하죠"
그녀의 말에 동국은 깜짝 놀랐다.
벨벳 그룹. 대기업 하면 떠오르는 기업 중 손에 꼽히는 기업으로 대표적인 문어발 기업이다. 식품, 유통, 전자, 의류, 가전 등등 안 하는 사업이 없을정도.
오죽하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분야에는 어김없이 벨벳의 계열사가 있을 정도라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서로의 인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난 우리 얘가 오구팀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단 소식을 듣고는 상당히 놀랐답니다. 내가 알기론 우리 얘가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거든요"
그녀가 느긋한 말투로 말을 했다. 그러면서 상체를 약간 숙이는데, 약간 파인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 가슴골이 드러나 보였다.
그녀의 가슴골은 아마 시선을 잡아 당기는 묘한 힘이 있었다. 가슴이 상당히 커서 그런지 가슴골이 마리아나 해구처럼 깊었다.
동국의 눈길이 해구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벨리나가 그녀의 엄마에게 약간 투정 섞인 말을 하며 동국의 눈길을 구해냈다.
"어머니, 제가 그렇게 못하진 않았답니다. 제 스크류 볼은 최강이었다구요"
음.. 벨리나의 말투는 투정이라기 보단 싸늘해서 그녀의 어머니에게 따지는 말투였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 비올렛은 이런 벨리나의 말투에 면역이 되어 있는지, 아니면 그냥 신경 쓰지 않는지 느긋한 말투로 대꾸했다.
"으흥~? 그랬니~? 물론 너의 스크류 볼이 피안타율이 극단적으로 낮긴 하지만 말이다, 너의 나머지 구종들은 피안타율이 어마 어마 하지 않니~? 만약 타자가 그 정도의 타율을 기록했다면 벌써 지역 리그 정도는 데뷔를 했을거야"
저렇게 느긋한 말투와 표정으로 수양딸을 팩트로 후려치다니! 벨리나의 표정이 더욱 더 싸늘해지는걸 보며 동국은 괜히 안절부절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