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세나의 죗값
강한이 다가오자 책상에 다리를 꼰 채 담배를 피우고 있던 박 형사가 황급히 다리를 내리며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서 껐다. 그 모습이 군기가 바짝든 이병 못지않았다.
"아, 다 끝나셨습니까. 일찍 끝났네요."
"네. 얘기해보니 제 돈이 탐나서 그랬다는군요. 하하. 아마 형사님께도 그렇게 말할 겁니다."
"그렇습니까? 저런 미친년을 봤나, 에라이. 그래도실토를 해서 다행이네요. 아니면 우리나라 정서상 여성이 성적 문제로 신고를 하면 일이 커지거든요. 요즘 미투운동이다 뭐다해서 거짓말만으로도 남자인생 십창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강한이 이를 곱씹었다. 전생에서도 그랬다. 거짓미투였음에도 그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여성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었다. 울컥 화가 났다. 요즘들어 감정기복이 조금 심해진 것 같기도 했다.
"뭐.. 아, 그리고.. 정신이 온전치 않아보이던데."
"안 그래도 헛소리를 자꾸 해서 근처 정신병원에 입원기록을 다 뒤져봤는데, 딱히 없더라고요. 뭐.. 저 여자 신원도 불분명하니 기록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리고 정신질환으로 판명나면 작가님께서 무고죄로 기소하셔도 딱히 처벌을하긴 힘들 겁니다."
"뭐, 고소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이만."
몸을 돌려 경찰서를 빠져나오는 그의 입가엔 분노가 사라지고 만연한 미소가 걸렸다. 결국 수아는 미친 여자로 간주되어 정신병원에 갇혀버려 평생을 그곳에서 썩게 될 것이다. 완벽한 복수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살아갈 것이다.
'그래, 이게 복수였지.'
그리고 그녀의 죄목은 결국 미래에 자신이 저지른 죄와 똑같이 되었다. '무고죄'. 무고죄로 자신을 엿 먹이더니, 이젠 그녀가 무고죄로 엿 먹게 된 것이다. 물론 그가 수아를 고소해야만 '인실좆'이 되겠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기에 스스로 만족하는 것으로 끝내기로 했다.
강한은 이제껏 저지른 자신의 복수 아닌 복수를 반성하며 집으로 향했다. 차에 올라 라디오를 틀자 인아에 대한 토론이 늦은 밤임에도 작열하는 태양처럼 뜨겁게 펼쳐지고 있었다.
[ 결국 성도착증 아버지에 성도착증 딸이 되어버린 거죠. 그녀를 응원했던 수많은 지지자들이 적대세력으로 변해 그녀를 매도하고 헐뜯기 바쁩니다. 물론 공직자가 공공장소에서 음란한 행위를 한 것은 천번이고 중죄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
[ 우선 기자회견으로 공식입장을 표명한다고 하니까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만약 영상 속 주인공이 박인아 시장이 아니라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
[ 이미 영상전문가들도 조작의 흔적이 없다고 했잖습니까. 근데 입장표명이 무슨 상관이죠? ]
[ 혹시 압니까. 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해서 그런 영상이 나왔을지요? ]
[ 에헤이. 아마추어 같이 왜 그럽니까? 동영상 안 보셨나봐요? 안 보셨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영상 보신 분이라면 박인아 시장의 얼굴이 협박에 의해 그리 된 것인지 아닌지 잘 아실 겁니다. ]
강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오랜만에 연애감정을 일깨워주었던 여성이었기에 통쾌함과 더불어 씁쓸함이 밀려온 탓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감정을 느껴봐야 뭐하겠는가. 이미 청와대 홈페이지엔 박인아 시장을 끌어내리라는 청원이 20만을 돌파해 정부가 입장을 내놓아야하는 사단까지 왔는데 말이다.
자신이 자초한 일이다.
그리고 약아빠진 국회의원의 처참한 말로이기도 하고. 자신을 이용한 대가를 이정도로 퉁치는 것으로 그녀는 고마워해야했다. 적어도 수아처럼 강제로 미치게 만들지는 않았으니까. 만약 그녀가 얼굴에 박격포도 견딜만한 철판을 깔고 있다면 어딘가에 은신해서 잘 살아갈 터다.
물론 박격포를 견딜만한 철판이 있겠냐만은.
내일이면 이뤄질 기자회견에서마저 그녀가 끈적한 조수를 기자들을 향해 물대포마냥 쏘아버리면 모든 상황은 종료될 것이다. 그녀는 피폐해져 정신이 나가버리게 될 것이고, 뭐.. 인연이 있다면 수아와 같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태의 심각성과 이슈성으로 보아선 아마도 현생을 이어가긴 힘들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전생보다 더 끔찍한 치욕과 수치 속에서 자멸할 테니까. 아니면 강인한 정신력으로 어딘가에 숨어버리던지. 이래나 저래나, 그녀는 온전한 삶을 이어가긴 힘들 터다.
"그러게 심보를 착하게 썼어야지. 쯧."
그는 혀를 한번 차는 것으로 인아에 대한 생각을 접어버리곤 안전감옥으로 향했다. 이제 생각해보니 남은 육노예라곤 몇 안 되는 것 같다.
***
-두근두근.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침을 삼키는 소리는 거실을 울릴 만큼 컸다. 세나가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관문. 평소라면 안락한 이곳과 모진 바깥세상을 구분짓는 문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문은 바깥세상과의 유일한 연결통로였다.
"어, 어떡하지.."
세나가 안절부절해했다.
지하실에 갇혀 있다 올라오니 내측에 설치된 도어락이 뜯겨있는 상태였다. 아마 형사들의 방문에 대비해 뜯은 듯했는데 다시 설치하는걸 깜빡한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엄청난 갈등에 휩싸여있었다. 일생일대의 갈등이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주인님 몰래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옳은 길일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곳을 벗어난다한들 철조망을 넘기 위한 방책이 없었고, 혹여 어설프게 벗어났다가 주인님께 걸리는 날에는 수아의 꼴을 절대 면치 못할 것이다.
20여분을 그렇게 세나는 고민에 빠져 거실을 배회하고 있었다. 답이 서지 않았다. 수아처럼 철조망을 넘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냥 이곳에서 사는게 낫지 않을까? 주인님께 다시 이쁨 받을 수도…'
세나의 고개가 가로젖혔다.
'그치만.. 오늘 집을 나서는 주인님의 눈빛도 싸늘했어..'
불안했다.
주인님이 이곳에 자신을 버리고 가버리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곳에 갇혀 수아처럼 폭행당하는 것은 아닌지.
확실한 것은 주인님은 달라졌다. 그녀가 느끼기에 강한은 자신을 대하는 태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비단 자신이 그를 공격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사람 자체가 다른 사람 같달까.
그렇기에 그녀는 30여분만에 결단을 내렸다.
-띠링.
**
".."
안전감옥으로 들어선 강한은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 말없이 거실을 둘러보았다. 신발도 벗지 않은 상태였다. 이상했다. 이곳에 들어설 때마다 느꼈던 감각과 지금의 감각은 달랐다. 고요했다.
바깥의 풀벌레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그는 직감했다.
세나가 도망간 것이라고.
고개를 돌려 현관문을 쳐다보자 피스구멍이 그대로 드러나있었다.그녀의 신발 또한 없어져 있었다. 피식, 미소를 지었다.
"…결국 너도 여기까지구나."
힘없이 내뱉은 혼잣말엔 씁쓸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는 떼어둔 내측 도어락을 일부러 달지 않았다. 세나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다. 애초에 마인드컨트롤로 그녀를 세뇌시킬 생각은 없었다. 스스로 자신이 육노예이고, 이곳이 평생 지내야할 집이라 깨닫기를 바랬다. 그렇기에 도어락을 마치 실수인 것처럼 다시 달지 않은 것이었다.
강한의 눈빛에 작은 슬픔이 걸렸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기에 그녀에 대한 실망은 없었다. 다만, 육노예가 하나씩 사라져간다는 것이 슬플 뿐. 그리고 그녀와의 추억의 끝이 어긋나버린 것이 아쉬울 뿐.
한 사람을 세뇌시킨다는 것은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뼛속 깊이 골수까지 세뇌시켜야만 허튼 마음을 먹지 않는 걸까. 사이비 종교인들은 간이고 쓸개고 원한다면 목숨도 갖다바치려 하던데.
강한은 새삼, 사이비 종교의 교주의 세뇌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깨달았다. 시스템 능력 없이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조종하며 이용하는 걸까.
"뭐.. 어차피 복수했어야하니까."
그의 눈빛에서 슬픔이 옅어지며 분노가 끝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곧 마지막 보스년인 장 대표가 제발로 호랑이굴로기어들어올 것이다. 사례금이란 미끼를 목구멍 깊숙히 물어버린 채 말이다. 그렇기에 복수의 대업을 마무리 짓기 위해선 세나를 먼저 처리하는 것이 수순이 맞는 법.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후, 그럼.. 끝내볼까.."
복수란 그늘 아래서 여성을 능욕시키고 세뇌시키는 재미에 빠졌었는데, 이제 그만 그 욕망의 그늘 아래서 빠져나올 시간이다. 욕망에 사로잡혀 시스템을 남용했다. 이제 그 시간들을 바로 잡아야했다.
물론 여성들을 노리개로 쓰는 일을 멈춘다는 것은 아니었다. 정신조종이란 압도적인 능력으로 육욕을 풀지 않으면 바보일 테니까. 대신 이젠, 조교니 세뇌니 따위의 부질없는 짓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도 재밌긴 했어."
회한과 만족의 중간 언저리에 얹힌 묘한 목소리로 그가 읊조렸다. 신발장을 열어보았다. 손전등까지 챙겨갔다. 그렇다는 것은, 해가 지고 난 후에 도망쳤다는 것.
"철조망을 어찌 넘으려고. 쯧."
신발을 벗고 강한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내부의 한쪽 벽면엔 컴퓨터가 켜져있었고, 화면엔 산기슭이 나타나있었다. 철조망 문마다 설치해둔 CCTV였다. 여러개의 작은 화면들을 모니터를 가득메우고 있었다.
"흠…"
예상대로 세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CCTV가 노출되어있으니 마음 먹고 도망간 거라면 당연히 CCTV의 사각지대로 움직일 터. 그리고 그녀 역시 CCTV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에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대충 모니터를 훑어본 강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번 째, 사냥을 나갈 시간이다.
다른 손전등을 하나 챙겨 그는 안전감옥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그리곤 산책을 하듯 여유롭게 걸었다. 세나가 만약 철조망을 빠져나가 경찰서에서 수아와 같은 진술을 한다면 조금 곤란해지긴할 것이다.
두 명의 여성의 일관된 진술은 신빙성이 있어 보일 테니까. 더욱이 세나는 신원도 분명하니까.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시스템 능력이 없을 때나 허용되는 위험일 뿐이다.
집단최면능력까지 가졌기에 여차하면 모두 기억조작을 하면 그만이다. 수사로 넘어가면 형사를, 고소로 넘어가면 검사를, 재판으로 넘어가면 판사를 시스템으로 조종해버리면 제 아무리 악랄한 짓을 해도 무죄를 받아내기 충분할 터다.
그리고 한둘이 최면에 걸리지 않는다해도 다수의 기억에 소수의 기억은 묻혀버릴 것이다. 다수결의 원칙은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민족 고유의 원칙이니까.
"어디 갔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