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세나의 활약
"허윽!"
외마디 침음을 내지르며 소파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킨 난 격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두근댔다. 이러다 심정지라도 올 것만 같았다.
"뭐, 뭐야."
꿈이었나?
지독히도 생생했던 생동감과 공포심에 몸을 잘게 떨었다. 오한이 든듯 무언가 오싹했다. 잠든 사이, 꿈을 꾼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낯설지가 않았다. 두렵지만 낯설지않은 괴이한 감각에 팔을 걷어보았다. 분명 뜨거운 액체가 팔을 통해 몸으로 주입되었었다.
"어, 뭐야. 원래부터 있었나?"
팔뚝과 팔목을 잇는 오목하게 들어간 관절부에 바늘 자국이 있었다. 점처럼 희미한 자국이었기에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언제부터 이 자국이 팔에 있었는지 알 방법은 없었지만 께름칙한 기분은 당최 잊혀지지 않았다.
"하아ㅡ"
얼마나 잠든 걸까, 시계를 쳐다보았는데 고작 10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요즘 잠이 쉽게 들지 못하더니 간만에 감은 눈조차 깊이 감기지 않는다.
"씨발.. 좆같네."
답답했다.
벌려놓은 일들이 뒤죽박죽이되는 것 같아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하실엔 세나가 경찰서엔 수아. 이 두 년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죽이고 싶진않았다. 죽이면 무엇보다 사후처리가 복잡해진다.
물론 세나의 유일한 연고인 아버지는 그녀가 해외연수에 떠난줄 알기에 먼저 연락하지 않는한 그녀를 찾을 수 없을 것이고 수아의 부모 또한 수아를 자식취급하지 않았기에 그녀가 죽는다한들 사망신고만 하지 않으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위태로운 정신상태에선 혹시모를 위험을 만들 수는 없었다. 안정적인 방법. 자살을 시킬까? 아니면 그냥 내 사유지가 된 이 산의 어딘가에 묻어버릴까?
생매장?
아니, 죽인 다음에 매장시키는게 아무래도 낫겠지?
아니면 서로 죽이게끔 시킬까? 배틀로얄처럼. 무대는 이 산으로 하고. 재밌을 거야, 큭큭.
…
..
.
미치겠군.
잠시 정신줄을 잡은 손을 느슨하게 만들면 곧바로 줄이 풀리려한다. 다시금 냉수 한 컵을 떠와 벌컥벌컥 들이켰다. 밤이 늦어가도록 잠이 오질 않는다. 그 10분의 시간에 꿀잠이라도 잔 걸까. 아니다. 피곤하다.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눈을 감으면 각성을 한듯 잠기운이 싹 도망가버린다.
"하암.."
얄미울만큼 큰 하품이 나왔다. 하, 씨발.. 병원에 가서 수면제라도 처방받아야하는 걸까.강제로라도 잠에 들지 않으면 정말 이대로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 아니, 정신력이 소모되면 그만큼 신경이 지쳤다는 건데 왜 잠은 안 들고 지랄인 거야. 씨발, 짜증나게.
소파 방석을 집어 세게 던져버렸다. 둥실 뜨듯 날아간 소파가 주방 식탁에 부딪히며 식탁 위에 놓아둔 식기통이 흔들렸고, 식기류가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차라리 쇳소리가 어지럽게 울려퍼졌으면 좋겠는데 플라스틱 식기류는 감흥없는 둔탁한 소리만 낼 뿐이었다. 뭔갈 깨부숴버리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손에 잡힌 리모콘을 강하게 던져 티비 화면을 박살냈다. 거미줄모양으로 깨진 티비 화면에 비친 나의 모습 또한 깨져있었다.
"씨발.."
그 모습이 나의 지금 상태를 대변하는 것 같아 시선을 돌려버렸다. 시야에 지하실 문이 보였다.
이제 형사가 다시 방문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위험에선 벗어났다. 세나를 풀어주는게 나을까?
아니지, 풀어줬다간 어디선가 무기를 구해와 날 공격한다면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저렇게 어둠 속에서 몇날며칠을감금시켜놓을 수는 없다. 결국 난, 한숨을 작게 쉬며 몸을 일으켰다.
열쇠로 잠금을 풀고 지하실 문을 열었다. 손전등으로 내부를 밝히자 모든 것을 속박당한 세나가 애처로이 쓰러져있었다.
기척에 그녀가 고개를 들어 계단 위를 쳐다보았다. 안대에 가려있지만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세나를 부축해 일으켜 계단을 올라왔다. 그녀는 나의 손짓 하나에도 몸을 떨었다.
안대를 풀어주었다.
입에 물린 재갈은 풀어주지 않았다.
인간의 치악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공격가능한 모든 수단을 원천봉쇄했다.
세나가 파리하게 떨리는 동공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겁에 질린 그녀의 모습이 썩 보기 좋았다. 처음 그녀를 이곳에 끌고 왔을 땐 겁에 질렸음에도 그걸 독기로 포장해 잘 숨겼었는데, 지금의 그녀는 두려움을 온전히 표출하고 있었다.
"세나.. 내가 널 어떻게 해주기를 바래?"
아, 재갈은 풀어줄 수밖에 없겠군.
재갈을 당겨 목으로 내렸다. 그녀의 체액이 흥건히 젖은 재갈이 영롱한 빛을 띤다.
"주, 주인님.."
"이제 주인님이라 부르지 않아도 돼. 너도 느끼고 있잖아? 내가 예전과 달라졌다는걸."
주인님이라 부르지 말라는 것은 노예에겐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공포다. 세나의 동공이 더욱 뚜렷하게 떨려갔고 벌린 입에선 감히 말조차 나오지 않는 듯했다.
"하, 하지만… 그럼 저는…"
"주인을 공격한 노예를 어떻게 곁에 두겠어?"
나의 거듭된 냉언에 세나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여성의 눈물은 남자의 마음을 약해지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의 내겐 적용되지 않는 말이다. 세나의 눈물은 그저 염분덩어리일 뿐이다.
"설마 날 공격하고도 노예로 남고 싶었던 거야?"
"흐윽.. 그, 그건.. 주인님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주인님이 어디 아프셔서 그러신 거라고… 흐으윽…"
세나가 구슬피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난 이별통보를 하는 남친 같고,세나는 이별통보를 받고 매달리는 여친 같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하물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미친 새끼인 것 같다.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정신력조차 희미한 이 상황에서 또 그런 욕망에 휘둘리다니 말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정신력이 약해지니 이런 욕망에 휘둘리는 것 아닐까? 큭큭.
"내가 아파? 어디 아파 보여?"
"네.. 정신이.. 아파보여요.. 주인님 같지 않아요.. 제발 예전의 주인님으로 돌아와주세요…! 제발.. 흐으윽…"
세나가 가녀린 팔목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어느새 그녀는 내 앞에 자연스레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한 여성이 무릎을 꿇고진심으로 애걸하는 모습은 굉장히 보기 좋은 것이구나. 정복감과 우월감이 샘솟는다.
"이미 강을 건넜어. 뱃사공도 없이 탄 배니까.. 어디로 갈지도 몰라."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제가 뱃사공이 되어드릴게요! 그러니 제발.. 제발 우리 예전으로 돌아가요.. 흐윽.."
세나가네발로 기어와 바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내 손을 잡았다. 눈물이 가득찬 그녀의 작은 눈망울이 일렁인다. 마치 그릇된 길로 가는 자식을 바른 길로 안내하려는 어미의 모습같다.
난 세나의 손을 세게 뿌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이미 늦었어. 떠난 배는 돌아오지 않아."
세나가 내 바짓자락을 부여잡으며 매달렸다. 그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이런 일이 닥칠 줄 알았다면 그녀가 과연 날 공격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언젠가는 했을 거다.
"주인님! 제발! 제발요! 흐윽.. 제발..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흐으윽!"
서러운 울음 탓에 목소리가 꺽꺽 넘어가면서도 끝까지 매달린다. 피식, 갑작스레 미소가 나왔다. 흐트러져가는 정신 속에서 뭔가 한 줄기 빛이 내리는 것 같다.
광명의 길인가?
으음, 무엇이 되었든 나쁘지 않은 길 같다.
꽉 막힌 도로를 잠시나마 터줄 수도 있을 것 같고.
쭈그리고 앉아 세나의 턱을손가락으로 들었다.
"버리지 마? 안 버리면 내게 뭘 해줄 거지?"
세나가 눈물을 훔치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 두려움이 가득했다. 버려질 거란 두려움. 노예로써 표상적인 그 두려움이 마음에 들었다.
"뭐.. 뭐든지요.. 그러니 제발.. 전 여기 있고 싶어요. 버려지기 싫어요.. 흐윽.."
"그래, 좋은 자세야. 노예라면 그래야지. 그럼 니가 할 수 있는걸 해봐. 마음에 들면 이곳에 남겨주지."
사실이다.
그녀의 하기나름에 따라 이곳에 남겨줄 수도 있다. 물론 암시의 늪에 빠뜨려버릴테지만.
나의 말에 세나가 한동안 사고회로가 정지된 로봇마냥 멈춰있다가 이내 뭔갈 깨달았는지 내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바지를 탈의하고 소파에 온 몸을 기댔다. 푹신한 쿠션감이 썩 좋다.
세나가 하물을 정성스레 쓰다듬었다. 내게 다시 이쁨 받기 위해 구애의 춤을 추듯, 그녀는 손짓으로 하물을 유혹했고, 난 그 구애의 춤에 몸을 맡겼다. 혹시 그녀가 깨물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이미 그녀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간 하물에 걱정은 접었다.
뜨거운 세나의 입속은 이상하게도 포근했다. 어루만져지는 느낌이 위로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츄읍.. 츄릅, 쭈읍."
세나는 정성껏 입으로 빨다가 몸을 일으켜 제 음부에다 하물을 비비기 시작했다. 퍽퍽했던 음부가 촉촉해졌다. 의자에 앉듯, 세나는 하물을 잡고 앉았다. 입속과는 다른, 조임과 따스함에 난 눈을 감았다.
복잡하게 꼬이는 실타래가 잠시나마 멈추었다.
머리를 뜨겁게 달구던 온갖 잡생각들이 일순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뭘까. 고추가 결국 뇌를 지배한 건가.
그렇게 난 세나의 눈물겨운 구애정사에 이상하게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고, 눈꺼풀이 덮인 눈동자는 서서히 그 빛을 꺼갔다.
잠이 쏟아졌다.
***
-가톡.
-가톡.
"으음…"
귓가에 울리는 메세지 알림음에 눈을 비볐다. 그러다 깊게 잠이 들어버린 듯한 느낌에 화들짝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반사적으로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간은 어느새 아침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날이 환하게 밝았다.
주방에서 달그락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뭐지?'
또 꿈이라도꾼 걸까?
요즘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 분간이 힘들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몸이 개운했다. 몸이 개운해지니 정신 또한 휘몰아치던 소용돌이가 증발해버린듯 고요해졌고 상쾌했다.
이 얼마만의 느낌인가.
아랫도리를 쳐다보았다. 바지가 어수룩하니 대충 입혀져있었다. 그렇다면 진짜 세나와 정사를 하다가 잠이 들어버렸단 말인가? 그것도 이렇게 단잠을? 엄마 품처럼 포근한 느낌은 있었지만 그냥도 들지 않던 잠이 정사 중에 들어버렸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세나의 음부가 조여오던 조임과 미끌대던 애액, 그리고 뜨뜻한 온기까지 생생하게 기억났다. 하지만 그뒤는 기억이 없었다. 보통 섹스를 하면 말초신경계가 달아오르며 각성하게 된다. 그런데 되레 잠이 들었다?
아니면 세나의 진심이 나를 편안히 만든 건가? 아니, 오히려 난 그녀를 짓밟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었다.
"뭐냐.. 그나저나 푹 잤더니 개운하네."
황당했지만 이렇든 저렇든, 어쨌든 10시간이 넘도록 잠든 덕에 막 목욕재개를 한 듯 개운했다. 기지개를 키고있자 세나가주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비극으로 물들어가기 전의, 모습이었다.
망사 메이드복을 입고.
요리 장갑을 낀 그녀의 모습.
그녀가 만약 나를 위하는 마음에 거짓 한 스푼이라도 있었다면 잠이 든 순간에 무슨 짓이든 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를 공격했던 것도 정말로 폭주하던 기관차를 멈추기 위한 브레이크였던 걸까.
뭐, 어쨌든 공격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처벌은 우선 유예하도록 하지. 유예기간에 저지른 짓은 가중처벌된다는 건 너도 잘 알겠지?"
나의 말에 세나는 잠깐 미소지었다가 다시 표정을 굳혔다. 댕댕스럽던 그녀도 좋았지만 저렇게 의전하고 진중한 모습도 썩 나쁘진 않은 듯싶다.
확인결과 수치상으로 표시되진 않지만 정신력도 제법 회복된 것 같아 그녀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재시전해 암시를 걸어둘까 싶었지만, 혹시나모를 사태에 대비해정신력을 아끼기로 했다.
휴대폰을 켰다.
나를 단잠에서 깨운 메세지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상후돔 시장] : 강한아. 오늘 약속 있어?
[상후돔 시장] : 혹시 없으면 점심 같이 먹을 수 있을까? 안 본 지 좀 되서 그런가.. 보고 싶기도 하고..