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12회 새로운 투수 영입 준비
"그런데 공부에 비해 오구 실력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
동국의 말이 끝나자마자 벨리나는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그녀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진다. 안타를 맞았다는 게 기분 나쁜지 다음 타자에게는 2스트라이크를 잡아 두고는 바로 스크류볼을 던졌다.
커브와 반대되는 궤적에 타자의 방망이는 헛돌았고, 그대로 삼진 아웃되었다.
실제로 보는 스크류볼의 궤적은 상당히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인지 여기 저기서 감탄사가 터져나왔고, 지아와 동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와... 저게 스크류볼...! 진짜 특이하다..."
"부상 위험 때문에 던지는 사람도 없어서 더욱 특이하고 희소성이 있지. 아마 리그 전체를 봐도 너클볼 던지는 투수는 있어도 스크류볼을 던지는 투수는 없을껄?"
지아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부상 위험 때문에 던지면 안되는거 아닌가? 만약에 입단하면 스크류 볼 못 던지게 해야 되는거 아니야, 오빠?"
동국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음흉하게 웃었다.
"지아야, 내 특성이 뭐지?"
지아의 눈이 커졌다.
"서, 설마...!"
"그래, 내 특훈이면 부상에 걸릴 위험이 거의 없지. 음하하!"
득의양양하게 웃자 지아가 동국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이 변태! 결국 외모 보고 뽑는다는 거잖아!"
동국과 지아가 티격태격하는 동안 벨리나는 다음 타자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서 쓸쓸하게 마운드를 내려갔다.
경기가 끝나고 벨리나는 자신의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오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동국과 지아다.
"안녕하세요, 벨리나 선수?"
"음? 누구신지...?"
"아, 저는 2부 리그 팀, 발키리의 감독인 동국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저희 팀 선수인 지아구요"
"안녕하세요, 언니!"
"아, 네... 근데 무슨 일로...?"
벨리나의 물음에 동국이 대답했다.
"영입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일단 어디 앉아서 이야기 하면 안될까요? 하하"
벨리나는 그들을 근처 정자로 안내했다. 정자로 가면서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자신은 지금 오구와 학업 사이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냥 잘하는 학업에 충실해 대학원을 가면 석사와 박사 과정은 수월하게 통과할 자신이 있었다.
오구는 그와는 반대로 그렇게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셋이 정자 테두리 안에 있는 벤치에 앉자 동국은 마저 말을 이었다.
"저희 발키리 팀에서는 벨리나 씨를 투수로 영입하고 싶습니다."
"제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건 알고 계시죠?"
"네, 방금 전에 경기도 봤는걸요"
"그런데도 저를 영입하려 한다는건가요?"
약간의 자조적인 미소를 띄는 벨리나를 바라보며 동국이 자신 있게 말했다.
"벨리나 선수에게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바로 스크류 볼이죠"
동국의 말에 벨리나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 스크류볼이요? 그게 팔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건 알고 계시죠? 프로 구단에서 스크류볼을 말리긴 커녕 권장하다뇨? 허, 참, 어이가 없네요"
"그럼,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스크류볼은 왜 던집니까?"
흥분한 벨리나는 이어진 동국의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스크류볼의 위험성을 잘 아는 그녀가 계속해서 스크류볼을 던지는 이유? 그거야 타자와의 승부에서 이기고 싶기 때문이다.
스크류볼을 던지지 않고선 이길 수 없어서, 그래서 그녀는 부상 위험과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아가며 계속해서 스크류볼을 던지는것이었다.
"저는, 벨리나 씨가 스크류볼을 던져도 부상을 안 당하게 할 수 있습니다"
"네에~?"
동국의 말에 당황한 벨리나가 반문하자, 동국은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다.
"또한 벨리나 씨의 능력을 향상 시킬 수 있죠"
동국의 말에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순간에 스친 희망의 반짝임을 동국은 놓치지 않았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흥분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그녀가 동국의 말에 불신을 드러냈다.
"흠... 그게 어떻게 가능한거죠?"
그녀의 의심에 동국은 자신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바로 제 특성 덕분이죠"
"특성이요?"
"네, 제 특성이요. 제 특성은 바로 섹스를 한 여성의 능력을 향상시킵니다"
동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벨리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래서, 지금 그 말은 제 처녀를 희생하란 말인가요!!"
'오! 처녀였어? 럭키!'
속 마음과는 다르게 동국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긴 하지만 제 말은 사실입니다. 바로 옆에 있는 지아가 그 증인이죠"
동국은 지아의 고교 성적과 지금의 성적을 비교해 보여주며 자신의 특성을 입증했다. 옆에 있던 지아 역시 그 효과를 증언하며 동국을 도왔다.
"하... 잠깐만요, 상황 좀 정리하구요..."
둘의 설명을 듣다가 손을 들어 설명을 중단 시킨 그녀는 이 상황이 이해가 잘 안 가는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니깐, 감독님 특성이 여성과의 성교...를 통해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거죠? 부상도 회복시키고?"
"그렇죠. 그리고 아마 벨리나 선수의 팔을 강화 시켜 아예 부상의 가능성을 없앨겁니다."
동국의 확신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휴... 저에게 시간을 좀 주세요. 생각 좀 해볼께요"
자리에서 일어난 동국이 그녀에게 악수를 청하며 대답했다.
"충분히 생각해보시고 연락주세요"
그녀가 떠나고 나서 잠시후, 지아가 말했다.
"과연 저 언니가 우리 팀에 올까?"
"글세, 아마 오지 않을까?"
동국의 예측에 지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엥? 그 자신감은 뭐야? 팀에 오면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랑 섹스를 해야 된다는데, 어느 미친년이 그래?"
그 말에 동국이 지아를 쳐다보자 얼굴이 빨개졌다.
"나, 난 좋아하고 나서 한거잖아! 선후 관계가 바뀌었지!"
"흐흐, 그렇구나..? 우리 지아가 이 오빨 많이 좋아하는구나"
동국은 부끄러워 하는 지아를 끌어안았다.
"이왕 나온 김에 여기저기 구경이나 가자"
"그, 그럴까? 히히~"
*
*
*
목요일, 한주 오구단과의 원정 2차전이 열리던 날, 동국은 경기가 시작하기 전 관중석을 무심코 바라보다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어, 벨리나 씨 아냐? 벨리나 씨~!"
동국이 손을 크게 흔들자 벨리나는 고개를 까딱 하며 인사했다.
"한번 경기를 관람하러 오셨나봐요?"
가까이 다가가며 묻자 벨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과연 발키리 팀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가지고 있나 확인하러 왔습니다"
차갑게 말하는 벨리나를 보며 동국은 장담했다.
"비록 저희 팀이 신생 팀이지만 그 어느 팀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심판의 신호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1회에 양 팀에서 지아와 이호련이 안타를 쳤지만 병살타와 삼진으로 별다른 소득이 없이 끝이 났다.
"흐흠... 벨리나에게 우리 팀의 경쟁력을 보여 준다고 했는데..."
"음? 벨리나 언니가 왔어요? 어디?"
"저쪽 관중석에"
동국이 벨리나가 있는 방향을 가르켰다.
"어머, 진짜네?"
"그래, 내가 보니깐 벨리나가 고민 하고 있는거 같더라. 그러니 오늘은 힘 좀 내봐, 오늘 잘하면 내가 저녁밥 맛있는 걸로 해줄게"
동국의 말에 지아가 고개를 저었다.
"에이, 저녁밥은 좀 약하고, 음... 주말에 어디 놀러가요!"
"아니, 저번에 놀러갔잖아?"
"그건 스카우트하러 간거고. 하여튼 알았죠?"
"그래, 알았어. 3안타라도 쳐 보라고"
둘이 떠드는 사이, 선두 타자가 아웃 되고 다음 타자가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쳤다.
"자, 지아야. 장타 부탁한다"
"옛썰~!"
발걸음을 당당히 하고 타석에 들어서는 지아.
그러나 초구 패스트볼을 쳤다가 빗 맞아 투수 뜬공으로 허무하게 아웃되었다.
동국이 슬그머니 들어오는 지아를 째려보았다.
"아, 뭐! 내가 못 치고 싶어서 못쳤나!"
지아의 적반하장에 동국은 한숨만 내쉬었다.
"에휴~"
2회 말, 2아웃 상황에서 2번 타자가 8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타석에는 상대 팀 3번타자 이호련. 1회 말에도 안타를 치며 저번과는 다르다는 걸 결과로 보여줬다.
이번 타석에서도 이호련은 비장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딱!"
호련은 2구째 들어오는 직구를 그대로 때렸다. 공은 총알같이 날아갔으나 전진 배치 된 우익수 정면이었다.
"아, 이런!"
그러나 타구가 너무 빨라서 인지 우익수는 제대로 포구하지 못했고, 공을 더듬는 사이 이호련은 1루를 밟았다.
2사, 만루 상황.
다음 타자가 좌측으로 가는 큼지막한 타구를 쳤다. 공은 외야 깊숙이 날아갔고, 전진 배치 해 있던 지아가 잡기엔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이야앗~!"
지아는 빠른 발로 공을 쫓아가더니 기어이 자신을 넘어가는 공을 몸을 날려 잡아냈다.
관중석에서는 지아의 호수비에 박수갈채가 터져나왔고, 상대 팀에서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벨리나 역시 지아의 호수비에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런 호수비라니... 고교 시절엔 이렇게 잘하지 않았다는데..."
벨리나는 이 경기를 보기 전에 지아의 고교 시절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때의 지아는 이런 호수비는 커녕 일반적이 수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를 이렇게 발전시켰으니 확실히 동국의 특성은 진짜였다.
"과연 내 스크류볼도 강화 시킬 수 있을까...?"
남들과는 다른 특별함. 벨리나는 그런 특별함, 독보적인 실력을 원했기에 스크류볼을 익혔다. 어느 정도 적성에 맞는지 빠른 속도로 스크류볼을 익혀나갔고, 실전에서도 상당한 위력을 보였다.
그러나 던지면 던질수록 느껴지는 팔의 불편함. 벨리나는 오구 실력과 자신의 팔 건강 사이에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 그 고민의 해결책을 찾은 것 같다는 희망이 보였다. 벨리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스리며 경기를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